나의 산행이야기

雪國의 덕유산(德裕山) 그리고 상고대[무빙(霧氷)]

작은岳馬 2007. 1. 8. 13:31

 

雪國의 덕유산(德裕山) 그리고 상고대[무빙(霧氷)]

 

산행일자 : 2007년 01월 07일

 

산행장소 : 용추계곡~칠연폭포갈림길~동업령~백암봉(송계삼거리)~덕유평전~중봉~향적봉~백련사~삼공리

 

산행모임 : 대전한셔레산악회

 

산행날씨 : 흐림, 눈, 강한 칼바람

 

새해 첫 산행을 '덕유산 눈꽃산행'이라 칭하고 야심차게 준비를 했으나 언 10여일 동안이나 눈이 내리자 않아 노심초사 했었다.

우리 한겨레 회원님들의 정성을 하늘이 어여삐 여기셨는지 산행 이틀 전 부터 눈이 내리기 시작하더니 기온마저 영하로 뚝 떨어져 동업령에서 향적봉(香積峰 1,614m)으로 향하는 산행로에 꽃필 것으로 예상되는 "상고대[무빙(霧氷)]"를 잔뜩 기대 하게 한다.

 

01월 07일 새벽 5시에 일어나 창문을 열어 보니 간간이 지나가는 차량만 눈에 들어오고 사람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 가운데 차가운 겨울 바람이 내 볼을 스치고 지나 간다.

더운물로 간단하게 샤워를 하고 손으로는 덕유산 산행을 위해 배낭을 꾸리며, TV에서 흘러 나오는 뉴스에 귀 기울이니 강원 및 전라도 지방에 폭설 주의보와 함께 적설량이 많은 곳은 25cm를 넘어섰다는 기사가 연신 들려온다.

 

2006년 12월 북한산(北漢山 836m) 산행을 계획하고 북한산으로 향하다가 입산통제 때문에 무거운 발길을 돌려야만 했던 아쉬운 기역이 머리를 스쳐 지나가는 순간이다...!

 

 

07시 20분 용문네거리 도착하니 며칠 동안 평년 기온을 웃돌던 날씨가 갑자기 뚝 떨어진 탓인지 을씨년스럽기까지 한 가운데, 휴대전화의 벨소리가 들려 확인하니 이석춘님이 "왜 아직 오지 않느냐"며 성화다.

나는 "아직 버스가 도착하려면 20여분이나 여유가 있는데 무슨 얘기냐"고 하니, 버스는 용문네거리를 07시 15분경에 지나쳐 벌써 시민회관에 도착하여 회원들을 태우고 원두막으로 향하려 한다는 것이다.

나는 전화를 끈고 급히 택시에 몸을 싣고 시민회관 뒤쪽으로 가자고 말하니, 나이가 50은 훨씬 더 들어 보이는 택시기사님이 "이 추운 날씨에 방안에 있지 무슨 등산을 가려고 합니까"라고 말을 건넨다.

순간 나는 이 택시기사와 산에 대해 이야기 한다는 것은 무 의미하다고 판단하고 "날씨가 추운데다가 엊그제부터 많은 눈이 내렸으니 오늘은 산행하기 최적의 조건을 모두 갖춘 날입니다."라고 짧게 말하고는 더 이상 택시기사가 이야기하는 말에는 대꾸하지 않았다.

 

시민회관에 도착해 평소 한겨레산악회에서 이용하는 버스를 찾으려고 두리번 거리고 있으려니 친구인 이석춘님이 손짓을 보내며 반긴다.

이석춘님이 안내하는 버스에 오르니 평소 이용하던 버스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가 풍기며 버스안이 허름한 것으로 보아 적어도 5년 이상 나이를 먹었음을 짐작케 한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평소 이용하던 버스가 무주군 설천면 삼공리에 들었다가 어젯밤의 많은 눈으로 인해 그 곳을 벗어나지 못한 관계로 덕유산까지는 다른 버스를 이용하게 되었다고 한다.

 

평소 덕유산에 들 때는 덕유산휴게소에서 잠시 정차하는것이 통례인데, 오늘은 금산인삼랜드에서 정차를 한다. 이유는 버스가 대전 나들목을 지날 때부터 덕유산 관리소 측에 전화로 문의를 하니 오늘 덕유산 일대는 전면 입산이 통제되었다고 하여 그 대책을 간구하기 위해서 였다.

회장님을 비롯한 임원들은 동업령을 지나 향적봉을 오르는 계획을 수정하여 육십령에서 합미봉을 지나 장수덕유산(長水德裕山 서봉)에 오른 후 원점으로 회귀하는 산행계획을 오늘 참가한 회원님들에게 공포하니 모두들 그 구간도 풍광과 조망이 향적봉(香積峰 1,614m) 못지 않다며 반기는 눈치다.

 

버스가 무주군에 들 때쯤 회장님께서 덕유산관리소 측에 다시 문의를 해본 결과 입산통제가 해제되었다고 하니 육십령으로 가기로 한 계획을 접고 처음 계획한 대로 안성매표소로 향한다고 회원님들에게 다시 공포하신다.

 

 

09시 21분 안성 탐방지원센터

 

아름답고 신비스럽기까지 한 덕유(德裕)의 멋진 상고대[무빙(霧氷)]를 감상할 수 있다는 부품 가슴으로 지난 08월 20일 육십령에서 남덕유와 동업령을 지나 용추계곡으로 하산 한지 4개월 17일만에 안성매표소 아니! 국립공원 입장료를 폐지한 후 지금은 '탐방지원센터'로 이름을 바꾼 안성 탄방지원센터 앞 주차장에 마침내 선다.

2007년(丁亥年) 첫 산행에 앞서 시산제(始山祭)를 간단하게 올리기로 하였기에 준비해 온 제수(祭需)를 옮기다가 산행 들머리에 굳게 닫친 철문을 보고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분명 이용우 산악대장님이 덕유산관리소에 제차 확인하고 버스를 이곳으로 몰았건만 말없이 굳게 닫친 철문이 웬 말인가...?

 

이용우 산악대장과 나는 안성 탄방지원센터 안으로 들어가 홀로 자리를 지키고 있는 관리인에게 우리가 이곳으로 오게된 경유와 지금 처해 있는 상황을 설명하니 관리소 직원은 "이곳은 입산이 통제되었으니 삼공리 쪽으로 이동하여 산행을 시작하고 이쪽으로 하산하시지요."라고 동문서답을 한다.

순간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이용우님은 "분명 전화로 덕유산관리소 측에 확인을 하고 왔습니다."라고 말하니, 이에 관리소 직원은 "여러분들이야 이곳으로 올라 산행만하면 그 뿐이지만, 우리는 그로 인해 밥 숟가락을 놓는 일이 생깁니다."라고 반박하며 그렇게 의심스러우면 전화를 해 보라며 전화 번호까지 가르쳐 준다.

관리소 직원의 완강한 태도에 더욱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이용우님은 잠시 머묵거리다가 자신의 휴대전화로 전화를 걸어 입산통제가 해제되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관리소 직원에게 전화를 건네 확인시키니 그 때서야 관리소 직원은 입산을 허가 한다.

 

관리소 직원의 안일(安逸)한 태도에 씁쓸한 마음을 금치 못하며 관리소를 나서는데 순간 가슴속 저 깊은 곳이서 욱하는 무언가가 치밀어 오르는 것을 느낀다. 참자! 참아야지....

 

 

관리소를 나와 회원분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가니, 시산제(始山祭)를 올릴 준비를 마치고 있어 나 역시 회원들 속으로 몸을 숨긴다.

시산제(始山祭)는 간소하게 준비한 제수(祭需)를 정성을 다해 차려 놓고 10여분 동안 진행된 후 모든 회원분들과 제수를 나누며 음복(飮福)을 한 다음 끝을 맺었다.

 

시산제(始山祭)

 

오늘 정해년 첫산행을 맞이하여 산을 사랑하고 자연을 사랑하며

서로를 사랑하는 마음을 근본으로 삼고있는

대전 한겨레 산악회 회원 일동은 천지 신명과 덕유산 신령님께

경건한 마음으로 이렇게 다짐하며 고하나니

언제나 저희들의 마음을 해아려 주시길 진심으로 기원 드리나이다.

비는 오더라도  길은 질지 않게 해 주시옵고

많이 걸어 다리 아픔은 견딜수 있지만 다치는 고통은 주지 마시옵고

배 고픔도 겨딜수 있지만  배탈이 나는 일은 없게 하여 주시옵소서

차갑고 거센 눈보라도 견디겠습니다마는 볼을 애이는 아픔은 주지 마시옵소서

어두울땐 랜턴을 주셨듯이 길을 모를땐 옳게 선택할수 있는 지혜를 주시옵고

우리와 함께하는 모든이들이 서로 미워하지 않고

시기와 질투 하지 않으며 화합 할 수 있는 너그러움과 사랑을 주시 옵소서

이로써 대전 한겨레 산악회 회원들 모두는 

자연을 사랑하고 이웃과 서로를 사랑하며

우리의 건강과 밝은사회 구현을 위해 언제나 노력 하겠나이다.

오늘 이러한 전 회원의 진정어린 마음을 한데 모아

음식과 술을 올리고 엎드려 고하나니 흠양 하시옵고 

우리 모두의 뜻을 받아주시기 바라옵니다.

 

2007년 1월 7일

 

대전 한겨레 산악회 회원일동

 

 

안성 탄방지원센터 주차장 좌측으로 올려다 보이는 능선의 모습.

 

 

 

09시 55분 문덕소

 

아무도 지나가지 않은 하얀 눈길을 뽀드득 뽀드득 소리를 내며 발길을 조금 옮기니 이내 문덕소가 나타난다.

지난 가을 시원한 물 소리를 내며 흐르던 계곡물과 경쾌한 소리로 떨어지는 낙수(落水)가 일품이었던 문덕소의 연당(蓮塘) 꽁꽁 얼어 작은 썰매장을 연상케 하며 사뭇 색다른 분위기를 만들어 내고 있다.

 

 

10시 03분 즉석 단체사진

 

동업령으로 이어지는 목교(木橋)와 고즈넉한 계곡의 비단결 같은 암사면(巖斜面)을 타고 떨어지는 물줄기가 만들어 놓은 일곱게의 연당(蓮塘)이 잇따라 있고, 그 연당에는 마치 옥(玉)구슬을 담아 놓은 듯 옥빛을 띠는 물이 가득 차 있다는 칠연폭포(七蓮瀑布)로 이어지는 갈림길에서 모처럼 회원님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 본다.

 

 

 

 

 

 

칠연폭포(七蓮瀑布) 갈림길에서 망봉(1,046.5m)이 있는 방향을 바라보며 소나무에 수북이 내려앉은 흰 눈을 바라보니 내 마음까지도 따스해짐을 느낀다.

용추계곡 우측으로 이어지는 임도를 따라 걷다보니 영하의 추위와는 어울리지 않게 이마와 등줄기에 땀이 송골송골 맺히더니 이내 흘러내린다. 

"소한(小寒)에 꽁공 얼어붇은 얼음은 대한(大寒0에 녹는다."라는 말이 있듯이 일년 이십사절기중 가장 춥다는 스물셋째 절기에 해당되는 소한(小寒)이 어제였는데, 소한 추위가 무색하게 회원님들은 추위에 대비해 두툼하게 끼어입었던 겉 옷을 벗어 던지느라 여념이 없다.

 

 

10시 37분 일렬종대

 

칠연폭포(七蓮瀑布) 갈림길에서 목교를 지나 완만한 오르막 비탈에 눈이 발목까지 수북이 쌓여 있고 주변 나뭇가지에도 수북이 내려 앉아 마치 동화속 나라를 연상케 하는 산행로를 따르다가 작년 가을에 산행로 계단공사를 하느라 어수선 하기만 했던 비탈길이 말끔하게 정돈 되어 있는 계단에서 회원님들의 즐거운 모습을 담아보며, "상고대[무빙(霧氷)]는 언제나 볼 수 있을까..." 생각 해 본다.

 

 

 

 

 

 

11시 15분 설국(雪國) 속에서

 

칠연폭포(七蓮瀑布) 갈림길에서부터 시작된 완만한 오르막 비탈길이 제법 가파른 고갯마루로 이어지는데, 그 고갯마루를 힘들게 넘어서니 이틀 전부터 내린 눈과 하늘에서 땅으로 내리던 서리가 습하고 차가운 기온과 만나 나뭇가지와 풀잎들 그리고 산죽에 얼어붙어 하얀 상고대[무빙(霧氷)]를 만들어 놓고 온 세상을 아름다우면서도 시비롭기까지 한 설국(雪國)으로 바꿔 놓고 있다.

 

상고대[무빙(霧氷)]의 멋진 모습을 보며 모든 회원님들은 저마다 감탄사를 한마디씩 토하며, 눈밭에서 뛰노는 어린 아이들처럼 좋아서 어쩔 줄 몰라 한다. 또한 평소 같으면 사진을 찍자고 내가 부탁을 해야 포즈를 취하던 나이 지긋하신 회원님들이 오늘은 자청해서 포즈를 취한 후 사진을 찍어 달라고 아우성이다...ㅎㅎㅎ

 

 

 

 

 

 

 

11시 24분 동업령을 올려다 보며

 

동업령(1,260m)이 저 만치 올려다 보이는 곳에 도착하니 하늘에서는 눈발이 날리기 시작하고 차가운 바람은 내 얼굴에 다가와 부딪치더니 이내 내 양 볼을 얼려버릴 기새다. 그래도 관목들과 목책(木柵)의 기둥과 로프에 하얗게 피어 있는 상고대[무빙(霧氷)]와 눈꽃(雪花)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금방이라도 양볼을 얼려버릴 기세로 불어오는 동업령의 칼바람도 따스한 봄바람 처럼 느껴진다.

 

아래의 사진은 동업령(1,260m) 50여미터 아래에서 동업령을 올려다보며 담은 사진인데, 용추계곡을 지나 동업령으로 이어지는 골짜기를 지날 때만 해도 바람은 잔잔하고 구름 사이로 간간이 햇볕이 들어 3월의 날씨를 연상케 하던 하늘이 갑자기 잿빛으로 변화더니 강한 칼바람이 몰아치는 모습니다. 그리고 목책의 로프에 피어있는 상고대[무빙(霧氷)]는 그 길이가 10여 센지미터는 넘어 보인다.

 

 

 

 

11시 26분 동업령(1,260m)

 

동업령에서는 북상면 병곡리 골짜기를 타고 올라오는 강한 칼바람이 회방을 놓는 바람에 오래 머물지 못하고, 동업령을 알리는 푯말을 감싸고 있는 눈꽃을 닦아내며 흔적을 남긴후 동업령삼거리를 향해 발 걸음을 제촉해야만 했다.

동업령에서 동업령삼거리로 향하는 산행로에는 곳곳에 무릎을 넘어 허리까지 많은 눈이 쌓여 있어, 아무도 지나가지 않은 히미한 산행로를 러셀(russell)을 해 가며 선두에서 회원님들을 이끌고 있는 산악대장인 이용우님의 고초를 짐작케 한다.

 

산행 후 한겨레산악회의 자랑인 맛있는 김치찌게와 하산주를 마시며 산악대장에게 들은 말에 의하면 곳곳에 허리까지 쌓여있는 많은 눈을 헤치며 산행하던 중 맞은편에서 선두 일행을 향해 걸어오는 덕유산관리공단 직원을 발견하고 산악대장은 반갑게 인사를 건넸는데, 그 관리소 직원은 다짜고짜 퉁명스런 말투로 "이시간에 어떻게 여기까지 왔느냐"며 마치 죄인을 취조 하듯 묻더란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안성 탄방지원센터에서부터 관리소 직원의 안일(安逸)한 말과 행동에 화가 났으나 좋은 산행에 찬물을 끼얹지 않으려고 참았는데, 산행하는 도중 만난 관리소 직원은 이번에는 안일(安逸)하다 못해 '산행하는 산행객의 안전을 도모하고 불편이 없도록 적극 지원해야 한다는' 직분을 망각한 행동과 말에 화가 치밀어 오름을 느꼈다고 한다.

산악대장님은 관리소 직원을 잡고 눈에서 눈물이 쑥 빠지도록 혼줄을 내 줄려다 뒤 따르는 회원님들에게 페가 될까봐 참고 산행을 했다고 한다.

 

"국립공원 관리공단은 메표소란 이름을 달고 산행하는 산행객들에게 입장료를 강요할 때의 권위적이고 안일했던 생각을 버리고 '탄방지원센터'란 이름에 걸 맞게 산행하는 산행객들의 안전을 도모하며 산행객들이 정작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 찾아내어 적극적으로 대처해야만 할 것이다."

 

 

 

11시 47분 동업령 삼거리

 

동업령에서부터 차가운 칼바람과 싸우며 허리까지 차오르는 눈길을 따라 20여분을 걷다 보니 온통 흰색으로 치장한 설국(雪國)에서 동업령 삼거리를 알리는 검붉은 푯말만이 우뚝 서 있다.

 

 

 

 

11시 52분 산죽(山竹)길

 

눈꽃(雪花)이 아름답게 핀 관목 철쭉과 엄동설한에도 푸른빛을 잃지 않고 있는 산죽(山竹)이 만들어내는 산행로 저 너머로 보이는 무명봉은 두툼한 흰눈을 덮고 말없이 나에게 어서오라 손짓을 보내는 듯 하다.

아래의 사진은 무명봉을 지나 1,321m봉으로 향하는 도중에 하늘에서 간간이 햇볕이 쏟아지는 장면을 담은 사진인데, 빛이 모자라 영 신통치 않다.

 

산죽길을 지나 1,321m봉으로 향하며 차가운 칼바람에 얼굴이 얼얼하고 손 끝이 아려오는 중에 칼바람을 막아주는 봉우리를 우측에 두고 가쁘게 숨을 몰아쉬며 오르막비탈을 오르니 부회장님과 신현숙님이 귤을 나누워 먹고 있다.

신현숙님은 다가가는 나를 발견하고는 장갑은 벗은 손으로 귤껍질을 직접 벗겨서 먹어보라고 건네주신다. 나는 내가 껍질을 벗겨 먹을터이니 그냥 달라고 하니 신현숙님은 "장갑을 벗으면 손이 매우 시리니 그냥 받아 먹어요"라고 하신다. "눈길을 걷다가 잠시 다리쉼을 할 때 들국회님이 건네 준 귤 정말 맛있었습니다."

 

 

 

 

12시 20분 1,321m봉을 오르며

 

1,321m봉이 다가서며 맞은편에서 동업령을 향해 산행을 하는 산행객들을 볼 수 있다.

엄동설한 설국(雪國)에서 한겨레 회원님들만 산행을 한다 생각하다가 산행객을 만나니 기쁘기도 하지만 산악대장 이용우님이 선두에서 러셀(russell)을 해 놓은 좁은 산행로를 교차 통과하려고 병목현상이 벌어지니 한편으로는 씁쓸한 기분이 드는 순간이다.

 

1,321m봉에서 백암봉(白巖峰, 송계삼거리 1,490m)으로 향하는 중에 간간이 잿빛 하늘이 열리고 쪽빛하늘이 보이기도 해, 그 순간을 놓칠세라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러 보았으나 백암봉이 가까워지면 질수록 많아지는 산행객들을 피해 순간순간을 포착하기란 여간 힘든게 아니었다.그래도 아래의 사진 몇 장이 오늘 유일하게 쪽빛 하늘을 보며 담은 사진들이다.

 

쪽빛의 하늘이 조금 열리고 그 열린 틈으로는 눈이 부시다 못해 시리도록 밝은 햇빛이 쏟아질 때, 그 때를 맞춰 운무(雲霧)는 봉우리와 능선을 빠르게 넘나들며 우뚝 솟은 봉우리들과 꿈틀거리는 용을 닮은 능선을 휘감아 돌며 만들어 내는 풍광은 높은 고지 호숫가의 고즈넉한 명산을 연상케 하며, 겨울 풍경을 담은 한 폭의 동양화를 보는 듯하다.

 

그 풍광을 보고있던 산행객들은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탄성을 자아내며, 그 모습을 놓칠세라 저마다 카메라를 꺼내 연신 셔터를 누르는 보습이다.

 

 

 

 

 

 

12시 29분 상여덤과 귀봉(1,400m)를 바라보며

 

위 사진 두 장에서 보이 듯 백암봉(白巖峰 1,490m)에서 상여덤과 귀봉(1,400m)으로 이어지는 능선쪽으로 하늘이 열리며 용이 꿈틀거리는 듯한 능선의 모습을 담으려고 했으나 짧은 순간을 포착하지 못하고 말았다.

백암봉이 올려다 보이는 이 구간에서는 많은 산행객들이 분비는 바람에 암릉구간이나 좁은 비탈에 많은 눈이 쌓인 곳에서는 마주오는 산행객들을 10여명 보내고 10여미터를 전지하고 또 10여명 보내고 10여미터를 전진하는 조금 답답한 산행을 반복해야만 했다.

 

 

 

 

12시 33분 백암봉(白巖峰 1,490m, 송계삼거리)

 

운무(雲霧)와 눈꽃(雪花) 그리고 능선의 상고대[무빙(霧氷)]가 만들어 내는 신비스런 향연을 뒤로하고 오늘 산행의 분기점인 백암봉(白巖峰 1,490m, 송계삼거리)에 선다.

이 백암봉 즉 '송계삼거리'는 그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향적봉(香積峰 1,614m)과 귀봉(1.400m) 그리고 동업령(1,260m) 방향으로 분기되는 분기점이라 늘 많은 산행객들로 분비는 곳이다.

오늘도 역시 많은 산행객들이 북적이는 가운데 사위(四圍)에서 골짜기를 타고 불어 올라오는 살을 에는 듯한 칼바람은 간행객들이 이 곳에서 오랫동안 머물지 못하고 이내 발길을 옮기게 하고 있다.

나는 배낭에서 바나나와 초코바를 꺼내어 친구 이석춘님과 나누며 잠시 다리쉼을 한 후 살을 에는 칼바람에 떠 밀려 덕유평전(德裕平田 1,480m)으로 발걸음을 옮겨보는데 무릎을 지나 허리까지 쌓여있는 좁은 눈길을 헤치며 나아가려니 향적봉쪽에서 걸어오는 산행객들과 조우(遭遇) 할 때면 좁은 눈길 가장자리로 한 쪽이 비켜서야 하는 까닭에 빨리 향적봉에 오르고 싶은 내 마음과는 달리 발걸음은 더디게만 느껴진다.

 

 

 

13시 19분 중봉(1,494.3m)

 

덕유평전(德裕平田 1,480m)을 지나는 산행로 가장자리에는 눈꽃(雪花)과 상고대[무빙(霧氷)]가 관목인 철쭉 가지 마다 아름답게 피어 마치 커다란 꽃다발, 혹은 열대 바다속의 산호초를 연상케 하고, 주목과 구상나무에 피어난 눈꽃(雪花)은 온 세상이 새하얀 눈으로만 만들어진 동화속의 설국(雪國)을 연상케 한다.

이렇듯 조물주가 선물한 눈꽃(雪花)과 상고대[무빙(霧氷)]는 눈 덮힌 겨울산의 신비스러움울 더하여 산행하는 산행객들에게 황홀감 마저 안겨주며, 선유(仙遊)의 세상을 여행하는 몽상(夢想)에 빠지게 한다.

 

위 사진은 중봉으로 향하는 데크에 상고대[무빙(霧氷)]가 강한 칼 바람이 부는 방향으로 한 뼘 넘게 피어 있는 모습을 담은 사진이다.

 

 

 

 

13시 27분 눈 덮인 덕유의 주목(朱木)과 구상나무

 

사진을 좋아하는 사람이나 사진작가들이 가장 좋아하고 자주 찾는 곳으로 잘 알려진 덕유산에는 유난이 멋진 주목(朱木)과 구상나무가 자생하고 있다.

오늘 처럼 많은 눈을 뒤집어 쓰고 있는 나무들 중에 주목과 구상나무를 구별하기는 힘들어 두 나무에 대한 자료를 옮겨 본다.

 

주목(朱木, spreading yew)

주목과(朱木科 Taxaceae)에 속하는 관상용 상록관목 또는 교목.

일본이 원산지이며 북반구에서 널리 재배되고 있다. 키가 약 16m까지 자라 서양주목(T. baccata)과 비슷하게 보이지만 이보다는 내한성이 강하며 빨리 자란다. 각 잎의 아래쪽에는 2줄의 노란색 띠가 뚜렷하게 나타난다. 주목은 많은 원예품종들이 만들어져 있다. 줄기 옆에 달린 가지를 꺾꽂이하면 그 식물체는 옆으로 기면서 자라는 관목으로 되나, 줄기 윗부분에 달린 가지를 꺾꽂이하면 식물체는 곧추서고 대칭을 이룬 원뿔 모양으로 자란다. 주목과 서양주목을 교잡하여 만들어진 잡종들도 있는데, 이들 가운데 약 10종의 변종(變種)을 가지는 탁수스 메디아(Taxus×media)가 가장 흔하다.

한국에는 주목과 설악눈주목(T. caespitosa) 등이 자라며 그밖에 서양주목을 외국에서 들여와 정원 등에 심고 있다. 주목은 바늘잎이 달리며 4월에 꽃이 피어 8~9월에 열매가 익는데, 열매는 컵 모양의 붉은색 종의(種衣)에 둘러싸인다. 잎을 말린 주목엽(朱木葉)은 신장병과 위장병 치료나 구충제로 쓰이지만 줄기와 잎에 있는 혈압을 낮추고 심장 박동을 정지시키는 탁신(taxine)이라는 알칼로이드 물질로 인해 부작용을 일으키기도 하므로 유의해야 한다. 이 물질이 없는 것으로 알려진 열매는 날 것으로 먹거나 진해제로 사용한다. 최근에는 탁신이 항암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많은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변재는 좁은 흰색이고 심재는 홍갈색이어서 구분이 쉽게 되며 결이 고르고 광택이 좋아 고급 장식재, 용구재, 조각재 및 세공재로 널리 쓰인다. 심재의 색이 홍갈색을 띠어 '붉은나무'라는 뜻의 주목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하는데, 수피(樹皮)를 삶은 물에 백반을 첨가하여 염색하면 붉은빛으로 염색된다. 습도가 높은 지역의 깊은 땅에서 잘 자라는데, 소백산 정상의 주목군락은 천연기념물 제244호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다. 그늘에서도 잘 자라며 도시의 공해에도 잘 견디고 나무의 생김새가 보기에 좋아 관상용으로 정원이나 공원에 흔히 심는다. 배수가 좋은 기름진 땅에서 잘 자라지만 뿌리가 얕게 내리기 때문에 옮겨 심기가 힘들다.

 

구상나무(Pinaceae)

소나무과에 속하는 상록교목.

전세계에서 우리나라의 제주도, 지리산 노고단 임걸령, 전라북도 덕유산 등지에서만 자란다. 키는 18m에 달하며 오래된 줄기의 껍질은 거칠다. 어린가지에는 털이 약간 있으며 황록색을 띠지만 자라면서 털이 없어지고 갈색으로 변한다. 잎은 길이 0.9~1.4㎝, 너비 2.1~2.4㎜ 정도로 작으며 잎 끝이 얕게 갈라졌다. 구과(毬果)는 원통처럼 생겼는데 길이 4~6㎝, 지름 2~3㎝ 정도이며, 밑으로 처지지 않고 위로 곧추서고 녹갈색 또는 자갈색을 띤다. 씨를 감싸는 조그만 잎처럼 생긴 포편(苞片)의 끝에는 뾰족한 돌기가 나와 뒤로 젖혀져 있다. 때때로 구과의 색깔이 파란색, 흑자색 또는 약간 붉은색이 되기도 하여 이들을 각각 푸른구상(A. koreana for. chlorocarpa), 검은구상(A. koreana for. nigrocarpa)·붉은구상(A. kore-ana for. rubrocarpa)이라고 부른다. 젓나무와 비슷하나 잎이 빽빽하게 달리며 잎 끝이 오목하게 갈라진 점과 구과에 달린 포편의 끝이 뒤로 젖혀지는 점이 다르다.

제주도 한라산에서는 해발 1,500m에서부터 산꼭대기 근처까지 군락을 이루며 자란다. 그러나 잎 속에 기름이 많이 들어 있어 안개와 빗물에 젖은 잎과 가지라도 쉽게 불에 타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구상나무를 불쏘시개로 이용하여 많은 피해를 입고 있는데, 요즘에는 이런 일이 줄어들었지만 폭설로 인하여 큰 구상나무들이 많이 파괴되고 있어 보호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잎 뒤에 기공(氣孔)이 나란히 나 있는 기공선이 매우 희기 때문에 멀리서 보면 나무 전체가 은녹색으로 보이며 매우 아름다워 가끔 정원수로 쓰인다. 물이 잘 빠지며 점토질이 섞인 땅에서 잘 자란다. 건축재·가구재로 사용하고 상자 또는 널판을 만드는 재료로 쓰기도 한다.
 

 

 

 

 

13시 30분 주목(朱木)

 

살아 천년 죽어 천년을 간다는 '주목(朱木)'과 살아 백년 죽어 백년을 간다는 '구상나무'의 시비롭고 멋진 모습을 담기 위해 10kg이 넘는 배낭에 촬영장비까지 등에 매고 1,500m가 넘는 덕유산에 오르는 산행객들이나 사진작가들을 볼 때면 웬지 남의 일 처럼 생각되지 않는다.

위 사진에 보이는 주목 두 그루는 날씨가 좋을 때는 나무 뒤로 용처럼 꿈틀거리는 덕유의 능선과 봉우리 그리고 쪽빛 하늘과 덕유 능선이 만나, 만들어 내는 하늘금의 멋진 향연을 보여주는 나무로 사진작가나 산행객들이 가장 선호하는 주목들 중에 하나이다.

 

오늘도 내가 이 지점을 지날 때 대 여섯명의 사진작가들이 무거운 촬영 장비를 두 그루의 주목 앞에 설치해 놓고 덕유의 쪽빛 하늘이 열려 밝은 햇빛이 주목과 주변 관목의 가지에 핀 눈꽃(雪花)과 상고대[무빙(霧氷)]에 쏟아지며 만들어 내는 보석처럼 빛나는 향연의 순간을 담기 위해 수 시간째 기다리고 있었다.

 

아래의 사진은 눈덮인 주목과 눈꽃에 하늘이 열리고 햇빛이 쏟아지면 보석처럼 찬란하게 빛을 발하는 순간을 잡기 위해 설치해 놓은 촬영장비와 주목을 함께 담은 사진이다.

참고로 오늘 햇빛은 내가 백련사(白蓮寺)를 지나 삼공리 주차장으로 향하는 시각에서야 덕유산을 비추고 있었기에 이 곳에 모여있던 작가들이 원하는 작품을 얻을 수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13시 37분 산행로 곳곳의 쉼터에는 흰눈을 수북이 맞으며 산행객들의 발길을 사로잡는 주목과 구상나무들의 덕유의 겨울산을 더욱 더 운치있게 만들고 있다.

 

 

 

 

 

13시 46분 멋진 주목 뒤로 향적봉(香積峰 1,614m)이...?

 

평소 같으면 이 주목 뒤로는 덕우산(德裕山)의 최고봉인 향적봉(香積峰 1,614m) 정수리와 정수리 부근의 풍광을 조망할 수 있지만 오늘은 차가운 칼바람과 함께 눈발이 간간이 휘날리는 바람에 이 주목과 향적봉이 만들어 내는 아름다운 산수화를 감상 할 수는 없다.

그래도 흰 눈을 뒤집어 쓰고 있는 주목은 그 어느 때보다 멋있고 웅장한 자태를 뽐내며 지나가는 산행객들의 발걸음을 붙잡고 있기에는 충분한 모습을 하고 있다.

 

 

 

 

13시 55분 향적봉(香積峰 1,614m)

 

향적봉대피소가 있는 갈림길에서 잠시 다리쉼을 하며 향적봉 정수리에 오르면 살을 에는 듯이 불어올 차가운 칼바람에 대비하며 복장을 점검하는데, 이길숙총무님께서 향적봉의 정수리를 밟지 않고 백련가로 바로 하산 한다고 한다.

그래서 나는 "이 곳까지 와 놓고 덕유산 최고봉인 향적봉(香積峰 1,614m)에 오르지 않는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라고 하니, 총무님은 "향적봉은 이미 여러번 오랐는데 또 오를 필요가 있니..."라고 되 받으신다.

이길숙 총무님과 나와의 대화를 옆에서 듣고 있던 고바우님까지 거듭 향적봉 정수리에 올라야 한다고 하니 그제서야 총무님은 수긍하는 눈치다...ㅎㅎㅎ

향적봉대피소 삼거리에서 정수리로 오르는 계단에는 많은 눈이 쌓여있고 이미 많은 산행객들이 오르고 내려서 인지 곳곳에는 빙판이 생겨 조심해서 정수리로 향한다.

 

오늘 나는 아이젠( Eisen)을 하지 않고 지금까지 산행을 했다. 이유는 '안성 탄방지원센터'산행을 시작 하려는데 하얗게 쌓여 있는 눈 위로 산행객의 발자국이 보이지 않는데다가 지금 쌓여 있는 눈은 어제와 그저께에 걸처 내렸기에 미끄럽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덕유산(德裕山)'은 옛부터 '덕(德)이 많아 넉넉한 산, 너그러운 산'으로 불리우고 있는 산으로 해발 1,614m의 향적봉(香積峰)을 주봉으로 삼고 무풍의 삼봉산 (三峰山, 1,254m)에서 시작하여 수령봉(水嶺峰, 933m), 대봉(大峰, 1,300m), 지봉(池峰, 1,302m), 거봉(居峰, 1,390m), 덕유평전(德裕平田, 1,480m), 중봉(中峰, 1,594m)을 넘어 향적봉에 올랐다가 다시 중봉, 덕유평전을 거쳐 무룡산 (舞龍山, 1,492m), 삿갓봉(1,410m), 남덕유산(南德裕山, 1,508m)에 이르기까지 줄기차게 달리는 덕유연봉(德裕蓮峰)들이 장장 100리길의 대간(大幹)을 이루며 영·호남을 가르는 우리나라 12대 명산중 하나다.

삼남을 굽어보는 덕유연봉의 최고봉인 향적봉에 오르면 북으로 가깝게는 적상산(赤裳山, 1,038m)을 아래에 두고 멀리 황악산(黃岳山), 계룡산(鷄龍山)이 보이며, 서쪽은 운장산(雲長山), 대둔산(大屯山), 남쪽은 남덕유산을 앞에 두고 지리산(智異山), 반야봉(般若峰)이 보이며 동쪽으로는 가야산(伽倻山), 금오산(金烏山)이 보인다.

향적봉 정상에서 발원한 옥수가 흘러 내리며 구천동 33경을 만들고, 북사면의 무주리조트, 서남쪽의 칠연계곡을 이루어 수많은 탐방객들을 맞이하는 덕유산은 두문산(斗文山, 1,051m), 칠봉(七峰, 1,161m), 거칠봉(居七峰, 1,178m) 등의 고봉(高峰) 등을 거느리고 봄철이면 칠십리 계곡에 빨간 철쭉꽃을 피우고 여름이면 짙푸른 녹음으로 피서객을 손짓하며, 가을이면 붉게 타는 단풍으로 만산을 물들이고, 겨울이 되면 하얀 눈이 뒤덮인 설경속에 설화를 피워 신비경을 이룬다.

면적이 231.65㎢로서 전북 무주군·장수군·경남 거창군·함양군 등 2개도 4개군에 걸쳐있으며, 1975년 2월 1일 강원도 오대산과 더불어 10번째로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향적봉(香積峰 1,614m) 정수리에 오르니 생각했던데로 차가운 칼바람이 살을 에일 듯이 불어오고 눈발까지 간간이 날려 가시거리가 10여미터에 불가하다. 그래서 나는 회원님들과 간단하게 향적봉 빗돌(碑石)을 기념 삼아 기념촬영을 한 후 정수리에서 이내 발길을 백련사로 향한다.

 

향적봉 정수리에서는 백련사(白蓮寺)  방향과, 칠봉(七峰 1,305m) 방향으로 하산하는 산행로가 있다. 산행 거리로 보자면 칠봉쪽으로 하산하는 편이 짧기는 하지만 백련사를 경유해 삼공리로 이어지는 산행로를 많은 산행객들이 선호하고 있다.

 

백련사로 향하는 산행로는 무릎까지 쌓여 있는 많은 눈과 모처럼 덕유설국(德裕雪國)의 정수를 즐기기 위해 덕유산을 찾은 많은 산행객들로 북적거리는데 간간이 불어오는 차가운 칼바람과 추위에도 산행하는 산행객들의 얼굴에서는 환한 웃음꽃이 만발하다. 특히 가족단위로 산행하는 산행객들과 연인들이 유난이 많이 눈에 들어온다.

 

 

14시 06분 백련사로 향하는 산행로에서 많은 눈을 힘들게 머리에 이고 있는 멋진 소나무를 만나 그 아래에 회원 몇 분을 모시고 그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 본다.

아래의 사진은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많은 눈을 이고 있는 나무를 아래에서 위로 바라본 사진과 마치 생크림을 연상케 하는 새하얀 눈의 모습을 담은 사진이다.

 

 

 

 

14시 37분 백련사 계단(白蓮寺 戒壇)

 

백련사 계단은 불교의 계의식(戒儀式)을 행사는 단(壇)으로, 전라북도 무주군 설천면 삼공리 즉 향적봉에서 백련사를 향해 내려오는 산행로에 위치해 있으며 전북 지정 기념물 제42호로 지정되어 있다.

자연석 기단위에 세워진 높이 2m, 둘레 4m의 석종형(石鐘形) 탑(塔)으로 탑신의 상륜에 여의주문(如意珠紋)의 보륜이 조각되었고 그 위에는 유두형 보주(乳頭形 寶珠)가 조각되어 있다.

계단의 유래는 신라 선덕여왕12년(643년) 불경을 연구하러 당나라에 갔다온 자장율사(慈藏律師 590∼658)가 지금의 통도사인 구룡연에다 금강계단(金剛戒壇)을 축조하고 당나라에서 봉안해온 부처의 사리를 안치한후 불교의 계율을 설법한데서 연유되었고 그 이후에는 전국의 명산 대찰마다 계단을 설치하여 승려들의 계율의식을 행하게 되었다고 전한다. *** 계(戒:승려가 지켜야 할 계율) ***

 

 

14시 45분 덕유산(德裕山) 백련사(白蓮寺) 

 

전북 무주군 설천면 삼공리 덕유산 중심부 계곡 상류에 자리잡은 이 사찰은 신라 신문왕(神文王  681~692) 때 백련선사(白連禪師)가 은거(隱居)히던 곳에 하얀 연꽃이 솟아 나왔다 하여 지었다는 설과 신라 흥덕왕(興德王) 5년(830년) 무렴국사(無染國師)가 창건했다는 설이 전해진다.

이 절은 구천동사(九千洞寺) 또는 백련사(白蓮寺)  등으로 불리워졌는데, 조선말기까지 중수(重修)를 거듭하여 오다가 한국전쟁 때 모두 불타 버렸다.

1960년대 들어 옛 사지(寺地)위에 선수당(禪修堂), 요사(寮舍), 일주문(一柱門), 대웅전(大雄殿), 원통전(圓通殿), 명부전(冥府殿), 천왕문(天王門), 우화루(雨花樓) 등을 세우며 복원 하였다.

이곳에는 백련사지(白蓮寺地, 전북 기념물 제62호), 백련사 계단(白蓮寺 戒壇 전북 기념물 제42호), 매월당 부도(梅月堂 浮屠 전북 유형문화재 제43호), 정관당 부도(靜觀堂 浮屠 전북 유형문화재 제 102호) 등의 유적(遺蹟)이 있다.

 

 

백련사 정관당 부도(白蓮寺 靜觀堂 浮屠)

 

백련사 정관당 부도는대웅전(大雄殿) 좌측 에 위치해 있으며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 102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 부도는 정관당 곽일선(郭一禪, 1533~1609) 스님의 사리를 봉안한 것으로, 연꽃을 새긴 받침돌 위에 종 모양의 탑신을 올린 형태이다.

정관당은 승유억불정책에 의해 침체된 조선 불교의 중흥과 불교 보급에 남다른 노력을 기울인 스님으로, 중종 28년(1533년) 충남 영산에서 태어났다.

어린 나이에 승려가 된 정관당은, 말련에는 서산대사로부터 불법을 배웠으며, 임성당 충언과 운곡당 충휘 등 수많은 제자들을 배출하였다.

그는 특히 무주 구천동에서 선풍(禪風)을 전하는 일에 온 정성을 다하다가 광해군 1년(1609년)에 입적하였다.

 

 

 

매월당 부도(梅月堂 浮屠)

 

매월당 부도는 백련사 일주문(一柱門)을 지나면  우측 언덕위에 위치해 있으며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43호로 종 모양의 이 부도는 배월당 설흔(雪欣) 스님의 사리를 모신 것으로, 조선 정조 8년(1784년)에 설흔 스님의 조카인 임선행(林善行)이 세웠다.

받침돌과 부도의 윗 부분에 불교의 상징인 연꽃을 화려하게 새겨 세련미를 준 것으로, 높이는 1.6m이다. 설흔 스님은 정조 8년(1784년) 백련사에서 생을 마칠때까지 이 지역의 불교 발전을 위해 헌신적으로 노력을 한 분으로, 안국사 극락전 내 불상 뒤의 그림도 스님의 감독하에 조성 되었다.

 

 

백련사 일주문(一柱門)을 나서며

 

법계(法界)에서 잠시 마음을 비우고 자연과 동화되어 가벼운 마음으로 망중한(忙中閑)을 즐기다, 백련사 일주문(一柱門)을 지나 속세(俗世)로 접어드니 다시 마음이 무거워 짐을 느끼며 오늘 설국 덕유산의 산행을 잠시 회상해 본다.

 

지난 12월 28일에 새백운동을 나가다가 눈 쌓인 계단에서 미끄러져 허리를 다치는 바람에 2007년(丁亥年) 지리산 천왕봉 해 맞이 산행에 부득이 불참한 후 정말 아쉬움을 금치 못하였는데, 새해 첫 산행에서 여러 회원님들과 함께 덕유의 눈꽃(雪花)과 상고대[무빙(霧氷)]를 원 없이 만끽 할 수 있어서 정말 행복했습니다.

2007, 丁亥年에도 회원님들과 즐겁고 안전한 산행 함께 할 것을 약속하며 감사합니다.*^^*

 

2007년 01월 16일

 

강일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