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산행이야기

사진으로 보는 북한산(北漢山 836m) 사진

작은岳馬 2007. 2. 6. 13:42

사진으로 보는 북한산(北漢山 836m)

 

 

 

10시 06분 산행하기 전 기념촬영과 준비운동

 

 

 

정릉 탐방지원센터   "자연 속에서 한 편의 詩를 만나 보십시요." 시인마을...

 

 

 

 

10시 25분 석탑

 

 

10시 32분 칼바위 갈림길

 

 

11시 03분 보국문(輔國門 567m)

 

보국문의 본래 이름은 동암문(東暗門)으로  문 안쪽 아래에 보국사(輔國寺)가 있었다고 하여 지금은 보국문(輔國門)이라 불리우고 있으며 1993년 완전 해체된 후 복원 되었다. 성문 안쪽 성돌에는 북한산성을 축조 할 당시인 1711년에 공사책임자와 기간 그리고 구간을 표시한 글이 새겨져 있다.

 

북한산성(北漢山城)은 경기도 고양시 신도동 북한리에 있는 산성으로 자적 제162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 성은 고구려, 백제, 신라가 서로 치열한 공방전을 벌리면서 뺏고 빼앗기던 쟁탈 대상지로 백제시대에 쌓은 토축산성이었다.

고려 고종 19년(1,232)에는 몽고군과이 격전이 있었고, 거란이 침입했을 때에는 이곳에 고려 태조의 재궁(관)을 옮겨 온 일도 있었다. 조선시대에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의 외침을 당하여 도성 외곽의 축성론이 일어나 숙종 37년(1,711)에 왕명으로 대대적인 축성 공사를 하여 석성으로 완성 되었다.

조선 영조 21년(1,754) 승 성능이 지은 [북한지]라는 문헌에 북한산성의 축조과정이 기록.전해지고 있다. 당시의 서의 길이는 21리 60보이며 시설로는 14개의 성문과 동장대, 남장대, 북장대와 행궁 군창이 있었으며, 성애에는 승군이 주둔했던 중흥사 등 12개 사찰 99개소의 우물 26개소의 저수지가 있었다고 한다.

현재 성의 둘레는 12.7km이며, 성안의 면적은 2백여만평으로 옛 한성의 방어 역활을 했던 이 산성은 1990년부터 훼손되 대남문, 대성문, 대동문, 부국문과 성곽들을 일부 보수 복원하였다.

 

 

 

 

11시 07분 보국문(輔國門)위 산성에서 바라본 칼바위

 

 

 

11시 17분 대동문(大東門)

 

북한산성 성문 중 동서남북, 4개 방위중 동쪽을 대표하고 있는 성문으로 우이동의 소위 '진달래능선'이 시작되는 해발 540m지점에 위치하고 있으며, 대서문과 같은 큰문이다. 지금의 문은 1993년에 문루(門樓)를 갖추는 등 화려하게 복원되었다. 대동문은 산성을 지키는 삼군의 하나인 금위영 본부 자리다. 대동문이 지키고 선 고갯마루 일대를 옛날에는 석가령이라고 했다고 한다. 대동문의 현판 글자는 북한산성을 쌓은 숙종왕의 어필을 집자한 것이라고한다. 

 

 

 

11시 21분 동장대에서 백운대로 이어지는 산성

 

 

11시 26분 동장대(東將臺)

 

동장대(東將臺)는 북한산성내의 3기 장대중 하나이다.

장대는 장수의 지휘소로 성안의 지형이 높은 곳에 설치한 건물이다.

성안에는 각 국문별로 적정 장소를 설정하여 동장대, 남장대, 북장대를 두었는데 그 중 동장대의 규모가 제일 크며, 행궁을 비롯한 성의 안 팎을 모두 살필수 있는 지점에 위치해 있다.

동장대 기단은 정사각형의 이중 구조로 외부기단은 장주형 초석 12개를, 내부기단은 원형 초석 4개를 세웠던 중층 건물 구조였으며, 또한 외부기단 사방에는 장대를 드나들 수 있도록 계단이 각각 설치되어 있었다.

이 장대는 1915년 8월 집중 호우때 무너진 것으로 추정되며 복원되기 전까지는 장주형 초석 12개와 중앙에 원형 초석 4개, 대다수 박석 및 돌계단 일부가 그대로 남아 있어, 전문가의 고증에 의거, 본래의 위치에 다시 사용하여, 정면 3칸 측면 3간의 중층 누각으로 1995년 11월부터 1996년 11월까지 서울특별시에서 정성을 다해 복원하였다.

 

  

  

  

11시 35분 저 멀리 보현봉과 문수봉

 

 

11시 46분 용암사지(龍岩寺地), 용암문(龍岩門)


용암봉암문(龍巖峰暗門), 용암문(龍岩門)이라고도 부르며 무인대피소인 지금의 북한산장 부근 용암봉 기슭 해발 580m 지점에 위치하고 있으며, 도선사, 북한산장, 노적봉과도 맞닿아있으며, 옛날에는 중흥사, 태고사로 통하는 길목이기도 했다. 한편, 부근에는 과거 이 일대 수비를 담당하던 용암사(龍岩舍)가 있었으나, 지금은 폐사되어 무너진 탑과 석축이 남아 있으며, 북한산장이 자리하여 많은 등산인들의 휴식처로 사랑을 받고 있다.

 

용암사지(龍岩寺地)는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북한동에 위치해 있다.

북한산 일출봉(日出峰) 아래에 자리한 용암사지는 조선 숙종(肅宗)숙 37년(1,711) 북한산성(北漢山城) 축성 이후에 건립한 용암사가 있던 절터이다.

용암사는 승병(僧兵)을 유치하기 위하여 산성내에 건립한 13개 사찰 가운데 하나로서 87칸 규모로 창건된 후 용암암문(龍岩暗門) 일대의 산성구비와 승병들의 훈련장으로 일익을 담당하였다.

용암사는 갑오계혁시의 승병간제해산 이후 혼돈기인 19세기 말에 소멸된 것으로 추정된다.

  

 

12시 00분 노적봉

 

 

 

 

좌측 원효봉과 우측 염초봉

 

 

12시 09분 백운대(북한산)

 

 

 

12시 12분 백운대

 

 

12시 19분 위문(衛門)


정확한 본래 이름은 백운봉암문(白雲峰暗門)으로 백운대와 만경대 사이의 안부에 위치하고 있으며, 북한산성 성문 가운데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하고 있다. 출입구는 네모난 형태이며 여느 암문과 마찬가지로 문루는 당초부터 없었으나 문짝을 달았던 흔적은 남아 있다. 출입문 주위는 대체로 양호하나 여장을 비롯한 상단의 성돌이 무너져 내려 높이가 상당히 낮아져 있음을 볼 수 있다. 현재는 위문(衛門)이라 불리우고 있는데, 일제시대 때부터 그렇게 불리어 왔다고 한다

 

 

만경대

 

 

12시 49분노적봉 너머 저 멀리 보현봉과 문수봉

 

 

인수봉 북한산 제일의 봉우리로 아기를 업은 형상이라는 부아악(負兒岳)이라는 이름이 유래

 

 

 

12시 50분 백운대로 향하는 고난의 길

 

 

토끼바위

 

 

12시 57분 인수봉

 

 

좌측 만경대와 우측 노적봉

 

 

 

13시 00분 백운대 정수리에서 인수봉을 등지고

 

 

13시 02분 백운대 정수리의 빗돌

 

 

 

 

 

앞 염초봉과 뒤 원효봉

 

 

13시 04분

 

 

 

 13시 05분

 

 

13시 22분 백운대 정수리와 인면바위

 

 

14시 08분 보리사를 지나며

 

 

14시 17분 원효봉의 대슬램

 

 

14시 35분 주차장에서 의상봉을 바라보며

 

2006년 02월 04일 온화한 날씨속에 42명의 회원님들과 북한산을 찾았다.

정릉을 출발하여 보국문, 대동문, 용암문, 위문 등을 지나 백운대에 오른 후 다시 위문을 지나 대서문 쪽 산성으로 이어진 짧은 산행이었다.

북한산 산행은 대간 산행할 때와는 색 다른 느낌을 주는 즐거운 산행이었으나 백운대 정수리에서 내려다 본 서울시는 오염된 가스와 운무가 뒤섞인 가스층에 감싸여 있어 충격적인 모습이었다.

 

2007년 02월 08일

 

강일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