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사봉(國師峰)과 향적산(香積山), 계룡산(鷄龍山)의 신원사(新元寺)
산행일자 : 2006년 12월 24일
산행장소 : 향적산 국사봉~금남정맥~계룡산 천왕봉기슭~신원사
산행모임 : 대전한겨레산악회
산행날씨 : 맑음(안개가 많았음)
국사봉(國師峰 575m)으로 오르는 길목에 있는 혤기장에서 운무에 싸여 있는 계룡산(鷄龍山 845m )을 조망해 보니 새삼 신령스러운 산이라는 생각이 든다.
"날이 어두울지라도 닭(鷄)은 반드시 울고야 말 것이요, 구름이 가린다 할 지라도 용(龍)은 하늘로 올라 갈 것이다. 바다는 태평양이 사해(四海)의 중심이요, 산은 계룡산이 모든 산의 중심이 될 것이다." 이 말은 풍수지리를 연구했거나 정감록에 심취한 사람들이 입버릇처럼 되뇌이던 말이라고 한다.
계룡산은 풍수적으로 수도가 자리잡을 수 있는 땅이라고 한다.
정감록(鄭鑑錄)에 "송도 5백년에 이씨(李氏)가 나라를 빼앗아 한양에 천도하고, 한양은 4백년에 정씨(鄭氏)가 국권을 찬탈하여 계룡산에 도읍한다. 신도(新都)는 산천이 풍부하고 조야(朝野)가 넓고 백성을 다스림에 모두 순하여 8백년 도읍의 땅이다."라고 예언했다고 한다.
비록 수도는 아니지만 오늘날 국력의 막강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육군·해군·공군본부가 자리잡은 계룡대가 있는 곳이 바로 계룡산 남쪽의 신도안이고, 행정수도 이전지로 잘 알려진 충남 연기군 일대도 북 서쪽의 계룡산 자락에 자리하고 있다.
오늘 2006년 산행을 마치는 종산제(終山祭)를 지내기 위해 계룡산 줄기의 향적산 국사봉을 오르며 나는 산의 정기는 산 자체보다는 산을 대하며 지성을 쏟는 사람들의 애절함에서 나오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국사봉(國師峰 575m)에서 남쪽으로 흘러내리는 금남정맥의 모습
국사봉(國師峰 575m)에서 남쪽으로 눈길을 돌리면 충청남도 금산군 및 논산시와 전라북도 완주군 사이에 우뚝 솟아 있는 대둔산(大芚山 878m)의 멋진 암장이 보인다.
국사봉(國師峰 575m)에서 남동쪽으로는 대전광역시 너머로 서대산의 모습도 조망이 된다.
종산제(終山祭)
종산제는 1년동안의 산행을 마무리 하는 행사로, 한 해 동안의 안전 산행을 감사드리는 한편, 산행 중 유명을 달리하거나 산의 혼이 된 산 사람들을 추모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그래서 종산제는 12월 초~중순경에 올리는 것이 좋다고 한다. 이 시기가 지나면 동절기로 접어들어 산행의 안전을 장담할 수 없는 악천후가 예상되고, 연말연시 번잡한 모임과 행사의 연속으로 부득이 정기적인 산행을 일시 중단해야 할 사정도 있기 때문이다.
산을 좋아하고 아끼는 산 사람들의 가장 큰 소망은 뭐니뭐니해도 안전산행일 것니다. 아무리 산에 많이 오른 경험자라고 할지라도 자연의 거대한 힘 앞에서 인간은 나약한 존재일 수밖에 없듯, 산행 경험이 많고 노련한 분들일수록, 자연을 거슬리지 않고 자연에 순응하고 동화하려고 노력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하겠다.
오늘 종산제(終山祭)는 예년과 달리 간소하게 치르기로 했기에 축문만을 옮겨본다.
축문(祝文)
오늘 우리는 경건한 마음으로
전지전능하신 계룡산 국사봉 천지 신명께 고하나이다.
산을 사랑하고 자연을 사랑하며 서로를 사랑하는 마음을 근본으로 삼고있는
대전 한겨레 산악회 회원 일동은
병술년 한해 즐겁고 안전한 산행을 할수 있도록 도와 주셨고
2차 백두대간 종주를 무사히 마칠수 있도록
안전한 길을 안내해 주시고 비가 와 질퍽한 길을 피하게 해주시고
혹독한 눈보라가 볼을 애이는 아품도 느끼지 않도록 너그러움을 선사하셨고
목이 마르고 발이 아픈 동료에게 위로할수 있는 따뜻한 마음을 주셨습니다.
언제나 산의 웅장함을 느끼게 하고
우리의 괴로움과 욕심을 깨끗한 마음으로 바꿔 주시는 너그러움을
서로를 존경하며 사랑하고 기뻐하고 아파할줄 아는
함께라는 귀한 보물도 주셨습니다.
이러한 마음을 바탕으로 언제나 서로와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살아갈것이며 산을 간과 하지 않고 겸손과 경건한 마음으로 오르고 또 오를
것입니다.
언제 어떠한 어려운 상황에서도 해쳐나갈수 있는 지혜와 용기를
그리고 모두를 사랑할수 있는 폭 넓은 가슴을 주실것을 바라옵나이다
우리 곁에는 우리를 시기하고 질투하는 그 무엇도 머물지 않도록
보살펴 주시고 언제나 서로를 감싸고 도우며 신뢰 할수있는 믿음과 사랑을
주실것을 진심으로 기원하는 바압니다
이러한 진정한 배움과 안전을 지켜주심에 감사하는 우리 모두의 마음을 담아
정성을 다한 술과 음식을 올리고 머리숙여 고하나니
흠양하여 주시기 바라옵나이다.
2006년 12월 24일 "대전 한겨레 산악회 회원일동"
국사봉(國師峰 575m)에서 북동쪽으로 이어지는 금남정맥을 따르다 보면 일명 인면바위(人面巖)를 만날 수 있다.
위 사진은 국사봉(國師峰 575m)에서 계룡산 천왕봉을 향해 금남정맥을 따르다 보면 만나는 좌측으로는 신원사 우측으로는 금남정맥의 능선이 갈라지는 갈림길에서 계룡산 천왕봉(천황봉???)을 조망하며 담은 사진이다.
아래 사진은 갈림길에서 지금까지 걸어온 금남정맥을 돌아본 사진으로 멀리 뾰족하게 우뚝 솟아있는 봉우리가 국사봉(國師峰 575m)이다.
계룡산 천왕봉이 눈앞에 다가서는 고갯마루의 넓은 마당바위에서 잠시 다리쉼을 하는 회원님들의 모습이 참 정겨워 보인다.
신원사(新元寺) 계곡의 풍경...
신원사(新元寺) 사천왕문을 지나 경내로 들어서면 문수봉,연천봉 자락에 자리하고 있는 신원사 경내로 들어서게 되는데 신원사 경내서 계룡산 천왕봉(천황봉???)은 문수봉,연천봉 우측 일직선상으로 디들방아의 쌀개와 닮았다는 V자형의 쌀개봉과 함께 우뚝 솟아 있는 모습을 조망 할 수 있다.
계룡산(鷄龍山 845m) 주변엔 명산으로 알려진 이름에 걸맞게 많은 절들이 있다. 신(神)들의 꽃밭 혹은 종교박물관이라 할 정도로 신흥종파의 집결지이며 부지기수의 굿당이 있다. 그리고 사방으로 절이 있다. 동쪽의 동학사와 서쪽의 갑사 그리고 북쪽에 구룡사가 있었으며 남쪽에는 바로 신원사가 있다.
동학사와 갑사는 꽤 알려져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 계룡산을 찾는 등산객들도 그렇고 성지 순례차 나선 참배객들도 대개 동학사나 갑사만 들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두 곳은 붐비는 인파로 명상은 커녕 주변 산세조차 제대로 구경하기 힘든 명소(?)가 된 지 오래다. 그러나 신원사는 아직 한적한 산사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곳이다.
대웅전 앞의 진신사리탑
신원사 범종각은 정면 1칸, 측면 1칸의 사모지붕 건물로 1986년 건립되었으며, 종각 안에는 종각이 건립될 당시 주조된 범종이 걸려 있다.
신원사 스님들이 정진하고 계신 계룡선원(벽수선원)으로 천왕봉이 내려다보고 있는 듯한 자리에 있으며, 경내 오른쪽에 자리하고 있는 영원전으로 뒤쪽에 천왕봉이 보인다. 조금 넓은 시야로 천왕봉 능선을 바라다 보면 마치 닭의 벼슬 같은 형상을 하고 있다.
신원사 5층석탑은 유형문화제 제31호로 모양은 이중 기단을 갖춘 탑으로 신라 석탑의 전통을 이어받은 것인데, 지금은 아쉽게 5층의 부분재료가 없어 졌다.
기단에 비해 탑의 몸채가 둔해 보이고, 지분돌은 폭의 변화가 거의 없어 마치 기둥처럼 보인다.
1975년 보수공사를 할 때 당나라의 동전인 개원통보와 개원중보 및 사리창치가 기단부에서 나왔다. 석탑이 서 있는 자리가 현재는 절 건물 중심부에서 벗어난 있는데, 원래는 이곳이 신원사의 중심이었다 한다.
위 사진은 중악단(中嶽壇) 출입문으로 소슬 삼문(三門) 즉 좌우로 외여닫이문이 달린 출입문이 있으며 이 출입문을 들어서 중채문을 거쳐 안으로 들어가게 되어있다. 신원사의 창건과 중창에 얽힌 많은 설화와 역사적 배경은 뒤로 하더라도 중악단은 조선조 개국은 물론, 말엽 일본 점령기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태조 이성계가 이조를 개국하고 즉위 3년에 국사 무학선사의 선몽에 따르며 계룡산신을 모시는 제단을 성역화함으로 산신단의 역사를 시작하였다. 이후 국가의 애환이자 왕족의 멸문을 가져온 조선조 고종 때 구국과 국태민안을 염원하던 명성황후 민비의 지원으로 현재의 중악단이 건립되게 된다. 국모였던 민비도 중악단(中嶽壇)에서 친히 기도를 올렸다고 전한다. 이러한 역사성으로 보아 과히 규모와 당시의 민심에 어떻게 역할을 하였는지 그 정도를 가늠케 한다.
여느 산신각들이 부속건물 없이 작은 전각에 산신을 모시고 있는 것이 전부인데 반해 소슬 삼문(三門) 좌우로 외여닫이문이 달린 출입문이 있으며 이 출입문을 들어서 중채문을 거쳐 안으로 들어가게 되어 있는 중악단은 궁궐을 연상케 한다. 궁궐의 구조가 그러하듯 중악단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두 곳의 출입문을 거쳐야 하는 구조로 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궁궐 부속 건물에 관리인들이 있듯이 중악단 출입문이 있는 건물에는 사람이 기거토록 양쪽에 부엌과 온돌방이 있어서 행랑채와 유사하며 현재 그곳엔 스님이 기거하고 있음을 반증하듯 행랑채 댓돌에는 흰 고무신들이 가지런하게 놓여져 있다.
계룡산계룡산(鷄龍山 845m)은 신라시대때부터 신라 5악(嶽)의 하나로 일컬어 지며 계룡산사(鷄龍山祠)에서 소사(小祀)를 받들었으나 19세기말 소사와 중사(中祀)의 명칭이 사라지면서 계룡산사(鷄龍山祠)가 계룡단(鷄龍壇)으로 바뀌었다. 그후 계룡단은 고종 때 묘향산 (상악)·지리산(하악)과 함께 삼악(三嶽)의 하나로서 중악단(中嶽壇)으로 개칭됐다. 또한 충남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가 1999년 3월2일자로 보물 제1293호로 그 가치가 격상된 중악단의 원래 위치는 신원사 대웅전 뒤였던 것으로 최근 고증됐다.
유교를 지배이념으로 하였던 조선왕조 때 세운 묘향산(妙香山 1,909m)의 상악단과 지리산(智異山 1,915m)의 하악단 그리고 계룡산(鷄龍山 845m) 신원사의 중악단(中嶽壇)을 삼악이라 하였는데 유일하게 계룡산에 있는 중악단만 현존하고 있다. 중악단은 휴전선 이남에 현존하는 산신각 중 최대의 규모이며 역사성과 구조적 측면에서 아주 귀한 유물이라 할 수 있다.
2007년 01월 05일
강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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