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어사 산책(梵魚寺散策)
언제 : 2006년 12월 03일 금정산 산행 후
어디서 : 범어사 경내
누구와 : 청산님
범어사(梵魚寺)에서 청산님이 기다리고 있다는 생각에 금정산성 북문을 나서자 마음은 급해지는데 발걸음은 마음을 따라 잡지 못한다. 금정산성 북문에서 범어사로 이어지는 내리막 비탈 산행로에는 지름이 3~5m에 이르는 큰 바위(巖塊)들이 골짜기를 가득 메우고 있어 금정산의 지질과 지형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다.
큰 바위가 가득한 골짜기에는 서어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으며 팽나무, 상수리나무, 노각나무, 단풍나무, 왕버들 등이 잘 자라고 있다.
범어사 일주문(梵魚寺一柱門)
부산광여시 금정구 청룡동 546번지에 있는 범어사의 정식 출입문인 일주문은 보물 제1461호이다.
일주문은 만법(萬法)이 모두 갖추어져 일체가 통한다는 법리가 담겨 있어 일면 삼해탈문(三解脫門)이라고도 한다. 일주문은 월래 사찰검물의 기본배치에 있어서 사찰 경내에 들어갈 때 맨 먼저 지나야 하는 문이다.
이 문의 첫 건립 연대는 알 수 없은나, 1614년(광해군6년) 묘전화상(妙全和尙)이 사찰 내의 여러 건물을 중수할 때 함께 건축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1718년(죽종44년) 명흡대사(明洽大師)가 돌기둥으로 바꾸고 1781년(정조5년) 백암선사(白岩禪師)가 현재의 건물로 중수하였다고 한다.
범어사의 일주문은 원래 나무기둥이었던 것을 숙종 때 명흡대사가 돌기둥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아마도 흰개미의 피해를 막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범어사가 습한 지역이라 흰개미의 피해가 적지 않아 지금은 대웅전까지 건드리는 실정이라 한다.
일반적인 건물의 기둥배치는 건물의 안정을 위해 네 귀퉁이에 기둥을 세우지만, 이 일주문은 돌기둥니 나란히 일렬로 늘어서 있는 것이 특징이다. 또 일렬로 된 높은 네 개의 초석위에 둘레를 둥그렇게 깎아 만들어 배흐림을 가진 짧은 두리기둥을 세워 틀을 짠 뒤 다포(多包)의 포작(包作)과 겹처마 위에 무거운 중량의 지붕을 올려 놓으므로써 스스로의 무개를 지탱케 하는 역학적인 구조이다. 현재 건물은 정면 세칸이며, 지붕은 맞배지붕이다. 처마는 겹처마이며, 공포(供包)는 다포(多包)의 양식으로 옛 목조건물의 공법을 연구하는데 좋은 자료가 되고 있다.
위 천왕분(天王門)과 아래 불이문(不二門)
일주문을 지나 천왕문과 불이문 사이의 공간에는 전나무, 삼나무, 편백나무가 건장하게 자라 마치 군대의 열병(閱兵)을 연상케 하고 있다.
범어사 담장의 특징을 그대로 보여주듯 좌우의 담장들이 낮아서 상대적으로 더욱 높아보이고 마치 선방(禪房)의 입승같은 나무들은 한치의 흐트러짐도 허용하지 않는 꼿꼿한 자세로 서 있다. 그런 나무들에서 풍기는 경건하고도 엄숙한 분위기는 이 공간을 지나면서 다시 한번 옷깃을 여미게 만들며 남자들이라면 군에서 열병할 때의 긴장감있는 엄숙함을 다시 한번 느끼게 한다.
계명봉((鷄鳴峰 601.7m)
게명봉은 범어사 왼쪽에 날카롭게 솟아 있는 봉으로 계명봉을 거쳐 장군봉 초지로 이어지는 낙동은 고당봉(故堂峰 802m)에 와서 또 하나의 정점을 이루고 있다고 한다.
내가 몸담고 있는 산악회에서 내년 2월경부터 낙동정맥을 종주하기로 게획을 세우고 있으니 아마도 내년 2월 아니면 12월경에는 날카롭게 솟아 있는 계명봉의 마루를 걸을 수 있으리라 생각해 본다.
범어사가 자리 하고 있는 부근의 형세는 좌 청룡(靑龍) 으로는 계명봉이 있고 우 백호(白虎)로는 노인봉(남산)이 있으며, 뒤로는 고당봉을 병풍삼아 둘러치고 있기에 천년 넘게 범어사가 이어져온다고 청산님은 말하며, 하지만 오늘 날에는 그 기(氣)가 많이 쇠 하였다고 말하며 씁쓸한 표정을 지으신다.
위 사진은 어산교를 지나 계명봉의 계명암(鷄鳴寺)을 담은 사진이다.
위 사진은 범어사 경내에 있는 종루를 담은 사진이다.
내원모종(內院募鐘)
청련암 뒷편에는 내원암 이 자리잡고 있는 데, 이곳은 범어사 가운데서도 가장 깊은 곳이며 정적이 흐르는 곳으로 이곳에서 큰절에서 들려오는 저녁 종소리가 신묘한 운치를 자아낸다고 하여 이를 내원모종이라 부르고 있다.
멀리 멀리 하늘 저 끝까지 울려 퍼지고 깊이 지옥까지 스며드는 듯한 종소리, 산으로 둘러싼 내원암의 저녁 종소리는 계곡을 따라 메아리를 이루며, 은은히 울린다. 이 범종소리는 단순한 종소리가 아니고 사람의 마음을 부처님의 품안으로 안내하는 이름할 수 없는 신묘한 운치를 자아내 옛 사람들은 이를 특별히 "내원모종"이라 하여 귀히 여겼던 것이다.
범어사3층석탑과 당간지주(幢竿支柱)
범어사 경내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석탑. 보물 제250호. 높이 400cm. 2중기단 위에 세워진 3층석탑으로 신라석탑의 전형양식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그러나 상·하 기단의 면석에 탱주(撑柱) 대신 큰 안상(眼象)을 1좌(座)씩 조각하여 특이하다. 하층기단의 두툼한 갑석(甲石) 아래에는 부연(附椽)을, 위에는 2단 각형(角形)의 탑신 굄을 새겼다. 상층기단의 면석은 비교적 큰 편으로 4매의 판석으로 구성했으며 2매의 판석으로 구성한 갑석 아래에는 부연을, 위에는 1단의 탑신 굄을 새겨넣었다. 탑신은 모두 옥신과 옥개를 별석으로 만들었는데 1층 옥신석이 특별히 큰 편이며 옥개석은 각층 모두 4단으로 되어 있어 통일신라 하대 석탑양식을 보여준다.
청산님은 당간지주(幢竿支柱)에 대해 많은 애정을 갖고 있는 듯 나에게 이런 이야기를 해 주었다.
"30여년전 벨기에서 한국을 방문해 범어사를 찾았던 룩(Luc)이란 이름을 가진 전위예술가 당간지주를 보며 '해탈(enlightment)'을 얻었다고 소리를 치더군요. 당간지주의 이쪽 구멍에서 건너편에서 바라보던 제 눈과 마주친 순간, 그가 한 말입니다. 옛날에 '코카'와 '콜라' 라는 이름을 가진 형제가 있었답니다. 그들은 이 당간지주에서 의기투합하여 '코카콜라'라는 식음료 장사를 시작하여 크게 성공을 했다는 비유를 들어 해탈(解脫)했다고 말하더군요. 그 당간지주의 구멍을 통해 그가 내다 본 세계와 문득 깨침을 얻었다는 그 말이 아직도 귀에 쟁쟁합니다." 라고...
그리고 당간지주의 두 개의 높은 쇠봉을 보고는 부처님오신날과 같은 중요한 법회(法會)가 열리는 날에는 저 높은 쇠봉을 앞으로 기울여 탱회(幀화畫)을 걸어 올린 후 법회를 연다고 하셨다.
또한 당간지주의 구멍을 통해 사진을 담게 한 후, 그 구멍을 한 번 들여다 보라 하시기에 대웅전 앞 계단을 내려오면 범어사삼층석탑과 석등처럼 마당 좌우로 멀리 떨어져 있는 돌로 만들어진 두 쌍의 당간지주 중에 제일 가장자리의 구멍을 들여다보니, 아니! 이게 왜 일인가? 족히 20여미터는 떨어져 있는 4개의 당간지주 구멍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하게 일치 하는게 아니가...!
번뇌의 얽매임에서 풀리고 미혹(迷惑)의 괴로움에서 벗어나 본디 열반(涅槃)든다는 해탈(解脫)을 경험하지는 못하였으나 참으로 야릇한 생각과 함께 우리네 조상들이 놀라울 따름이다.
범어사대웅전(梵魚寺大雄殿)
범어사대웅전은 경내에 있는 조선 중기의 목조건물로, 보물 제434호로 지정되 있다.
앞면 3칸, 옆면 3칸으로 이루어진 건물로 1717년(숙종 43년)에 낡은 건물을 다시 중창(重創)했다고 한다. 기둥 위에 창방과 평방을 놓고 그 위에 외삼출목·내사출목으로 구성된 공포를 얹은 다포식 건물이면서 겹처마의 맞배지붕을 얹었다.
제공(諸工)의 쇠서나 살미첨차도 강직하고 날카롭게 깎여 조선 중기의 공포 양식을 보여주며, 삼중량(三重樑)의 마룻보 아래 우물반자를 만들고 공포 끝에서부터 경사진 빗천장을 만들어 중앙의 천장을 더 높이는 효과를 낸 건물이다.
범어사[梵魚寺]
범어사(梵魚寺)는 부산광역시 금정구 청룡동에 있는 절로 대한불교조계종 제14교구 본사(本寺)이다. 1700년(숙종 26년) 동계(東溪)가 편찬한 "범어사창건사적 梵魚寺創建事蹟"에는 신라 흥덕왕(826~835 재위) 때 의상이 화엄신중기도로 왜구의 침입을 막아내자 왕이 매우 기뻐해 의상을 예공대사로 삼고 범어사를 창건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702년에 죽은 의상이 흥덕왕 재위기간에 왜구를 물리쳤다는 기록은 믿을 수 없다. 따라서 범어사의 창건 연대는 의상이 당에서 귀국한 670년 이후 생존기간의 어느 때로 보아야 할 것 같다. 신라 화엄10찰(華嚴十刹) 가운데 하나로서 의상이 창건하고 그의 제자 표훈(表訓)이 주석했다는 범어사는 왜구를 막는 비보사찰(裨補寺刹)로 중요한 역할을 했다. 조선시대에는 임진왜란 이후 폐허가 되었다가 1613년(광해군 5년)에 묘전(妙全)·현감(玄鑑) 등이 법당과 요사채를 갖추어 중창한 이래 많은 고승들을 배출해 '선찰대본산'(禪刹大本山)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범어사는 산의 지형을 이용해 제일 상단에는 대웅전을 중심으로 전각을 세우고 중단에는 보제루를, 하단에는 일주문과 천왕문을 중심으로 당우를 건립해 전체적으로 3단을 이루는 산지가람 배치로 되어 있다.
어산노송(魚山老松)
범어사 경내에 들어서면 어산교 주변의 숲속 길 양쪽의 울창한 소나무 숲들이 아름다운 풍치를 자아내고 있는 모습을 먼저 볼 수 있는 데 이를 두고 "어산노송(魚山老松)" 이라 부른다.
예로부터 부정을 박기 위해 문위에 건너 질러매는 금줄에는 소나무와 숯과 고추를 꼽았고 또 집안에 있는 부정을 좇기 위해 솔잎에 물을 묻혀 사방을 뿌리는 민간의 습속이 있었다. 이와같이 어산교의 낙락장송도 그냥 단순한 큰 소나무가 아니라 인력으로 막을 수 없는 사바세계의 부정을 막는 또 하나의 수호신으로 숲을 이루고 있다. 우리 나라의 이름난 사찰의 입구에는 대개 큰 소나무가 늘어서 있는데, 이는 하나같이 그러한 깊은 뜻을 지니고 있다.
등나무(藤木)
범어사 들머리를 등운곡이라 하는데, 등운곡이라는 이름은 수백 그루의 등나무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고 해서 붙은 지명이다.
군락지 전체가 천연기념물(제176호)로 지정되어 숲속에는 높이 15미터를 웃도는 노등(老藤)도 간이 눈이 띈다. 그러나 등나무는 아무리 밑동이 굵어도 혼자서는 일어서지 못하기 때문에 옆에 버팀나무가 있어야 한다.
현재 노송을 비롯하여 팽나무, 왕버들, 서어나무 등의 노거수들이 혼생하며 버팀목 노릇을 하고 있다. 그러나 등나무는 결국 생존의 의지처였던 나무를 죽이고 자신도 생을 마감하고 마는 숙명을 지니고 있다. 이렇듯 등나무가 너무 번창하면 숲의 식생을 망가뜨리기 때문에 "갈등(葛藤)"이라는 말이 더욱 실감나게 느껴진다.
한 가지 신기한 것은 등운곡의 갈등이 속계와 불계를 나누는 어산교(魚山橋) 위쪽으로는 뻗어나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어산교 위쪽이 갈등과 번뇌를 씻은 불보살의 경계이기 때문일까...
매년 5월이면 등꽃이 피어 구름처럼 계곡을 뒤덮는 장관을 이룬는 반면, 갈등의 상징인 등나무는 천상 속계(俗界)의 나무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 후기 ***
1992년 여름 대전에서 야간 열차에 몸을 싣고 새벽역에 부산 도착하여 광안리 바닷가에서 아침을 맞하고 범어사로 이동해 범어사 경내와 골짜기를 둘러본 후 어산교 아래에서 닭백숙에 동동주를 곁들여 맛잇는 점심을 먹은 기역이 지금생각하니 새삼 엇그제 일처럼 느껴진다.
오늘 많은 시간적 여유가 없어 짧은 시간동안 범어사 경내를 둘러보았으나, 평소에 마나보고 싶어도 글에서만 만날 수 있었던 청산님과 얼굴을 마주하며 경내를 산책하듯이 보낸 시간은 가슴속에 잔잔한 충격으로 오랫동안 남아 좋은 추억이 될거가 생각하며 이 글을 쓸 수 있게 도움을 주신 청산님께 다시 한번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감사합니다.*^^*
*** 참고로 금정 8경과 범어 3기를 첨부 합니다. ***
금정 8경
1.어산노송/魚山老松 (어산교 주변의 울창한 노송의 아름다운 경치) .
2.계명추월/鷄鳴秋月 (계명암에서 바라보는 가을 달의 운치).
3.고당귀운/姑堂歸雲 (고당봉에서 흰 구름이 산 허리를 감고 도는 선경.
4.대성은수/大聖隱水 (대성암에서 내려다본 자연석 밑으로 흐르는 맑은 물 소리).
5.의상망해/義湘望海 (의상스님이 선정에 들으셨던 석대에서 멀리바라 보이는 바다).
6.내원모종/內院募鐘 (내원암에서 저녁예불을 기다리며 큰절에서 치는 종소리속의 선경).
7.청련야우/靑蓮夜雨 (청련암 주위의 울창한 대숲에 내리는 빗소리의 운치).
8.금강만풍/金剛晩楓 (가을 하늘아래 붉게 물든 단풍이 금강암 주변을 감싸고 있는 모습).
범어 3기
1.암상금정/岩上金井 (창건 설화와 함께 전해지는 바위 위에서 나는 우물 금샘).
2.원효석대/元曉石臺 (원효암 뒤편 아름답고 매우 기이하고 묘한 암석).
3.자웅석계/雌雄石鷄 (계명암 동편의 암닭과 숫닭의 모습을한 암석).
2006년 12월 11일
강일구
*** 아래의 글은 제 글을 읽고 "다라미"님이 댓글을 적어주신 내용인데 그 내용이 너무 훌륭하여 옮겨 놓습니다. ***
일주문 설명에 겹처마. 맛배지붕. 공포. 다포 등 한식건물의 전문용어가 나와서 조금 설명을 곁들일까 합니다.
겹처마는 일주문을 자세히 보면 처마에 둥근형태의 서까래 위에 네모난 서까래가 올려져 있어 처마가 겹으로 지어진 것을 말하며.
이러한 겹처마로 지은 것은 처마를 기둥에서 멀리 내지어서 기둥과 하방(아래쪽에 횡으로 가는 보) 그리고 출입문의 하부에 비가 들이쳐 이들이 빨리 썩는 것을 방지함과 동시에 추녀가 위로 살짝 치켜 올려져 아름답게 보이게 하기 위함입니다.
맛배지붕은 지붕의 좌우 끝 부분이 수직으로 잘린 형태의 지붕을 말합니다.
팔짝 지붕으로 된 범종각과 비교해 보면 구별이 쉽습니다.
대웅전은 앞에서 촬영을하여 옆면이 잘 보이지 않으나 용마루의 형태로 보아 이 역시 맛배지붕으로 보입니다.
공포는 처마 밑에 요란하게 장식된 것을 말합니다.
이 공포는 단순히 장식만을 위해서 설치한게 아니고 지붕의 하중을 분산하여 보를 거쳐 기둥에 전달하여 무거운 지붕을 떠 받들기 위한 구조적인 역할도 있습니다.
그 장식을 보면 마치 소의 혓바닥이 길게 나와 있는 것 처럼 보이는게 있는데 이는 우설(牛우舌설)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장식이 불이문(不불二이門문)처럼 기둥 위에만 있는 형태의 집은 柱주心심包포집이라 하고 이러한 주심포 집은 주로 부속건물에 적용을 합니다.
또 기둥 위는 물론 기둥과 기둥 사이에도 장식을 많이한 건물은 多다包포집 또는 多다心심包포집이라 합니다.
이러한 다심포집은 화려한 만큼 가장 중심이 되고 중요시 되는 즉 주가 되는 건물에 적용됩니다.
따라서 사찰의 경우 대웅전이 다포집으로 되어 있고 경복궁의 정전인 인정전도 다포집으로 되어 있습니다.
경복궁의 경우 공포가 하두 화려하고 복잡하여 비둘기가 살기 적당한 곳이 되어 자꾸 날아들어 배설물을 오염시키므로 망을쳐서 접근을 막고 있습니다.
짧은 지식으로 몇 말씀 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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