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십령~깃대봉~977봉~북바위전망대~영취산(靈鷲山)~백운산(白雲山)~중고개치~중치(중재) (백두대간 제 29구간)
산행일자 : 2006년 10월 15일
산행장소 : 육십령~깃대봉~977봉~북바위전망대~영취산~백운산~중고개치~중치(중재)
산행모임 : 대전한겨레산악회 (42명)
산행날씨 : 맑음 (더운 날씨에 연무가 심하고 산행로에서는 먼지가 많았음)
산행거리 : 19.07km, 접속거리 : 중치~운산리 1.75km 총 20.82km
산행시간 : 07시간 35분
백두대간(白頭大幹)에는 모두 487개의 산(山), 령(嶺), 봉(峰), 재(峙)가 있다. 특기할 것은 500번 가까이 오르내리는 동안 단 한 번도 물을 건너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래서 백두대간을 설명할 때 흔히 "산은 물을 건너지 못하고 물은 산을 넘지 못한다."는 말이 단골처럼 등장한다. 조선 영조시대 백두대간을 그린 신경준의 "산경표(山經表)"에서 인용된 문구다.
백두대간을 오르내리다 보면 자연스럽게 산이 솟은 이유와 물이 흐르는 사연을 되새겨보게 된다. 그곳에는 서로를 범접하지 않으면서도 자신의 길을 올곧게 걸어가는 군자의 풍모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어떤 사람은 백두대간을 능선의 연속으로만 파악한다. 그래서 백두대간의 주능선 코스만을 보존하는 것으로 우리 국토의 건강성을 지킬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한반도의 지리체계를 자세히 뜯어보면 백두대간이 일련의 산줄기를 넘어 한반도 전체를 품고 있음을 알 수 있게 된다. 실제로 백두대간은 지역을 구분하고 문화적 다양성을 창출하며 역사의 물줄기를 수없이 바꿔왔다. 그런 측면에서 백두대간을 보호한다는 것은 곧 한국인이 자연의 면전에서 겸손함을 되찾는 과정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위 글은 2004년 1월 '신동아'에 실린 글을 인용해 보았습니다."
07시 35분 육십령(六十嶺 734m) 도착
오늘도 대간호는 대전 나들목을 지나 덕유휴게소에서 아침을 먹기위해 잠시 정박한다.
나는 2주전 음식에 욕심을 부리다 산행하는 오전 내내 고생한 생각에 오늘은 김밥을 먹지않고 된장국물만 조금 마시는 것으로 아침을 대신한다.
새벽 3시에 일어나 간단하게 아침을 먹었기에 시장기를 느끼지 않아, 김밥에는 손을 대지 않은 것이다.
덕유휴게소를 떠난 대간호는 육십현(六十峴). 육복치(六卜峙)라고도 불리는 육십령(六十嶺 734m)에 오르기 위해 수십번을 좌우로 굽이굽이 한 후에야 07시 35분에 육십령에 정박하여 오늘 산행에 참가한 42명의 회원님들은 내려놓는다.
육십령의 모습은 2주전에 보았을 때와 변환게 없는데 오늘 따라 이곳의 공기가 탁하다는 느낌이 든다.
아마도 가을가뭄에 푸석푸석해져서 바스락거리며 소리를 내는 나뭇잎과, 먼지가 일도록 메마른 산행로의 흙이 합쳐저 734m나 되는 산속의 공기마져도 오염시켰기 때문일 것이다.
육십령의 넓은 주차장에서 준비운동을 마지막으로 산행전 의식을 치르고 07시 50분 들머리를 찾아 언덕을 오르니 촤측으로 잘 가꾸어진 봉분 몇 개가 보인다.
그 봉분을 좌측에 두고 완만한 오름의 산행로는 좌측으로 이어지며 깃대봉으로 향하고 있다.
08시 18분 깃대봉전의 890m봉?
육십령에서 20여분을 걸어 완만한 능선을 걷다보니 깃대봉에 오르기 전에 있는 완만한 봉우리가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뒤를 돌아보니 합미봉의 암장이 손에 잡힐 듯하나 잡목들이 시야를 가리고 있어 사진에 담지는 못하고, 앞서 가는 이용우님에게 이곳에서 보는 합미봉은 지난 산행에서 조망할 때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로 다가온다고 하니 이용우님도 오늘은 합미봉이 훨씬 더 멋들어지게 보인다고 한다.
한편 뒤어서 걷고 있던 서석용님은 회장님에게 지난 추석연휴때 진부령에서 미시령 지나 마등령을 거쳐 백담사까지 이어지는 아름다운 설악산 구간을 땜방한 무용담을 들려주신다.
너덜지대를 걷느라 힘들었던점, 감시원의 눈을 피해 산행하느라 첩보작전을 펼친점, 이길숙님이 한 번 지나온 길이라고 하여 뒤를 따르다가 알바를 한점, 장장 19시간이라는 긴 산행을 하였기에 불가피한 야간산행에서의 힘들었던점 등. 그러나 추석연휴에 산행을 했기에 밤하늘에 휘영청 떠있는 둥근달을 바라보며 제법 운치있는 산행을 했다며 무용담을 털어놓으신다.
서석용님의 무용담을 듣으며 걷는 사이 완만하던 산행로는 점점 높이를 높이며 가파라지기 시작하는데, 산행로 앞에서 트래이닝복 차림에 트랙킹용 운동화를 신은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여항생이 산행로 가장자리로 비켜서서 숨을 헐떡이며 오르막을 오르는 우리를 배려하고 있다.
참 부지런한 학생이라는 생각과 함께 그 여학생은 아마도 이른 아침에 깃대봉에 올랐다가 하산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08시 23분 깃대봉샘터
완만했던 산행로가 그 높이를 높이며 산행하는 산행객들에게 가픈 숨과 다리품을 요구하더니 그 노고를 달래듯 이내 "깃대봉샘터"의 시원한 샘물을 선물한다.
깃대봉샘터를 알리는 안내판에는 아래와 같은 문구가 씌어져 있어 산행객들이 샘물을 마시며 잠시 다리쉼을 할 수 있게 한다.
"약수터에서 목을 추기는 길손이시여!
사랑하나 풀어 던진 약수물에는 바람으로 일렁이는 그대 넋두리가 한 가닥 그리움으로 솟아나고...
우리는 한 모금의 약수물에서 구원함이 산임을 인식합시다.
우리는 한 모급의 약수물에서 여유로운 벗이 산임을 인식합시다."
이 곳 샘터까지는 오늘 산행시간이 8시간밖에 되지 않는 비교적 짧은 산행이어서인지 이용우님이 앞에 나서지 않고 뒤에서 산행을 하더니, 샘물을 한 모금 마시고는 아내 잰걸음으로 가파른 산행로를 따라 발길을 옮긴다.
08시 32분 첫번째 헬기장
샘터에서 카파른 오르막 비탈길을 한 차례 오르니 이내 완만한 능선길이 우측으로 능선을 따라 이어지는데 산행로 가장자리에는 가을을 알리는 억새가 만발하게 피어 있다.
그 억새를 감상하며 잰걸음으로 앞서 가는 이용우님과 최돈민님의 뒤를 한참을 따르다가 무엇인가 허전한 느낌에 허리춤을 살펴보니 아니! 이게 왠일인가...?
허리춤에 메어져 있어야 할 카메라가 보이지 않는다....
나는 카메라를 어디쯤에서 잃어버렸는가 생각하다가 샘터에서 사용하고 억새가 만발한 봉우리를 올라 이용우님을 바삐 따르다가 내 키보다 높게자란 억새밭에서 잃어버린게 트림없다고 생각하고 카메라를 찾아 오던길을 되 밟으며 억새밭을 지나다 뒤에 오시는 회원분에게 혹시 걸어오시다가 카메라를 보지 못 했는지 물으니, 그분은 보지 못 했다고 대답하신다...ㅠㅠㅠ
나는 다시 억새를 헤치며 100여미터 가량을 코카 땅에 닿도록 걸으니 산행로 가장자리의 억새 사이에서 내 카메라가 보인다.
나는 얼른 카메라를 주워들고 어디 상한데는 없느지 요리조리 곳곳을 살펴보았으나 다행이 억새밭의 토양은 부드러운 흙으로 되어 있어 카메라는 무사했다.
카메라를 다시 허리춤에 단단히 메고 열심히 억새밭을 탈출하니 첫번째 헬기장이 나오고 3개의 깃발이 휘날리고 있는 깃대봉이 눈앞에 다가선다.
08시 35분 깃대봉(1,014.8m)
깃대봉에 오르니 최돈민님이 선두 그룹의 회원님들을 모시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어 나도 그 사진에 얼굴을 내밀고 내가 한번 더 촬영을 하려고 할 때 회장님께서 땀을 흘리시며 깃대봉 정수리에 오른다.
그래서 회장님도 함께 모시고 깃대봉에서의 기념사진을 남긴다.
깃대봉 정수리에서는 영취산으로 이어지는 능선과 산들이 있는 쪽보다는 북쪽으로 보이는 합미봉에서 장수덕유산(서봉)을 지나 남덕유산으로 이어지는 장쾌한 덕우연봉(德裕蓮峰)이 볼만하다.
아래사진의 두번째 하늘금의 중심에 있는 봉우리가 합미봉이며, 세번째 하늘금이 장수덕유산(서봉)과 남덕유산이 이어지는 능선이다.
08시 42분 영취산과 백운산을 조망하며
깃대봉에서 조금지나 민령이 내려다보이는 옛날에는 철탑이 있었다는 봉우리 근쳐에서 앞으로 걸어야 할 대간능선과 멀리 영취산과 백운산을 조망해 본다.
이곳부터 민령을 지나 한참동안은 소나무가 곳곳에 자리고 있는 억세밭이 잇따르다.
그리고 그 억새밭의 양지바른 곳에 키가 20cm남짓한 "자주쓴풀"이 자라고 있다.
자주쓴풀은 내가 산행중에 처음 만나는 꽃이라 매우 기분이 좋았으나, 꽃이 산행로 가장자리 억새사이에서 힘겹게 피어 있어 지나다니는 산행객들의 발길에 쓸려서인지 초라해 보인다.
그래도 그 모습을 열심히 감상하고 산행중에 또 만나기를 기대하였으나 이날 산행에서는 더이상 자주쓴풀은 만날 수 없어 무척이나 아쉬었다.
자주쓴풀(Swertia pseudo-chinensis)
쌍떡잎식물 용담목 용담과의 두해살이풀로 한국·일본·중국·헤이룽강에 분포하며, 산지의 양지에 분포한다.
자지쓴풀·쓴풀·어담초·장아채·수황연·당약이라고도 한다. 산지의 양지쪽에서 자란다. 높이 15∼30cm로 곧추 서고 다소 네모지며 검은 자주색이 돈다. 뿌리는 노란색이고 매우 쓰며 전체에 털이 없다. 잎은 바소꼴로 마주나고 양 끝이 날카로우며 좁다. 잎 가장자리가 약간 뒤로 말리며 잎자루가 없다.
꽃은 9∼10월에 피고 자주색이며 원추꽃차례에 달리고 위에서부터 꽃이 핀다. 꽃받침조각은 5개이며, 꽃잎은 짙은 자주색 줄이 있고 5개이며 밑부분에 털로 덮인 2개의 선체(腺體)가 있다. 수술은 5개로 꽃밥은 검은 자주색이며 암술대는 짧고 2개로 갈라진다.
열매는 삭과로서 넓은 바소꼴이며 화관 길이와 비슷하다. 잎이 달린 줄기를 건위제와 지사제로 사용한다. 한국·일본·중국·헤이룽강에 분포한다.
08시 48분 억새와 회장님
자주쓴풀을 카메라에 담고 억새사이를 헤치며 나아가는데 뒤 따르시던 회장님께서 억새를 배경으로 기념촬영을 해 달라고 하신다.
그래서 억새밭과 민령 너머로 보이는 영취산과 백운산을 배경으로 회장님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 보았으나 빛이 역으로 들어오는 역광이라 회장님의 얼굴이 어둡게 보인다.
회장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억새밭을 지나 민령으로 내려서는 마지막 봉우리를 지나다 언뜻 용담을 보고 그냥 지나칠까 샐각하다가 오늘 산행길에서 다시는 못 만날 수도 있다는 생각에 회장님에게 용담꽃을 보고 오겠노라 말을 한 후 용담이 있는 곳으로 가 보니 키가 한 뼘 정도밖에 않되는 용담이 꽃을 피우고 있다
용담(Gentiana scabra var. buergeri)
쌍떡잎식물 합판화군 용담목 용담과의 여러해살이풀로 한국 ·일본 ·중국 동북부 ·시베리아 동부에 분포하며 산지의 풀밭에 서식한다.
높이 20∼60cm이고 4개의 가는 줄이 있으며 굵은 수염뿌리가 사방으로 퍼진다. 잎은 마주나고 자루가 없으며 바소 모양으로서 가장자리가 밋밋하고 3개의 큰 맥이 있다. 잎의 표면은 녹색이고 뒷면은 연한 녹색이며 톱니가 없다. 꽃은 8∼10월에 피고 자주색이며 잎겨드랑이와 끝에 달리고 포는 좁으며 바소꼴이다. 꽃받침은 통 모양이고 끝이 뾰족하게 갈라진다.
화관(花冠)은 종처럼 생기고 가장자리가 5개로 갈라지며 갈래조각 사이에 부편이 있다. 5개의 수술은 통부에 붙어 있고 암술은 1개이다. 열매는 삭과(殼果)로 11월에 익고 시든 화관 안에 들어 있으며 종자는 넓은 바소꼴로 양 끝에 날개가 있다. 어린 싹과 잎은 식용하며, 뿌리를 용담이라고 하며 고미건위제(苦味健胃劑)로 사용한다. 한국·일본·중국 동북부·시베리아 동부에 분포한다. 서양에서는 루테아용담(G. lutea)을 같은 목적으로 사용한다.
08시 52분 민령(
아주 작지만 귀여운 용담을 감상하고 잰걸음으로 내리막 비탈을 내려서닌 민령이 나온다.
민령을 다른 嶺과는 다르게 억새로 뒤덮혀 있어 嶺이라는 느낌은 없고, 다만 푯말에는 백운산 6.7km, 임도 0.8km라 씌어져 있다. 그러나 푯말에 씌어져 있는 거리는 좀처럼 신빙성이 없어 보인다.
백운산(白雲山 1,278.6m)까지 6.7km라면 늦여도 3시간만 걸으면 백운산에 도착할 수 있다는 이야긴데, 내가 계산하기에는 4시간 이상은 소요되기 때문이다.
민령을 지나 나즈막한 봉우리에 올라서니 억새가 사방에 반발하고 그 억새밭에서는 최돈민님과 김미애님이 흔들리는 억새를 배경으로 기념촬영을 하느라 여념이 없다.
그래서 나도 회장님에게 좀 전에 촬영한 사진은 역광이라서 시원치 않을것 같으니 억새와 깃대봉을 등지고 다시 한번 포즈를 취하라고 한 후 억새밭의 회장님을 카메라에 담아 본다.
08시 56분 깃대봉을 등지고
오늘따라 회장님은 촬영을 할 때마다 배낭에 메달려 있던 모자를 찾아 쓰시고 포즈를 취하신다.
아마도 이왕 촬영하는 사진이라면 멋을 부리고 촬영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해서 일 것이다.
아니면 회장님만의 컴플랙스를 가리려고...ㅎㅎㅎ
억새밭을 지나 선두를 따라잡을 욕심으로 제법 가파른 오르막을 빠른 걸음으로 걷고 있으려니 뒤를 따르던 김미애님이 왜 그렇게 빠르게 걷냐고 물으신다.
그래서 걸음을 늦춰 오르다 보니 산행로에서 우측으로 조금 벗어난 곳에 "북바위"가 보이고 그 북바위에는 선두에서 걷고 있던 회원님들이 모두 모여서 간단한 과일을 나누며 이야기를 주고 받는 모습이 보인다.
09시 10분 북바위
민령에서 가파른 오르막으로 이루어진 산행로를 얼마간 오르다 보면 산행로 우측 벼랑끝에 우뚝 솟아있는 "북바위"를 만난다.
영취산(1.075.8m)에서 갈라져 영상강(榮山江)과 섬진강(蟾津江)을 감싸안고 휘돌며 광양의 백운산(白雲山 1,218m)까지 힘차게 뻗어나가는 호남정맥이 처음으로 분기하는 장수군 장계면의 대곡리에는 성곡,대승,주촌이란 세 마을이 있다.
이중 주촌(朱村)이란 마을은 400년전 "논개(論介)"의 부친인 주달문(朱達文) 진사가 이 마을에 들어와 살면서 마을이 이루어졌고, 주논개(朱論介)가 살았다 하여 주촌이라 부르게 되었는데 이 주촌마을에 저수지가 생겨 마을이 물에 잠기게 되자 주씨의 선산(先山)이 있는 궐촌이라는 윗마을로 논개 생가를 이전하고 보존하기로 하면서 이 마을 이름도 주촌이라 바뀌었다.
주촌마을의 동쪽 산마루에 있는 "북바위"는 가뭄을 물리치는데 영험이 있다고 전해진다.
극심한 가뭄으로 무논의 논 바닥이 쩍쩍 갈라지는 현상이 계속되면 이 주촌마을 사람들은 동쪽 백두대간 능선에 있는 "북바위"에 올라 개를 잡아 개의 붉은 피를 북바위의 머리에 적시고 하늘에 비가 오게 해 달라고 기원했다고 한다.
이렇듯 기우재를 지내면 기우재가 끝나기도 전에, 아니면 하루가 지난 후에는 거북이 등처럼 갈라진 논바닥을 흡족히 적시고도 남을 만큼의 빗줄기가 쏟아졌다고 한다.
위 사진에서 자세히 살피면 여러채의 기와집과 논개사당(論介詞堂)을 찾을 수 있다.
이렇듯 유명한 논개에 대한 자료를 옮겨본다.
논개 (論介/?~1593)
"임진왜란 때의 의기(義妓). 성 주(朱). 전북 장수(長水) 출생. 진주병사(晋州兵使) 최경회(崔慶會)의 사랑을 받았다고 하며, 그 밖의 자세한 성장과정은 알 수가 없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 5월 4일에 이미 서울을 빼앗기고 진주성만이 남았을 때 왜병 6만을 맞아 싸우던 수많은 군관민이 전사 또는 자결하고 마침내 성이 함락되자 왜장들은 촉석루(矗石樓)에서 주연을 벌였다. 기생으로서 이 자리에 있던 그녀는 울분을 참지 못한 나머지 전사한 장군들의 원한이라도 풀어주고자 열손가락 마디마디에 반지를 끼고 술에 취한 왜장 게야무라 후미스케[毛谷村文助]를 꾀어 벽류(碧流) 속에 있는 바위에 올라 껴안고 남강(南江)에 떨어져 함께 죽었다. 훗날 이 바위를 의암(義岩)이라 불렀으며, 사당(祠堂)을 세워 나라에서 제사를 지냈다. 1846년(헌종 12) 당시의 현감 정주석(鄭胄錫)이 장수군 장수면(長水面) 장수리에 논개가 자라난 고장임을 기념하기 위하여 논개생향비(論介生鄕碑)를 건립하였다. 그가 비문을 짓고 그의 아들이 글씨를 썼다. 1956년 ‘논개사당(論介祠堂)’을 건립할 때 땅 속에 파묻혀 있던 것을 현 위치에 옮겨놓았다. 비문에는 “矗石義妓論介生長鄕竪名碑”라고 씌어 있다. 장수군에서는 매년 9월 9일에 논개를 추모하기 위해 논개제전(論介祭典)을 열고 있다. 이 날은 장수군에서 논개아가씨를 선발하고 기념탑을 참배하는 등 논개의 정신을 되새기는 각종 민속행사를 가진다."
09시 10분~09시 30분 북바위전망대
북바위에서 선두그룹의 모습을 사진에 담고 주변의 풍광을 조망하고 있으려니 이내 선두그룹은 배낭을 매고 영취산으로 향하고 회장님 역시 발길을 옮기면서 나에게 시원한 포도농축액을 건네주고는 북바위를 떠난다.
회장님에게 나는 여기서 후미를 기다리다 후미그룹과 함께 산행하겠다고 말하고 회장님계서 건내준 포도농축액을 마시니 가슴까지 시원함이 전해지며, 이어서 도착한 회원님들중 한 회원님께서 건네준 단감까지 먹으며 아름다운 풍광을 조망하니 세상을 다 얻은 듯하다.
단감을 반쯤 먹었을때 후미 일행이 잇따라 도착하는데 오늘은 왠일인지 힘내자님께서 후미에서 걷지 않고 후미일행들보다 한 발 앞서서 걷고있다.
나중에 서병모님에게 들은 이야기는 "평소 산에 오르면 어지러움을 느끼고 온몸에 힘이 빠지는 증상을 자주 격으면서도 산을 너무 좋아하기에 백두대간종주도 늘 함께하였지만, 힘에 겨워 늘 다른 회원들보다 뒤 쳐지는 힘내자님이 안쓰러워 병원에 가서 진단을 받아보니 혈액내에 철분이 부족하여 생기는 증상 때문이란 진단이 나왔단다. 그래서 2주일여동안 철분제를 복용하고 산에 오니 절로 힘이 솟는 기분이라 하신다."
"힘내자님 화~이팅!입니다...*^^*"
힘내자님과 서병모님의 화목한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 나니 이번에는 하시는 일이 너무 바빠서 3개월동안 그렇게 좋아하는 산에 들지 못 하다가 오늘 산행에 오랜만에 함께하시는 총무님께서 북바위에 오른다.
총무님계서는 평소 스틱을 사용하지 않았으나 오늘은 3개월만의 산행이라서인지 스틱 두 개를 준비한 모습이다. "
"총무님 그동안 보고 싶었느데, 오늘 이렇게 함께 산행하게 되서 정말 반갑습니다. 그리고 오늘 '대전한겨레산악회'의 모든 회원님들이 오랜만에 한 분도 빠짐없이 산행에 함께한다고 하니 그 기쁨이 더 합니다.*^^*"
10시 02분 977.1m봉과 942.8m봉 사이의 산죽길
북바위에서 20여분을 머물며 선두부터 후미까지의 회원님들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 후미그룹의 회원님들과 30여분동안 열심히 다리품을 팔고 나니 참나무와 산죽(山竹)이 군락을 이루며 무성하게 자라고 있는 산죽길이 이어진다.
앞서서 걷고 있는 송영래님에게 2m는 더 되보이는 산죽군락이 꽤 오랫동안 이어진다고 말하니, 뒤 따르시던 송곡님께서 이 구간의 산죽은 1.2km가량 이어진다고 말씀해 주신다.
이렇게 키가 크고 구간 길이도 1km이상 되는 산죽밭은 오늘 산행하는 내내 잇따르는데, 어떤 구간은 산죽의 줄기와 이파리가 산행객의 얼굴과 목 등에 작은 생채기를 남이기도 하여 산행하는 동안 신경을 쓰며 손과 팔뚝으로 산죽을 헤치며 앞으로 나아가야만 했다.
지루하게 이어지던 산죽길은 977.1m봉과 942.8m봉을 지나 작은 안부가 있는 곳에서야 잠시 사그러 든다.
10시 12분 전망바위
덕운봉(德雲峰 956m)으로 후회할 수 있고 서성면 옥산리로도 이어지는 소로길이 나 있는 작은 안부에서 전망바위에 올라 손은 흔들고 있는 회원님들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 나도 열심히 전망바위로 향한다.
위에 보이는 전망바위에서는 잠시 다리쉼을 하며 맛있는 과일을 나누어 먹었는데 요즘 과일값이 비싸지 않아서인지 회원님들은 사과와 배를 많이 꺼내 놓으신다.
나는 전망바위 서쪽으로 조금 내려서서 약간의 시장기를 달래기 위해 쵸코바 하나를 꺼내 먹으며 북바위와 그 아래 대곡리 주촌마을에 있는 논개사당(論介祠堂)을 다시 한 번 조망하고 있으니 최영장군님이 팬티 어지있는지 그만 찾고 발길을 옮기자고 한다.
"아마도 내가 논개사당을 조망하고 있는 모습이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Le Penseur)" 상(象)의 모습을 하고 있어서 였나보다..."
전망바위가 있는 봉우리에서 내려서는 산행로는 제법 가파른 암릉이 이어지며 그 암릉 구간은 한참을 이어진다.
얼굴과 목에 생채기가 생길까 걱정하며 산죽길을 걷다가 오랜만에 암릉길은 걸으니 기분이 좋아진다.
10시 39분 덕운봉(德雲峰 956m) 갈림길에서
덕운봉 갈림길에서 영취산(靈鷲山 1,075.8m)과 그 너머로 금남호남정맥 마루에 있는 장안산(長安産 1,236.9m)의 중봉과 하봉을 바라보며 앞으로 걸어야 할 대간마루금을 마음속으로 그어 본다.
위 산들을 조망하며 영취산이 어디인지를 놓고 이야기를 하던 중 송곡님께서 멀리 보이는 장안산을 영취산이라 알려주는 바람에 영취산에 올라 점심식사를 하려고 했으나 그 전에 점심을 먹고 가야겠다고 생각하며 열심히 완만한 능선을 따라 산행을 계속한다.
11시 27분 영취산(靈鷲山 1,075.8m)
덕운봉 갈림길에서 산죽길과 심한가뭄에 말라버린 푸석푸석한 가랑잎이 발길에 나뒹굴며 발길을 옮길 때마다 먼지가 풀풀 일러나는 완망한 산행로를 걷다보니 제법 가파른 봉우리가 나온다.
그 봉우리를 힘차게 차고 오르니 아니! 이게 왠 일인가...?
그 봉우리의 정수리 우측(서쪽)에는 대간 시그널들이 빨랫줄에 빨래가 널리듯 널려있고, 좌측(동쪽)에는 돌을 쌓아 올린 2m쯤 되 보이는 돌탑과 그 뒤로는 영취산(靈鷲山 1,075.8m)이라 씌어져 있는 푯말이 우뚝 서 있는게 아니가...
그 때서야 우리는 1시간 전 덕운봉 갈림길에서 조망한 영취산은 장안산이었음을 알고 영취산을 너무 쉽고 허무하게 올랐다고 다들 너털웃음을 짓는다.
영취산의 정수리는 백두대간에서 정맥 하나가 분기되는 지점이다.
서쪽으로 무령고개(930m)를 넘어 남서쪽으로 장안산(長安産 1,236.9m)을 지나 주화산에 이르는 금남호남정맥은 그 곳에서 다시 금남정맥과 호남정맥으로 갈라진다.
한남금북정맥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금남정맥은 대둔산(大芚山 878m)과 계룡산(鷄龍山 845m)을 올려 세우며 부여로 향하고, 호남정맥은 남서쪽으로 휘돌며 내장산(內藏山)과 추월산(陬月山) 무등산(無等山 1,187m)을 일으키고는 광양 백운산(白雲山 1,218m)에서 발길을 멈춘다.
금강,섬진강·영산강,동진강,만경강·탐진강 등의 물줄기들이 모두 이 두 산줄기를 젖샘으로 몸집을 키워 대전과 공주그리고 부여와전주,광주,순천 등의 충청지역과 호남 지역으로 흘러 그 지역의 젖줄이 되고 있다.
11시 35분 선바위고개(1,040m)
영취산에서 기념촬영을 한 후 영취산 정수리에서 점심을 먹자는 의견과 조금 더 지난 곳에서 먹자는 의견중 후자를 택하고 영취산에서 5분여동안 내려서니 이내 선바위고개(1,040m)에 닿는다.
선바위고개에서는 먼저 도착한 회원님들 수십명이 한 자리에 모여 맛있는 식사를 하고 있어 우리 일행도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고 점심상을 차린다.
오늘 점심의 특선메뉴로는 최영장군님의 청국장과 송영래님의 묵은지버섯볶음도 맛있었지만 벌써 시월 중순인데도 산행하기에는 더운날씨와 따가운 햇볕탓에 내가 준비한 불고기와 상추,깻잎 쌈이 인기가 있었다.
그리고 부추전이 잘 팔리지 않기에 부추전에 강원도에서 잡은 커다란 문어를 갈아 넣었다고 판촉을 하니 부추전도 이내 동이 났다. "문어 한 마리의 가격이 18만원이란다."
점심식사를 하며 똘이장군이 오늘 산행은 거리도 짧거니와 기온도 높으니 식사후에 30분동안 오침(午寢)을 취하고 가자고 하니 모두들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한다.
식사가 거의 끝나갈 무렵 나는 얼른 배낭에서 사과 두 게를 꺼내어 깍아서 내 놓으며 후식으로 맛좀 보라고 하니 앞에서 배낭을 정리하시던 최영장군님이 사과와 배를 꺼내며 "내가 먼저 과일을 내 놓으려고 했는데, 일구에게 밀렸네.."라고 하시며 "배낭 무개를 줄여볼까 했더니 그것도 마음대로 안되네"라고 하신다.
오늘처럼 더운 날씨에는 무거운 배낭이 산행객의 말목을 잡는일이 가끔 벌어지곤 하기 때문에 최대한 배낭의 무게를 가볍게 하고 산행하는 것이 한편으론 도움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식사후에나 다리쉼을 할 때면 과일이나 간식을 서로 먼저 꺼내 놓으려고 가끔은 경주를 하기도 한다.,,,ㅎㅎㅎ
식사후 오침을 한다는 것은 대간길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며 배낭을 매고 백운산(白雲山)을 향해 발길을 옮기니 아직 음식을 먹은지 채 30분도 지나지 않아서인지 걸음은 무겁고 숨은 가쁘기만 하다.
특히 1066m봉을 지날때는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몸이 무겁고 숨은 점점 더 가쁘기만하여 대간길을 조금 벗어나 생리적 현상을 해결하고 나니 한결 몸이 가벼워 진다.
가벼워진 몸으로 가볍게 걸음을 옮기다보니 한동안 자작나무들이 잇따르다가 암릉이 이어지는 기분좋은 산행로가 이어진다.
13시 07분 암릉구간에서 백운산(白雲山 1.278.6m)을 바라보며
자잣나무숲이 긑나고 암릉이 이어지는 곳에서 멀리 보이는 백운산을 조망하니 백운산이 손에 잡힐 듯하다.
"위 사진에 보이는 봉우리가 백은산인지 모를고 산행하다가 백운산 정수리에 오른 후에야 비로소 백운산이라는 것을 알았다."
백운산으로 향하는 산행로는 완만하게 이어지는 봉우리가 몇개가 잇따르다가 마지막 1km정도를 남기고는 백운산의 정수리를 만들기 위해 완만했던 능선이 갑자기 알어선다. 하지만 산행객들은 약간의 다리품을 팔면 이내 정수리를 밟을 수 있다.

13시 29분~45분 백운산(白雲山 1.278.6m)
백운산은 경산남도 함양군과 전라북도 장수군의 경계에 솟아 있는 산으로 그 높이는 1,268.6m에 달한다.
늘 구름이 머물러 있어 "흰구름산(白雲山)" 또는 "희고 밝은산(白雲山)이란 뜻을 가진 백운산 정수리는 사위(四圍)가 확 트여 있고 남서쪽에는 헬기장이 있다.
헬기장을 기준으로 남쪽으로는 중봉과 끝봉(1,232m)으로 잇따르는 능선은 상연대와 묵계암을 지나 백전면 백운리로 이어진다. 그리고 남서쪽으로는 중고개치와 중치를 지나 월경산(月鏡山 918.9m)과 봉화산(奉化山 919.8m)으로 잇따르는 대간마루금이 이어진다.
한편 북쪽에는 지금까지 걸어온 대간마루금이 이어지고, 동쪽에는 서래봉(1,157m)이 있다.
정수리에서 바라볼 수 있는 풍광을 조망하고 있으려니 따가운 햇볕이 내리쬐어 더위를 식히려고 나무가 햇볕을 가려주고 바닦에는 넓은 돌들이 깔려있는 공터가 있는 북쪽으로 조금 내려선다.
그곳에서 최영장군님을 비롯해 여러 회원님들이 꺼내놓은 과일을 맛있게 나누어 먹는데 평소에는 선두에서 산행을 하기 때문에 좀처럼 함께할 수 없었던 강희산님이 후미에서 산행을 하기에 오늘은 어쩐일이냐고 물으니 강희산님은 "덕유산 산행 때 최영장군님이 같이 가자고 배낭을 잡으시는데 함께하지 못해, 오늘은 꼭 함께 산행하기로 마음 먹었지요."라고 하신다.
백두대간상에는 함양 백운산(白雲山)을 비롯해 우리나라에는 백운산이랑 이름을 가진 산이 매우 많다.
전국에는 100여개의 백운산이 있을 것으로 추산되는데, 한글학회에서 발행한 "한국땅이름사전"에 그 위치가 실린 것만 해도 무려 38개에 이른다.
백운산의 명칭 유래에 대해 군지(郡誌) 등의 자료를 보면 산이 높아 구름이 늘 머물러 있어 "흰구름산"이라는 뜻으로 풀이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단순히 이름을 한자로 풀이한 것일 뿐이다.
백운(白雲)이란 이름은 "밝은"의 음차에서 나온 것이 많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백(白)"은 "밝"의 음차이고, "희다"는 뜻을 가지고도 있어, "밝다"와 뜻이 직접적으로 통하여 많은 산에는 이 이름들이 붙어 있다.
우리나라의 산들 중 대개 명산이거나 큰 산들에 "백(白)"자나 박(朴)"자가 들어간 것이 많은데, 이들은 대부분 "밝다"에서 연유했음은 의심할 나위가 없다.
산이름에는 왜 이처럼 "밝다"와 관련된 이름들이 많이 취해졌을까? 여러 가지로 생각할 수 있겠지만, 옛사람들이 산을 인간 세계에 광명을 주는 신성한 곳으로 생각하여, 그 이름까지에도 상당한 조심성을 기해 붙인 것으로 보인다.
이곳 함양과 장수에 있는 백운산 산의 지류를 따르다 보면 소백산맥(小白山脈)이 나오듯 백운산은 소백산맥에 딸린 산으로 산체는 호상편마암(縞狀片麻岩)으로 이루어져 있다.
한편 백운산 북쪽 사면에서는 남강(南江)의 상류인 남계천(濫溪川) 지류가 발원하고, 남쪽 사면에서도 역시 남계천의 지류인 위천(渭天)이 발원하여 함양읍에서 남계천으로 합류한다.
또 서쪽의 장안산(長安産 1,236.9m)과 백운산 사이에 있는 계곡에는 섬진강(蟾津江)의 지류인 백운천이 남쪽으로 흐른다.
13시 45분 백운산에서 기념촬영...
맛있는 과일을 나누고 모처럼 많은 회원님들이 백운산정수리 빗돌에 모여 기념촬영을 해본다.
위 사진에서 오랜만에 모습을 보인 총무님과 송곡님 그리고 선두에서 벗어나 후미와 함께 산행을 하고 있는 강희산님을 볼수 있다.
반면 서병모님 보습은 사진에서 보이지만 힘내자님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것이 사뭇 의아할 것이다.
힘내자님은 오늘 서병모님에게 "다 죽었어!"라는 말을 남기고 잰걸음으로 앞으로 나갔다고 하며, 위 사진을 담을때는 아마도 요즘 다크호스로 떠오르고 있는 지양씨와 산행을 함께하고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힘내자님 한번 더 화~이팅...입니다.*^^*
14시 43분 중고개치(740m)
백운산에서 이곳 중고개치로 내려서는 길은 너덜이 깔려있는 가파른 내리막길이 30도 이상 경사를 이루며 40여분간 이어지는 구간이다.
너덜이 잇따르는 가파른 내리막 비탈길에 낙엽이 떨어져 쌓여있는 구간을 내려설때는 주위를 기울이며 발길을 옮겨야한다. 주위를 기울이지 않고 발길을 옮기다가는 너덜위의 가랑잎에 미끄러져 부상을 당하기 쉽다.
가파른 너덜내리막 비탈이 다하는 부분에서 잠시 다리쉼을 하는 동안 최영장군님은 강희산님과 이영미님등 여러명의 회원님들에게 마라톤에 대해 일장(一場) 강의를 하신다.
마라톤은 절대 겁먹을 만한 운동이 아니고 마라톤화는 로열티를 지불하지 않는 어떤 메이커의 제품이 좋으며 달리기 전에는 항상 준비운동을 철저히 해야 한다고 하신다.
또한 백두대간 산행을 하는 산행객들이라면 비교적 짧은 5km나 하프마라톤은 조금만 연습을 하고 호홉하는 방법을 익히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운동이라고 하니, 강희산님과 이영미님은 한 번 도전해 봐야 겠다고들 한다.
마라톤에 대한 일장 강의는 대간시그널이 바람부는날 빨랫줄에 빨래가 널려 있는 듯한 좁은 소로길이 나있는 중고개치에서도 이어졌다.
한편 중고개치로 내려서는 산행로와 중고개치에서 "중치(중재)"로 향하는 산행로 곳곳에서는 계단공사를 하는라 한창이다.
덕유산 산행기에서도 언급했지만 산행객들이 부담없이 오르내릴 수 있는 보폭을 생각하지 않고 행정 편의적인 사고방식을 탈피하지 못하여 실시하고 있는 계단공사는 오히려 산행객들에게 불편을 주고 또한 자연을 파괴하는 일만 초래하는 일일 것이다.
계단공사를 한답시고 주변의 나무들을 마구 베어서 흙을 파헤치고 그곳에 박아 넣었기에 건기에는 먼지가 풀풀나고 장마철 처럼 폭우가 내릴때는 흙이 다 쓸려 내려가는 현상을 가만하지 않고 실시는 한심한 공사현장을 지날때 회원님들은 저마다 한 마디씩 쓴소리를 내 뱉는다.
그중 똘이 장군은 일제시대의 잔재인 일명 "야리끼리"라는 공사현장 병폐가 아직 만연하고 있어서 그렇다고 한다.
게단공사로 인해 산행로에서 먼지가 풀풀나는 구간을 지나 중치가 내려다 보이는 산행로를 약간 벗어난 곳에서 나는 운좋게 "큰용담"을 만나는 행운을 얻었다.
큰용담은 꽃이 층층이 피어 있었으며 그 키는 1m에 육박하는 멋진 꽃이었다. 그래서 제일 위의 꽃봉우리부터 차례로 카메라에 담아 보았다.
큰용담(Gentiana axillariflora var. coreana)
쌍떡잎식물 용담목 용담과의 여러해살이풀로 한국(지리산·경기\·강원·평북·함북)에 분포하며, 산지에서 자생한다.
높이 약 1m이다. 줄기는 1개가 곧게 나며 수염뿌리는 굵다. 잎은 마주나고 잎자루가 없으며 밑부분이 합쳐진다. 달걀 모양 긴 타원형 또는 긴 타원 모양 바소꼴이며 길이 6∼12cm, 나비 2∼2.5cm이다. 뚜렷하지 않은 3맥이 있고 끝이 날카로우며 가장자리에는 톱니가 없다.
꽃은 8∼9월에 자주색으로 피는데, 줄기 끝이나 잎겨드랑이에 여러 송이씩 달린다. 화관은 종 모양이며 길이 2∼2.5cm이고 끝이 5갈래로 갈라진다. 꽃받침도 종 모양이고 길이 2∼2.5cm, 지름 약 7mm이며 끝이 5갈래로 갈라지고 갈래조각은 뾰족하다. 5개의 수술과 1개의 암술이 있다.
열매는 삭과(殼果)로서 좁고 길며 2조각으로 갈라진다. 민간에서 뿌리를 건위제로 쓴다. 한국 특산종으로서 지리산과 경기도·강원도·평안북도·함경북도에 분포한다.
15시 15분 중치(650m)
큰용담을 뒤로하고 조금 걸으니 좌측에 큰 떡갈나무가 있는 중치가 보이고 중치로 내려서니 먼저 도착한 회원님들이 운산리 중기마을로 발걸음을 옮기기에 얼른 불러서 도로 모시고 중치에서의 흔적을 남긴다.
중치에서 운산리 중기마을 까지는 20분 가량 발품을 팔면 되고 곳곳에는 알탕을 할 수 있는 아담한 장소가 있다.
오늘은 모처럼 "대전한겨레산악회" 회원님들이 모두 모여 함께하는 즐거운 산행이었습니다.
모든 회원분들이 산행하는 내내 즐겁고 행복했으리라 믿으며 다음 산행에서 웃으며 인사 나누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오류나 다른 의견이 있으시면 댓글을 남기세요...^*^ ***
2006년 10월 23일
강일구
첨부 : 호상편마암(縞狀片麻岩)
호상편마암은 조산운동과 같은 지각변동이 암석에 큰 편압을 가해서 압류대의 암석에 유동을 일으키고 재결정작용을 일으켜 암석을 변성케 할 때의 변성작용인 광역변성작용(regional metamorphism: 지각의 압력과 온도에 의해서, 넓은 지역에 걸쳐 기존의 암석이 재결정되어 변성암을 생성하는 작용으로 조산운동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광역변성작용에 의해서 생성되는 암석은 결정편암이나 편마암이며, 일반적으로 현저한 편리나 줄무늬의 구조가 특징이다. 광역변성작용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소인은 온도와 압력이다. 지각 내의 넓은 범위에서 온도와 압력이 상승하면 암석을 구성하는 광물 사이의 평형이 깨져 광물 사이에 반응이 일어나서 새로운 광물의 조합이 생긴다. 그 과정에서 암석에 작용하는 차동에 의해서 편리나 줄무늬 모양의 구조가 형성된다. 그러나 이러한 온도의 상승이 어떻게 넓은 범위에 걸쳐 일어나는 것인지는 아직 자세히 알려지지 않고 있다)에 의해 생성되는 편마암에 일종이다. 편마암을 구조에 의해 분류한 것으로 층을 이룬다. 즉, 검은 광물과 담색 광물이 호층(alternation of strata: 입도가 다른 물질로 이루어진 지층이 규칙적으로 겹쳐 있는 지층의 퇴적상태로 호층의 단면은 줄무늬로 보이는 경우가 있다. 사층과 이층으로 된 사니호층도 있다.)을 이루며 호상구조를 잘 보여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