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 종주기

중치(중재)~월경산(月鏡山)~봉화산(烽火山)~복성이재~아막성(阿莫城)~西시리봉~사치(沙嶺 88고속도로)~매요리 (백두대간 제 30구간)

작은岳馬 2006. 10. 31. 14:34

 

중치(중재)~월경산(月鏡山)~봉화산(烽火山)~복성이재~아막성(阿莫城)~西시리봉~사치(沙嶺 88고속도로)~매요리 (백두대간 제 30구간)

 

 

산행일자 : 2006년 10월 29일

 

산행장소 : 중치(중재)~월경산~광대치~944m봉~봉화산~치재~복성이재~아막성터~781m봉~西시리봉~새맥이재~697m봉~사치(88고속도로)~유치삼거리~매요리

 

산행모임 : 대전한겨레산악회 (44명)

 

산행날씨 : 맑고 시원한바람 (운무가 많아 시야가 짧았음)

 

산행시간 : 08시간 02분

 

산행거리 : 22.85km, 접속구간 : 운산리~중치 1.75km, 총 24.6km

 

길가의 가로수가 잎을 붉고 노랗게 물들이고 그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더니 어느덧 단풍잎을 하나 둘씩 땅에 떨구고 있는 모습을 보니 새삼 가을이 깊어졌음을 느낀다.

올 가을에는 비가 모자란 가뭄탓에 단풍잎들이 그리 곱지 않다고들 하여 산행객들이 예년에 비해 많이 줄었다고들 한다.

그래도 산에 오르면 겨우내 눈과 얼음 밑에서 웅크리고 잠자코 견디며 봄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던 자연이 봄부터 부지런히 꽃을 피우고 무더운 여름도 거뜬히 이겨 가을이 되자 그 결실로 만들어 놓은 한 폭의 아름다운 동양화를 보면 자연은 산행객들의 입가에 절로 미소를 짓게 한다.

하루하루를 웃음으로 시작하면 얼굴의 표정도 밝아지고 긍정적인 생각이 들어 하루하루를 즐겁게 보낼 수 있다는 말이 있다.

 

오늘도 변함없이 웃는 모습으로 회원님들을 만나 대간호에 오른 후 덕유산휴게소에 정박하여 회장님께서 정성스럽게 준비해 오신 찰밥을 나누어 먹고 어느덧 오늘 산행의 베이스캠프인 운산리에 선다.

 

 

08시 25분 운산리

 

농사를 짓기위해 닦아 놓은 좁은 농로를 굽이굽이 돌던 대간호가 정박한 운산리는 여는 농촌의 아침 풍경과 다름없고 동네어귀에는 기와를 가지런히 얹은 기와집이 회원들을 반긴다.

대간호에서 하선한 회원님들을 모시고 기념촬영을 한 후 회원님들은 찬 서리가 내리기 전에 가을걷이를 끝낸 들녁에 벼 그루터기가 아직 남아있는 한 논에 모여서 최영장군님이 마라톤대회에서 배워왔다는 새로운 준비운동으로 산행하기 위한 의식을 치는다.

 

아래 사진은 산행에 앞서 운산리에서 중치로 이어지는 골짜기의 산들을 담아 보았다.

 

 

 

08시 50분 중치(650m)

 

운산리에서 중치를 향해 오르는 길은 2주전 백운산(白雲山) 산행의 좇착역인 중치에서 운산리로 내려오던 때와는 다르게 회원님들을 힘들게 하기에는 충분한 거리와 경사로 이루어져서 20여분 동안의 힘든 다리품을 요구 한다.

중치를 알리는 푯말 근쳐에서 본격적으로 대간마루금을 밟기 위해 숨을 고르며 다리쉼을 하고있는 김의환(스마일아저씨)님과 김미애님이 다정하게 서 있고 옆으로는 강희산님과 광천의 서석용님이 나를 보고 웃고 있는 모습이 아름답다.

 

 

09시 32분 월경산(月鏡山 981.9m) 갈림봉을 지나며

 

중치에서 부터 이어지던 일본잇갈나무(落葉松)숲은 첫번째 봉우리를 지나며 사그러들고, 완만한 능선이 잇따르는 산행로에는 떡갈나무 잎이 수북이 쌓여 발 아래에서 푹신푹신 밟히는 느낌이 참 좋다.

2주전 산행에서 바삭바삭 소리를 내고 발 밑에서 부서지며 먼지를 풍기던 떡갈나무잎이 오늘은 물기를 머금고 촉촉한게 마치 낙엽융단을 깔아 놓은 듯하다.

완만하던 산행로는 월경산(月鏡山)으로 이어지는 갈림봉이 시작되면서 20여분간 가파르게 이어지더니 이내 약초를 재배하기 위해 철책을 둘러쳐 놓은 지점을 지나며 다시 완만한 능선길이 다시 이어진다.

철책을 좌측에두고 이어지던 대간마루금은 철책에 대간시그널이 주렁주렁 메달려 있는 곳을 깃점으로 급하게 방향을 우측으로 틀어 가파른 내리막 비탈을 이루며 광대치로 내달린다.

 

 

09시 42분 광대치(820m)

 

광대치에는 푯말이나 이정표는 없고 다만 대간꾼들이 메달아 놓은 시그널 만이 곳곳에서 바람에 날리며 이 작은 안부가 광대치 임을 말해주고 있다.

산행을 시작한지 50여분이 지나는데 이용우님을 비롯한 선두회원님들은 좀처럼 다리쉼을 할 생각은 하지 않고 광대치를 지나 944m봉을 향해 가파른 오르막 비탈을 힘차게 오르고 있다.

그래도 나는 광대치를 지났다는 흔적을 남기기 위해 뒤 따르는 회원님들을 잠시 모시고 기념촬영을 한 다음 이용우님의 뒤를 따라 바쁜 발길을 옮긴다.

 

 

09시 55분 944m봉

 

숨이 턱에 차도록 가프게 몰아쉬며 힘들게 오르막 비탈을 오르니 떡갈나무잎이 수북이 쌓여 있는 공터가 나오고 그 공터에 서니 지금까지 걸어온 880m봉과 광대치 그리고 월경산과 월경산갈림봉이 한눈에 들어온다.

이 곳까지 1시간 동안 한 번의 다리쉼도 없이 잰걸음으로 오르다 보니 월경산(月鏡山 981.9m)을 그냥 지나치고 말았다.

물론 월경산은 대간마르금에서 조금 벗어나 있지만 월경산갈림봉에서 20분이면 왕복 할 수 있는 가까운 거리에 있다.

다시 오던길을 되밟아 갔다 오기에는 늦였다는 사실에 실망하며,  944m봉 정수리를 바라보니 여러 회원님들이 물 한 모금으로 갈증을 달래며 다리쉼을 하고 있다.

오늘 산행로의 가장자리에는 다른 구간보다 많은 떡갈나무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어 산행로와 공터및 정수리 등에 떡갈나무로 만든 융단을 깔아 놓고 산행객들을 반기고 있다.

 

 

 

 

10시 24분 전망바위

 

944m봉에서 10여분 동안 내려서니 작은 안부가 나오고 그 안부에서 다시 10여분동안 다리품을 파니 전망바위가 나온다.

전망바위에서 지나온 대간마루금을 살펴보니 정중앙에 944m봉이 보이고, 944m봉아래의 광대치 너머로 흐릿하게 월경산(月鏡山 981.9m)이 보인다.

전망바위에서 조금더 걸으면 봉화산과 백운산의 방향을 알리는 푯말이 세워져 있지만, 다른 구간에 세워져 있는 푯말들과는 달리 목표지점 까지의 거리나 소요시간 등이 씌어져 있지 않아 아쉬움으로 남는다.

  

  

 

 

10시 31분 너럭바위(공룡바위)

 

너럭바위가 공룡의 잔등을 연상케 할 만큼 넓게 분포되어 있는 바위에 오르니 주변에 멋지게 별쳐지는 풍광에 모처럼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백전면 대안리쪽으로 깍아놓은 듯 이어지는 절벽과 붉은 단풍이 잘 어우러져 한 폭의 동양화를 연상케 하는데, 오늘따라 온 산야에 짙게 깔려 가시거리를 짧게 만든 운무가 야속 할 따름이다.

내가 죄돈민님과 김미애님을 너럭바위 중앙에 세워 놓고 기념촬영을 하자 최돈민님은 "산행에서 여자회원분과 단 둘이 사진을 담은 것을 집에서 알면 큰 일나..."라고 말하며 나 역시 김미애님과 기념촬영을 하라고 한다.

 

모처럼 멋진 풍광을 카메라에 담고 넓은 너럭바위에 배낭을 벗어 놓고 잠시 다리쉼을 갖기로 하고 최돈민님이 꺼내 놓은 배 옆에 내가 사과를 꺼내 잘 깍아 놓으니 마치 우리가 신선이 되어 무릉도원(武陵桃源)에서 망중한(忙中閑)을 즐기는 듯하다.

사과와 배를 먹으며 다리쉼이 끝나갈 무렵 허선생님이 너럭바위로 올라서며 월경상(月鏡山)을 거쳐 오느라 조금 늦였다고 하신다.]

그래서 나는 사과 한 쪽을 권하며 월경산의 풍경은 어떠하냐고 물으니 허선생님은 푯말이나 이정표는 없고 다만 삼각점(三角點)만이 월경산을 지키고 있었는데 월경산 정수리는 주변 산들에 비해 조망이 뛰어나다고 하신다.

 

너럭바위 아래로 펼쳐지는 담풍은 오늘 산행에서 제일 아름다운 단풍이었다.

올해는 가을 가뭄 탓에 단풍이 붉게 물들기 전 잎이 말라 떨어지거나 까맣게 타서 변해 버렸기에 예전처럼 울긋불긋 아름답게 물든 단풍을 구경하기는 힘들다.

 

  

 

패랭이꽃 : 패랭이꽃은 지난 황악산 산에에서 3가지 종류 모두를 소개한 바 있다.

 

 

 

 

 

 

11시 00분 억새밭을 지나며

 

너럭바위에서 10여분을 걸어 낮은 봉우리를 힘차게 넘으서니 억새가 나타나기 시작하고 억세밭 중앙으로 이어지는 산행로 가장자리에 "패랭이꽃" 한송이가 가녀리게 피어 있다.

억새가 군락을 이루고 자라고 있는 것으로 보아 봉화산(烽火山)이 가까워 지고 있음을 감지하며 잠시 여기서 산행객들이 잘 못 알고 혼동하고 있는 "억새" "갈대"의 차이점을 짚어본다.

 

"억새"는 볏과의 다년생초(草)로 산이나 들에 저절로 나는데 높이는 1~2m로 자라며, 잎은 가늘고 길며 딱딱한 잔 톱니가 있다. 9월경에 자줏빛을 띤 황갈색의 이삭으로 된 꽃이 피며, 줄기와 잎은 예전에는 지붕이나 담등의 마루에 이는 데 쓰였다.

 

"갈대"도 역시 볏과의 다년생초(草)로 분류되나 억새와는 달리 습지나 냇가처럼 물 가까이에 숲을 이루며 자라는게 특징이다. 줄기는 곧고 단단하며 속이 비어 있고 잎은 가늘고 긴데, 끝이 뾰족하여 억세며 8~9월에 줄기 끝에 회백색의 잔꽃이 핀다. 줄기는 발.삿갓.삿자리 등을 만들어 쓰며, 뿌리줄기는 한방에서 약재로 쓰인다.

 

위에서 짚어본 것처럼 우리가 산행을 하며 흔히 만나는 것들과 오늘 봉화산 주변에서 만나는 풀은 갈대가 아니고 "억새"라고 불러야 할 것이다.

 

삼면봉(三面峰 870m)이 눈에 들어오고 억새가 절정을 이루는 지점에서 나는 잠시 머물며 이 지점을 통과하는 회원님들의 모습을 차례로 카메라에 담아본다.

오늘 내 카메라에 담긴 여러회원분들의 모습 중에 송영래님과 김일석님 그리고 박영규님과 신현숙님등으로 이루어진 4인방의 모습, 그리고 이영훈부부의 모습을 담은 것이 가장 큰 소득이다.

회장님을 마지막으로 카메라에 담고 후미그룹을 기다리려 했으나 나를 지나쳐 가는 회원님들이 저마다 오늘 후미는 1시간 이상 뒤쳐저 있으니 기다리지 말고 그만 발길을 옮기라고 하신다.

 

 

 

11시 10분 삼면봉(870m)

 

남원시의 아영면과 함양군의 백전면을 좌측에 두고 장수군의 번암면은 우측에 두며, 경계가 되는 곳에 솟아 있는 870m봉은 삼면봉(三面峰)으로 세 개의 면이 서로 맞닿아 이루어진 봉우리이다.

이 봉우리에서 부터는 봉화산(烽火山)을 바라보며 산행을 할 수 있다.

마치 흰눈이 흩날리는 듯한 억새길을 회장님의 뒤를 따라 걷고 있으려니 회장님께서 무전기를 잃어버리셨다며 후미그룹에게 연락을 취하려고 여러번 시도를 하신다.

아마 회장님도 억새가 연출하는 멋들어진 춤사위에 마음을 빼앗겨 무전기가 없어진지도 모르고 산행을 하다가 지금에서야 생각이 났나 보다.

회장님의 전화통화 내용에 의하면 너럭바위(공룡바위) 근처에서 잃어 버렸나 보다...

 

아래 두 장의 사진은 아영면 구상리와 변암면 노단리를 잇는 임도의 고갯마루에 위치한 안부로 삼면봉(870m)과 봉화산(919.8m)사이에 있다.

 

 

 

 

11시 12분 봉화산과 삼면봉을 바라보며...

 

백두대간 등산 안내도가 세워져 있는 안부를 지나 작은 봉우리에서 흰 눈발이 흩날리는 듯 만발하게 피어 있는 억새밭을 가로 질러 봉화산(烽火山) 정수리로 이어지는 대간 마루금과 봉화산을 바라보니 내가 마치 꽃밭을 거니는 듯 몸이 가벼워진다.

아래 사진은 억새 너머로 지나온 삼면봉(三面峰)의 모습을 담은 사진이다.

 

 

  

 

11시 17분 봉화산(烽火山 919.8m)을 등지고

 

봉화산 정수리를 5분여 남겨 놓은 지점에서 억새가 만들어 내고 있는 아름다운 춤사위를 감상하며 넋을 잃고 있다가 화강암을 이용해 계단을 설치해 놓은 산행로를 따라 올라가던 중 산행로 가장자리에서 산행객들의 발길에 이리치고 저리치어 어쩔줄 몰라하는 "조밥나물"를 만나 그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 본다.

가녀린 조밥나물을 뒤로 하고 봉화산 을 오르는데 정수리 주변 사면에는 온통 흰눈이 쌓여있는 듯 흰억새꽃들이 바람에 흩날리며 한바탕 춤을 추고 있다.

 

 

조밥나물(Hieracium umbellatum)
 
줄기는 곧게 서며 높이 30∼100cm이다. 자르면 흰 즙액이 나오고 위에서 가지가 약간 갈라지며 줄기잎은 어긋나고 꽃이 필 때 밑부분의 잎이 마르며, 중앙에 달린 잎은 바소꼴이고 가장자리에 뾰족한 톱니가 다소 있다. 꽃은 7∼10월에 피고 황색이며 두화()는 가지 끝에 산방상으로 달린다.

총포는 길이 9∼11mm이고, 포조각은 3∼4줄로 배열하며 겉으로 점점 짧아진다. 화관은 노란색이며 통부에 털이 있다. 열매가 10∼11월에 결실하며 수과()이다. 열매는 흑색으로 길이 2.5∼3mm이고 10개의 능선이 있다. 관모는 갈색이고 깊이 7mm정도이다. 어린 순을 나물로 한다. 한국·중국 동북부·
시베리아·유럽·일본·북아메리카·북아프리카 등지에 분포한다.
쌍떡잎식물 초롱꽃목 국화과의 여러해살이풀로 한국·중국 동북부·시베리아·유럽·일본·북아메리카·북아프리카 등지에 분포하며, 산지의 습기가 있는 곳에 서식한다.
 

 

 

 

11시 23분 봉화산(烽火山 919.8m)

 

봉화산(919.8m)...예전에는 이곳에서 봉화를 올려 신호를 주고 받던 곳이라 봉화(烽火)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요즘은 봉화(烽火)라는 이름값을 봄이면 화려하게 꽃을 피운 철쭉이 대신하고, 그 철쭉 덕분에 꽃산행지로 이름이 잘 알려지고 있는 산이지만 요즘 처럼 늦가을에는 철쭉의 아름다운 꽃들은 볼수 없다.

하지만 철쭉을 대신해 봉화산 정수리 주변에서는 가을을 대표하는 억새꽃의 향연을 감상할 수 있는 묘미가 있는 산이다.

한편 봉화산 정수리 아래까지 뚫린 임도는 종주자들에게는 캠프 사이트, 걷기 싫어하는 사람들에게는 편안한 정상 조망을 선물해 주지만 자연을 파괴 하면서 까지 정수리로 이어지는 임도를 만들어 아름다운 풍광을 해칠 이유가 있는가...? 라는 의문이 생기는 순간이다.

 

내가 억새꽃과 주변풍광을 감상하느라 조금 늦게 봉화산 정수리에 오르니 이미 선두그룹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회장님을 비롯해 많은 회원분들도 정수리 빗돌을 기념 삼아 기념촬영을 마치고 다시 배낭을 매고 발길을 옮기려 한다.

평소 함께 산행에 나섰으면서도 좀처럼 함께 걷기는 힘들었던 김일석님과 총무님을 봉화산 빗돌에 모시고 흔적을 남기며, 나는 이곳에서 후미그룹을 기다리다 그 분들과 함께 할 것이니 먼저들 내려가라고 하니, 회장님과 총무님을 비롯해 특히 송영래님께서는 오늘 후미를 기다리려면 1시간은 족히 기다려야 할 것이니 그만 함께 내려갈 것을 거듭 권하신다.

나는 잠깐 생각에 잠기다가 이미 여러번 후미일행과는 산행을 함께했으니 오늘은 여기 계신 분들과 함께 산행하는 편이 옳다고 판단하여 무거운 발길을 꼬부랑재로 향한다.


아래 사진은 봉화산에서 내려오기 전에 봉화산에서 아영면 성리마을로 흘러내리던 능선이 다하는 부문에 자리하고 있는 헬기장과 그 너머의 성리마을과 저수지를 담은 사진이다.

 

 남원은 빼어난 자연과 걸출한 예술작품이 잘 어우러진 고장이다.

장중한 지리산 자락 아래 동편재가 태동했고, 춘향전, 흥부전, 변강쇠타령과 소설 "혼불" 등의 역작이 태어난 곳이다.

또한 흥부가 놀부에게 쫓겨서 정착해 부자가 됐다는 발복지(發福地)이며, 춘향전의 발상지(發祥地)로써 남도 판소리가 활성화된 지역으로 잘 알려진 곳은 남원이다.

흥부가의 "제비노정기"와 박을 탈 때 부르는 "박타령"에 나오는 지명을 바탕으로 하여, 1992년 연구조사에서 흥부전은 단순한 허구가 아니라 현실에 바탕을 두고 전해지는 설화를 바탕으로 구성한 판소리로 그 무대의 배경은 경상남도 남원군 인월면 성산리와 아영면 성리가 중심이었다고 한다.

 오래 전부터 전해 내려오는 설화와 지명의 연관성을 연구분석한 결과 이곳 남원이 흥부와 놀부의 고향으로, "춘보설화"에 근거하여 아영면 성리마을이 흥부가 형 놀부에게 쫒겨나 살다가 제비를 만나 부자가 된 발복지로 밝혀졌고 이 마을에는 박춘보의 묘가 있어 지금도 두 마을에서는 언제부터인지는 모르지만 삼월삼진날이면 박첨지의 제사를 모시고 정월 대보름날에는 춘보망제를 지내오고 있다.

 

 남원시 사매면에는 최명희의 "혼불마을"이 있다.

생전 작가가 10권이나 되는 장편소설 아니, 서사시에 가까운 "혼불"을 집필하며 "글쓴이가 손가락으로 바위를 뚫어 글씨를 새기는 것 같다"며 힘겨움을 호소했던 소설의 주요 장면들을 만날 수 있다.

최명희는 전주에서 태어났지만 이곳에서 그의 아버지가 나고 자랐다.

작품 속 여러 인물들이 오가는 만남과 이별의 장소인 "서도역"은 영상태마 파크로 거듭났고, 노봉마을 최씨 종가집에는 서원 복원이 한창이다.

 

"위 글을 쓰고 있는 나는 아직 소설 "혼불"을 다 읽지는 못했다... ㅎㅎㅎ"

  

 

 

11시 46분 솔밭에서의 점심

 

봉화산에서 억새밭을 지나 850m봉을 지나니 가시덤불이 나오고 가시덤불을 헤치고 710봉에 올라서니 다리재(840m)가 눈에 들어온다.

봉화산에서 다리재 까지는 가파른 내리막 비탈에 화강암 계단이 잘 설치 되어 있다.

영취산이나 백운산 그리고 덕유산의 동업령에 산행객들의 신체구조와 보폭등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설치 되어 있는 계단에 비하면 이곳의 계단은 설치하기 전 산행객들을 위해 많은 생각을 하고 설치한 계단인 듯 싶다.

다리재를 지나 꼬부랑재(615m)가 눈에 들어오는 소나무숲을 지날 때 회장님께서는 앞서 걷고 있는 회원님들을 불러 이곳에서 점심을 먹고 가자고 하신다.

 

제법 넓은 공터에 솔잎이 푹신푹신하게 쌓여있는 곳에 소나무가 잘 자라 그늘이 드리우고 있는 곳이다.

나는 산행에서 식사를 할 때는 더운 여름이라 할지라도 그늘을 피해 햇볕이 잘 드는 곳에서 식사를 하라고 배웠다.

산행을 하다가 허기를 달래기 위해 차가운 음식을 허겁지겁 먹고나면 소화도 잘 안되고 산속에서의 비약한 여건상 충분한 휴식 없이 식사후 바로 출발해야 하기 때문에 가능하면 햇볕이 잘 드는 곳이서 음식을 먹어 조금이나마 체온변화를 덜 주고 소화에도 도움이 되게 하라고 배웠다.

 

후미 일행과 함께 산행할 때도 물론 식사후 충분한 휴식을 취할 수는 없지만 차 한잔 마실 시간의 여유는 갖고 소화에 조금이나마 도움을 준 후에야 걸음을 옮기는데, 여기 모인 일행분들은 평소 산행시 앞에서 걷는 선두그룹에 속하는 회원님들이 많아 그런지 식사를 마치자 바로 배낭을 매고 발길을 옮긴다.

나 역시 뒤쳐지기 싫어 점심을 바삐 먹고 배낭을 매고 잰걸음으로 꼬부랑재를 지나 660m봉을 오르고 있는 최돈님님을 따라 잡기 위해 뛰다시피하여 660m봉을 오르는데, 갑자기 뱃속에서 이상한 느낌과 함께 식은땀과 복통이 엄습해 온다.

내가 과욕을 부리고 식사를 한 후 너무 바삐 걸음을 옮긴탓에 찾아오는 복통인 것이다.

나는 다른 회원님들이 보기전에 얼른 660m봉에서 좌측으로 이어지는 대간마루금을 벗어나 우측으로 이어지는 마루금을 조금 따르다가 적당한 장소에서 배낭을 내려놓고 푹신한 솔잎이 깔려있고 햇볕이 잘 드는 곳에 쓰러지듯 누워서 복통을 달래본다.

 

10여분이 지나니 복통은 씻은듯이 사라지고 이내 온몸에는 힘이 다시 솟는 느낌이 들어 배낭을 다시 매고 660m봉으로 돌아오니 송영래님과 김일석님 그리고 박영규님과 신현숙님으로 이루어진 4인방분들이 나를 발견하고는 아까 앞서 가더니 왜 여기서 만나느냐고 물으신다.

나는 10여분 동안 나에게 일어난 일의 전말을 설명하고 솔향기가 물씬 풍길 듯한 완만한 소나무숲 능선을 따라 치재로 향한다.

 

 

12시 39분 치재(m)

 

완만한 소나무숲길을 따라 걷다가 관목이 무성하게 분포해 있는 치재에 다다른다.

관목은 다름 아닌 철쭉을 두고 한 말이다. 이곳 치재는 철쭉이 만발할 때면 철쭉을 보기위해 몰려드는 산행객들이 온 산과 재(嶺)에 넘쳐난다.

특히 번암면 논곡리와 노단리를 잇는 임도가 불과 몇 백미터를 두고 대간마루금과 나란히 복성이재 까지 잇따르고 있고 아영면 구산리와 성리 그리고 월산리 쪽에서도 접근성이 매우 좋아 산행객 뿐만 아니라 행락객들도 많이 찾아오는 곳이다.

치재에서 노단리쪽 임도로 이어지는 "철쭉터널"은 이곳 치재 철쭉의 극치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듯이 임도 에서 치재로 오르는 입구에는 1000여평은 족히 되 보이는 주차장 까지 마련되어 있다.

 

위 사진은 치재에서 700m봉과 복성이재로 향하는 첫 봉우리 주변에 2미터가 넘게 잘 자란 철쭉이 군락을 이루고 분포해 있는 모습을 담은 것인데 사진으로 보는 것 보다 직접 접하면 그 규모에 누구나 감탄을 할 것이다

아래 사진은 치재를 몇 걸음 남기고 서 있는 4인방의 모습이다.

 

치재를 지나 철쭉으로 이루어진 관목숲을 지날 때 박영규님은 한 산악회를 따라 산행을 나섰다가 그 산악회가 산행을 하기 보다는 오고가는 버스안에서 음주 가무를 즐기는 목적으로 산행을 나서는 산악회였고 두 세번 더 따라 나섰다고 이야기 하니, 듣고 있던 김일석님과 신현숙님은 그 삼악회의 분위기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보신다.

한편 송영래님은 농담으로 그런 산악회를 따라 다니니 좋았었냐고 박영규님에게 면박을 주신다.

그래서 오늘 함께 산행을 하는 5명의 회원님들은 박영규님으로 인해 엔돌핀이 솟아나는 한바탕 웃음꽃을 피웠다..ㅎㅎㅎㅎㅎ

 

"평소에도 산행하는 동안 박영규님과 송영래님이 나누시는 대화를 들으며 산행하면 지루하지 않고 내내 웃으며 산행 할 수 있다."

 

 

 

 

12시 46분 700m봉

 

치재에서 기분좋게 다리품을 파니 이내 700봉 정수리에 있는 헬기장에 올라선다.

정수리에서 지나온 대간을 살피니 봉화산은 어느덧 멀리서 어렴풋이 보일 따름이다.

그 봉화산이 없어질 세라 봉화산을 등지고 기념촬영을 해 보는데 김일석님은 내 옆에 서시며 "우리 일구씨 옆에 서면 안되는데.."라고 하신다. 아마도 내 옆에 서면 상대적으로 당신의 키가 작아 보일거라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김일석님! 산에서 볼 수 있는 김일석님의 모습은 언제나 멋있습니다. 화~이팅.*^^*"

 

700m봉에서 간단하게 간식을 먹으며 복성이재를 굽어보니 남쪽 사면으로 철책이 둘러쳐 있고 그 철책안에는 나무들은 찾아 볼 수 없고 억새만이 흰꽃을 흩날리며 무성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곳도 약초를 재배할 목적으로 철책을 두르고 그 안에 있는 나무들을 모두 베어 버렸을 거라 생각된다.

복성이재로 내려서는 산행로는 제법 가파른 비탈에 처음이는 철쭉과 관목들이 보이다가 이내 소나무숲 길이 잇따른다.

 

 

 

13시 02분 복성이재(540m)

 

복성이재에 도착하니 아영면 성리와 번암면 논곡리를 잇는 포장도로가 나 있는데 논곡리쪽으로 조금 가면 "복성이" 마을이 있다.

아마도 복성이재는 복성이라는 마을의 이름에서 그 유래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복성이재에서 작은 봉우리를 넘고 다시 601.4m봉을 넘어 서니 "복성이뒷재"로 추정되는 안부가 나오고 또 다시 작은 봉우리와 안부를 지나니 이번에는 옛 성터였음을 짐작 할 수 있는 성벽이 나오고 그 성터에는 누가 쌓아 놓았는지 크고작은 석탑 여러개가 눈에 들어온다.

 

내가 성터를 올라가는 송영래님의 뒷모습을 카메라에 담고 작은 석탑의 모습을 담으려 하니, 내 뒤를 따르던 김일석님이 주위를 두리번 거리시며 무엇인가를 찾는 듯하다.

이곳 저곳을 두리번 거리던 김일석님은 성벽의 돌을 이용해 5츨으로 쌓아놓은 한 석탑을 가리키며 2년전 이곳을 지날 때 자신이 쌓아 놓은 썩탑이라며 5층석탑 뒤에 앉아서 기념으로 사진을 찍어 달라고 하신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신현숙님은 "2년 전에 쌓아놓은 석탑이 어떻게 지금까지 쓰러지지 않고 그대로 남아있데요" 라고 말하며 신기한 표정으로 김일석님을 부러운 눈길로 응시한다.

나는 신현숙님에게 우리나라 사람들은 옛부터 산길을 걷다보면 가끔 만나는 돌무덤과 석탑 그리고 성황당 등에는 영험(靈驗)한 기운이 있다고 믿어왔기에 함부로 회손하거나 무너뜨리는 대신 그 곳을 지날 때면 돌 하나를 더 얹은 후 소원을 빌거나 기원은 하는 풍습이 전해지고 있어 김일석님이 2년전 쌓아 놓은 석탑도 지금까지 무너지지 않고 있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해 주었다.

 

잠시후 우리 일행은 아막성(阿莫城)의 마루에 앉아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잠시 성 주변 풍광을 감상하며 김일석님이 꺼내 놓은 맛있는 포도로 나누어 먹었다.

한편 박영규님은 추억의 양갱을, 송영래님은 700m봉에서 화과자를 나에게 건내 주었는데 오랜만에 먹어보는 것이라서 인지 참 맛있었다.

 

 

 

13시 24분 아막성(阿莫城)터

 

"아막성에관한 자료를 옮겨 본다."

 

아영고원(阿英高原)은 운봉고원(雲峰高原)과 황산(荒山)의 산줄기로 구획되어 있으나, 이 일대는 백제의 아막산(阿莫山), 신라의 모산성(母山城)등으로 불린 곳으로, 역사상 백제와 신라간에 격력한 쟁탈전이 벌어졌던 곳이다. 이곳은 본래 가야(伽耶)의 강역(疆域)이었으나 신라의 영유로 돌아가자, 신라 서쪽 주변의 침공에 주력하던 백제는 무왕(武王) 3년(602년)에 아막성(阿莫城)을 공격하여 신라장군 무은(武殷)을 사살하자, 그 아들인 화랑(花郞) 귀산(貴山)이 취향과 함께 돌진 역승을 거두었다. 그후 백제는 무왕 17년에 또다시 공격하여 모산성을 함락하였고, 동왕 25년에는 드디어 속함(速含), 함양 등 6성을 점령하여 경상도 방면으로 진출하였다. 이러한 형세에서 이 성리산성(城里山城)은 부근의 성터중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견고하여, 백제측의 근거지가 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최근 이를 「아막산성(阿莫山城)」으로 비정(比定)하고 있으나, 단정할 근거는 아직 없다. 성터는 동북쪽을 접한 방형을 이루고 있는데, 북변(北邊) 수구(水口)에 북문지(北門址), 서변중앙(西邊中央)에 서문지(西門址), 동남우(東南隅)에 가까운 동변(東邊)에 동문지(東門址)가 남아 있다. 북변은 성벽이 완전히 남아 있으며, 길이 15.07m로 거의 직선으로 삼개소에 적태(適台)를 돌출시켰다. 동변도 거의 직선으로 길이 147.1m, 서변은 길이 126.9m, 북변은 곡선을 이루는데, 길이 208.1m, 주위는 총 632.8m에 이른다. 성저(城低)는 높이를 계측하기 어려우나 약 4.0m에 이르며, 상변폭(上邊幅)은 3.5m이다. 그러나 동벽은 상변폭(上邊幅)이 7.5m로서 가장 넓으며, 내벽은 약 1.0m에 불과하다. 남변성벽외(南邊城壁外) 능선연결부분에는 공호(空濠)를 설치하였다. 성안에서는 3국시대의 기와편, 백제계의 도자기편 등이 퇴적되어 있는데, 북문지 수구(北門址 水口) 동편에는 직경 1.5m의 원형석축(圓形石築) 정호지(井戶址)가 있다.

 

 

14시 37분 西시리봉헬기장(765m)

 

백재와 신라의 격전지였던 아막성터를 뒤로 하고 781m봉을 향해 제법 가파른 오르막비탈을 오르는데 내 몸에서 갑자기 이상한 기운이 느껴진다.

비탈길를 오르려고 한발 한발 내 딛을 때마다 대퇴부에서 심한 통증이 느껴지고 근육이 뭉쳐오는 느낌에 더 이상 비탈길을 오를 수가 없다.

내 뒤를 따르던 신현숙님이 내 모습을 보더니 근육에 경련이 일어나는 것이라며 얼른 누워서 다리를 높이 들어보라고 하신다.

나는 적당한 자리를 찾아 배낭을 벗어 베고 잠시 누워서 대퇴부의 근육이 진정되기만을 기다리는데 박영규님께서 스프래이파스를 건네주며 뿌려보라고 하시기에 다리에 충분히 뿌리니 조금 진정되는 느낌이 들어 다시 배낭을 매고 781m봉으로 향한다.

 

10분여를 철쭉과 억새가 산행로 가장자리에 자리고 있는 가파른 오르막 비탈을 오르다보니 781m봉의 정수리가 눈에 들어오는데 이번에는 아까와는 비교할 수없을 만큼의 심한 통증에 더 이상 걸음을 옮길 수 없어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내 모습을 보고 있던 김일석님은 배낭에서 작은 양주 한 병을 꺼내어 건네주며 마셔보라고 하신다. 그래서 나는 양주 한 모금을 마시고 대신 배낭에서 오랜지쥬스를 꺼내 한 잔씩 나누어 마신 후 781m봉에 오른다.

 

781m봉에 오르니 먼저 도착한 송영래님께서 다리쉼을 하고 있어 나도 배낭을 내려놓고 솔잎이 수북이 쌓여있는 곳에 잠시 누워서 다리쉼을 해 본다.

대퇴부의 경련이 사그러짐을 느끼고 나는 배장에서 사과를 꺼내어 잘 깍아 놓으니 송영래님은 배와 홍삼농축액을 나누워 주신다.

다리쉼이 거의 끝나갈 무렵 아막성터 쪽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리더니 이내 소리의 주인공인 이길숙님과 구지양님 그리고 손중호님이 781m봉에 오른다.

손중호님에게 남아있는 과일과 홍삼액기스를 권하고 조금 더 다리쉼을 한 후 西시리봉(765m)으로 향하는 산행로에는 소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자라고 있어 솔잎이 산행로에 쌓여 기분좋은 산행을 할 수 있다.

특히 781m봉에서 조금 지난 곳부터 수백미터 구간의 소나무숲은 잡목이나 기타 풀들은 하나도 찾아 볼 수없고 오직 소나무만 자라고 있어 다른 구간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모습을 하고 있다.

 

 

14시 56분 키 큰 소나무숲을 지나며

 

西시리봉헬기장(765m)에서 20여분 동안 기분좋은 솔향기를 맏으며 다리품을 파니 새맥이재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새맥이재를 수 백여미터 앞에 둔 구간의 소나무들은 지금까지 걸어온 구간에서 자라고 있는 소나무들과는 사뭇 달리 매우 큰 키를 자랑하고 있다.

 

 

14시 59분 새맥이재

 

새맥이재는 제법 큰 안부로 예전에는 통행량이 많았음을 짐작할 수 있을 정도의 넓은 옛길이 가로지르고 있으나 지금은 넓은 길과 안부에는 잡초와 잡목만이 무성하게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새맥이재에서는 과일을 나누며 모처럼 긴 다리쉼을 하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고 있으려니 뒤에 쳐저서 걸어오던 이길숙님과 구지양님이 도착하기에 신현숙님과 함께 잠시 포즈를 잡으라고 하고 카메라에 담아 본다.

요즘들어 한겨레의 영원한 모델인 이길숙님의 표정이 밝지않아 보인다.

 

"이길숙님 2차 대간종주도 두 구간만 더 걸으면 끝을 맺으니 조금만 힘내세요...화~이팅 *^^*"

 

 

 

 

15시 29분 697m봉 전의 무명봉에서

 

새맥이재에서 30여분 동안 기분좋게 걸음을 옮기니 88고속도로와 고남산(高南山 846.5m)이 어렴풋이 보이는 무명봉이 나온다.

그 무명봉에 서니 사치(모래재)로 이어지는 대간마루금에는 억새가 만발하고 좌측 아래로는 88고속도로와 지리산휴게소가 보이고 우측으로는 매요리마을 너머로 고남산과 고남산 중계탑이 연무에 쌓여 그 윤각만 어렴풋이 보여 사진에 담아보았지만 잘 나오지 않아 아쉬움만 남는다.

 

새맥이재에서는 손중호님과 송영래님을 비롯해 8명의 회원분둘이 함께 출발했는데 이곳에 오르니 다른 회원분들은 보이지 않고 송영래님과 나만이 697m봉으로 향하다가 조망이 좋은 바위가 있어 그 바위에 송영래님을 모시고 카메라에 담아 본다.

무명봉을 지나 억새가 무성하고 완만한 마루금을 걷고 있으려니 무명봉에서 막 내려서는 김일석님과 신현숙님의 모습이 보인다.

 

아래의 사진은 697m봉을 지척에 두고 88고속도로(八八 高速道路)와 지리산휴게소의 전경을 담은 사진이다.

88고속도로는 대구광역시 달성군 옥포면 본리리를 기점으로 하여 전라남도 담양군 무정면 반용리에 이르는 고속도로로 총길이는 175.3km에 달한다.
대구광역시 달성군, 경상북도 고령군, 경상남도 거창군·함양군, 전라북도 남원시·순창군, 전라남도 담양군 등 4개도 1개시 9개군을 경유하며, 대구광역시와 광주광역시 간을 203㎞의 최단거리로 연결한다.
88고속도로상에는 여러개의 휴게소가 있는데 그중 아래 보이는 휴게소가 지리산휴게소로 휴게소내에는 높이 33m의 준공기념탑이 하늘을 찌를 듯이 솟아있고 기념시설과 주차장, 매점건물이 보인다.
통행량이 많은 고속도로와는 달리 한적한 88고속도로를 반영하듯 이곳 지리산휴게소 내의 주차장에는 주차되어 있는 차들이 수십대 밖에 보이지 않는다.

 

 

 

15시 47분 697m봉

 

697m봉에서 다리쉼을 하며 뒤 따르는 회원님들을 기다리니 송영래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김일석님, 박영규님, 신현숙님이 차례로 697m봉을 오른다.

그리고 멀리 무명봉 조망바위에는 손중호님과 구지양님 그리고 이길숙님의 모습이 어렴풋이 보여 그들에게 소리치며 손짓을 하니 그 쪽에서도 똑같은 신호를 보내온다.

 

아래 사진은 화마가 두 번이나 휩쓸고 지나간 지리산휴게소 구간으로 697m봉을 중심으로 휘감으며 온통 불에 타거나 그을려서 앙상한 가지만 남은 소나무들이 흉물스럽게 남아있다.

사람들의 하찬은 부주위로 인해 울창하던 숲이 한순간에 없어져 버리는 산불은 정말 무서운 존재이다. 그 대표적인 예가 고성과 양양의 산불을 들 수 있을 것이다.

화마로 인해 한 번 파괴된 산과 생태계를 원 상태로 보전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래도 생태계 보전팀을 만들어 전방위적으로 다른 지역과 흡사하게 보전시키는데도 최소 20년 이상이 걸린단다.

인간들의 하찬은 실수가 이처럼 엄청난 시간과 비용을 허비하게 한다는 사실을 직시하고 산에드는 산행객들은 산행시 소지하지 말아야 할 화기는 필히 소지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16시 01분 사치(沙嶺 모래재 500m)

 

697m봉에서 화마의 무서운 흔적을 보며 마사토로 이루어진 가파른 비탈을 조심스럽게 내려서니 봉우리에서 4부능선쯤 되는 지점부터는 화마의 영향을 받지 않아 울창한 소나무숲이 그대로 남아있는 구간이 88고속도로까지 이어진다.

대간을 북진하는 대간꾼들은 사치(沙嶺)를 알리는 푯말이 있는 지점에서 88고속도로를 무단횡단하여 대간마루금을 이어나간다고들 한다. 그러나 우리처럼 남진하는 대간꾼들은 697m봉에서 대간시그널을 따르면 예전에는 농기계나 우마차 등을 이용해 농사를 짓던 농부들이 오갔을 것 같은 지하 통로를 만날 수 있다.

그 지하 통로를 이용하면 통행량이 적고 왕복 2차선 밖게 되지 않는 고속도로라고 위험을 무릅쓰고 무단횡단하는 행동을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반대로 북진하는 대간꾼들은 사치(沙嶺)를 알리는 푯말에서 지리산휴게소 방향으로 100여미터만 다리품을 더 팔면 안전한 지하통로를 이용 할 수 있다.

 

위 사진은 사치에서 손중호님과 이길숙님 그리고 구지양님을 기다리기 위해 다리쉼을 하며 기다리다가 도착 하자마자 푯말 옆에 모시고 기념촬영을 하려고 하니 힘들어하는 표정이 역력한 이길숙님의 모습이다.

 

 

16시 42분 유치삼거리(420m)

 

사치에서 유치삼거리로 향하는 산행로는 완만한 능선의 연속인 데 산행로 가장자리 곳곳에 북아메리카 동부지방의 습지나 모래땅에 자라는 "미국자리공"이 군락을 이루며 흰꽃은 모두 떨구고 결실의 계절에 맞춰 검붉은색의 열매를 주렁주렁 메달고 있다. 검붉은색의 열매는 포도주나 사탕, 옷감, 종이 등을 물들이는 데 쓰인다.

 

완만한 능선을 따라 걸으니 가산리의 뒷산에 해당하는 618m봉을 전 후로 잘 까구어 놓은 묘역을 몇개 지난다.

그 묘역을 보더니 김일석님이 하는 말 "돈을 많이드려 잘 가꾸워 놓긴 했지만 뼈대있는 집안은 아니구만...."이라 말을 하신다.

이유인 즉 대간의마루는 기(氣)가 모이지 않고 흘러가는 곳이라서 명당(明堂)자리하고는 거리가 멀다는 것이다.

 

풍수지리에서 후손에게 장차 좋은 일이 많이 생기게 된다는 묏자리나 집터, 길지(吉地)의 조건으로 여러가지가 전해지는 데 대간마루를 걷다보니 여러 곳에서 명당의 조건을 갖춘 곳을 볼 수 있다.

그중 대표적인 곳으로 백학산(白鶴山 615m)을 들수 있다. 백학산은 봉우리에서 흐르는 능선들이 주변 마을을 마치 학이 알을 품는 듯 한 형상을 하고 있다는 포란지세(包卵之勢)로 명당에 속하는 대표적인 곳이나 그런 곳에서도 묏자리를 잡을 때는 능선을 피해 학의 날개 안쪽에 해당하는  지점을 선택해야 한다.

 

 

 

16시 52분 매요리

 

유치삼거리에서 잘 포장된 도로와 임도를 10여분간 걸으면 매요리 마을에 대간시그널이 주렁주렁 메달려 있는 작은 나무와 큰 정자나무를 만날 수 있다. 바로 이지점이 오늘 산행의 종착역인 것이다.

 

매요리 마을에 도착하니 먼저 도착한 회원님들이 환영해 주며, 회원님들은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하는가 하면 하산주로 산행의 피로를 달래는 모습도 눈에 들어온다.

대간호는 매요마을의 중앙의 넓은 공터에 정박해 잇었으며 대간호 옆에는 사면의 벽체(壁體)를 통유리를 사용하여 사위(四圍0가 훤히 보이게 하고 지붕은 고풍스럽게 기와를 얹은 정자가 있다.

나는 먼저 정자옆에 있는 수돗가에서 알탕은 할 수 없었으나 윗옥을 벗고 산행에서 흘린 땀과 먼지를 깨끗이 씻은 후 정자를 지나는데 정자 안에서 10여명의 회원님들이 TV를 주목하고 있기에 무슨 프로그램을 시청하고 있는가 알아보니 다름아닌 프로야구 코리안씨리즈를 시청하고 있었다.

나는얼른 대간호로 들어가 세면도구를 배낭에 넣고 대간호 안에 설치되어 있는 TV를 주목하니 9회말 풀베이스 상황에서 삼성의 오승환투수가 투구를 하고 한화에서는 클리어가 타격을 하고 있었다.

한화의 팬인 나는 한화가 99년 우승을 차지하고 2006년 올해가 다시 한 번 우승을 할 수 있는 절호의 찬스라고 믿고 있었기에 한화가 이기기를 기원하며 TV를 주목하였으나 결과는 2번 타자 "클리어" 인필드 플라이 아웃, 3번 타자 "제이 데이비스" 헛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아~~ 삼성의 돈과 물량공세에 한화가 아쉽게도 고배를 마시는 순간이다.....ㅠㅠㅠ

 

 

17시 55분 후미그룹

 

위사진은 오늘 처음으로 대간을 따라나선 회원님이 다리가 불편하여 그 회원님에게 응급처치를 한후 산행하는 동안 내내 옆에서 힘을 불어넣어 주며 끝까지 함께 산행을 마친 최영장군님과 최현경님 그리고 똘이장군님과 이석춘님이 나 보다는 1시간, 선두보다는 3시간이나 지난 시간에 매요리에 도착하는 모습이다.

 

"네 분 모두 정말 수고하셨습니다....*^^*"

 

 

오늘 산행은 봉화산의 멋진 억새와 함께 한 즐거운 산행이었습니다.

다음 산행지인 성삼재에서도 모든 회원님들이 만나 즐거운 산행 함께 할 것을 기원합니다.

 

2006년 11월 4일

 

강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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