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 종주기

댓재~황장산~큰재~자암재~지각산(地角山).환선봉~덕항산~구부시령~푯대봉~건의령~피재.삼수령(백두대간 제8구간)

작은岳馬 2006. 5. 23. 10:25

 

댓재~황장산~큰재~자암재~지각산(地角山).환선봉~덕항산~구부시령~푯대봉~건의령~피재.삼수령(백두대간 제8구간)

 

산행일자 : 2006년 05월 20일 ~ 21일 (무박산행)

 

산행장소 : 댓재~황장산~큰재~지각산(地角山).환선봉~덕항산~푯대봉~피재(삼수령)

 

산행모임 : 대전한겨레산악회

 

산행날씨 : 맑음(바람은없고 높은기온)

 

산행거리 : 24km,   산행시간 : 10시간03분(실제산행시간 : 09시간 05분)

 

퇴근 후 저녁식사를 하고 3시간 정도의 여유가 있어 잠을 청해본다.

평소 같으면 침대에 누우면 10분안에 잠이 드는 나 인데, 오늘은 좀처럼 잠이 오지 않는다.

마치 초등학교 시절 소풍가기 전 날밤 아이가 잠을 못 자는 것처럼 잠이 오지 않는 것이다.

 

" 무박 산행이 이번이 처음도 아닌데..."

 

22시 부터 배낭을 꾸리고 있는 중에 친구가 집 앞에 와 있으니 빨리 내려 오라는 전화를 해서 조금만 기다리라 하고 배낭을 매고 체중계에 오르니 체중계의 눈금이 93kg이란 숫자를 가르킨다.

내 체중이 80kg이니 오늘 배낭의 무게는 13kg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대간 산행 중 배낭의 무게가 12kg을 넘는 때는 오늘이 처음인 듯싶다.

한겨울 산행에서도 배낭의 무게는 최고 12kg을 넘지는 않았었는데... 오늘 산행은 왠지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친다.

 

"배낭의 무게를 줄이려고 한 끼 식사는 빵으로 준비 한다며 우유 1,000ml를 넣은게 무게를 가중시켰나 보다..."

 

친구 내외와 용문네거리에서 30여분을 기다리니 대간호가 도착한다.

회장님을 비롯하여 여러분의 회원님들과 인사를 나누고 대간호에 승선하여 빈 자리를 찾아 자리에 앉았다.

오늘도 변함없이 대간호는 시민회관과 원두막을 경유하여 회원님들을 승선시키고 대전나들목을 24시경에야 진입해서 강원도 댓재를 향하여 힘찬 항해를 시작한다.

나는 대간호 안에서 잠을 청해보지만 잠자리가 편치 않아서 인지 좀처럼 잠을 못 이루는 사이 대간호는 어느덧 강원도에 진입하여 영월 근처 한 휴게소(휴게소 이름이 생각나지 않음...)에 정차한다.

다른 회원님들도 나와 같이 잠을 못 이루었는지 피곤한 기색으로 휴게소 이곳 저곳에서 그동안 굳었던 몸을 늘리느라 한창들이다.

잠시후 대간호는 다시 댓재를 향하여 항해를 시작했고, 무슨 이유에서 인지 대간호는 04시 50분에야 댓재에 다달았다.  알바???

 


 

04시 50분 댓재(竹峙,810m)

 

강원도 삼척시의 미로면과 하장면, 동해시와 정선군의 경계를 이루는 백두대간 상의 댓재(竹峙·810m)에는 새로이 세워진 로켓 모양의 조형물이 아직 어둠이 가시지 않은 곳에서 한 줄기의 불빛을 발하고 있다.

대간호가 댓재에 도착하기 전 회장님께서는 안전한 산행을 거듭 당부하시며 대간호에서 내리면 그대로 산에 들지 말고 10분정도의 준비운동을 최영장군님의 주도하에 갇는다고 말씀하시어 회원님들이 준비운동을 하는 동안 나는 댓재의 풍경들을 구석구석 돌아다니며 사진에 담았다.

먼저 새로이 세워진 조형물 우측에는 옛날의 댓재표시석이 세워져있다.

그리고 424번 지방도 맞은편에는 댓재에서 오를 수 있는 "두타산, 청옥산 등산 안내도"가 크게 자리 잡고 있다. 그 안내도를 지나 조금 더 안쪽으로는 오르면  산신각이 어둠속에서 움추리고 어둠이 물러가기만 기다리는 듯이 자리 하고 있다.

 

"어듬속에서 산신각의 모습은 을씨년스럽기 까지 하다..."

 

그리고 산신각 좌측 주차장 뒤로는 200여평 정도의 공터에 잔디가 잘 조성되어 있고 그 공터 잔디밭에는 열십자 모양으로 붉은 보도블럭이 수놓아져 있다.

그공터의 우측 끝에는 이동식 화장실이 설치되어 있다.

 


 


 


 


 

04시 59분 기념사진

 

10분여 가량의 준비운동 후 회원들을 새로이 세워진 댓재 조형물 앞에 모시고 기념사진을 찍어 보았지만 아직 새벽이라서 빛이 모자란 관계로 선명하지 않아 안타깝다...

 


 


 

05시 15분 황장산(  1,059m)

 

비온 후라서 그런지 때아닌 한기를 느끼며 행렬의 선두 뒤에서 산행을 시작한다.

 

"사실은 준비운동을 빼먹어서 느끼는 나 혼자만의 한기일 것이다..."

 

내가 요즘 선두에 서는 이유는 이전 산행기에서 발힌 바 있듯 산행 전반기에는 선두 그룹과 함께하며 선두의 모습을 사진에 담기 위함이다.

들머리부터 이어지던 키작은 산죽지대는 이상하게도 975.9m의 무면봉을 깃점으로 그 자취를 찾아 볼 수 없다. 그 산죽지대를 지나니 이번에는 가파른비탈 오름길에 너덜이 깔려 있어 힘이드는 가운데 숨이 차고 다리 근육의 조금씩 기분좋게 팽창함을 느끼며 이마에서는 땀이 한 두방울 맺히기 시작한다.

1,015m의 무명봉을 어느 정도를 오른 후 뒤돌아 보니 맞은편의 두타, 청옥의 장쾌한 능선이 나에게 자기들도 올라 달라고 손 짓을 하는 것 같다.

 

앞선 회원님의 배낭을 따라 가파른 오름을 오르다 잡목들이 늘어선 절벽지대에서 일출을 기대하고 동쪽을 보았으나 안개인지 가스인지는 모르지만 무박산행을 하는 산행객들의 특권인 일출을 가로막고 서서 좀처럼 피해줄 기미가 없다.

이곳부터 서서히 강원도 지형의 특징인 서고동저(西高東低)가 나타나고 있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가파른 오름을 힘들게 오른 후 오늘 산행의 첫 번째 봉우리인 황장산을 만났다.

황장산에 오른 회원님들은 다들 힘든 표정은 감추고 카메라를 꺼내어 황장산에 올랐다는 흔적을 남기기에 여념이 없다...

 


 투타,청옥산???

 


 

05시 17분 동쪽의 산들과 운해?

 

황장산에서 조금 내려서니 부 회장님께서 바다가 보인다 하여 그 곳을 바라보니 바다는 보이지 않고 평풍처럼 둘러쳐진 산들의 골짜기마다 운해가 낮게 깔여있는 모습이 정말로 바다로 착각할 정도로 아름답다.

 


 


 

05시 39분 무명봉에서 김의환님과

 

큰재에서 15분 정도를 걸어 05시 31분에 1,105무명봉울 지나 다시 조금더 걸으니 제법 힘든 오름이 나와 그 오름을 오르니 김의환님의 특유의 환한 웃음을 짓고 있다...

그 무명봉의 푯말에는 큰재 2,9km, 황장산 1,5km라고 씌어져 있다.

 


 


 

05시 55분 쥐오줌풀

 

김의환님을 뒤로 하고 10여분을 걸으니 큰재 1,9km, 황장산 2,5km라 씌어진 푯말을 지날 수 있었으며 그곳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풀숲에서 보라색의 꽃이 예쁘게 비어 있어 사진에 담았다.

 

쥐오줌풀[Valeriana fauriei]

 

마타리과(―科 Valerianaceae)에 속하는 다년생초.

키는 40~80㎝ 정도 자란다. 옆으로 뻗으며 자라는 뿌리줄기에서 쥐의 오줌과 같은 냄새가 나서 쥐오줌풀이라고 한다. 깃털처럼 5~7갈래로 갈라진 잎은 겹잎으로 마주나는데 잔잎가장자리에 톱니가 있다. 연분홍색의 꽃은 5~8월경 줄기끝에서 산방(房)꽃차례를 이루며 무리져 핀다. 꽃은 통꽃이지만 꽃부리[花冠]의 끝이 5갈래로 갈라져 있고 수술은 3개이다. 민들레의 열매처럼 털이 달리는 열매는 수과(瘦果)로 익는다. 습기가 조금 많은 그늘진 곳에서 흔히 자라며, 뿌리와 식물 전체를 가을에 캐서 그늘에 말린 길초근(吉草根)을 히스테리·신경통·간질의 치료에 쓰며 해열제·진통제로 사용한다.

 


 


 

06시 02분 홀아비꽃대

 

쥐오줌풀은 사진에 담느라 선두와 거리가 제법 벌어진 사실을 알고 걸음을 제촉하는데 이번에는 좌측(동쪽)으로 해가 부끄러운 듯이 살포시 얼굴을 비춘다.

그리고 땅에서는 그 햇빛을 받아 4개의 연두색 잎 가운데에 하얀색의 수술대를 내밀며 피어있는 홀아비꽃대가 바삐 지나는 내 발목을 잡고 놓아주지 않으려 한다...

 

홀아비꽃대[Chloranthus japonicus]

 

훌아비꽃대과(―科 Chloranthaceae)에 속하는 다년생초.

산지의 응달에서 자란다. 마디가 많은 뿌리줄기에서 줄기가 뻗어나오며 종종 덩이줄기를 형성한다. 키는 20~30cm로 줄기는 곧게 서며 자줏빛을 띤다. 줄기 밑부분에는 비늘 같은 잎이 달리며 윗부분에는 4개의 잎이 난다. 잎은 난형 또는 타원형으로 마주나지만 마디 사이가 짧아서 마치 돌려나는 것같이 보인다. 잎끝은 뾰족하며 가장자리에 날카로운 톱니가 있고 표면은 윤기가 나는 막질(膜質)이다. 꽃은 암술과 수술이 있는 양성화로 4월에 수상(穗狀)꽃차례를 이루며 핀다. 꽃차례의 길이는 2~3cm이고 꽃잎은 없다. 흰색의 수술대는 3개로 마치 꽃잎같이 보이며 밑부분이 합쳐져서 씨방에 붙어 있는데 좌우 양쪽의 수술대 2개에만 꽃밥이 달리고 가운데 수술대에는 꽃밥이 없다. 열매는 밑부분이 좁으며 지름이 약 3㎜이다. 홀아비꽃대는 한국을 비롯해 일본·중국에 분포한다. 한국에는 홀아비꽃대와 비슷하지만 전체적으로 크고 꽃차례가 2개인 꽃대(C. serratus)가 중부 이북의 숲속에, 상록아관목인 죽절초(C. glaber)가 제주도 남쪽 계곡에 야생한다. 뿌리는 이뇨제·통경제로 쓰인다.

 


 

06시 05분 무명봉(1,062m)

 

이 곳 1,062m무명봉으로 오르는 구간에는 안부를 하나 지나면서 잡목으로 이루어진 곳을 10여분 동안 허리를 굽히고 진행해야하는 어려움이 따르는 구간이다. 나 처럼 키가 큰 사람들은 그 어려움이 배가 되는 곳이다...

그래도 잡목구간을 통과하니 조망이 좋은 곳이 산행하는 곳곳에 위치하고 있어 동쪽의 아름다운 산들을 사진에 담을 수 있는 기쁨을 주는 구간이다.

내가 사진을 몇장 찍는동안 회장님을 비롯한 선두는 어느덧 내 시야에서 보이지 않는다.

나는 더욱 더 걸음을 제촉해서 큰재를 향해 걸음을 옮긴다.

 


 


 

06시 12분 큰재 전 1,062m무명봉을 지나며...

 


 


 

06시 19분 큰재     

 

급히 걸음을 옮긴결과 큰재에 다달아서 선두를 만날수 있었다.

큰재는 제법 넓은 안부로 이루어져 있으며 동쪽의 낮은 비탈에는 풀들이 무성하게 자라고있고 그 뒤 고갯마루에는 몇 십 그루의 전나무들이 방풍목 역활을 하는 듯이 자라고있다.

큰재를 알리는 푯말에는 황장산 4,4km, 댓재 5.0km라 씌어져 있다.

내가 큰재에 도착했을 때는 선두의 몇몇 회원님들은 이미 큰재를 벗어나 배추밭으로 향하는 임도로 들어서고 있어다.

나는 그래도 큰재에서 기념촬영은 해야 한다며 회원님들을 다시 큰재의 푯말에 모시고 기념촬영을 하려 하니 산악대장인 이용우님이 이번에는 자기가 촬영을 할 터이니 나보고 회원님들과 함께 서라 하여 오랜만에 내모습도 단체사진에 얼굴을 내미는 영광을 얻었다

 


 

06시 20분 배추밭으로 나 있는 임도를 따라 걷고있는 선두...

 


 

06시 20분 큰재의 서쪽으로 나 있는 숙암리 방향의 임도

 


 

06시 21분 큰재를 지나 배추밭이 시작되는 곳에서 바라본 1,062m 무명봉

 


 


 

06시 24분 배추밭이 시작되는 언덕에서 바라본 삼척시 쪽의 모습..

 


 

06시 28분 엽기적인 그녀 나무???

 

큰재에서 임도를 따라 오르다 산나물을 채취하는 사람을 만나 짧은 한마디의 인사를 나누고 돌아서니 대간길을 알리는 시그널이 보이지 않는다.

회원들 모두 이 지점이 알바하기 쉬운 구간이라며 시그널을 찾다가 한 회원님이 산나물을 채취하는 사람쪽의 언덕에 시그널이 보인다고 말을하는 중에 바로 앞서서 걷고있던 이용우님이 임도의 가장자리에서 낡아서 나뒹굴고 있는 시그널을 찾아내어 임도를 따라 곧장 오르면 된다는 결론을 내린다.

임도를 따라 오르다 한 봉우리를 넘어서니 고냉지 배추밭이 그 위용을 들어내는 가운데 아직은 배추는 없는 빈 배추밭에 영화 "엽기적인 그녀"에 나오는 나무와 매우 닮은 나무가 내 눈을 사로잡는다. "엽기적인 그녀의 나무는 소나무 였다..."

 

한편 1,000m가 넘는 백두대간의 한봉우리를 그것도 조망이 좋은 곳을 이렇게 민둥산으로 만들어 놓을 수 있다니 정말 통탄할 일이 아닐 수없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관동댐 수몰지역에서 이주해온 이주민들에게 다른 생계 수단을 마련해 준다는 정부의 정책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배추밭의 이곳 저곳에는 엄지 손가락 만한 나무가 자라고 있다는 사실에 조금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어 본다.

 

배추밭을 가로 지르는 임도를 따라 걸어오고 있는 선두의 모습이 노란 나도냉이꽃(아직 이름은 모름)을 배경으로 한가로운 풍경을 연출한다.

 


 


 


 

06시 34분 나도냉이??? 위 꽃 이름 좀 알려주세요...*^^*

 

나도냉이[winter cress]

 

십자화과(十字花科 Brassicaceae)에 속하며 약 12종(種)으로 이루어진 나도냉이속(Barbarea)의 잡초성 풀.

북반구 온대지역이 원산지이다.

초여름에 꽃이 피는 바르바레아 불가리스(Barbarea vulgaris)는 꽃대가 80㎝까지 자라고, 여기에 작고 갈라진 잎이 잎자루없이 달린다. 밝은 노란색의 작은 꽃은 가지를 친 꽃자루에 무리져 핀다. 열매는 폭이 좁은 긴 삭과(果)로 씨가 많이 들어 있다. 바르바레아 베르나(B. verna)는 바르바레아 불가리스보다 2배 정도 큰 4~8쌍으로 갈라진 잎이 줄기 아랫부분에 달린다.

우리나라에는 2년생초인 나도냉이(B. orthoceras)가 냇가나 그밖의 물이 많은 곳에서 자라고 있으며 어린순은 나물로 먹기도 한다.
 


 


 

06시 36분~57분 아침식사 1,058.6m봉우리(배추밭)

 

큰재에서 10여분동안 임도를 따라 1,058.6m의 봉우리에 오르니, 배추밭의 한 가운데에 우뚝 솟아있는 봉우리 정수리에는 아주 커다란 물탱크가 눈길을 끈다.

나는 그 모습이 사뭇 신기해서 가까이 다다가 유심히 관찰하는데 물탱크 넘어로는 두 명의 회원님이 산악대장인 이용우님을 앞서서 가고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한겨레의 산행원칙 중 하나는 산악대장을 앞서가지 마라...입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이용우님이 채치를 발휘하여 이 곳이 근방에서는 조망이 제일 좋고 식사하기도 좋은 장소이니 아침을 먹고 가자고 앞선 두명의 회원님들을 물러 세운다.

그래서 우리는 물탱크 가장자리에 콘크리트로 단을 많들어 놓은 곳에 아침을 먹기위해 자리를 잡고 맛있는 아침 식사를 별 다섯게짜리 호텔의 시탁이나, 아름다운 해변 썬셋거리의 식탁보다 훨씬 더 아름다운 강원도의 산들을 굽어보며 아침을 먹기 시작했다.

 

나는 아침은 가볍게 먹는다는 생각에 빵과 우유를 내놓고 먹으려 하니 강희산님이 그래도 빵으로 아침을 먹으면 되냐고 하시며 맛있는 쑥떡을 하나 주셔서 맛있는 아침식사를 할 수 있었다.

아침을 먹는 20분동안 광천에서 온 회원님들을 시작으로 다른 회원님들도 잇달아 이 곳으로 집결하는 진 풍경이 연출되고 있었다.

그러던 중에 뒤 늦게 도착한 이길숙님이 배추밭에 밀을 심어 놓은 사이사이로 간간히 자라고 있는 더덕을 발견하고는 "더덕이다"라고 외치며 더덕을 캐내려 하는 해프닝이 연출되기도 했다.

이길숙님의 행동을 지켜보시던 다른 회원님이 농사짓는 것이니 손대지 말라고 저지하여 그 해프닝은 한바탕 웃음으로 막을 내렸다...

 


 


 

07시 08분 큰앵초

 

20여분간 식사를 하고 다시 대간길을 나서는데 이번에는 대간길의 마루금을 찾지 못하여 몇 분동안을 알바 아닌 알바를 하는 일이 생겼다.

이곳은 배추밭이 산봉우리 몇개를 차지하며 드넓게 펼쳐저 있어 마루금을 찾기가 어려운 구간으로 잘 알려진 곳이며, 자칫 알바하기 쉬운 구간이기도 하다.

물탱크를 깃점으로 동쪽으로 나있는 능선을 따라 마을을 멀리하며 좌측으로 휘돌아 진행하면 실수가 없을 것이다.

배추밭이 다하는 부분에서 대간길은 다시 나무가 많은 산으로 들어가고 있는 작은 비탈의 풀숲에는 보라빛이 선명하고 아주 예쁜 꽃이 피어 있어 그 꽃을 보는 사람마다 한 마디씩 감탄사를 자아냈다.

사진에 담을 때는 그 이름을 몰랐는데 나중에 검색해 보니 "큰앵초"라는 이름을 가진 꽃이다.

 

큰앵초 Primula jesoana

 

앵초과에 속하며 우리나라 전국의 산지에 고루 분포한다.

꽃은 5월~6월에 피며, 7월~8월에 그 결실을 맺는다.

용도는 관상용과 식용으로 널리 알려저 있다.
깊은 산의 그늘진 곳이나 물가에서 자라는 여러해살이풀이다. 전체에 짧은 털이 나 있고 꽃자루는 곧게 서며 높이가 30~40센티미터 정도다. 잎은 뿌리에서 나고 긴 잎자루를 가지며 콩팥 모양의 둥근꼴이고 손 모양으로 앏게 나뉘어져 있다. 꽃은 줄기 끝에 2~3단으로 층을 이루어 각층에 대여섯 송이씩 둘러나고 빛깔은 붉은 자주색이다. 꽃부리는 깔대기 모양이고 5개의 수술은 꽃의 통부 속에 숨어 있다. 어린순은 나물로 이용하고 화분이나 물가에 심어 관상용으로 쓴다. 산의 정상에서 햇빛을 피하면서 피어있는 이 큰앵초는 연약하면서도 강인한 생명력을 지닌 야생화이다.

 


 

07시 21분 광동댐 이주민들의 고랭지 배추밭

 

큰앵초를 뒤로하고 10여분을 걸어 작은 봉우리를 넘으니 관동댐에서 이주해온 이주민들이 모여서 형성된 마을이 고냉지 배추밭 아래에 고즈넉히 자리하고 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텅빈 들녘을 지나는 바람이 땅속에서 들썩이며 때를 기다리고 있는 싹들을 자극하여 금방이라도 이곳 전체가 푸른 고냉지 배추로 뒤 덮힐 것만 같은 풍경이다.

 


 

07시 34분 자암재

 

분위기 좋은 이주민들의 마을을 뒤로하고 숲길로 진입해 가랑잎이 푹신하게 깔여있고 군데군데 엷은 연분홍색의 철쭉이 산행길 가장자리로 늘어선 완만한 오름길을 지나 참나무 군락지를 편안하게 마루금을 따르며 발걸음을 재촉하여 걸어 1,036m무명봉을 넘어서니 자암재가 나온다.

자암재의 푯말에는 헬기장 0.9km, 환선굴 1.7km, 약수터0.5km, 댓재 8.5km라 씌어져 있다.

이곳이 바로 환선봉과 환선굴로 통하는 분기점인 것인데 환선굴 방향의 나무에 메달려 있는 많은 시그널을 보고 무심코 알바하기 쉬운 구간이다...

 

07시 47분 헬기장

 

제법 가파랐던 산행길의 계속되는 오르내림이 잠시 평탄해지고 완만하게 이어지는 마루금은 넓직한 공터의 모습을 보여주는 길을 10여분 걸으니 우측으로 지각산(地角山).환선봉 0.7km, 장암재 0.9km라 씌어져있는 푯말이 서 있어, 낙옆송지대를 통과하면 지각산(地角山).환선봉으로 오를 수 있다고 안내하고 있다.

 

"이곳에 서 있는 푯말엔 자암재를 장암재로 잘못 표기하고 있다. 또한 자암재의 옛 푯말에도 역시 장암재로 잘못 표기되어 있었다."

 


 


 

07시 47분 벌깨덩굴

 

헬기장에 작은 안부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데 새벽에 대간호안에서 떡을 나누어 주었던 회원님이 이번에는 앞에 있는 오름을 오르려면 힘을 내야 한다며 비타민재를 나누어 주셔서 다들 먹는 모습이 우수워서 사진에 담고 주위를 둘러본다.

우측으로 4~5m떨어진 곳에 있는 한 참나무의 밑둥 바로위에는 통나무를 잘라서 만든 이정표가 눈에 들어온다.

그 이정표에는 "태백시하사미리 분기점에서 3.5km, 남은거리 3.0km, 소요시간 1시간 50분이라 씌어져 있다.

아마도 이 이정표는 태백시에서 환선굴로 가는 등산로를 안내해주는 이정표인 것이다.

이정표를 뒤로하고 돌아서는 내눈에 새벽에 황장산을 오를 때에 처음 눈에 들어와 이곳까지 오는 산행길 내내 군데군데 자라고 있던 보라색의 참깨를 닮은 꽃이 군락을 이루며 자라고 있는 모습이 내 눈에 들어온다.

산행이 끝날 때까지 이름을 몰랐는데 이 꽃의 이름은 "벌깨덩굴"이다

 

벌깨덩굴[Meehania urticifolia]

 

꿀풀과(―科 Lamiaceae)에 속하는 다년생초.

네모난 줄기가 옆으로 뻗으며 마디에서 새로운 뿌리가 내린다. 잎은 삼각형의 심장형 또는 난형으로 마주나고 잎 밑이 움푹 들어가며, 잎가장자리에는 둔한 톱니들이 있다. 잎자루는 있으나 위로 갈수록 짧아진다. 꽃은 5월에 잎겨드랑이와 줄기 끝에서 꽃자루가 나와 한쪽을 향해 4송이씩 달리는데 연한 자줏빛을 띠는 통꽃으로 꽃부리 끝이 크게 두 갈래로 나누어지고, 갈라진 아래쪽에는 자색 점들과 흰 털들이 있다. 주로 산지의 응달에서 자라며, 어린순은 먹을 수 있다.

 


 


 


 

07시 52분 비타민재를 먹으며 5분간의 휴식 후 낙엽송군락지를 오르고 있는 선두...

 


 

07시 57분 선괭이눈이

 

선두 회장님의 뒤를 따라 낙엽송이 군락을 이루고 있는 가파른 오름을 5분여 오르니 실눈을 뜨고 나를 지그시 주시하는 꽃들이 있어 그 모습을 자세히 살피니 아직은 꽃이 활짝 피지는 않았지만 "괭이눈이"였다.

책이나 다른 이의 블로그에서는 여러 번 보았지만 이렇게 산행중에 괭이눈이를 직접 보다니 나는 흥분해서 어쩔줄 몰랐다.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워 열심히 사진에 담고 있으니 나를 지나쳐 가시던 한 회원(떡을 주신 회원님)님이 "이 꽃이 천남성이라는 것을 아시죠"라고 한 마디의 말을 던지시고 지나가신다.

그래서 몇 미터 떨어진 그 꽃이 있는 곳으로 가니 참 신시하게 생긴꽃이 마치 우산을 바치고 있는 신사를 연상하게 한다.

나는 10여분 동안을 그 꽃들에 푹 빠저있었다.

 

선괭이눈이

 

이 꽃이 괭이눈으로 물이 톡톡 튀는 곳에서 많이 자라기 때문에 깨끗한 모습으로 발견되어 다른 꽃들보다 깨끗하다는 인상을 많이 받게 된다. 꽃이 필 즈음이면 가운데 부분이 노랗게 변하는데 어디까지가 꽃이고 어디까지가 잎인지 구분이 안 간다.

"아직 꽃이피지 않은게 안타깝다..."

열매가 맺히면 햇살에 지긋이 감긴 고양이의 눈 같은 모양이 나타나서 붙여진 이름이며, 숲으로 부서져 들어오는 햇빛을 받으면 마치 순금을 바위에 발라놓은 듯 노란빛이 유난히 빛나 보인다. 우리나라 야생화들은 하나같이 정말 예쁘다는 말 밖에는 표현할 수 없다.

이런 아름답고 소중한 것들을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이고 기쁨이다. 그러나, 일부 사람들은 이런 소중한 자산을 자기만 볼 생각으로 무단으로 굴취·채취하여 자기 집 정원에 심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어 앞으로는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수 있는 우리 야생화를 외국에서 수입하여 식물원등에서만 볼수 있는 현실이 올 것이다.

이런 현실을 막기 위해서라도 이제부터라도 우리의 귀중한 소중한 산림자원을 잘 보전하고 가꾸어 우리 후손들에게 물러줘야 할 것이다.

 


 


 

07시 59분 넓은잎천남성

 

넓은잎천남성과 괭이눈이 꽃이 한 프래임에 들어오는 신기한 사진이다...

 

넓은잎천남성

 

천남성과(天南星科 Araceae)에 속하는 다년생초.

산지의 습한 그늘에서 자라며 뿌리는 납작한 구슬줄기이고 그 위에 얇은 인편(鱗片)이 줄기를 감싼다. 줄기는 녹색으로 때로 자주색 반점이 나타나며, 키가 15~30㎝이고 1개의 잎이 달린다. 잎자루는 2개로 갈라지는데 잎 겨드랑이에 11개의 잔잎이 달린다. 피침형의 잔잎은 끝과 밑이 뾰족하고, 가장자리에는 톱니가 있거나 밋밋하다. 꽃은 5~7월경 암꽃과 수꽃이 다른 나무에 육수(肉穗)꽃차례를 이루며 피는데 꽃차례의 끝은 뭉뚝하다. 포(苞)는 통부(筒部)의 길이가 80㎝ 정도로 녹색이고 윗부분은 모자처럼 앞으로 꼬부라져 통부가 비를 맞지 않게 하고 있다. 열매는 적색으로 익는다.

 


 


 

08시 00분 피나물(노랑매미꽃)

 

괭이눈이와 넓은잎천남성을 감상하고 몇 걸음을 환선봉을 향하여 걸으니 이번에는 연두색의 잎들 사이에서 노랑색이 너무나도 선명하게 빛을 발하고 있는 꽃이있어 자세히 보니 양지꽃은 아니고 그렇다고 뱀딸기꽃은 더욱 아닌 꽃이 꽃잎안에 아주 아름다운 수술을 감추고 방긋 웃고 있다.

그이름은 나중에 알아낸 것이지만 "피나물(노랑매미꽃)"이다.

 

피나물[Hylomecon vernale]

 

노랑매미꽃, 여름매미 꽃이라고도 함.
양귀비과(楊貴妃科 Papaveraceae)에 속하는 다년생초.

중부지방의 산지나 북부지방의 산간지역 그늘진 습한 곳에서 잘 자란다. 옆으로 기는 굵은 뿌리줄기를 가져 영양번식으로 무리를 지어 집단을 형성하며 뿌리는 길고 가늘다. 뿌리줄기에서 길이가 30~50㎝인 줄기와 잎이 나온다. 노란색의 꽃은 4월말에서 5월초에 걸쳐 원줄기 끝의 잎겨드랑이에서 1~3개씩 핀다. 꽃받침잎 2장, 꽃잎 4장이 십자형으로 배열된다. 암술은 1개이지만 암술머리는 2개로 나누어져 있고, 수술은 매우 많다. 여름이 되면 잎과 줄기는 없어지고 열매를 맺는데 열매는 무 열매처럼 긴 삭과(果)이다.

피나물속(―屬 Hylomecon)에는 한국을 중심으로 일본·중국·만주 등지에 분포하는 3~4종(種)의 동북아시아 특산식물이 있지만 학자에 따라 이들을 애기똥풀속(Chelidonium)에 포함시키기도 한다. 피나물과와 비슷한 종류로는 1935년 일본학자 나가이에 의해 한국 특산으로 설정된 매미꽃(H. hylomeconoides)이 있는데 이것은 외형적으로 꽃대가 따로 올라와 있다. 최근 꽃가루의 형태 연구결과로 매미꽃은 피나물속이며 애기똥풀속과는 다른 식물임이 입증되었다. 연한 줄기와 잎을 꺾으면 피[血]와 비슷한 적황색의 유액이 나와 피나물이란 이름이 붙게 되었다. 식물체 전체에 약한 독성이 있지만 어린 것은 삶아서 나물로 먹고, 한방에서는 뿌리를 하청화근(荷靑花根)이라 하여 외상을 입은 부위에 붙이거나 환약으로 만들어 복용하여 신경통·관절염 등을 치료한다. 꽃 모양이 아름다워 이른봄 정원의 화초로 좋으며 번식은 포기나누기로 한다.

 


 

08시 00분 현호색

 

오! 마이 갓... 이번에는 현호색이다!...ㅎㅎㅎ

현호색은 몇포기 눈에 뛰었지만 그 꽃잎이 시들지 않은 꽃은 이꽃이 유일하다.

 

현호색[Corydalis turtschaminovii]

 

현호색과(玄胡索科 Fumariaceae)에 속하는 다년생초.

한국 전역의 산과 들에서 자란다. 키는 20cm 정도로 땅속에 지름이 1cm 정도인 덩이줄기를 형성하고 여기에서 여린 줄기가 나와 곧게 서며 자란다. 기부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하나의 큰 인편(鱗片)이 있고, 여기에서 가지가 갈라진다. 잎은 어긋나는데 1~2회 갈라지고 뒷면은 흰색을 띠며 잎자루가 길다. 4~5월에 연한 홍자색의 꽃이 총상(總狀)꽃차례를 이루며 피고 꽃부리[花冠]의 길이는 약 25㎜이다. 꽃잎은 입술꽃잎[脣瓣]으로 기부에 거(距)가 있다. 암술은 1개, 수술은 6개이다. 열매는 길이 2cm, 너비 3cm 정도로서 선형의 삭과(果)로 익으며 양끝이 좁고 뾰족하다. 씨는 둥글고 광택이 있다. 현호색속(玄胡索屬 Corydalis)에 속하는 식물은 매우 다양하여 전세계에 걸쳐 300여 종(種)이 있고, 한국에는 현호색·빗살현호색(C.var. pectinata)·댓잎현호색(C. var. linearis) 등의 덩이줄기를 갖는 종들과 산괴불주머니(C. speciosa)·염주괴불주머니(C. heterocarpa) 등의 곧은 뿌리를 갖는 종(種)들을 포함해 21종 1변종 5품종이 자생한다. 덩이줄기에는 코리 달린(corydaline)·푸마린(fumarine) 등이 함유되어 있어 정혈제·진통제·진경제로 사용한다.

 


 

관동지역에서 이주해온 마을을 지나며 보았던 큰앵초가 군락을 이루며 자라고 있어 그 중에 한 꽃을 골라 보았다.

 

큰앵초Primula jesoana MIQ.


앵초과 (Primulaceae)
深山地域의 숲속 또는 냇가의 濕地에서 자라는 多年草로서 전체에 잔털이 있고 根莖이 짧게 옆으로 벋으며 원줄기가 없다. 잎은 圓腎形 또는 腎臟狀 心臟形이고 길이 4~18cm, 나비 6~18cm로서 짧은 털이 있으며 가장자리가 7~9개로 얕게 갈라지고 齒牙狀의 톱니가 있으며 葉柄은 길이 30cm이다.
꽃은 통꽃이고 7~8월에 피며 지름 1.5~2.5cm로서 紅紫色이고 잎 사이에서 엽병의 2배 정도되는 花莖이 나와 그 끝에 1~4층의 꽃이 달리며 각 층에 5~6개의 꽃이 달리고 小花梗은 길이 1~2cm이며 花序 윗부분에 線狀의 짧은 털이 있다. 꽃받침은 筒形이고 5개로 깊게 갈라지며 花筒은 길이 12~14mm이고 수술은 5개로 화통보다 짧다.
蒴果는 길이 7~12mm이며 卵狀 긴
楕圓形으로서 남아 있는 꽃받침잎보다 길다.  

 


 

08시 02분 아름다운 꽃 들에 취해 가파른 오름을 어떻게 올랐는지 생각이 나지 않는 지각산(地角山).화선봉을 오르는 고갯마루 아래의 큰 참나무...

 


 


 

08시 07분 지각산(地角山).환선봉(幻仙奉1,080m)

 

숨이 턱에차도록 힘들게 지각산(地角山).환선봉에 오르니 이영훈님이 사모님과 함께 표시석 뒤쪽의 전방대로 보이는 곳에서 막 돌아서고 있어 "그 곳에서는 환선굴 계곡이 보입니까"라고 물으니 나무와 낙옆에 가려 잘 보이지않는다 하여 나는 전망대로 향하던 걸음을 표시석으로 돌리며 이영훈님에게 사지을 찍을테니 표시석 옆에 서보라 권하고 사진을 찍었다.

이영훈님은 내 사진도 찍어주는 배려를 잊지않으셨다.

나는 이곳 지각산(地角山).환선봉에 오르는 구간까지도 선두와 함께 했으나 그 구간에 아름다운 꽃들에 취해있는 동안 선두를 놓치고 심지어는 이영훈님에게 까지도 추월 당했기에 지금 선두와 함께하지 못하고 있는것이다.

지각산(地角山).환선봉에는 1m가량의 표시석이 세워져 있으며 그 표시석 앞에는 헬기장 0.7km, 덕항산 1.4km, 골말까지 3.4km, 환선굴까지 3.3km라 씌어져 있는 푯말이 세워져 있다.

 

여기서 덕항산 까지는 1,4km이므로 선두가 덕항산에서 10여분간의 휴식을 갖는다면 덕항산에서 선두와 합류할 수 있다는 생각에 나는 지각산(地角山).환선봉에서는 휴식을 취하지 않고 덕항산을 향하여 발길을 옮긴다.

 


 


 

08시 10분 환선굴 계곡(신기면)

 

선두를 따라잡는다는 급한 마음으로 걸음을 옮긴지 몇분 되지않아 나는 걸음을 멈출 수 밖에 없었다.

그 이유는 환선굴 계곡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조망지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조망지에서는 우리나라 관동지방(강원도)의 특징을 한눈에 볼 수 있다.

환선굴계곡의 골짜기로 나 있는 길을 보고 있으려니 마치 용이 꿈틀거리며 금방이라도 하늘로 승천 할 기세다.

 

첫 번째 특징은 우리나라 관동지방(강원도)을 영서와 영동으로 구분 짓는 중요한 지형으로 특이한 것은 이 구간이 바로 그 유명한 동급서완(東急西緩)지형의 시작이란 점이다. 즉 동쪽사면은 엄청 급하고 낭떠러지인 반면에 서쪽사면은 반대로 완만하고 부드럽다. 해서 동으로는 오줌도 누지 말라고 하는데 그 이유는 오줌이 곧바로 바다로 흐른다는 이야기가 있다.

 

두 번째 특징은 영동영서의 시작(환선굴의 덕항산)이 있다.
태백시를 끼고 태백산~함백산~금대봉~매봉산을 시계방향으로 돌아 나와 피재에서 또 시계방향으로 낙동정맥을 남쪽으로 이어주고, 백두대간은 이제 태백시를 벗어나면서 북으로 진행, 삼척시에서 동해시로 이어간다.

태백은 이렇듯 백두대간과 낙동정맥이 완전히 원형으로 감싸 도는 분지에 위치한 도시며,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도시로 옛 탄광도시의 르네상스 시대를 이루며 30여년간을 발전하다 쇠퇴한 후 그 명목을 이어가기 위해 관광도시로의 탈바꿈하고져 몸부림치고 있는 중이다.

 

세 번째 특징은  바람이 서쪽에서 불어오다가 동쪽의 급한 사면을 거치며 약해진다. 즉 푄현상이 일어나는 지역이다.
경기도보다 영서는 3도정도 더 추우나, 영동은 영서보다도 5도 정도 따뜻하다.
영동은 겨울에 특히 눈이 많다. 영동영서는 같은 강원도이나 문화와 관습과 자원과 산업이 다르며 그것은 백두대간에 막혀 상호간 문화적 교류가 힘들고 동해바다의 영향도 있다. 이 영동영서를 이어주는 것이 바로 고개이며 그 고개들로는 댓재, 백봉령, 삽당령, 닭목령, 대관령, 한계령, 미시령, 진부령 등이 속한다.

 


 

08시 10분 고랭지 배추밭을 바라보며

 

지각산(地角山).환선봉 정상에서 조금 내려선 곳에서 환선굴 쪽을 바라본 풍광이다. 

왼쪽능선 위쪽으로 관동댐 이주단지 배추밭이 갈색으로 보인다.

그 곳에서 볼때는 느끼지 못 했지만 이곳에서 바라보니 그 높히에 앞도 당함과 동시에 그런 곳에서 고냉지 배추가 자란다니 참 신기할 따름이다...

 


 

08시 17분 안부

 

지각산(地角山).환선봉에서 "절벽주의"라 씌어진 푯말을 좌측에두고 한참을 걸으니 작은 안부가 나타난다.

그 곳에은 좌로 휘돌아 덕항쪽으로 향하기 위해 봉우리 하나를 더 넘어야하는구간인데, 그휘도는 깃점의 좌측에 산괴불주머니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지난 석기봉 산행때는 바람이 거세게 부는 바람에 제대로 사진에 담지 못했었는데, 이번에는 산괴불주머니의 모습을 심여를 기울여 담아본다.

 

산괴불주머니[Corydalis speciosa]

 

현호색과(玄胡索科 Fumariaceae)에 속하는 2년생초.

키는 50㎝ 정도로, 줄기 속은 비어 있고 뿌리는 밑으로 곧게 뻗는다. 잎은 어긋나며 깃털처럼 갈라져 있다. 꽃은 이른 봄부터 이른 여름에 걸쳐 노랗게 줄기 끝에 무리져 피는데, 꽃이 벌어진 반대쪽에 거(距)가 달린다. 열매는 크기가 2~3㎝쯤 되는 삭과(果)로 콩꼬투리처럼 움푹 패어 있으며 씨는 검정색이다.

 


 


 

08시 33분 골말갈림길

 

지각산(地角山).환선봉에서 30여분을 걸어 골말갈림길에 다달았다. 골말갈림길은 쉼터로 잘 알려저 있으며 이곳에서 골망 까지는 1.9km남았다고 푯말에 씌어져 있다.

내가 이곳에서 배낭을 벗어놓고 물을 마시며 잠시휴식을 취한뒤 다시 배낭을 매고 일어서려는데 지각산(地角山).환선봉쪽에서 누가 내려오는 소리가 들여 돌아보니 논산에서 오신분이었다.

나는 서둘러서 덕항산을 향하여 발걸음을 옮겼다.

덕항산으로 오르는 길은 제법 가파르기는 했지만 그리 힘들지는 않았으며 산행로는 산행객들이 많이 왕래하는 곳 이라서인지 잘 가꾸어져있다. 그러나 자연과 어울리지 않는 철재를 사용하여 철재계단을 만들어 놓은 것은 아쉬운 점이다.

 


 


 

08시 39분 노랑무늬붓꽃

 

덕항산 고갯마루가 희미하게 보이는 곳에서 나는 붓꽃을 발견했다.

붓꽃은 중화지구를 산행하는 동안 많이 봐왔고 사진 자료도 풍부하여 무심코 지나치다가 내눈에 언뜻 하얀색의 잎에 노랑무뉘가 있는게 보였다.

가까이 다가가 자세히 살피니 노랑무늬가 선명한 "노랑무늬붓꽃"이었다.

노랑무뉘붓꽃에 대한 자료나 사진이 없어서 나는 그 모습을 사진에 정성스럽게 담고 덕항산으로 향했다.

 

노랑무늬붓꽃

 

붓꽃과(lirs odaseanensis Y.LEE)의 꽃으로 여러해 살이풀이며 희귀한 식물이다.

속명은 "연미,조선연미"이며 우리나라 중부지방의 깊은 산 위쪽 풀밭에서만 자란다.

5월~6월에 개화하며 흰색 바탕에 노랑무늬가있는게 틍징이며 7월에 열매를 맺는다.

주로 관상용이나, 그 뿌리나 줄기,잎은 약용으로 많이 쓰인다.

 


 

08시 42분 덕항산(德項山1,071m)

 

오늘의 주봉인 덕항산에 나홀로 올랐다.

덕항산은 하사미와 삼척시 신기면과의 경계에 솟아있는 산으로 해발 1,071m이다. 옛날엔 덕메기산으로 불렀는데 한자로 표기하면서 덕항산이 되었다. 옛날 삼척사람들이 이 산 목재를 넘어오면 펀펀한 땅 "덕"이 많아 화전(火田)을 많이 하였기에 "덕메기산"이라 하였다. "德"이란 산중턱 이상의 편편한 땅을 이르는 말이기도 하다. 덕항산은 산 전체가 석회암으로 되어있고 산아래 삼척쪽에 유명한 환선동굴(幻仙洞窟)이 있으며 그밖에도 여러 군데의 석회동굴이 있는 산이다.

덕항산 정상의 모습을 사진에 담으려하니 특이한 것은 없고 산불 감시탑만 덩그런히 보인다. 잠시 후 논산에서 오신분이 정상에 오르는 것을 보고 나는 배낭을 매고 먼저 간다는 인사를 하고 길을 나선다.

덕항산에서 부터 시작된 완만한 내림길을 잠시 내려서자 200평 가량의 안부로 조성된 새목이재에서 산행길은 꼬불꼬불 돌아나가고 갈림길이 나온다 갈림길에서 나는 시그널을 확인하고 우측길로 들어선다.

리본이 거의 없는 중화지구 산행과 비교할 때 많은 리본으로 산행길을 찾는데 편안함을 느끼며 1,007m봉과 완만한 오르막을 거쳐서 기구한 전설의 주인공인 구부시령 돌탑을 만나게 된다...

 


 

09시 02분 구부시령(九夫侍嶺)

 

구부시령은 하사미의 외나무골에서 삼척시 도계읍 한내리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지금은 사람이 다니지 않지만 예전에는 제법 큰 고갯길이었다.

옛날 고개 동쪽 한내리 땅에 기구한 팔자를 타고난 여인이 살았는데 서방만 얻으면 죽고 또 죽고 하여 무려 아홉 서방을 모셨다고 한다. 그래서 아홉 남편을 모시고 산 여인의 전설에서 구부(九夫:아홉 남편) 시(侍:모시다, 섬기다) 령(嶺:고개)이라 하였다고 한다.

가슴아픈 사연을 뒤로하고 조금 걸으니 2m가 넘는 철쭉군락지가 10여분이나 이어진다.

그 철쭉군락지를 벗어나니 제법넓고 평평한 습지가 나온다.

 


 

09시 08분 예수원갈림길

 

이곳은 참나무와 작은 풀들로 이루어진 습지같은 느낌을 주며 푯말에는 한의령 6.5km, 구부시령 0.3km라 씌어져 있고 그 푯말에서 뒷쪽으로 10여미터 떨어진 곳에는 에수원이란 푯말이 세워져있다.

이 방향으로 가면 하사미와 외나무골 사이에 있는 예수원으로 갈 수 있는 길이다.

강원도 태백시 삼수동 7 산골짜기에는 ‘예수원’이라는 성령 공동체가 있다.

예수원의 책임자는 파란 눈에 하얀 머리칼의 현재인(85·미국명 제인 토레이) 사모이다.

 


 

09시 10분 고사목

 

예수원 푯말을 지나며 완만하게 진행하던 산행길은 다시 그 표정을 바꿔 가파른 오름을 만들고 있는 중간에 커다란 나무가 쓰러져있는 모습이 힘들게 오름을 오르는 산행객들에게 잠시 숨을 고르며 생각에 잠기게 하는 모습이다.

이나무에서부터 1,055m무명봉 까지는 가파른 오름이 갈지(之)자로 이어진다...

 


 

09시 14분~10시 12분 무명봉(1,055m)

 

나는 1,055m무명봉에 오른 후 선두와 합류하는 것을 사실상 포기했다.

덕항산에서 선두와 합류하지 못하고 이곳에서도 합류하지 못한 것은 많은 거리가 떨어지게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옛 말에 "넘어짐 김에 쉬어가라"고 나는 이곳을 오르는 회원들의 모습을 차례로 사진에 담으며 후미그룹과 앞으로 남은 산행을 함께할 생각이다.

조금 휴식을 취하니 논산에서 오신 남자분이 지나가시고 이어서 이영훈님이 지나가시며 인사를 한다.

그 후 20여분간은 아무도 오지않고 1,055m봉에는 나의 숨소리와 멀리서 간간히 들려오는 뻐꾸기 울음소리 만이 들려오는 정적이 흐른다. 나는 심심하여 뻐꾸기와 의사소통을 시도해 보지만 뻐꾸기에게서 대답은 오는데 그 의미는 알 수가 없다.

20여분이 지난 09시41분에 광천에서 오신분들이 정상에 오른다. 그 분들은 정상에서 잠시 머물며 간식과 물을 마시고 곧 출발하신다.

다시 나 혼자만의 시간이 20여분이 지난 10시부터는 김일석님을 비롯한 여러 회원님들이 속속 이곳을 지나 가시고 그 중 이길숙님이 정상을 향하여 가파른 오름을 오를때가 이곳에서 내가 1시간가량 머무는동안 가장 활기찬 순간이다.

마지막으로 10시 12분에 힘내자님을 사진에 담고 나는 배낭을 매고 길을 나선다.

 


 

09시 41분 광천에서 오신분들...

 


 

10시 00분 한겨레의 어르신들...

 


 

10시 04분 한겨레의 꽃 봉오리분들...

 


 

10시 10분 오늘의 스마일상 논산의 "덜렁이님"

 


 

10시 10분 두장군님들은 두건이 멋져요.*^^*

 


 


 

10시 12분 언제나 변함없이 한겨레산행의 마지막을 책임지시는 힘내자님 화이팅! 입니다.*^^*

 


 


 

10시 35분 무명봉(997.4m)를 지나며..

 

잡목숲에 철쭉이 곳곳에 아름답게 피어있다.

무명봉(997.4m)에 오르니 여러 회원님들이 생과일을 꺼내놓고 간식을 먹고 있다.

나역시 배낭의 무개도 줄일겸 해서 참외 두 개를 꺼내놓고 4듬붕으로 잘라서 토마토와 함께 맛있게 나누워 먹었다.

집에서 배낭을 꾸릴때는 참외를 3개 넣었는데 덕한산을 지나 홀로 산행하는 1시간가량의 구간에서 갈증과 배속의 공허함을 달래려고 길을 걸으며 하나는 먹었기 때문에 두개만 남은 것이다.

 


 


 

11시 22분 961m봉 전 안부

 

높은 봉우리를 여러개 넘고나서 1.016m봉 다음 봉우리를 넘어서니 급내림이 10여분간 이어진다.

지금까지는 이처럼 급내림을 없었기에 급한 비탈을 조심조심 내려오느라 긴장하고 팽창한 다리근육을 이완시키며 휴식을 취하고 있는 지양씨와 영미씨뒤로 양말을 벗고 아침부터 아니 몇일 전 부터 말썽을 부리는 발을 마사지 하고 있는 친구의 모습이 을 보니 웃음이 나오려고 한다. "석춘아 힘내라..!"

안부를 지나 951m봉으로 가는 산행길은 제법 넓고 잘 조성된 길이 이어진다.

그중 선두에 서서 회원님들을 이끄는 익산 만보기 아저씨의 힘찬 걸음이 보기 좋다...

 


 


 

11시 27분 961m봉으로 오르는 중턱

 

이 푯말 있기 전부터는 힘든 오름의 연속이다.

특히 이 푯말을 깃점으로 산행길은 급하게 우측으로 꺽기면서 급한 오름이 정상까지 이어진다. 무심코 지나치다가는 알바하기 쉬운 지점이다.

 


 

11시 47분 961m무명봉

 

숨이 턱에 차도록 힘든 오름을 오르고나니 정상에는 지양씨를 비롯해서 여러 회원들이 앉아서 숨을 고르고 있고 그 맞은편의 작은 공터에서는 손중호님을 비롯해 김일석님,송곡님,부회장님등 여러 회원님들이 점심상을 차리고 있다.

지양씨에게 왜 식사 준비를 하지 않하냐고 물으니 최영장군님이 건의령에서 점심을 먹는다며 먼저 출발했다는 대답이다.

그 말을 듣고 나는 생각할 여의도 없이 앉아소 숨을 고르고 있는 분들을 제촉하여 건의령을 향하여 길을 나선다.

이를 보고있던 친구와 지양씨도 주삣주삣 따라나선다.

그중에 만보기 아저씨도 함께하신다...

 


 

11시 54분 지나온 산들을 바라보며...

 


 


 

12시 10분  푯대봉(1,009.9m)

 

961m봉에서 점심준비를 하시는 회원님들을 뒤로하고 20여분간 완만한 능선길을 걷다가 푯대봉 삼거리봉에 오르기 위해 잠시 힘든 오름을 오른 결과 푯대봉 삼거리봉에 오를 수 있었다.

푯대봉 삼거리에서는 푯대봉을 경유하는지 아니면 건의령을 향하여 직진 하는지를 놓고 고심하는 친구를 나는 이 곳까지 와서 그냥 지나치면 나중에 후회하게 된다고 친구를 대리고 푯대봉에 오른다.

푯대봉이라 하여 나는 푯대봉이란 푯말이라도 있을줄 알았는데 푯대봉에는 잡목과 잡풀이 무성하게 잘아 있어서 봉우리의 정수리를 파악하기고 힘든 정도다. 한참을 서성인 후에야 정수리를 표시하는 삼각점을 발견 할 수있다.

가장 눈에 들어오는 특징은 삼각점 옆에 20m정도의 철탑을 세우고 그 철탑의 꼭대기에 360도 회전이 가능한 무인 카메라를 설치해 놓은 것이다.

강원도 특징인 높은 산이 많아서 산불이 발생했을시 접근하는데 시간이 많이 소요되는 것을 감안하여 산불을 초기에 발견하고 진화하려는 산림청의 노력일 것이다.

그러나 푯대봉은 내가 기대한 결과를 남기지 못 했다.

다시 푯대봉삼거리에 도착하니 그 푯말에는 한의령 1.1km, 구부시령 5.7km, 푯대봉 0.1km라 씌어져 있다.

한의령(건의령)까지는 앝으로 20분은 더 걸어야 한다는 결론이다.

배낭을 다시매고 건의령을 향해 걸음을 옮기니 완만하고 가랑잎이 깔여서 푹신푹신한 산행길이 10여분 동안 계속해서 이어진다.

한참을 걸으니 최영장군님과 똘이장군이 건의령이 어렴푸시 보이는 내림이 시작되기 전에서 자리르 잡고 우리 일행을 기다리고 있다.

 


 

12시 27분~55분까지 점심식사

 

어렴푸시 건이령이 내려다 보이는 곳 에서 우리는 각자가 준비해온 밥과 반찬을 꺼내놓고 점심식사를 한다.

오늘 주 메뉴는 물론 밥이지만 햄버거(김치버거란다...)도 눈에 들어오고 여러 가지의 떡이 한상 가득히 차려진다.

나는 아침에 빵과 우유를 먹었기에 점심에는 밥을 내놓았다. 하지만 다음 산행부터는 아침에는 밥을 먹는게 났겠다고 생각이든다.

맛있는 식사가 끝나갈 무렵 최영장군님이 식수를 채크하신다. 왜냐하면 오늘 무박산행에다가 날씨가 더운 탓에 식수가 모자라면 최영장군님의 트래이드마크인 궁중차를 끓일 수 없기 때문이다.

 

"아쉽게도 궁중차는 마시지 못 했다."

 

식사가 거의 끝날무렵 지나가시던 송곡님께서 곡차를 한 병 건내주시며 가는 바람에 궁중차를 대신해서 곡차로 아쉬움울 달랠 수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힘내자님이 창백한 얼굴을 하시며 다가오신다.

지양씨가 어쩐 일이지 물으니 음식이 언친것 같다고 하시며 지양씨가 건내준 시원한 물을 마시면서도 불편한 표정이다.

이를 보고있던 최영장군님이 힘내자님을 엎드리시라 하고는 응급처치를 해 주신다.

20여분간에 걸처 점심식사를 하고 다시 건의령을 향하여 길을 나선다.

 

"오늘 산행 중 힘든 물과의 전쟁이 시작되는 시점이다..."

 


 

13시 00분 금강소나무(金剛松)군락지

 

이 곳까지 오는 산행길에는 곳곳에 금강송(황장송)이 눈에 들어온다.

하지만 황장산에는 그 이름에 걸 맞지 않게 금강송은 거의 없었고 산행길의 중간중간에 있는 금강송들은 한곳에 4~5그루를 넘지 않았다. 물론 그 수령은 최소 50년이상 아니 100년은 더 되보이는 나무가 주종이었지만...

건의령이 보이는 이곳에는 금강송이 군락지를 이루며 잘 자라고 있다.

 

금강소나무(金剛松)

 

태백산맥줄기를 타고 금강산에서 울진, 봉화를 거쳐 영덕, 청송 일부에 걸쳐 자라는 소나무는 우리 주위의 꼬불꼬불한 일반 소나무와는 달리 줄기가 곧바르고 마디가 길고 껍질이 유별나게 붉다. 이 소나무는 금강산의 이름을 따서 금강소나무(金剛松) 혹은 줄여서 강송이라고 학자들은 이름을 붙였다. 흔히 춘양목(春陽木)이라고 더 널리 알려진 바로 그 나무다. 결이 곱고 단단하며 켠 뒤에도 크게 굽거나 트지 않고 잘 썩지도 않아 예로부터 소나무 중에서 최고의 나무로 쳤다.
소나무는 자라면서 여러 가지 화학물질이 쌓여서 나무의 속이 진한 황갈색을 나타낸다. 이 부분을 옛 사람들은 황장(黃腸)이라 하였으며 가장자리의 백변(白邊)에 비하여 잘 썩지 않고 단단하기까지 하다. 황장이 넓고 백변이 좁은 금강소나무는 나무 중의 나무로서 왕실에 널리 쓰였다.
세종 2년(1420) 예조에서 '천자의 곽(槨)은 반드시 황장으로 만드는데 견고하고 오래되어도 썩지 않으나, 백변은 내습성이 없어 속히 썩는데 있습니다. 대행 왕대비의 재궁(梓宮)은 백변을 버리고 황장을 서로 이어서만들게 하소서'하는 내용이 있다. 조선왕조 내내 좋은 소나무 보호를 위하여 황장금표(黃腸禁標)를 세우고 경국대전에 좋은 소나무의 벌채를 법으로 금하는 등 여러 조치를 취하였다.
세월이 지나면서 금강소나무는 차츰 고갈되어 멀리 태백산맥의 오지까지 가서 벌채를 하여 한강을 이용, 서울로 운반하였다. 한강 수계(水系)로의 운반이 불가능한 울진.봉화지역의 소나무는 그래도 생명을 부지하여 가장최근까지 남아 있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 영주-봉화-태백으로 이어지는 산업철도가 놓이면서 이들도 무차별 벌채되기 시작한다. 조선시대에는 권세 있는 양반이 아니면 지을 수도 없었던 소나무 집을 너도나도 짓기 시작하자 급격한 수요가 생긴 것이다. 이렇게 잘려 나온 금강소나무는 춘양역에 모아두기만 하면 철마(鐵馬)라는 괴물이 하룻밤 사이 서울까지 옮겨다 주었다. 사람들은 춘양역에서 온 소나무란 뜻으로 춘양목이라 부르기 시작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모진 수탈에도 그나마 남아있는 곳은 울진군 서면 소광리 일대, 봉화군 춘양면과 소천면 일대이다. 이곳은1981년 유전자 보호림, 1985년 천연보호림으로 지정하여 보호되고 있다.
소나무와 금강소나무는 별개의 나무인가? 그렇게 말하기는 어렵다. 소나무라는 성씨를 가진 종가 집의 자손에는 반송, 금강소나무, 황금소나무등 할아버지나 아버지와 모양새가 같지 않은 몇 종류가 있다. 그렇다고 다른 성바지로 볼만큼 전혀 닮지 않는 것도 아니다. 애매하게 '씨'를 의심받기도 하나 틀림없는 한 자손이므로 이럴 때 우리는 품종(品種)이라고 한다.
금강소나무는 한마디로 조상인 일반 소나무보다 더 잘생긴 소나무의 한품종이다.
일본의 국보 제1호인 반가사유상은 대부분의 일본 목불(木佛)이 녹나무로 만들어진 것과는 달리 재질이 소나무이다. 일부 학자들은 바로 강원도에서 자란 금강소나무를 가져가서 만들었다는 주장을 편다. 그러나 만들어진 불상을 분석하여 나무의 생산지가 한반도인지 일본인지를 아는 방법은 없다.

 


 


 

13시 02분 건의령(巾衣嶺    m), 한의령(寒衣嶺)

 

금강송 군락지를 지나 건의령에 내려선다.

오늘 산행중 가장 많은 인원이 건의령에 모였으니 단체사진을 찍어야함은 두말하면 잔소리에 속한다.

 

"오늘 산행내내 힘든산행을 하시는 힘내자님 그리고 현경씨 힘내세요...*^^*"

 

건의령(巾衣嶺)은 상사미에서 삼척시 도계읍으로 넘어가는 고갯길이다.

현재는 고갯마루로 비포장 도로가 나서 점리와 늪구리로 이어지고 있으며 고갯마루에는 백인교군자당(百人敎君子堂)이란 현판이 걸린 성황당이 있다 하는데 확인하지는 못했다.

예전에는 삼척에서 정선지방으로 통하는 큰길이었으며 그 기록은 동국여지승람(東國與地勝覽), 대동지지(大東地志), 척주지(陟州誌)등에 기록되어 있고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 삼척부지도(三陟府地圖) 등 고지도(古地圖)에 표시되어 있는 이름난 고개이다.

 

고려말 때 삼척으로 유배온 공양왕이 근덕 궁촌에서 살해되자 고려의 망국유신(亡國遺臣)들은 이 고개를 넘으면서 고갯마루에 관모와 관복을 벗어 걸어 놓고 다시는 벼슬길에 나서지 않고 불사이군(不事二君)하겠다고 하며 고개를 넘어 태백산중으로 몸을 숨겼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유서 깊은 고개이다.

그래서 관모와 관복을 벗어 걸었다고 하여 관모(冠帽)를 뜻하는 건(巾)과 관복(官服)을 뜻하는 의(衣)를 합쳐 건의령(巾衣嶺)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13시 09분 푯대봉과 그옆으로 이어지는 능선... 우측의 봉우리가 푯대봉임.

 


 

13시 10분 작은암릉지대를 지나며...

 

건의령에서 96.3m봉으로 오르는 길에는 작은 암릉구간이 있고, 완만한 오름에 폭이 1m되는 산행길 가장자리에는 애기 머리통만한 돌들이 가지런히 산행길을 따라 놓여져 있어, 산행하는 이들이 대간길을 걷는게 아니라 마치 동네 뒷산의 산책로를 걷는 착각에 빠지게 한다.

완만한 오름을 기분좋게 오르다 조망이 좋은 바위위에 서니 상사미동과 가덕산(1,078.2m) 그리고 우측으로 하사미동이 한눈에 들어온다.

가덕산과 하사미동을 지나면 태백시가 나온다.

좋은 풍광에 잠시 시선을 빼앗겼다가 기분좋게 960.3m봉을 넘어선다...

 


 

13시 14분 공터(풀밭)

 

잔디가 잘 자라있는 공터에는 좌우로 우마차 길이 이어진다.

그곳을 걸어가고 있는 지양씨의 모습이 참 인상적이다.

취나물을 채취한다고 검은 비닐봉지를 허리에 채우고 한손에는 취나물을 들고 씩씩하게 걸어가고 있는 모습을 보고 똘이장군이 하는말 "와 완전히 장군감이네 장군..! 장군님? 얼른 한장 찍어요..."  지양씨의 뒷 모습만 사진에 담기가 쑥스러워 한겨레의 꽃들을 사진에 함께 담는다...

이곳에서 낮은 봉우리를 하나 넘어서니 새목이안부가 나온다.

새목이안부에서는 송곡님이 지도를 펴놓고 시간을 계산하고 있다. 송곡니의 왈 "이곳이 새목이안부가 맞는다면 앞으로 2시간이면 피재에 도찰할 수 있다..."

그 말에 힘을 얻어 다리에 힘을 주며 944.9m봉을 향한다.

작은 봉우리를 몇개넘고 제법 가파르고 긴 오름을 오르는 열심히 오르느데 이번에는 식수가 우리의 발목을 잡는다. 오늘 날씨가 더운탓도 있지만 무박산행이라는 악재가 더해 갈증이 다른때보다 심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식수를 최대한 아껴마시며 산행을 계속한다.

 


 

14시 07분 944.9m무명봉

 

갈증에 시달리며 944.9m봉에 오르니 색다른 푯말이 눈에 들어온다.

그 푯말에는 345KV울테송전선로25호, 경사도20도, 5분소요, 0.2km라 씌어져 있고 기둥에는 전기고장시 신고할 수 있는 전화번호까지 자세히 씌어져 있다.

아마도 좌측에서 계속 우리를 다라다니는 송전탑 25호의 위치를 안내해주는 푯말인 듯싶다.

 

"대간길의 푯말에도 이처럼 상세히 적어 놓으면 얼마나 좋을까..."

 


 

14시 31분 951m무명봉

 

상사미동에서 피재로 이어지는 포장도로가 좌측으로 보이는 봉우리에 오른다.

그 포장도로를 바라보고 있으려니 피재가 바로 발 아래에 와 있다는 착각이든다.

그 때에 우리의 마음을 읽었는지 대간호의 고동소리가 멀리서 어서오라고 소리친다.

반가운 대간호의 소리도 잠시 우리는 끝이 보일듯 하며 계속해서 이어지는 봉우리들을 30여분에 걸처 물과의 전쟁을 치루며 걸어야만 했다.

심지어는 앞에있는 봉우리들을 깍아버리라는 농담이나오고, 이봉우리를 넘어서 또 봉우리를 넘어야 하면 더이상은 못 간다는 말까지 나오기도 했다.

 

"지금 이순간 나에게 필요한 것은 시원한 물~ 물! 뿐이다..."

 


 

14시 53분 노루메기들머리

 

노루메기 들머리에 다다르니 다리에 힘이 가해지며 금줄처럼 늘여져있는 줄에 다닥다닥 붙어잇는 시그널들이 이렇게 반가울 수가...

이곳은 비탈길에 석축을 쌓으려는지 바위들이 노루메기 들머리에 가득 쌓여있다.

그리고 그옆으로는 트럭이 세워져있다.

가로수가 줄지어 야쪽 가장자리로 서있는 임도를 힘차게 걷고있는 회원님들의 뒷 모습이 멋있어 보인다.

 


 


 


 

가로수 사이에 매발톱꽃이 발톱을 감추고 살포시 웃고 있다.

이 꽃은 석기봉 나물 산행때 한 시골집에 툇마루앞 뜨락에 피어 있었는데 그때는 이름을 몰라서 애태웠던 꽃이다.

 

매발톱꽃[columbine]
 
 
 

 
미나리아재비과(―科 Ranunculaceae) 매발톱꽃속(―屬 Aquilegia)에 속하는 70여 종(種)의 다년생초.

유럽과 북아메리카가 원산지이다. 매혹적인 꽃을 보기 위해 몇몇 순종과 많은 잡종들을 심고 있다. 매발톱꽃속 식물의 꽃은 5장의 꽃잎으로 이루어졌는데, 주머니처럼 생긴 거(距)가 꽃잎 뒤로 길게 나와 있다. 꽃받침잎과 꽃잎은 화려한 색깔을 띤다. 잎은 잔잎으로 된 겹잎으로, 잔잎들은 가장자리가 둥글고 V자로 갈라졌다.

아퀼레기아 불가리스(A. vulgaris)는 키가 45~75㎝에 이르며, 길가나 숲의 가장자리에서 자란다. 북아메리카에서는 아퀼레기아 불가리스와 이의 몇 가지 잡종들을 널리 심고 있는데, 이들은 안으로 굽은 짧은 거를 가진 꽃들이 고개숙이고 달리는 것으로 유명하다. 로키 산맥이 원산지인 아퀼레기아 카이룰레아(A. caerulea)와 아퀼레기아 키산타(A. chysantha)를 교잡하여 흰색·노란색·붉은색·푸른색 등 여러 가지 색깔과 긴 거를 가지는 화려한 꽃의 원예 잡종들이 많이 만들어졌다. 북아메리카산 아퀼레기아 카나덴시스(A. canadensis)는 캐나다 남부지방에서 자라며 숲이나 바위턱에 서식한다. 키는 30~90㎝ 정도이고 꽃은 노란빛이 도는 빨간색이다.

한국에는 2종의 매발톱꽃속 식물이 자라고 있는데, 매발톱꽃(A. buergeriana var. oxysepala)은 햇빛이 잘 드는 계곡에서 흔히 자라며, 하늘매발톱(A. flabellata var. pumila)은 북한 낭림산 이북의 높은 산에서만 자라고 있다. 매발톱꽃은 갈색빛이 도는 자주색 꽃이 피는데, 때때로 연한 노란색 꽃이 피는 노랑매발톱꽃도 볼 수 있다.

 


 

14시 58분 노루메기날머리

 

이 임도를 따라 곧장 내려서면 피재인줄 알았는데 갑자기 우측으로 시그널이보이며 오솔길이 이어진다.

그 오솔길로 들어서니 폭이 1~2m되는 완만한 오름이 5분여 이어지다 피재가 나온다.

피재에 도착하자 이길숙님은 제일먼저 시그널을 매다는 것을 잊지 않으신다.

 


 


 


 


 


 

15시 03분 피재,삼수령(三水嶺915m)

 

피재는 황지 2동과 적각동 경계에 있는 높은 고개로 천의봉 동북편에 있다. 해발 915m 정도 되는데 35번 국도가 지나가며 포장이 되어 있다. 옛날부터 황지지역이 「이상향」이라 하여 시절이 어수선하면 삼척 지방 사람들이 난리를 피해 이 고개를 넘어 왔기에 피난(避亂) 온 고개라는 뜻이며 피해오는 고개라는 뜻이다. 또한 피재를 피산장등(彼山長嶝, 一云彼嵬長嶝)이라고도 하는데 피안(彼岸 : 이상향, 고통이 없는 理想境)으로 가는 큰 산등이란 뜻이다. 직치(稷峙)라고도 하는데 이것은 피재를 한자표기로 하는 과정에서 피직(稷)자를 쓴 것이다. 70여년 전 봇짐장수와 등짐장수(褓負商)들이 세운 산령각(山靈閣)이 있었으나 지금은 없어졌다.

 

피재(915m)는 "산자분수령"(山自分水嶺)을 증명이라도 하듯 하늘에서 내린 빗물이 한강, 낙동강, 오십천으로 나뉘는 곳이라 하여 '"삼수령"(三水嶺)이라 부른다. 즉, 낙동강과 한강, 오십천의 물길을 가르고 있으니 이러한 현상은 우리나라에서 유일하다. 피재를 기준으로 북쪽으로는 한강이, 남쪽으로는 낙동강이, 동쪽으로는 오십천의 물길이 되어 이 땅의 곳곳을 적셔준다.

그러나 우리가 한가지 집고 넘어갈 것이있다.

낙동강의 물길은 매봉산과 피재 사이에 있는 대간마루에서 그 시발점을 찾을 수 있다. 그 물줄기는 작은피재로 연결되어 난동정맥과 낙동강을 이룬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부근을 하나로 뭉처 삼수령이라 칭하는 데는 큰 무리가 가지는 않을 수도 있다.

다음 산행때 이 구간을 지나니 그 사실을 꼭 확안할 필요가 있다...
한편 이 부근은 산골 중의 산골로 아무리 둘러보아도 쌀 한톨 심을 평지라곤 찾아보기 어렵다. 해서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사람이 살 만한 땅이 못 된다”고 기록된 땅이다.

 

피재에는 삼강(낙동강,한강,오십천)이 발원하는 삼수령"임을 알리는 안내판이 있고 무엇보다도 남한땅 백두대간에서 정맥이 최초로 분기되는 기점으로 낙동정맥이 갈라져 부산 몰운대까지 장장 359km가 이어진다. 또한, 덕항산 들머리로 들어서면 넓따란 주차장이 있고, 삼수정이란 육각정자와 "빗물의 운명"이란 내용을 새겨둔 조형탑이 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하늘이 열리고,

우주가 재편된 아득한 옛날 옥황상제의 命으로

빗물 한가족이 大地로 내려와
아름답고 행복하게 살겠노라고 굳게 약속을 하고

하늘에서 내려오고 있었다.


이 빗물 한가족은 한반도의 등마루인

이곳 三水嶺으로 내려오면서
아빠는 낙동강으로,

엄마는 한강으로,

아들은 오십천강으로 헤어지는 운명이 되었다.

 

한반도 그 어느 곳에 내려도 행복했으리라
이곳에서 헤어져 바다에 가서나 만날 수밖에 없는
빗물가족의 기구한 운명을 이곳 三水嶺만이 전해주고 있다

 


 


 


 


 

이것으로 오늘산행을 마치며 많은 생각을해본다.

그중에 제일 중요한 것은 산행에서 식수가 떨어지면 않된다는 사실이다.

그 사실을 오늘 절실히 느꼈다.

 

마지막으로 피재를 관리하는 관할관청은 피재를 관광지로 개발함에 있어 이곳을 찾는 산행객들이 불편하지않게 편의시설부터 갖추어 놓아야 할 것이다.

그중에 제일은 식수대와 화장실을 잊지 말아야한다.

 

오늘 더운날씨에 잠까지 설처가며 산행하신 회원님들... 함께산행하여 정말 즐거웠습니다.

다음산행에서 웃으면서 인사 나누겠습니다.*^^*

 

2006년 05월 25일

 

강일구

 

*오류나 다른의견이 있으시면 댓글을 남기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