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 종주기

밤티재~문장대~문수봉~천황봉~형제봉~갈령 (백두대간 20구간)

작은岳馬 2006. 4. 4. 17:45


 

밤티재~문장대~문수봉~천황봉~형제봉~갈령 (백두대간 20구간)

 

산행일자 : 2006년 04월 02일

 

산행장소 : 밤티재~문장대~문수봉~천황봉~형제봉~갈령

 

산행모임 : 대전한겨레산악회

 

산행날씨 : 비,흐림(안개비)

 

새벽 03시에 눈을 뜨자마자 창밖으로 향했다.

잠들기 전 내 희망은 내리는 비소리와 함께 사라져 버리는 순간이다.

베낭을 챙겨 집을 나선 시간은 04시 20분 막 현관문을 나서는데 친구 한테서 전화가 왔다.

비도오고 해서 나를 자기차로 픽업한다는 전화였다.

친구와 용문 네거리에 도착하니 최돈민씨가 먼저와 기다리며 우리를 반갑게 맞아 주었다.

이 십여분후 회장님으로 부터 대간호가 늦으니 비를 피할수 있는 데서 조금 기다리라는 전화와 동시에 야속한 빗줄기는 거세지기 시작했다.

약속 시간보다 30여분 늦은 대간호는 시민회관,원두막을 경유해 옥천 인터체인지를 지나 속리산으로 길을 제촉한지 2시간여만인 07시 12분에 밤티재에 도착했다.

 

밤티재는 다른재와는 사뭇 다른 부분이 눈에 들어왔다.

교통의 발달과 사람이 편해지기 위해 대간을 끈어놓은 곳에 야생동물 이나마 자유로이 왕래 할수 있게 작은 다리를 설치해 놓은 모습이 보기 좋았다.

또한 작은 나무를 옮겨심고 지지대로 대나무를 사용했는데, 바람이 그 곳을 통과 하면서 휘파람 소리와 매우 흡사한 소리가 바람의 세기에 따라 높고 낮은 소리를 번가라 내며 아름다운 음악을 많들어 내고 있었다.

 




 

07시 14분 밤티재

 

회원들은 일제히 대간호에서 내려 베낭을 메고 운동화끈도 고쳐메며 들머리를 찾아 산그림자 속으로 사라지는 가운데 비는 여전히 부슬부슬 내려 산행객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했다. 그래도 2주만에 대간을 찾은 기분은 상쾌했다.

 


 


 

07시 31분 묘

 

들머리에서 완만한 오름을 15분오르니 작은 봉우리에 오를수 있었다.

그 곳에는 묘가 있었으며 멋있는 바위가 오르는 이들을 호휘하 듯 늘어서 있는 보습이 보기 좋아 포토라인을 만들고 한사람 한사람씩 사진에 담아 보았다.

십 여명을 사진에 담고 돌아서 걸음을 옮기니 제법 경사진 오름이 연속으로 이어지고 있어 보기만 해도 숨이 차는게 느껴졌다.

그래도 마음속으로는 문장대에 올라 꿈속에서나 볼 듯한 운하를 볼수도 있다는 생각에 걸음은 가볍기만 했다. "기상청에서는 오전중으로 날씨가 좋아진다고 했다."

 


 


 


 

08시 14분 가파른 오름을 40여분 오르니 멋있는 바위가 나타나 그 곳에 올라 보았으나 시계는 10m도 되지않아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안개만이 하얗게 깔려 마치 구름속에 있는 착각을 느끼게 하였다. 날씨가 맑은 날이면 문장대,천황봉을 비롯해 동양의 알프스라는 이름에 걸맞게 아름다운 봉우리들을 조망할수 있었을 텐데...

내 가슴속에서는 서서히 불길한 무엇인가가 고개를 들고 있었다.

 

"오전 중으로 날씨가 화창해 지지 않으면 어쩌나?"

 


 


 

08시 30분 아기자기한 암릉을 조금 지나니 일명 "개구멍"이 나타났고 이어서 몸을 눕히거나 베낭을 벗어야 통과할수 있는 암벽틈길이 산행객들을 즐겁게 해 주었다.

처음에는 그 암벽 틈으로 난 구멍을 바라보고 난처해 하는 표정들이 역역했다.

맑은 날에도 통과하기 힘든데 오늘같이 안개비가 내려 바위는 비에 젖어있고 바닦은 진흙으로 깔려 있을때는 처음에는 누구나 그 구멍으로 몸을 넣기가 힘든 상황 이었다.

그래도 회원들은 차례차례 줄을 서서 열심히 "개구멍"을 통과했다...

어떤 암벽틈은 거꾸로 통과 해야만 하는 "개구멍"도 있었다.

 


 


 

08시 34분 암릉과 암벽틈 개구멍등을 여러군데 통과해 큰 바위로 이루어진 봉우리에 오르니 안개사이로 큰 바위가 우뚝솟은 보습이 산행객들을 굽어보며 여기까지 오르느라 수고했으니 잠시 쉬어 가라고 말을 걸어 오는 듯 했다.

그 바위 이름이 궁금하여 송곡님에게 물었더니 입석 바위라 했다.

그 큰 바위는 이름에 걸맞게 우뚝서서 안개속을 방황하며 산행하는 이들의 길잡이가 되어 마치 망망 대해의 등대처럼 산행로를 밝게 비추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08시 53분 암릉구간

 

뒤로 들어가 앞으로 나오는 제미있는 바위틈을 통과하니 이번에는 바위가 양쪽으로 병풍처럼 쳐저있고 앞으로는 3~4미터 깊이는 족히되는 골짜기가 10미터나 이어지고있어 휘험하기 그지없는 구간 이었다.

업친데 덥친다고 했던가 그 구간을 힘들게 통과하면 바위틈을 비집고 통과해 다리를 최대한 벌려야만 오를수 있는 암벽이 기다리고 있었고, 그 틈을 통과하면 5~6m되는 두개의 암벽틈에 로프가 있어 그 로프를 이용해 암벽을 오를는 강도 높은 유격훈련 장이 있었다.

앞선자와 뒤따르는자의 거리는 10여미터에 불과했으나 위험 구간에 안개가 시야를 가로막고 있어 산행객들은 그 곳에서 줄지어 서서 앞 사람이 위험 구간을 벗어난 후에야 진입을 하는 진풍경이 벌어지고 있었다.

나는 사진을 찍는다는 명목아래 먼저 통과하는 특혜를 받아 사진찍기 좋은곳에 자리잡고 유격장의 조교처럼 잔소리를 하며 여러 표정들을 사진에 담았다.

위험 하면서도 제미있는 그 구간의 사진은 송곡님으로 시작해 똘이장군으로 끝이났다.

 


 


 


 


 


 


 

09시 00분 전망바위

 

한 시간여 가량의 암능 구간을 지나 전망이 좋은(안개비로 인해 10여미터 앞도 보이지 않지만) 바위에 올라 정상에라도 오른 듯 환호하는 최영장군님! 멋져요~*^^*

 


 


 

09시 25분 첫 번째 헬기장

 

속리산을 향해 완만한 오름과 위험한 암릉길 그리고 재미있는 개구멍등 각양각색의 구간을 두 시간 남짓 오르니 첫 번째 헬기장이 나타 났고 그 곳에서는 여러 회원님들이 간식을 나누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나 역시 맛있는 과일과 떡을 얻어먹고 물 한 모금을 마신 후 베낭과 등산화를 점검하고  문장대를 향해 발길을 옮기는데, 안개비는 두 시간 전보다 심해지고 바람까지 강하게 불어 내 마음을 씁쓸하게 했다.

"하늘이시어 저를 어여삐 여기시어 안개비를 거두어 주소서..."

 


 

09시 30분 문장대(1,054m)

 

그렇게 고대하고 2주일 전부터 내마음을 설레게 했던 문장대다...

 

문장대(1054m)는 상주시 화북면 장암리에 위치한 바위로 이루어진 제단같은 곳이었다.

법주사에서 동쪽으로 약 6km 지정에 위치한 정상의 암석은 100여명이 들어차도 될 수 있는 넓은 곳 이었으며, 이곳 어딘가의 바위틈이 있어 심하게 가물 때가 아니면 늘 물이고여 있는 석천이 있다는데 오늘은 안개비와 강풍으로 인해 찿아볼 엄두를 못냈다.

 

문장대는 원래 구름속에 묻혀있다 해서 운장대(雲將臺)라고 했으나 조선시대때 세조가 복천에서 목욕하고, 이곳 문장대 석천의 감로수를 마시면서 병을 치료할 때 문무 시종과 더불어 날마다 대상에게 시조를 읊었다하여 문장대라 부르게 되었다고 전해 내려온다.

 

이 곳에서는 속리산의 최고봉인 천황봉과 관음봉, 시루봉, 투구봉, 비로봉, 칠성봉등의 여러 봉우리가 한눈에 들어 온다 했는데, 오늘은 10여미터 앞의 사람도 분간이 안되는 이심정을 누가 알리요...

 

아쉬움을 달래 듯 회원님들은 문장대 표석에서 사진을 찍고, 안개비와 강풍도 이겨내며 가파른 철계단을 올라 전망대에 오르니 온 세상이 온통 하앟기만 한게 신선이 되어 안개 속으로 뛰어들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아! 문장대여 잘 있거라 이 다음 단풍이 온 산을 붉게 물들이면 다시 찾아와 내 너를 어루만져 주리니..."

 


 


 


 


 


 


 

이런 날씨에는 막걸리와 파전으로 아픈 가슴을 달래야 하는데 인기척이 없는 주막은 조용함을 넘어 스산한 냉기만 감돌고 있었다.

 


 


 

09시 47분 소나무

 

문장대에서 신선대로 향하는 길목에 고풍스런 소나무와 멋진 바위가 있어 사진에 담으려 애써 보았지만 안개비는 좀처럼 나에게 협조하지 않았다.

이 구간에 설치되 있는 철계단은 산행하는 이들로 하여금 인상을 찌푸리게 하기 충분했다.

먼저 백두대간에 친환경 적인 재료가 아닌 철로 계단을 많들어 놓은 것과, 계단의 폭을 너무 높게 잡아 대부분의 산행객들이 힘들어 하기 충분했기 때문이다.

 


 

09시 56분 산죽길

 

사람 허리 위까지 자란 산죽들이 산행로 가장자리를 차지한고 있는 모습이 이 길이 문장대에서 천황봉으로 가는 옳은 길임을 말없이 대변해 주고 있느 가운데 어느덧 신선대가 눈에 들어왔다.

검은흙이 진창으로 변해버린 산죽길을 말없이 걷고 있으려니 이 곳이 열대 우림 지역이라는 착각에 빠져 들기도 했다.

 

 


 

10시 05분 신선대(神仙臺1,026m)

 

아득한 옛날 속리산 절경에 혼을 빼앗긴 고승이 청법대에서 불경 소리를 듣고 멀리 남쪽 능선 산봉우리에 백학이 수없이 날아오르며 춤을 추고 있고, 그 가운데 백발이 성성한 신선들이 앉아 놀고 있어 그 모습이 고승이 평생 원하는 선유세계인지라, 황급히 청법대를 지나 신선들과 놀고자 그 곳으로 달려갔으나 막상 당도하여 보니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고승은 크게 실망하고 아쉬워하면서 그 자리를 떠나 다음 봉우리로 가서 다시 이곳 신선대를 보니 여전히 주위에는 백학이 놀고 신선들이 담소를 하는지라, 고승은 아직도 자신이 신선들과 만날 수 없음을 깨닫고 다시는 그 곳으로 달려갈 엄두도 못 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 신선들이 놀았던 봉우리를 "신선봉"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전설이 있는 곳이다.

 

이러하 듯 아름다은 전설이 있는 신선대도 오늘은 찬바람만 횡하니 불고 인기척도 없는 와중에, 어디선가 나타난 땡칠이만이 우리를 스쳐 지나가고 있는 모습이 참 이색적이었다.

"아직 복날이 멀었다고 이 높은 산중에 그것도 신선들이 살았다는 곳에 땡칠이 만이 유유히 거니는 모습을 상상해 본적이 있는가?"

 

신선대 표석에는 천황봉 2.3km, 문장대 1.2km라고 적혀 있었다.

그러나 영문과 한글로 새로이 치장한 이정표에는 문장대 1.1km라고 적혀 있는게 내 눈에는 썩 보기 좋지는 않았다.

그래도 나는 이곳 저곳을 돌며 열심히 기록에 남겼다.

 


 




 

10시 08분 이정표

 

신선대에서 조금 내려서니 법주사 매표소 5.8km라고 쓰여진 이정표가 이 곳에서 법주사로 향할수 있음을 알려주었다.

 




 


 


 

10시 20분 입석대

 

임경업 장군이 7년 동안 몸과 마음을 수련하며 세웠다는 입석대건만 오늘은 그 자태를 속세인들에게 보여주지 않기로 작정 했는지 좀처럼 카메라에 들어오지 않는다.

 

입석대로 오기 전 안개로 치장한 멋진 바위에 취해 그길을 대간길로 착각하고 오르는 일이 있어 사진에 담아본다.

 


 


 


 


 

10시 33분 남근석? *** 부부 고릴라 바위 ***

 

경업대를 구경하다 후미로 쳐지게 된 나는 급히 걸음을 옮겨 앞선이들을 따라잡으려 했으나, 대야산 대문바위 처럼 생긴 멋진 바위와, 마치 남자 "거시기"(부부 고릴라 바위였음)처럼 생긴 바위들이 내 발목을 잡고 놓아주지 않아 그 바위들을 사진에 담느라 앞선 이들과 더 쳐지게 되었음을 알고 이번에는 뛰다시피 내림을 내려갔다.

산에서는 절대로 서두르지 말아야 한다는 사실을 잊은 나에게 돌아온 것은 무릎 통증이 제발 되었다는 좋지않은 소식이었다.

지난번 산행때 기역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니 등줄기에서 식은땀이 흐르는 느낌이 들며, 무릎의 통증은 점점 심해져 내리 막길을 내려 서기가 여간 고통스럽지 않았다.

나는 마음 속으로 내자신을 다잡고 다시 천천히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마치 유리위를 걷듯이 조심조심 10여분을 걸으니 무릎의 통증은 점점 완화되고 머지않아 통증은 씻은듯이 없어지고 있었다.

 


 

10시 40분 천황봉 1.2km, 문장대 2.7km 이정표를 지났다.

 


 


 

10시 44분 천황석문

 

앞서가는 지양씨를 열심히 뒤 따르고 있는데 안개속에서 규모가 어림 잡아 빌딩3층 이상은 되는 커다란 석문이 나타나서 사진에 담고 석문을 통과하니 이번에도 송곡님이 그석문이 천황석문 이라 조언을 해 주었다.

송곡님을 보면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산행때마다 얼마나 공부를 하고 산행에 나서는지 송곡님은 풍수면 풍수, 지리면 지리에 대해 또한 산행에서 일어나는 부상과 사고에 대해 훤히 알고 늘 대비하고 있었다.

"나는 언제쯤이면 송곡님과 같이 될수 있을까?"

 


 



10시 52분 경업대,천황봉,상고암(법주사)라는 이정표가 있는 삼거리르 지나 천황봉을 향해 오르는 길은 안개비, 가파른 오름과 내림을 번가라가며 2시간여를 걸은 이들에게는 쉽지 않은 산행길 이었다.

특히 신선대에서 이곳까지 오는 길은 검은흙에 비가 섞인 진창길이라 힘이 배가 드는 구간이었기에 몸에 축척되 있는 당이 모두 소모되 시장기기를 느끼기에는 충분했다.

 

진창길을 오르다 갈령에서 천황봉을 경유해 내려오는 많은 산행객들을 만나 인사를 주고받고 앞길의 정보도 얻을수 있었다.

천황봉에서 내려오는 산행객들의 말에 의하면 정상은 바람이 많이 분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천황봉을 오르기 전에 마땅한 자리를 잡아 점심식사를 하기로 결정하고 장소를 찾던중 산행로를 벗어난 곳에 멋진 헬기장이 있어 그 곳에서 점심상을 차렸다.

 

11시 00분 두번째 헬기장

 

손중호님과 신현숙님을 비롯해 8명의 회원들은 천황봉 바로 전 두번째 헬기장에서 각자 준비한 음식을 나누며 맛있는 점심을 먹었다.

지양씨는 밥 대신에 빵과 떡을 준비해 와서 먹었고 친구놈은 김치 찌개를 준비해 왔으며, 신현숙님의 고추와 갓김치는 단연 인기가 있었다.

반주로 소주 한 잔이 없는게 아쉬웠다...

 


 


 


 

11시 29분 천황봉(天皇峯1,07.7m)  천왕봉(天王峯)???

 

천왕봉이 천황봉으로 바뀌어 불리게 된 것은 한일합방 직후. 1914년부터 1918년까지 조선총독부 조선임시토지조사국에서 전국 지리를 조사하면서 제작한 ‘근세한국오만분지일 지형도’에 속리산의 상봉을 ‘天皇峯’으로 표기한 이후부터의 일이다. 산 이름, 봉 이름 등을 접하면서 일본 천황을 인식하게 하려고 한 저의가 깔려있는 의도적 개명이다. 국토지리정보원의 지도 표기부터 서둘러 바꿔야 할 것이다.

 

천황봉에 오르니 최영.돌이장군님 일행이 천황봉 바로 아래에서 막 점심 식사를 하고 후식으로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나는 거피를 얻어 마실까 아니면 정상 모습을 사진에 담으며 주위의 경관을 즐길까 하는 생각에 잠시 고민하다 후자를 택해 천황봉 표석을 한장 찍으니 여러 회원들이 모여들어 모처럼 많은 모델이 참가한 단체 사진을 찍을수 있어 기분이 좋았다.

이곳 천황봉도 문장대와 같이 풍광과 조망이 좋기로 유명한 곳인데 오늘은 하늘이 노하셨나 좀처럼 안개비와 바람을 거두워 주지 않는다.

조령 신선봉에서 시산제를 지낸 후 산행때마다 날씨가 우리 한겨레를 축복 했건만...

시산재 기운이 떨어진 것일까?

천황봉에서 10여분동안 아쉬움을 달래다 하산을 시작 했는데, 천황봉을 오를때 힘든 만큼이나 내려가는 길은 가파른 내림의 연속이라 위험 하기만 했다.

조심하며 천천히 내려간다고 했지만 무릎의 통증이 다시 시작되고 있어 나를 곤혹 스럽게 많들었다.

 

11시 47분 묘와 탄방로 안내도 

 

급내림을 20여분 걸어 묘가있는 공터에 도착하니 무릎의 통증이 한층 더 심해져 나는 약을 먹어 보기로 결정하고 물과 함께 진통제 두알을 복용한 후 친구와 5분여를 그곳에서 머물다 다시 걸음을 옮겼다.

 

 


 


 

12시 14분 쌍둥이 나무

 

약을 복용 해서인지 아니면 급내림이 끝나고 완만한 능선길이 이어지고 있어서 인지는 모르지만 무릎의 통증은 서서히 없어지고 있는 가운데 이상하게 자란 멋진 쌍둥이 나무(우리가 이름 지었음)가 있어 송곡님 나 그리고 신현숙님은 일제히 그 나무를 모델삼아 사진에 담았다.

 

12시 29분 세번째 헬기장

 

667m의 무명봉에 오르니 세번째 헬기장이 있었다.

대간길은 이봉우리를 깃점으로 우측으로 급하게 꺽어지는 산행길이어서 길을 착각하기 쉬운 길이었다. 이 곳에서 송곡님은 지도를 꺼내 앞으로 남은 산행거리와 시간을 우리에게 알려주는 자상함을 잃지 않았다.

 


 


 


 


 

13시21분 피앗재

 

이곳에는 피앗재라는 이정표나 표석은 없었고 천황봉 5.8km. 형재봉 1.6km이라 쓰여진 이정표에 누군가가 펜으로 작게 "피앗재" 라고 쓴 글씨가 이 곳이 피앗재 임을 알려주는 가운데 1시간여를 걸으면 형제봉이 나온다는 생각을 하니 발 걸음이 한결 가벼워짐을 느끼며 작은 봉우리를 넘으니 노란 꽃이 이제 막 피어나고 있었다.

그 꽃을 보고 무슨 꽃인지 의견을 나누고 산행을 계속하다 산수유 꽃이라는 의견에 비중이 싫리기 시작했다.

형재봉을 향해 20여분을 걸어가고 있는데 뒤 따르던 송곡님이 그 노란 꽃은 산수유가 아니라 이른 봄이면 높은 산속에서는 제일 빨리 피어나는 "생강나무 꽃'"이라고 정정해 줘서 우리는 산수유로 잘못 알뻔했던 꽃을 생강나무 꽃으로 바르게 알수 있었다...

 


 


*** 생강나무 꽃 ***

 


 

14시 05분 형재봉으로 오르는 길은 생각보다 긴 오름의 연속이었다.

처음 오름을 오르니 몇몇 회원들이 간식을 나누고 있어 나는 과일과 초코바를 맛있게 얻어먹고 친구와 함께 길을 제촉 했는데 김의환님이 앞서 걷고 있어 그분의 뒤를 따라 형제봉을 향해 나아갔다.

처음 한두 봉우리는 그런 대로 따라 붇었는데 어느 시점부터는 김의환님을 좀처럼 볼수 없었다. 대간 산행에서 느낀 점 중에 하나는 모든이들이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걷는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일반인들 보다 천천히 걷는 것은 아니면서도 꾸준히 쉬지 않고 한두시간 정도는 걸을수 있는 체력들을 소유하고 있었다.

나처럼 마음이 앞서서 쉬운 길이든 어려운 길이든 빨리 벗어나려 애쓰면 처음에는 다른이들을 앞설수 있으나 오히려 나중에는 꾸준히 자기 페이스를 유지하며 걷는 이들에게 뒤쳐진 다는 사실을 오늘 절실히 느꼈다.

형제봉을 오르느데 힘이든 한가지 이유가 또 있었다.

그것은 안개비로 인하여 정산이 보이지 않아 어디가 정상인지 얼마나 올라야 하는지 앞을 예건할수 없었다는 사실 이었다.

 


 


 

14시 10분 형제봉(828m)

 

형제봉 바로 아래에는 멋진 소나무와 바위가 있었으며, 그 곳에서 조금 올라서니 바위 하나가 쓰러질듯 쓰러질듯이 커다란 바위와 연결되 있었다.

형제봉 또한 이정표,표석등은 없어서 이 곳이 형제봉이라는 증거는 주변에 이 보다 높은 산이 없다는 사실이 유일한 증거였다.

형제봉에서 급히 좌측으로 진로를 변경하여 갈령 삼거리로 향하는 급내림으로 발을 옮긴지 15분 후 721m 무명봉을 힘들게 넘어서서 조금 내려서니 14시 27분에 갈령 삼거리에 도착했다.

 


 


 

14시 27분 갈령삼거리

 

갈령 삼거리에는 구병산(신선대) 9.6km라고 쓰여진 이정표가 눈에 들어왔다.

구병산(九屛山 877m)은 소금강이라 불리는 속리산에서 뚝 떨어져 나와 마로면 적안리와 경북과의 도계에 웅장하고 수려한 아홉게의 봉우리로 이루어진 아름다운 산이다.

 

구병산으로 발길을 옮기려다 다음에 오르기로 마음먹고 형제봉에서 처럼 다시 급하게 좌측으로 방향을 잡아 갈령을 향해 힘차게 내려섰다. 5분여를 지나니 오랜만에 아름다운 소나무와 바위들이 있어 앞서 걷고 있는 김의환님을 돌려 세워 모델로 삼고 사진을 몇장 찍어 보았다.

 


 


 


 


 


 


 


 

14시 45분 오랜만에 멋진 나무와 기암들을 만나 사진에 담느라 정신을 놓았는지 나는 대간길을 한 골짜기 지나 다음 능선을 따라 갈령으로 하산 하다가 지금 까지 본 기암과는 판이하게 다른 기암을 발견했다.

사진에 담아 보았으나 현장에서 보는 모습과는 사뭇 차이가 나는 부분이 있어 안타깝다...

어찌보면 누에의 애벌래 같고, 또 어찌보면 커다란 능구렁이 같은 모습이 아주 장관 이었다.

 


 


 


 


 

15시 00분 마지막헬기장

 

대간길을 따라 내려왔으면 보지 못했을 바위와 나무를 즐기고 15분 정도를 내려오니 군부대에서 많들어 놓은 잘 정리된 헬기장이 눈에 확 들어왔다.

대간길을 다니며 여러개의 헬기장을 보았으나 이 곳의 헬기장 처럼 잘 정리되고 최근에도 사용한 흔적이 있는 곳은 처음 이었다.

이 곳에서 다음 산행할 산을 볼수는 있었지만 안개에 가리어 사진에 담을수 없는게 끝내 아쉬운 순간이었다...

 




 


 


 


 


 

15시 10분 갈령

 

산행을 시작한지 7시간 56분만에 나는 갈령에 도착했다.

갈령에는 볼 것이 많은 곳 이었다. 잘 만들어진 갈령표석, 충청도와 경상도 경계를 알리는 표석등이 있었는데 그중에 형제봉 1시간 30분, 대궐터산 1시간 50분이라 스여진 이정표가 힌쪽 끝에 초라하게 세워져 있는 모습이 이색적 이었다.

그 이정표에 의하면 이 근방에 예전에는 큰 대궐이 있었다는 것을 알수 있었다...

 

오늘 산행은 안개비로 인해 동양의 알프스, 소 금강산이라 부르는 속리산의 진면모는 하나도 볼수 없었지만, 그래도 신선들이 산다는 안개속(무릉도원 : 신선이 살았다는 전설적인 중국의 명승지. 도연명의 《도화원기》에 나오는 말로, 중국 진(晉)나라 때 호남(湖南) 무릉의 한 어부가 배를 저어 복숭아꽃이 아름답게 핀 수원지로 올라가 굴속에서 진(秦)나라의 난리를 피하여 온 사람들을 만났는데, 그들은 하도 살기 좋아 그동안 바깥세상의 변천과 많은 세월이 지난 줄도 몰랐다고 한다.)을 걷는 듯한 산행이 나에게는 아주 특별한 산행이었다.

또한 오랜만에 여러 회원님들과 의미있는 이야기도 나누고, 단체사진도 멋있게 찍을수 있어 행운 이었습니다.

 


 



악천후 속에서도 무사히 산행을 마친 회원 여러분 수고 많이 하셨구요, 늘 행복하고 즐거운 산행이 되길 기원합니다...~*^^*

 

2006년 04월 06일

 

강일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