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령~황학산~백화산~이만봉~희양산~지름티재 (백두대간18구간)
산행일자 : 2006년 3월 5일
산핼장소 : 이화령,황학산,백화산,이만봉,희양산,지름티재
산행모임 : 대전한겨레산악회
산행날씨 : 흐린후 맑음
잠들기 전부터 비가 오지 않기를 바라며 잠이들었다.
새벽 3시에 일어나 창밖을 보니 비는 오지않고 약하게 부는 바람은 차지않아 시원하게 느껴지는게 기분이 상쾌했다.
진아가 먼저 일어나 준비해 놓은 김밥과 다른 물품들로 배낭을 가득채우고 집을나와 4시 20분에 용문 네거리에 도착하니 최돈민씨와 친구 내외가 먼저 와 있어 인사를 나누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며 기다린지 20여분이 지난 후 대간호가 조금 늦게 도착해 우리는 대간호에 올라 여러 회원님들과 인사를 나누고 자리에 앉았다.
대간호는 여느때와 다름없이 시민회간, 인터체인지, 신탄진등을 경유하며 회원님들을 대간호에 태우고 목적지인 이화령을 향해 순항 하는데, 나는 마음이 편지 않았다.
이유인 즉 내가 예약해 놓고 취소하지 않은 자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산행에 같이 한다고 예약하는 분들을 10여명이나 받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회장님 죄송합니다!!!"
이화령에 도착하기 10여분전 회장님은 여느때와 다름없이 산행구간과 일정 그리고 산행시 주의점등을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07시 13분 경상북도 비를 배경으로 기념촬영을 한 후 회원님들은 일제히 산으로 오르기 시작했다. 5분여를 올랐을까 아직 녹지않은 눈과 얼음이 미쳐 대처하지 못한 몇몇 회원들의 말목을 잡고 놓아주지 않아 미끌어지고 넘어지는 일이 앞 뒤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그 중 한 회원님이 가벼운 부상을 입는 안타까운 일도 벌어지고 난 후에야 일제히 아이젠을 착용하느라 분주했다.
나 역시 아이젠을 착용하고 5분여(7시 14분)를 더 오르니 이화령과 백화산이 써있는 이정표가 미끄럽고 가파른 오름이 끝남을 알리 듯 반겨주었다.
그 후 30여분은 완만한 능선길이 초입부터 놀란 가슴을 위로하듯 이어지고 있어, 숨을 고르며 2주전 산행한 조령산을 사진에 담아 보려고 연신 지나온길을 돌아보며 걸었으나 여의치가 않았다.
그래도 한장은 "찰칵......."
07시 50분 조봉으로 오르는 길은 제법 넓고 곧은길이 200여미터나 이어져 있었다.
그 길을 따라 오르다 보니 마치 내가 지금껏 살아온 길과 살아가야 할 길을 동시에 한곳에서 보는 듯 한 묘한 생각이 들었다.
지금 내가 가고 있는 인생길이 앞에 펼쳐진 길 같이 바르고, 넓고, 곧은 길인가 라고 마음 속으로 되 뇌이며 10여분을 더 오르니 조금 가파른 봉우리가 나타났다.
아마도 가미봉으로 이어지는 777m의 무명봉일 것이다. 그 봉우리에 올라 뒤를 돌아보니 회장님과 김재성님이 담소를 나누며 오고 있어 사진에 담아본다.
08시 07분 여러개의 반공호와 폐타이어로 조성된 첫 번째 헬기장을 지나 08시11분 별표로 바닥을 표시한 두 번째 헬기장을 지나니, 우측으로는 잘 조성된 낙엽송 군락이 이어지는 반면에 좌측으로는 나무가 송두리채 뽑히고 큰 구덩이가 여러개 나있고 나무에는 벌목을 하려는지 1m50cm높이로 페인트 칠이 되어 있는게 흉물스러울 정도였다. **습지**
08시 36분 백화산80분, 흰드뫼 분지리 안말마을50분을 알리는 이정표를 지나니 숨이 턱에 차도록 제법 가파른 오름이 이어졌다. 황학산에 오르기 위한 신고식 인 것이다.
08시 48분에 황학산(810m)에 올랐다.
황학산 정상에는 여러 회원님들이 물과 과일들로 가파른 오름을 오르느라 말라버린 목을 축이며 등산화 끈도 고처메고, 백화산쪽을 바라보며 저마다 한 마디씩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이야기중에 이런 말이 기억에 남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선두가 가끔은 뒤 돌아보며 뒤 따르는 회원들과 어느정도는 보조를 맞추며 나아 가야지 저렇게 앞만 보고 가면 어찌하누...ㅉㅉㅉ"
물 한잔과 감귤 한알은 꿀맛이었다.
황학산을 알리는 표석과 이정표가 없음을 아쉬워 하며 나는 빠른 걸음으로 백화산을 향해 우측 아래로 걸음을 옮겼다.
09시 07분 세 번째 헬기장을 지나 백화산으로 오르는 길은 아주 흥미롭고 다채로운 길 이었다.
눈이 많이 쌓이고 산죽이 분포된 완만한 오름이 있는가 하면, 그 봉우리를 지나니 가파르고 위험한 암릉과 기암으로 이루어진 능선길이 이어졋다. 능선길 중간 중간에는 로프를 이용해야 만 오르고 내릴 수 있는 것이 마치 작은 조령산 같았다.
09시 38분에 백화산(1, 63.9m)에 오르니 여러 회워님들이 삼삼오오 모여 사진촬영도 하고, 간식도 먹고, 정상주도 나누고 있어, 나 역시 김재성님이 권하는 정상주 한 잔을 들고 기념촬영과 동시에 목을 축였다.
백화산은 참 알수없는 산 이라는 생각이 들엇다.
동북쪽에서 오를때는 몰랐는데 정상에 올라 서남쪽을 보니 주변 산들이 모두 발 아래에 있는게 이 산의 높이와 덩치를 가늠게 해 주었으며, 서남쪽은 마치 칼로 베어 놓은것 같이 싹둑 잘려나간 형상이 아주 인상적 이었다.
백화산은 잡목으로 인해 조망은 좋지 않았지만 북쪽으로는 부봉과 주흘산 그 너머 월악산이보이고 남쪽으로는 속리산 그리고 뇌정산이 보인다.
백화산을 기준점으로 다시 우측으로 위치해 있는 이만봉을 향해 발길을 옮겼다.
10시 05분 평천지로 가는 중간에 4~5m되는 암벽이 길을막고 서 있었다. 앞서 가시던 몇몇회원들이 우회 하려고 우측으로 내려서는 중에 길숙누나와 황간 아가씨가 암벽을 오르기에 사진 한장찍고 나 역시 그 암벽을 올라 능선을 타고 평천지를 향하는데 우회 하시던 회원들이 우측 아래에서 눈이 많이 쌓인 관계로 길어 없어 고생하시는 모습이 안타까웠다. "선두의 이정표가 아쉬운 마음이다."
아기 자기한 암릉을 지나며 주변 산들을 조망하는 사이, (10시 11분) 백화산50분, 분지리 안말마을60분을 알리는 이정표가 있는 평천지를 지날 수 있었다.
10시 32분에는 뇌정산으로 갈 수 있음을 알려주는 이정표를 지나 험하지는 않지만 제법높은 981m무명봉을 힘들게 올랏으며, 그 봉우리에서 부터는 아주 제미있는 아기 자기한 봉우리를 대여섯개 넘는 구간과 30여분간의 내림길 이어서 가벼운 마음으로 사다리재에 11시 07분에 도착했다. 사다리재에서 사다리가 어디 있는지 찾아 보았으나 사다리는 없었다. ㅎㅎㅎ ....."썰렁한 죠크"
곰틀봉으로 오르는 30여분의 급 오름은 나로 하여금 멏 번이나 중간 중간 쉬며 숨을 고르고 물로 목을 축이게 만드는 힘든 구간 이었다. 내가 늘 대단하다고 여기던 길숙누나 까지도 힘들어서 어쩔줄 몰라 하는 모습이 이구간이 힘든 오름 구간이란 것을 말해 주었다.
또한 친구 내외를 연신 불러 보았으나 아무런 대답이 없고 메아리만 되 돌아와 나의 쓸쓸함을 달래 주는 듯 했다.
"아마도 시장기가 한 몫은 담당 했으리라."
*** 곰틀봉 정상의 소나무와 백화산 그리고 1,012무명봉이 한 눈에 보인다. ***
11시 40분 곰틀봉에 올랐다.
곰틀봉 정상에는 멋진 소나무가 한 그루 서 있었으며 조망이 아주 좋은 곳 이었다.
조령산,주홀산, 백화산, 뇌정산, 월악산등이 한 눈에 다 들어 왔지만, 희양산은 이만봉에 가려 보이지 않고 다른 산들은 너무 멀어 사진에 담을 수 없음을 아쉬워 하는 사이 길숙누나가 도착해 하는말 "배 곱파 더 이상은 못 가니 밥 먹고 가자. 일구야!"
그래서 우리는 곰틀봉 동쪽에 자리를 잡고 맛있는 점심을 막 즐기고 있는데, 대 여섯명의 다른 회원님들이 연착해 남쪽에 식탁을 차렸다. 우리는 각자 준비한 음식을 꺼내놓고 서로 나누며 반주와 더불어 꿀 맛같은 점심 식사를 했다. 역시 산중에서 먹는 음식은 어떤 음식이든 맛있나 보다...
점심식사 후 20여분을 걸어 12시 20분에 이만봉(990m)에 올랐다.
이만봉에는 다른 산행객들이 먼저 자리를 잡고 있어 우리는 조금 기다리다 기념 촬영을 하고 우측으로 방향을 잡고 길을 나섰다.
이만봉 정상은 그리 넓지 않았으며 조망도 그리 좋지 않아 아쉬웠다.
사다리재로 가는 길에 유난히 많은 산행객들을 만났는데 그 중에 열살 정도로 보이는 서너명의 아이를 만날 수 있었다. 아이들은 예의도 바르고 힘든 기색없이 아버지 뒤를 따르고 있는 모습이 나는 왜 이리 부럽기만 하는 걸까?
" 나도 10년후에는 가능할까....?"
사다리재부터 보이기 시작한 희양산이 곰틀봉,이만봉을 지날때따지 좀처럼 촬영을 허락하지 않다가 마당바위, 용바위 근처에서야 사진을 허락해 한장 담아 보았다.
12시 46분 이만봉40분 시루봉20분이란 이정표를 깃 점으로 우측으로 난 오솔길은 이 곳이 마치 동네 뒷 산 인것으로 착각 하리만치 완만하고 조용한 오솔 길이었다.
이렇게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는사이 희양산50분 시루봉 15분이란 이정표를 만나 우리는 자연스레 시루봉으로 길을 잡아 15분 정도를 알바하는 실수를 범했다.
이 실수가 나중에 지름티재에서 구왕봉을 넘지않고 은티마을로 바로 하산하는 계기가 될 줄은 우리 일행은 아무도 몰랐다.
"삼거리나 분기점에서는 항상 지도를 확인하는 일을 절대 잊어서는 안 되겠다."
13시 01분 성터
배너미평전에서 성터까지 오르는 1시간 가량의 구간이 이번 산행에서 가장 힘든 구간 이었을 것이다.
시루봉으로 갈라지는 분기점부터 발복, 무릅, 종아리등의 아품을 호소하던 을숙누나와 아직은 대간이 서툰 친구 내외가 자꾸만 뒤 쳐지는 구간이기도 했다. 특히 내가 지금까지 대단하다고 생각하던 을숙누나가 뒤 쳐지는 것은 이 구간이 그 만큼 힘들다는 것을 대변해 주는듯 했다. "물론 을숙누나는 발목이 좋지 않단다."
초입은 아직 녹지않은 눈이 쌓여 발목이 빠질 정도여서 오르는 이를 쉽게 지치게 많들었고, 가파른 오름과 내림은 암릉과 비탈길로 이루어져 있었는며, 그 곳에는 다른 구간보다 많은 눈과 얼음이 산행하는 이들의 발목을 잡고 좀처럼 놓아주지 않았다.
그래도 주변의 성터 및 황장송 그리고 주목..? 등의 풍광이 좋다는 것이 다소 위안을 주는 구간이었다.
특히 그 높은 산 능선에 성곽을 쌓았다는게 신기할 정도였으며, 성벽과 어울어져 일백여년은 넘은직한 황장송이 군데군대 자생하고 있는 곳은 한 폭의 동양화를 보는 듯 했다.
14시 38분 희양산(998m)에 도착
14시 38분 희양산(998m)
희양산으로 오르는 길은 마치 눈썰매장을 연상게 할 정도로 눈이 많이 쌓여 있어서 오르는 10여분은 조심하며 한발 한발 올라야만 했다.
희양산에 올라 그 웅장하고 신비스런 암벽과 마당같이 넓은 바위 그리고 잘 어우러져 자라고 있는 황장송을 보는 순간 내가슴에는 잔잔한 감동의 물결이 일렁이기 시작했다.
희양산은 경북 문경의 가은읍과 충북 괴산군 연풍면이 만나는 경계를 이루고 조령에서 속리산 쪽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의 줄기에 신비스런 암봉과 암벽이 우뚝 솟아있는 모습이 나로 하여금 연신 감탄사를 자아내게 했다.
옛 사람들은 희양산을 보고 갑옷을 입은 무사가 말을 타고 앞으로 나오는 형상이라고 했단다. 지증대사가 희양산 한복판 계곡으로 들어가 지세를 살피니, "산은 사방에 병풍처럼 둘러처져 있으니 마치 봉황의 날개가 구름을 치며 올라가는 듯 하고 계곡물은 백겹으로 띠처럼 되었으니 용의 허리가 돌에 업드려 있는 듯 하다"고 감탄한 산이라고 전한다.
희양산 정상에는 누군가 써놓은 아주작은 돌이 표석을 대신하고 있었으며 정상 남쪽에 3m가량 우뚝솟은 암봉위에 1m도 않되는 소나무 한 그루가 모친 풍파에도 굴하지 않고 당당히 뿌리를 내리고 자라고 있었다.
정상으로 오르는 능선길에 죽 늘어선 바위들은 지증 대사의 말처럼 용이 휴식을 취하며 업들여 있는 듯 했고, 바위 중간에는 작은 연못이 몇 군데나 형성되 있었는데 어떻게 만들어진 것인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또한 바위들이 일부러 탑을 쌓아올린 것처럼 층층이 쌓여있는 모습은 불가사의 할 정도였다.
"이 곳 희양산은 봄이나 가을에 꼭 한번 더 찾아 봐야지..."
*** 구왕봉과 중턱에있는 폭포가 무척 아름답다. ***
15시 00분
15시 00분 희양산에서의 감동이 아작 가슴에 담아 잇는데 지름티재로 하산하는 길에는 10여미터는 되는 절벽이 산 아래로 형성되어 내려가는 이 에게 두려움을 주었다.
절벽 중앙에는 로프가 서너개 설치되어 있었고 가장자리에는 내려가는 이 들을 호위하 듯 양쪽으로 기암이 죽 들어서 있었다. 또한 바닥은 아직 녹지않은 눈과 얼음이 경사각 70도 되는 가파른 내림길을 많들어 놓고 내려가는 이 들의 간담을 서늘게 하였다.
급격한 내림을 20여분 내려오니 미로바위가 좌측으로 있었는데 그 안쪽은 정말 미로처럼 사방으로 연결된 미로가 형성되 있었고, 바위안쪽의 온도는 정말로 시원한게 여름에 한번 들려 낮잠을 자면 좋을것 같았다.
미로바위에서 10여분을 더 내려오니 지름티재가 반겨 주었다.
" 미로바위 안쪽은 신채적인 특성상 들어갈 수 없었다."
15시 30분 지름티재에는 등산객들의 출입을 금하는 현수막과 현판이 대간길에 어울리지 않게 설치되어있고 비닐로 많든 임시초소와 텐트가 서너게 있는게 눈살을 찌프리게 하였다.
봉암사에서 참선 수행하는 스님들을 위해서 라는데 나에게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참선 수행하는 스님들 이라면 어떤 소음에도 흔들리지 않아야 참선이지.....?
지름티재에서 우리는 봉암사와 그 절에서 수행했던 스님들 특히 성철스님에 대해서 황간 아가씨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으며 자연스럽게 은티마을을 향해 하산길로 접어 들었다. 또 봉암사는 매년 사월 초파일에만 개방하는데 그 때는 차와 인파로 이 곳 은티마을과 희양산 그리고 봉암사가 인산인해를 이룬다는 이야기도 들으며 희양산90분, 구왕산(호리골재)100분, 은티마을 20분이라는 이정표가 있는 삼거리에 도착하니 먼저 하산한 친구 내외가 있어 함께 은티마을로 내려가는 중간 중간에 이 곳이 작년에 온 곳과는 사뭇 차이가 난다고 이상하게 여기는 사이 은티 마을에 도착했다.
16시 19분 주차장에 도착하니 한겨레 회원분들이 보이지 않고 이용우대장과 대간호 사장님만이 우리일행을 반겨준다." 이상하다 정말로!!!"
그제서야 우리는 구왕봉과 은치재를 경유하지 않고 지름티재에서 은티마을로 직접 하산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는 너무나 아쉬워 다시 산으로 오르고 싶은 생각에 선배님들에게 하소연 했으나 이미 업지러진 물을 어찌하리요. 시루봉과 희양산 갈림길에서 실수한 것을 이곳 지름티재에서 또 범할 줄이야.
지도를 주머니에 챙겨 여러번 공부했는데 이런일이 생기다니.....
분기점이나 삼거리에서는 꼭 지도를 참고하여야 한다는 사실을 잊져버린 내가 한심해서 고개를 들 수 없다.
발목이 아파서 중간에 하산한 길숙누나의 말 " 장성봉 구간때 같이 하면 되겠네........."
17시 22분 아쉬움에 한 시간여를 방황하다 지는해가 너무 아쉬워 한장..........
힘든산행에 미끄러지고 넘어지면서도 아무런 사고 없이 무사히 완주하신 회원님들 수고 하셨습니다. 정말 부럽습니다.
이번 산행에서 또 하나의 교훈을 얻었습니다.
다음 산행때에는 산에 순응하며 덤벙거리지 않도록 공부 많이 하겠습니다.
2006년 03월 08일
강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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