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수령(低首嶺)~문복대(問福臺)~벌재(伐峙)~황장산(黃腸山)~차갓재 (백두대간 제14구간)
산행일자 : 2007년 01월 28일
산행장소 : 저수령(低首嶺)~문복대(問福臺)~돌목재(石項嶺)~벌재(伐峙)~치마바위~감투봉~황장재~황장산(黃腸山)~차갓재
산행모임 : 친구와 둘이 (대자연 산악회 따라, 총38명)
산행날씨 : 말고 온화한 기온
산행시간 : 6시간간 21분, 접속시간 : 17분(차갓재~안생달 한백주조장), 총 : 6시간 38분
산행거리 : 14.17km, 접속거리 : 1.5km(차갓재~안생달 한백주조장), 총 : 15.67km
몇일 전부터 기상청에서 이번 주말 폭설과 함께 강추위가 찾아온다고 강조를 하는 바람에 위험한 암릉 구간과 로프를 이용해 수직 암벽을 오르내려야 통과 가능한 황장산(黃腸山 1,077.3m) 산행을 앞두고 걱정을 많이 했다.
새벽 03시 30분에 일어나 떨리는 가슴으로 창밖을 내다보니 무거운 어둠만이 내려앉은 거리엔 눈발이 희뜩거리는 반면 내 볼을 스쳐 지나는 바람속에서는 겨울의 냄새보다 이른 봄의 냄새가 엷게 실려온다.
05시 30분 롯데백화점 앞에 도착하니 친구의 차가 추차되어 있고 그 차 안에는 친구 내외가 함께 타고 있어 반갑게 인사를 하고, 친구에게 왜 내리지 않고 있는지 물어보니, 제수씨의 왈 "추워서 차 안에서 버스를 기다린데요." 라고 친구 대신 대답한다. 그래서 나는 "이런 날씨가 춥기는 뭐가 춥다는 거야... 완전히 봄날씨가 따로 없네..." 라고 말하고 친구를 차 안에서 내리게 한 후 제수씨에게 잘 가라고 인사를 건넸다.
일주일 전부터 친구에게 황장산에 함께 가자고 했는데 친구는 몸 컨디션이 좋지 않다며 사양을 하다가 어제 저녁에서야 요즘 홀로 낮선 산악회를 따라 대간길을 다니는 나를 위해 함께 따라나선다고 했다.
"미루어 짐작컨데 지금 친구의 몸은 대간길을 종주하기에는 무리가 따르는 상태 일 것이다. 고맙다 친구야......!"
09시 52분 저수령(低首嶺 850m)
오늘 황장산黃腸山 1,077.3m) 산행은 '06년 11월 26일 황장산에 들려다가 여러가지 좋지 않은 사정으로 계획을 무리하게 수정한 다음 11시 저수령을 출발해 빗 속에서 도솔봉(兜率峰 1,315.6 m)에 올라 21시 경에야 후미가 죽령에 닿는 위험한 산행을 주관한 산악회를 다시 한 번 따라나선 산행이다.
저수령~황장산~차갓재 구간을 종주하기 위해 여러 일간지와 인터넷을 찾아보았으나 일정에 맞게 이 구간을 지나는 산악회가 '대자연'이란 곳 밖에 없어 어쩔 수 없이 따라나선 것이다.
고속도로에서 잘 달리던 대간호가 증평나들목을 지나 문경으로 접어 들면서 속도가 현저하게 떨어진다. 간밤에 내린 눈이 노면에 쌓여있어 속력을 내지 못하는 데다가 간간이 흩날리는 눈발 앞에 대간호 선장은 갈림길이 나타날 때마다 어느쪽으로 선수를 돌려야 할지 갈피를 못 잡고 시간을 지체한다. 평소 같으면 09시 경에 저수령에 닿았을 대간호는 09시 50분에야 저수령 고갯마루에 정박한다.
소백산 산행때도 그러했는데 오늘도 산행객들은 역시 산행 전 준비운동을 하지 않고 기념촬영이 끝나자 마자, 이내 들머리로 발길을 옮기기 시작한다. 나는 급하게 발목과 무릎 그리고 허리와 목 등의 근육을 이완시킨 다음 친구와 함께 문복대(問福臺 1,074m)로 이어지는 들머리로 향한다.
"산행 전 준비운동은 꼭 필요하다는 사실을 일반 산악회에서는 왜 간과(看過)하고 지나는 것일까?"
저수령(低首嶺 850m)은 경북 예천군 상리면과 충북 단양군 상리면을 잇는 고갯마루다. 그 이름은 큰 길이 나기 전 험난한 산길 속으로 난 오솔길이 워낙 가팔라 고개를 오르는 길손들의 머리가 절로 숙여졌다(底首)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한편 이 고개에서 은풍곡(殷豊谷)까지는 피난길이었는데, 외적이 이 고개를 넘으면 모두 목이 잘렸다는 데서 유래되었다는 설도 있다.
10시 02분 촛대봉( 1,080.6m)을 돌아보며
저수령에서 들머리를 찾아 산행로를 따르다 보니 잔설이 곳곳에 남아 있어 오르막 비탈을 조심해서 올라야했는데 앞서가던 산행객들이 산행로 가장자리 곳곳에서 급히 아이젠( Eisen)을 착용하는라 분주한 모습들이다.
발 감각을 무디게 하며 가볍게 걸음을 옮기는데 저해되는 아이젠을 좋아하지 않는 내가 그 들을 지나쳐 920m봉 정수리에 다달을 무렵 무심코 뒤 돌아보니, '06년 11월 26일에 올랐던 촛대봉(1,080.6m)이 밤사이 내린 눈과 새벽의 된서리를 맞아 마치 백발의 산신령을 연상케 하는 모습으로 나에게 반갑다고 인사를 건넨다.
내 뒤를 따르던 친구가 나에게 "일구야 조금만 천천히 걷자." 고 말 하더니 배낭을 벗어놓고 배낭에서 아이젠을 꺼내 착용한다. 그 때서야 나는 친구 몸 컨디션이 좋은 상태가 아니란 것을 잊었다는 생각과 함께 미안한 생각까지 드는 순간이다.
10시 08분 장구재(옛 저수령 850m)
920m봉에 올라 저수령 맞은편의 촛대봉에게 마음속으로 잘있거라 인사를 건네고 급하게 높이를 나추는 산행로를 따라 수북이 쌓인 가랑잎을 포근하게 덮고 있는 미끄러운 눈과 한 차례 씨름을 하고나니 이내 장구재(옛 저수령 850m)가 나온다.
옛 저수령는 차량 두대가 교차 진행할 수 있을 정도로 제법 넓은 비포장 임도가 문경과 단양을 잇고 있다. 옛 저수령 임도에는 잡초가 자라지 않고 있는 모습으로 미루어 짐작컨데 아직도 많은 왕래가 이루어진다고 생각된다.
10시 50분 문복대(問福臺 1,074m)
예 저수령(850m)에서 문복대를 향해 가파른 오르막 비탈을 힘차게 올라서는데 나를 따르던 친구가 자꾸만 뒤로 쳐진다. 산행을 시작해 한 차례 땀을 흘렸으니 이제 컨디션을 찾을 만도 한데 친구는 아직도 제 컨디션을 찾지 못하고 오르막 비탈을 힘들어 한다.
나는 친구를 앞 세우고 뒤에서 천천히 따르기로 하고 잠시 주변을 살펴보니 서북쪽 사면의 굴참나무 가지에 상고대[무빙(霧氷)]라고는 할 수 없으나, 그에 못지 않는 아름다운 눈꽃(雪花)들이 만발하게 피어 있다.
표고차가 100m에 달하는 가파른 오르막 비탈을 한 차례 올라서니 1,050m봉이 나오고 완만하게 이어지는 능선을 따라 잠시 높이를 낮추었다가 다시 일어서는 산행로를 따르다보니 이내 옥녀봉(1,077m)이 나타난다.
옥려봉에서부터 우측사면으로 펼쳐지는 눈꽃(雪花)을 조망하며 잔잔하게 이어지는 암릉구간을 지나, 1,040m 안부에서 잠시 숨을 고르고 10여분 다리품을 파니 아담한 암장위에 빗돌이 세워져 있고 그 앞에는 하얀 눈을 덮어 쓴 소나무가 서 있는 문복대(問福臺 1,074m)가 나온다.
문복대 정수리 빗돌에는 '問福臺 1,074m' 란 글씨 옆에 '白頭大幹' 이란 글씨가 함께 씌어져 있다.
문복대(운봉산)는 백두대간이 죽령, 도솔봉, 향적봉, 저수재를 지나서 문경시 관내로 들어오면서 처음으로 솟구친 산으로 '問福臺' 라고 많이 알려져 있으나 '운봉산'이라고도 한다.
이 문복대는 저수재와 벌재 사이에 솟아 있는데 이 봉우리에서 한 줄기가 북으로 뻗어 수리봉, 신선봉과 유명한 단양팔경중 상.중.하선암이 있는 도락산을 두고 있으며, 산세가 아름답고 골짜기마다 운치가 있어 산행의 즐거움을 더한다.
또한 국토지리정보원의 1:50,000 지도에는 '문복재'라고 표기돼 있다고 한다. 1,000m가 넘는 봉우리를 재(嶺)라고 표기한 것은 분명 잘 못 표기한 듯싶다.
11시 29분 돌목재(石項嶺 750m)
문목대(問福臺 1,074m)에서 1,300m를 넘나드는 서 너개의 봉우리 북사면에 펼쳐지는 눈꽃(雪花)의 향연을 감상하며 가벼운 발 걸음으로 20여분 다리품을 파니 서쪽으로 향하던 산행로가 동남쪽으로 방향을 틀어 돌목재(石項嶺 750m)로 향한다.
돌목재로 향하는 내리막 비탈에 수북이 쌓여있는 건 가랑잎 뿐 흰 눈은 보이지 않는다. 산행로가 남쪽을 향하고 있기 때문에 따스한 햇볕을 받아, 비탈에 쌓였던 눈이 모두 녹아 버린 것이다. 달리 말하자면 오늘 많은 눈과 한파가 몰아친다는 기상청 예보가 빗나갔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한편 가랑잎이 수북이 쌓여있는 긴 비탈을 내려서는데 많은 산행객들이 가쁜 숨을 몰아쉬며 문복대를 향해 올라오고 있다. 차갓재(740m)를 출발해 이 시간에 이 지점을 지나자면 아마도 무박산행을 하는 산행객들 일 것이라 생각했는데, 백두대간 종주를 기획한 분이 끊어타기 구간 계산을 잘 못하여 오늘 벌재~저수령 구간을 종주하고 있다는 것이다.
긴 비탈을 내려서서 도착한 돌목재(石項嶺 750m)는 제법 깊은 곳 이었으나 오래 전 이미 사람이나 우마차 왕래가 끊긴듯 재(嶺)의 흔적을 찾을 수 없다. 돌목재에서 823m 봉우리 까지는 경사가 45도는 넘어 보이는 가파른 비탈인데, 그 비탈을 올려다 보던 친구가 더 이상은 허기져서 못 걷는다며 먹을 것을 내 놓으라고 한다. 그래서 나는 배낭에서 바나나 두 개를 꺼내 친구에게 건네며 바나나가 허기를 달래는데 효과가 있느니 천천히 먹으며 따라오라고 한 후 823m 봉을 향해 가파른 비탈을 오른다.
11시 48분 백두대간 생태복원지역
동남쪽으로 향하던 대간능선은 823m봉 정수리를 깃점으로 남서쪽으로 방향을 틀어 긴 비탈을 만들며 740~700m봉 능선으로 이어지며 벌재(625m)까지 이어지는데 내리막 비탈에서 소요되는 시간이 20여분을 넘어선다. 700m봉 부터는 인위적으로 조성된 계단이 나나타고 그 계단을 따라 내려서다 보면 황장산(黃腸山 1,077m) 과 문복대(問福臺 1,074m)의 방행을 알려주는 장승 같은 푯말 옆에 30cm 가량의 키작은 푯말이 세워져 있는데 그 푯말에는 "이 지역은 백두대간 생태복원지역으로 출입을 금합니다." 고 씌어져 있다. 그 푯말 좌우로는 산 기슭을 따라 2~3m 가량을 평평하게 일궈놓은 흔적이 눈에 들어온다.
"과연 이렇게 산기슭을 일궈가며 생태보권지역으로 지정해야 하나..." 라는 의문이 생기는 순간이다.
11시 52분 월악농장 포장도로(625m)의 데크에서
11시 57분 벌재(伐峙 625m)
월악농장으로 이어지는 포장도로(625m)를 가로질러 나무데크를 올라서는데 앞서가던 산행객 10여명이 점심을 먹고 간다며 데크 위 좌측에 있는 묏자리로 향하며 나와 친구에게 함께 점심식사를 하자고 권한다. 그래서 나는 벌재를 지나 맞은편 봉우리(929m)에서 식사를 할 예정이라 말하고 640m봉을 넘어 벌재 정자(亭子)에 선다.
벌재 정자(亭子) 기둥에는 '이 기둥은 황장목으로 만들었습니다.' 고 씌어져 있어 정자 기둥을 황장목을 이용해 만들었음을 알 수 있다. 정자 맞은편에는 '백두대간 훼손지 복원사업'을 홍보하는 홍보 안내판이 깔끔하게 세워져 있다.
황장목(黃腸木)이라는 이름은 줄기의 고갱이 부분에 송진이 적절히 베어들어 속살이 누런 소나무를 말한다. 그 모양이 마치 누런 창자와 같다는 말이겠다.
황장목의 황장(黃腸)이라는 글자의 뜻은 소나무 중에서 속이 황색을 띤 재질이 단단하고 좋은 목재를 일컫는 말이다. 특히 조정에서는 주로 이 황장목으로 왕실에 필요한 관을 만들었고, 황장목의 확보를 위해 특정한 산을 황장봉산(黃腸封山)으로 지정해 엄격히 관리했으며, 일반인의 출입을 금하려고 경계 표식을 세웠으니, 이것이 황장금표(黃腸禁標)이다.
문경의 황장산(黃腸山 1,077m)에서 벌채된 황장목(黃腸木)은 육로로는 영남대로에 해당하는 하늘재를 통과했고, 수로로는 인근의 남한강 지류인 동달천을 통해 조정으로 운반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러한 사정으로 보아 황장산의 지정은 목재의 운반에 용이한 교통로와의 접근성도 중요한 인자로 고려됐음을 짐작할 수 있다.
12시 07분 벌재(伐峙 625m) 절개지
벌재를 지나 바로 850m봉을 향해 발길을 옮기려다 다시 허기를 호소하는 친구를 위해 벌재 정자에 배낭을 벗어 놓고 빵과 물로 간단하게 요기를 해 본다.
잠시 다리쉼을 하며 요기를 하는 사이 640m봉에서 벌재를 향해 내려오는 10여명의 산행객들이 눈에 들어온다. 그 산행객 중 한 분이 정자를 발견하고 이 곳에서 점심을 먹고 가자고 하니 다른 한분이 지금 점심을 먹으면 앞에 보이는 봉우리를 올라가지 못한다고 한다.
내가 허기를 호소하는 친구의 말을 무시하고 구지 929m봉에 올라 점심식사를 하려고 하는 이유는 재(嶺)나 산 기슭에서 식사를 하고 오르막 비탈을 오르려면 힘이 배가 들고, 식사 후 바로 움직여야만 하는 대간산행의 특성상 소화에 도움이 되지 않으며, 자칫 복통을 이르킬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항상 제일 높은 봉우리의 정수리나 길게 이어지는 완만한 능선 초입에서 식사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있다.
벌재(伐峙)의 어원을 따르다보면 "소백산맥 지역의 교통로와 유적 : 박상일, 국사관논총 16, 국사편찬위원회 1990"이라는 논문에는 '적성은 바로 벌재의 한역으로 보인다' 고 언급이 있다. 벌재의 남쪽 마을이 바로 문경시 동로면의 적성리인데, 한자 표기가 붉을 ‘赤’인 것으로 보아 ‘붉은 재’를 이 고장 말로 벌재라 브른데서 유래된 것으로 추정된다.
국토지리정보원의 1:50,000 지도에는 벌재의 표기가 ‘벌재재’로 표기돼 있다. 인터넷 검색을 해 보니 지명정보에도 1961년에 벌재재로 고시돼 있다. 당시 현지 조사원이 벌재의 재가 고개를 뜻하는지를 모르고 ‘재’ 자를 하나 더 붙인 듯하다.
아래의 사진은 벌재(伐峙 625m) 절개지에서 맞은편 823m봉 정수리와 능선에 하얀 눈꽃(雪花)이 만발하게 피어 있는 모습을 담은 사진인데 정수리에서 벌재(625m)까지 200여미터 가량 이어지는 비탈이 얼마나 카파른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12시 16분 헬기장
수직에 가깝게 깍여나간 벌재 절개지 가장자리로 나 있는 우수로(雨水路)를 따라 이어지는 산행로를 오르며 숨이 턱에 차도록 다리품을 파니 850m봉 중턱에 위치해 있는 헬기장이 나온다. 이 헬기장에서는 잡목들에 가려 잘 보이지는 않지만 수리봉과 황정산 그리고 도락산(道樂山 964.4m)의 장쾌한 암릉능선과 멋지게 우뚝 솟아있는 암장을 조망 할 수 있다.
벌재에서 함류했던 10여명의 일행들 중 서너명도 헬기장에 먼저 도착 하더니 이 곳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간다며 헬기장 양지바른 곳에 식탁을 차린다.
나는 친구에게 '우측 위로 멀리 보이는 929m봉에 올라 식사를 하자' 고 말하고 친구에게 앞서서 걸으라고 하니, 친구는 벌재 정자에서 주전부리로 요기를 해서인지 두 말 하지 않고 850m봉을 향해 발길을 옮긴다.
헬기장에서 929m봉 정수리까지 이어지는 산행로는 숨이 턱에 차고 넓적다리 근육이 1인치 가량 부풀게 할 만큼 힘든 비탈이 20여분 가량 이어지는데, 929m봉 턱 밑에서는 이마와 등줄기에 송골송골 맺혔던 땀을 식히고 가쁜 숨을 고르기 위해 다리쉼을 해야만 했다.
929m봉 정수리에 서니 북서쪽으로 향하던 산행로가 서쪽(좌측)으로 방향을 바꾸며 이어지는데 정수리 부근에는 식사를 할 만한 장소가 눈에 들어오지 않아 폐맥이재(820m)로 이어지는 능선을 따라 걸음을 옮겨야 했다.
햇볕이 잘들고 넓은 장소를 찾아가며 계룡산(鷄龍山 845m)의 자연성능을 연상케 하는 암릉 능선을 따르다가 폐맥이재쪽에서 올라오는 한 무리의 산행객들을 만났다. 그 산행객들은 벌재가 얼마나 남았으며 이 근방에 식사를 할 만한 장소가 있는지를 물었다. 그래서 나는 "벌재는 앞에 보이는 929m봉 정수리에서 우측으로 내려서서 850m봉을 지나면 벌재가 보이고, 929m봉 아래에 양지바른 곳에 가랑잎이 수북이 쌓여있는 곳이 있으니 그 곳에서 식사를 하면 될 것입니다." 고 말해주었다. 그 산행객들의 대답은 "만나서 반가웠고 즐거운 산행 하세요." 였다.
12시 45분 천주산(天柱山 838m)과 공덕산(912.5m)을 바라보며 점심식사
계룡산(鷄龍山 845m)의 자연성능을 닮은 능선을 따라 폐맥이재(820m)로 걸음을 옮기다가 문복대(問福臺 1,074m)를 지나면서 아스라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던 천주산과 공덕산이 가장 가까이 다가서는 지점에 다다르니 5~6명은 충분히 앉아 식사를 할 수 있는 넓은 바위 위에 멋진 노송 한 그루가 자라고 있는 조망바위(910m)가 나온다.
그 조망바위에 서니 동로면 일대의 전경이 한 눈에 들어오고, 천주(天柱 : 하늘기둥)의 형상을 하고 있다하여 '천주산(天柱山 838m)', 또한 마치 붕어가 하늘을 향해 입을 벌리고 있는 모습을 닮았다 하여 '붕어산' 이란 별칭을 가진 천주산과 그 옆 공덕산(912.5m)이 손에 잡힐 듯하다.
눈을 패맥이재로 돌리니 재(嶺) 너머로 깍아지른 듯한 절벽의 허연 '치마바위 대슬램'이 눈에 들어온다.
노송(老松) 아래의 넓은 조망바위에서 깍아지른 절벽 밑으로 펼쳐지는 동로면 일대의 풍경을 조망하며 붕어산(천주산)을 매운탕 삼아 친구와 둘이서 맛있는 점심을 머고 있으려니 세상 부러울 것 없다는 생각과 도(道)를 닦아서 현실의 인간 세계를 떠나 자연과 벗하며 산다는 '신선(神仙)'이 따로 없다는 착각이 드는 순간이다.
"붕어산을 매운탕 삼아 친구와 둘이어 먹었지만 사실은 김치찌개를 맛있게 먹었다."
후식으로 과일을 먹으려다 과일은 황장재를 지나 암릉위에서 먹기로 하고 아직 따끈한 온기가 남아있는 홍삼차로 대신했다.
13시 09분 천주산(天柱山 838m)을 돌아보며
조망바위(910m)에서 폐맥이재로 향하는 산행로는 수직에 가까운 비탈 곳곳에 암릉이 산재해 있고 그 암릉 위에는 많은 눈이 쌓여있어 산행로 가장자리의 나무와 로프를 이용해 조심해서 내려서야만 하는 위험한 구간이다. 하지만 황장재를 지나 황장산으로 접어들면 더욱 위험한 구간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위 사진은 치마바위 능선을 오르다가 천주산을 한 번 더 돌아본 사진이다. 이 곳을 지나 황장산黃腸山 1,077.3m) 묏등바위(970m)를 내려 설 때까지 천주산은 내내 내 뒤를 따라 다녔다.
13시 35분 지나온 대간능선을 바라보며
위 사진은 치마바위 능선에서 지금껏 걸어온 대간능선을 조망하며 담은 사진이고, 아래의 사진은 치마바위 대슬램을 옆에서 바라보며 담은 사진인데 직접 산에서 보면 그 깍아지른 절벽의 아름다움에 입을 다물지 못할 것이다.
13시 39분 치마바위(1,004m) 능선
위 사진은 치마바위 능선을 따르다가 고사목을 바라보며 담은 것이고, 아래의 사진은 치마바위능선이 다 할 무렵 마치 사람의 손으로 쌓아 놓은 듯한 석탑과 그 옆의 황장송(黃腸松) 그리고 멀리 하늘과 만나 산그리메를 그리고 있는 대미산(大美山 1,115m) 능선을 담은 사진이다.
13시 59분 소백산(小白山 1,439.5m)을 바라보며
치마바위 능선을 지나 작은 안부로 내려 선 다음 집채만한 바위 두 개가 좌측 머리 위로 우뚝 솟아 있는 수직암벽이 나오는데, 그 암벽을 우측으로 휘감아 돌면, 조금만 힘을 강하게 주어 당기면 금방이라도 끊어질 것 같은 로프가 메어져 있다. 그 로프에 의지해 암벽을 조심해서 올라서면 마치 산 능선을 닮은 두 개의 집채바위 정수리가 나온다.
그 바위에서 북서쪽을 바라보면 도락산(964.4m)과 황정산(959.4m)의 암장이 손에 잡힐듯 다가서고, 북동쪽으로 눈을 돌리면 황정산과 도솔봉 너머로 소백산 그리메를 조망할 수 있다. 소백산 그리메를 자세히 바라보면 흰 눈이 수북이 �여 유난히 흰색을 띤 봉우리를 볼 수 있는데 그 봉우리가 바로 비로봉(毘盧峯 1,439.5m)이다.
아래의 사진은 도락산(964.4m)과 황정산(959.4m)을 담은 사진이다.
치마바위 능선이 다하는 곳의 가파른 암벽을 담아 본다.
14시 02분 너럭바위(묵은 헬기장에서)
멋진 소나무 여러 그루가 자라고 있는 988m봉 10여 분 전, 넓은 너럭바위에 앉아 남쪽으로 흐르는 골짜기를 바라보니 마천루를 연상케하는 바위가, 깎아지른 듯한 절벽 아래에서부터 솟구쳐 올라와 너럭바위 가장자리에서 모진 풍파(風波)를 견뎌내며 서 있는 고사목과 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14시 14분 988m봉을 등지고
988m봉 10분 전 너럭바위에서 잠시 다리쉼을 하고 암릉으로 이어지는 낮은 안부를 지나 힘든 다리품을 한 차례 파니 멋진 소나무가 여러 그루가 잘 자란 988m봉 암장이 다가선다. 988m봉 좌측 뒤로 생달리의 여우목 고개와 대미산(大美山 1,115m)의 정수리가 보인다.
아래 사진은 988m봉 너럭바위 우측으로 뻗어내린 투구봉과 그 너머 도락산(道樂山 964.4m)을 바라보며 담은 사진이다.
14시 16분 하늘을 나는 봉황...?
백두대간 능선은 대부분 북에서 남쪽을 향해 흘러 내리는게 보통이다 그러나, 이 구간에서는 동에서 서쪽으로 흘러간다. 또한 강원도 지역을 지나는 대간 능선은 서고동저(西高東低)의 특징을 보여주는 반면 이구간의 지형은 북고남저(北高南低)의 특징을 보여준다. 특히 너럭바위나 암릉의 남쪽 사면은 깍아지른 듯한 절벽을 이루고 있어 마치 허공을 걷는 느낌마져 안겨준다.
위 사진은 모진 풍파를 견디며 꿋꿋하서 서 있는 고사목을 담은 사진인데 마치 하늘을 향해 비상을 준비하는 봉황을 보는 듯하다.
14시 39분 감투봉(1,040m)을 건너다 보며
988m봉을 넘어 서쪽으로 흘러가는 암릉 능선을 따르다 보면 서쪽으로 향하던 대간 능선이 북쪽으로 방향을 바꾸는 지점을 만난다. 그 곳에서 정면으로 보이는 봉우리가 감투봉(1,040m)이고 감투봉이 일어서는 고개가 황장재(935m)이다.
황장재에서 감투봉으로 이어는 30여 미터 가량의 암벽길은 매우 위험한 구간으로 특히 오늘처럼 눈 내린 다음날이나 비가 내리는 날에은 주위를 기울여 오르고 내려야 한다. 30여 미터의 암벽길을 오르려면 3~4개의 로프를 번갈아 이용하며 올라야 한다.
여성들이나 겁이 많은 산행객들은 30여 미터의 암벽길을 좌측에 두고 우측으로 휘돌아 우회하는 산행로를 이용하기도 하지만 그 산행로에도 곳곳에 로프가 설치되어 있을 만큼 가파른 구간이 산재한다.
아래 사진은 황장재로 내려서기 전 감투봉 촤측 즉 황장산 서릉과 멀리 보이는 대미산(大美山 1,115m)을 조망하며 담은 사진이다
14시 43분 황장재(935m)
감투봉(1,040m)으로 오르기 위해 황장재(935m)에서 잠시 숨을 고르며 물 한 모금으로 목을 축여본다.
14시 59분 지나온 능선을 바라보며
황장재(935m)에서 감투봉(1,040m)으로 이어지는 30여 미터의 수직 암벽길을 군 시절 유격훈련 하던 추억을 회상하며 한 차례 올라서서 뒤를 돌아보니, 황장재에서 암릉길을 지나 1,004m봉(치마바위) 너머 929m봉까지 이어지는 대간 능선이 한 눈에 들어온다.
위 사진에서 보면 완만한 육산으로 생각할 수 있으나 사진에 보이는 면은 북사면이지, 북고남저(北高南低)란 지형적 특징에서 깍아지른 듯한 암벽과 암릉이 잇따르는 남쪽사면은 사진에 담을 수 없는게 안타깝다.
감투봉(1,040m)에서 황장산(黃腸山 1,077m) 정수리를 지나 묏등바위9970m)를 내려 설 까지는 오늘 산행에서 제일 조망이 뛰어나고 제미있는 구간이다. 그러나 위험하고 험난한 암릉과 로프를 이용해야만 통과가 가능한 암벽길이 잇따르고 있어 긴장을 늦춰서는 안 되는 구간이다.
15시 13분 황장산(黃腸山 1,077.3m)
감투봉(1,040m)부터 암릉 산행의 묘미를 만끽하며 오늘 산행의 주봉인 황장산 정수리에 선다.
황장산 정수리에는 1미터 남짓한 빗돌이 남쪽을 향해 있고 '황정산'이라 잘 못 씌어져 있는 푯말은 서쪽을 향해 세워져 있으며 제법 넓은 묵은 헬기장이 있다.
황장산(黃腸山)의 옛 이름은 본디 작성산(鵲城山)이었다고 산경표나 대동여지도에는 적혀 있다. 그리고 황장산 북동쪽의 문안골에는 지금도 작성산성의 암문이 남아있다. 또한 이 산은 황장봉산이라고도 불리는데, 국토지리정보원의 1:50,000 지도에는 ‘黃腸山(황장산)’이라고 한자로 표기돼 있다.
황장산이라 불린 때와 이유를 살펴보면, 조선 숙종 조에 이르러 금산(禁山) 제도 대신 봉산(封山) 제도를 도입하면서부터라는 것이 문헌 고찰의 결과다. 왕실에서 일체의 벌목과 개간을 금하는 봉산(封山)으로 정하면서부터 작성산(鵲城山)이라는 이름이 황장산으로 바뀌게 된 것이다. 다시 말해서 왕실의 관곽(棺槨)재와 궁궐 건축에 쓰일 황장목(黃腸木)을 확보하기 위해 지정한 황장봉산(黃腸封山)이라는 보통명사가 ‘황장산’(黃腸山)으로 고유명사화한 것이다.
영남대로와 백두대간이 만나는 하늘재에 인접한 문경시 동로면에는 황장산(黃腸山·1,077m) 산 초입인 동로면 명전리 옥수동의 한 논 가운데에 ‘봉산(封山)’이라는 표석(지방문화재자료 제227호)이 지금도 있다고 한다.
위와 같은 황장봉산(黃腸封山)의 지명을 가진 산들은 경북 일대와 강원도에서 다수 나타나는 ‘황장산’이라는 이름을 가진 산들을 예로 들 수 있을 것이다.
15시 30분 묏등바위(970m)에서
황장산(黃腸山 1,077m) 빗돌 옆에서 잠시 다리쉼을 하며 물 한 모금으로 목을 축이고 차갓재(756.7m)를 향해 발길을 옮기니 이내 주변 풍광이 한 눈에 보이는 멋진 조망쳐가 나온다. 바로 묏등바위(970m) 정수리에 선 것이다.
묏등바위에서 제일 먼저 06년 01월 15일에 올랐던 대미산(大美山 1,115m)을 조망한다.
문경현지(聞慶縣誌, 1871)에 의하면 ‘황장봉산-강희 경신 6년(1680년)에 봉하기 시작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문경의 황장산에 관한 최초의 기록은 관찬지리지인 여지도서(輿地圖書, 18세기 중엽)에 나오는데, 여기서 ‘황장봉산은 대미산(黛眉山) 아래에 있으며 주위로 둘레 10리’라고 했다. 여기서 대미산(1,145m)은 현 문경의 황장산 서쪽으로 인접해 충북 제천시와 경북 문경시 경계를 이루고 있는 산으로, 역시 백두대간의 능선에 포함되어 있다. 현재는 대미산(大美山 1,115m)이라는 다른 한자 이름으로 바뀌었다.
아래 사진은 수직절벽을 이루고 있는 묏등바위를 아래에서 올려다 본 사진이다.
묏등바위(970m)에서 운달산(雲達山 1,097m) 일원을 바라보며
묏등바위에서 서북쪽을 바라보면 가까이 보이는 운달산(雲達山 1,097m)은 소백산을 북동쪽에 이웃하고 있는 산으로 용암산(龍巖山)이라고도 한다.
주위에는 시루봉(527m), 단산(956m), 대미산(1,115m), 봉명산(691m) 등이 있으며, 남동쪽, 북서쪽 사면에서 흐르는 물은 금천, 신북천으로 흘러든다.
특히 운달산의 계곡은 흐르는 물이 맑고 차갑기가 얼음같아 일명 "냉골"이라 불리워지며, 남쪽 기슭의 울창한 송림에 신라 진평왕 10년(588년) 운달조사가 창건한 고찰 김룡사(金龍寺)가 있는데 김룡사 일원의 계곡을 운달계곡이라고 일컫는다.
맑은 물과 짙은 녹음이 어우러진 운달계곡은 소박하면서도 정감이 넘치는 분위기를 자아내며, 문경8경의 하나로 손꼽히는 계곡이다.
15시 36분 840m봉 전망바위
묏등바위(970m) 암벽을 내려와 조금 더 걸으니 능선을 따라 북쪽으로 향하던 대간 마루금이 작은 차갓재(740m)를 향해 서쪽(좌측)으로 급하게 방향을 바꾸는 840m봉의 전방바위가 나온다. 그 전망바위에 올라 묏등바위를 조망해 보았으나 깎아 세운 것처럼 아주 높이 우뚝 솟아 있는 험한 낭떠러지 대슬램이 있는 남서쪽 사면은 볼수 없고, 다만 눈 덮인 북동쪽 사면만이 눈에 들어온다.
위 사진에서 우측 끝이 묏등바위 수직암벽이고 좌측 끝 부분이 황장산(黃腸山 1,077m) 정수리이다.
15시 53분 810m봉 전망바위에서
840m봉 전망바위에서 좌측으로 급하게 내려서며 작은 차갓재(740m)를 향해 곳곳에 산재해 있는 암릉구간을 조심조심 내려서다가 810m봉 전망바위에서 묏등바위(970m)의 남서쪽 사면과 황장산(黃腸山 1,077m) 정수리를 바라보며......
작은 차갓재가 가까워지며 암릉과 소나무 그리고 굴참나무가 보이던 산행로 가장자리에서는 일본잇갈나무(낙엽송) 군락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15시 58분 작은 차갓재(740m)
06년 01월 15일 하늘재9520)에서 포암산(布岩山 961.8m)과 대미산(大美山·1115m)을 지나 차갓재에서 잠시 다리쉼을 한 다음 가파른 오르막 비탈을 마지막 힘을 다해 올라 작은 차갓재로 내려서는 길에 서쪽 능선 너머로 떨어지는 태양이 만들어 내는 붉은 낙조를 바라보며 작은 차갓재에 다달은 기역이 지금도 생생한 작은 차갓재에 오늘 다시 선다.
이 곳에서 안생달로 이어지는 촤측 산행로를 따라 내려갈까도 생각해 보았지만 오늘 산행을 함께한 친구에게 백두대간(白頭大幹) 남한 구간의 중간 지점이라는 상징적 의미를 가진 차갓재(756.7m)를 보여주기 위해 일본잇갈나무가 산 전체를 뒤 덮고 있는 816m봉으로 발길을 옮긴다.
16시 13분 차갓재(756.7m)
816m봉 정수리에서 일본잇갈나무(난엽송) 사이로 차갓재 장승들이 언뜻언뜻 내려다보이는 가파른 비탈을 한 차례 내려서니 대미산(大美山·1115m) 쪽에서 내려온 산행객 세 분이 장승과 빗돌을 배경으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백두대간(白頭大幹) 남한 구간의 중간에 해당되는 지점이 차갓재라고 알려져 있으나, 실제 진부령과 지리산 천왕봉에서 734.55km에 해당되는 중간지점은 차갓재에서 대미산 방향으로 20여 분을 더 가야만 만날 수 있다.
차갓재(740m)에는 `백두대장군`과 `지리여장군`이라 씌여져 있는 두 장승이 세워져 있으며, 두 장승 사이로 문경 `산들모임`에서 세운 기념 빗돌이 낮게 자리하고 있다.
그 빗돌에는 ‘백두대간이 용틀임하며 힘차게 뻗어가는 이곳은 일천육백여리 대간길 중간에 자리한 지점이다. 넉넉하고 온후한 마음의 산사람들이여! 이곳 산 정기얻어 즐거운 산행 되시길….’ 이라 씌여져 있다.
16시 30분안생달(500m)
차갓제(756.7m)에서 눈(雪) 무개 혹은 거센 바람을 이기지 못해 30여미터에 달하는 일본잇갈나무(낙엽송)들이 널브러져 뒹굴고 있는 산행로를 따라 안생달 마을 어귀에 다다르니 작은 차갓재(740m)에서 이어지는 골짜기 사이로 황장산(黃腸山 1,077.3m) 묏등바위 모습이 한 눈에 들어 온다.
오늘 산행은 겨울 날씨답지 않은 포근한 날씨속에 친구와 둘이서 암릉과 고사목들 그리고 깍아지른 듯한 절벽이 잇따르는 황장산 구간을 종주하는 즐거운 산행이었다. 특히 산행에 앞서 강추위와 폭설에 못지 않게 나를 걱정하게 만든 도솔봉 산행때의 일들이 기우(杞憂)에 지나지 않아 즐거운 산행을 할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황장산 산행을 주선한 '대자연' 팀에게는 산행시 나눠주는 산행지도를 5만분의 1지도를 카피해줬으면 하는 아쉬움을 전하며, 몸 상태가 좋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어려운 산행을 함께 한 친구 '이석춘'님과 대자연 회장님께 감사하다는 말을 전합니다.
감사합니다.*^^*
2007년 02월 05일
강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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