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치령(古峙嶺)~마당치(馬堂峙)~상월봉(上月峰)~국망봉(國望峰)~비로봉(毘盧峯)~연화봉(蓮花峰)~죽령(竹嶺) (백두대간 제12구간)
산행일자 : 2007년 01월 20 (19일 13시 대전에서 출발 무박산행)
산행장소 : 고치령~형제봉갈림길~마당치~신선봉갈림길~늦은맥이재~상월봉~국망봉~민배기재~비로봉~제1연화봉~연화봉~제2연화봉~죽령
산행모임 : 단독산행 (바위산장을 따라서 24명)
산행날씨 : 맑고 온화한 날씨(운무가 많았음)
산행거리 : 24.83km, 접속거기(좌석리~고치령) 4km, 총 : 28.83km10시간 31분
산행시간 : 09시간 25분, 접속시간 1시간 06분, 총 10시간 31분
'06년 11월 26일 황장산(黃腸山 1,077m)에 들려고 안생달 마을에 갔다가 월악산 국립공원 관리사무소 직원이 나와 경방기간 동안 입산을 통제하니 되 돌아가라는 바람에 발길을 돌려 우여곡절 끝에 저수재~도솔봉~죽령 구간을 종주했었다.
그날 이후 2개월여동안 대간마루를 밟지 못하다가 다시 대간마루를 걷는다고 생각하니 마음속에서는 잔잔한 흥분과 함께 두려움이 밀려온다.
무박산행에 도상거리도 29km에 달하는 '바람의 산'이라 잘 알려진 소백산(小白山 1,439.5m) 능선을 겨울철의 칼바람을 맞으며 종주할 생각을 하니 약간의 두려움이 밀려오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 두려움도 산행의 일부다." 고 생각하며 즐기면 된다고 생각을 바꾸니 이내 두려움은 기대감으로 다가온다.
무박산행을 하기 위해 두 끼의 도시락과 간식 그리고 소백산小白山 1,439.5m)의 차가운 칼바람과 많이 쌓여있을 눈에 대비해 평소보다 많은 준비물로 배낭 안을 가득 채우니, 더불어 내 마음은 기대감과 흥분으로 가득 찬 기분이다.
늦은 저녁식사를 하고 잠시 휴식을 취한 다음 23시에 집을 나서 851번 버스를 타고 시민회관에 도착하니 시계바늘은 23시 35분을 지나고 있다.
대간호가 도착하려면 아직 30여분의 시간적 여유가 있다고 생각되어 가까운 편의점 안으로 들어가 추위를 피해보는데, 편의점 안에는 나처럼 배낭을 맨 산행객이 한 명 더 있어, 두 명의 산행객이 산이 아닌 편의점 안을 10여분 동안 걸으며 구석구석을 탐방하고 있다.탐방객이 두 명뿐이던 편의점은 이내 10여명에 가까운 산행객들로 북적거린다. 아마도 모두들 소백산 산행을 가기위해 모인 산행객들일 것이다...
23시 10분이 되자 '대전 바위산장'이란 글귀가 씌여진 대간호가 도착해 편의점 안에 모여있던 10여명의 산행객들을 일제히 대간호에 승선한다.
대간호는 원두막에서 서너명의 산행객들을 더 승선시키고 대전나들목을 지나 고속도로를 달리기 시작하는데 대간호 안에는 23명의 남성과 1명의 여성만이 승선하여 한산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낮선 산악회를 따라나선 쳐지라 딱히 이야기를 나눌 상대도 없고해서 좌석리까지 향하는 동안 잠을 자려고 노력 해 보았으나, 오랜만의 무박산행이라서 그런지 좀처럼 적응하지 못해 잠을 이루지 못하는 사이 대간호는 어느덧 단양휴개소에 정박한다.
자그마한 단양휴개소의 공기는 겨울날씨 답지 않게 온화하다는 생각을 하며 잠시 화장실에 다녀온 다음 다시 대간호에 승선해 잠을 청한다...........쿨~쿨~쿨
03시 01분 좌석리
지난 '06년 07월 02일 선달산(仙達山. 1,236m)에서 고치령으로 내려와 좌석리까지 포장된 임도를 따라 1시간여를 더 걸어야 한다고 생각을 하며 송영래님을 비롯해 여러 회원님들과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 1톤 트럭이 다가와 "한겨레산악회에서 오신분들이 맞습니까?"라고 말하며, 회장님께서 회원님들을 배려하여 차를 보냈다고 한 일이 엇 그제 같은데 벌썰 6개월이란 세월이 흘렀다고 생각하니 세월이 유수(流水)와 같다는 말이 새삼 떠 오른다.
20일 23시에 대전에서 출항한 대간호가 죄석리에 들어설 무렵 대간호 안의 조명이 밝혀지고 대간호 안 산행객들은 저마다 산행준비를 하느라 배낭을 점검하며 스패츠(spats)와 아이젠( Eisen)을 착용하느라 분주한 모습이다.
나는 스패츠를 배낭에서 꺼내어 착용하고 아이젠은 생략하기로 한다. 평소 나는 아이젠을 즐기지 않는 편이다. 아이젠을 착용하면 지면에 닿는 발 감각이 둔해짐과 동시에 기동력이 살아나지 않기 때문이다. 오늘처럼 겨울철 야간산행이라는 점을 감아한다면 물론 착용해야 옳으나 상황을 봐서 착용하기로하고 다른 산행객들과 함께 배낭을 매고 좌석리 좌석2교가 있는 공터에 서니 엄동설한(嚴冬雪寒) 새백 3시인데도 좌석리의 날씨는 그렇게 춥다고 느껴지지 않는다.
대간호에서 하선한 산행객들을 불러모아 놓고 기념촬영을 했다. 그런데 웬 일인지 산행객들은 준비운동을 하지 않고 고치령(760m)을 향해 발길을 옮기려 한다. 나는 이 산악회는 산행 전 준비운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혼자서 4시간여 동안 대간호 안에서 뭉쳐있던 근육들을 달래기 위해 간단하게나마 발목과 무릎 그리고 허리와 목 등의 근육을 이완시켜 본다.
지난 여름 산행 후 좌석리 계곡에서 시원하게 알탕을 한 생각을 하며 곳곳에 아직 녹지 않은 눈이 쌓여있는 포장도로를 따라 고치령으로 발걸음을 옮겨가는데, 계곡에서는 여름철 물량이 풍부했던 때의 계곡물 소리보다는 약하지만 여전히 시원하게 물 흐르는 소리가 들린다.
계곡물 흐르는 소리에 맞춰 발걸음을 옮기다가 무심코 하늘을 바라보니 아니! 이게 웬 일인가...?
머리 위로 보이는 북두칠성(北斗七星) 국자에서는 금방이라도 맑은 옥수(玉水)가 쏟아질것만 같고 북두칠성을 중심으로 동 서로 가로 질러 흐르는 은하수와 수 많은 별들은 마치 손을 내밀면 손에 잡힐 듯 다가선다.
04시 07분 고치령(古峙嶺 옛고개,760m)
머리 위로 쏟아지는 은하수 불빛을 벗 삼아 1시간여 동안 콘크리트 포장 도로를 따라 힘든 발품을 팔다보니 이내 이마와 등에서는 땀이 맺히는가 쉽더니 흘러 내리기 시작한다. 이마에 흐르는 땀을 두 세번 훔치고 나니 지난 '06년 07월 02일 선달산(仙達山. 1,236m)에서 내려오며 보았던 고치령의 산신각(山神閣)과 고치령이란 이름에 걸맞게 '고추'를 달고 있는 장승이 희미한 별빛에 그 모습을 아스라이 드러낸다.
드디어 오늘 대간산행의 시작점인 소백과 태백산 사이에 있는, 이른바 양백지간(兩白之間)의 남쪽 들머리인 고치령(古峙嶺)에 선 것이다. 이 '옛 고개(古峙)' 즉 고치령에 세워져 있는 푯말에는 마구령 8.0km, 국망봉 11.1km라 씌어져 있다.
고치령에 도착한 산행객들은 저마다 배낭을 내려놓고 콘크리트 포장 도로를 걷느라 피로했던 다리쉼을 하며, 본격적인 대간산행 준비를 하느라 분주하다. 나도 물 한 모금으로 목을 축이고 어둠속에서 들머리를 찾아 그 곳에서 선두가 출발하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들머리에 모인 4~5명의 산행객들은 촘처럼 발길을 옮기려 하지 않는다. 그러던중 한 명이 제일 앞에 서 있는 산행객에게 선두에 서서 출발하라고 권하니 그 산행객은 자신은 경험이 없어 선두에 설 수 없다고 한다.
그래서 내가 "이 산악회는 선두에서 산행을 이끌어 주는 산악대장이 없습니까?"라고 물으니, 산행객중 한 분이 "이 산악회는 산행하는 이들이 저마다 알아서 종주해야 합니다." 고 대답한다.
"어떻게 이런 산악회가 대간종주를 주선 할 수 있을까." 라고 생각하며 나는 할 수 없이 선두에 서서 발걸음을 옮겨 본다.
04시 51분 형제봉갈림길(칼바위 1,032m)
고치령에서부터 이어지는 가파른 오르막 비탈을 선두에서 랜턴빛에 의지해 오르려니 주간에 산행 할 때보다 빨리 숨이 차 오는데, 산행로 곳곳에는 쌓인 눈이 빙판을 이루고 있는 곳까지 있어 그런 곳을 피해가며 발 걸음을 옮기려니 허리와 다리를 지탱하며 소모되는 힘이 배가 된다.
이마에 땀 방울이 송골송골 돋아나 맺힐무렵 863m봉우리가 가파른 오르막 비탈을 오르느라 힘들어하는 내 마음을 달래준다. 863m봉을 지나며 한동안 완만하게 이어지는 산행로 곳곳에는 암릉이 눈에 들어오고, 산행로 좌측 가장자리는 가파른 비탈을 이루며 급하게 떨어지는데 그 비탈에는 무릎까지 쌓여있는 눈이 가파른 비탈을 숨기고 있어 위험한 순간이다.
물론 주간산행이라면 위험하다고 할 수 없는 산행로지만, 오늘처럼 무월광(無月光)하의 야간산행을 작은 랜턴빛과 별 빛에 의존하며 많이 내린 눈이 산행로를 삼켜버려 그 흔적을 찾을 수 없을 때는 위험하기 짝이 없는 길이다.
아스라이 보이는 산행로 흔적을 찾으며 선두에서 걷고 있으려니 갑자기 "왜 내가 지금 선두에서 산악대장 역활을 하고 있을까...?"라는 생각이 듬과 동시에 내 발걸음은 짧은 보폭을 바삐 옮기어 걷는 잰걸음으로 바뀐다. 얼마 후 뒤 따르던 산행객들의 랜턴빛은 내게서 점점 멀어지더니 이내 시야에서 사라진다.
머리위로 쏟아지는 별빛과 가파른 좌측사면 저 아래에 펼쳐지는 마을들의 야경을 벗 삼아 완만한 산행로를 홀로 고독하게 따르다 보니 형재봉갈림길(칼바위 1,032m)이 시작되는 지점부터 높이를 점점 높이던 산행로는 급기야 힘든 발품을 요구한다. 그렇게 숨이 턱에 차고 대퇴부 근육이 경직되기 시작 할 즈음 국망봉 9.2km, 형제봉 2.8km라 씌어져 있는 푯말이 랜턴빛을 받아 검붉은 색을 뽐내며 나를 반겨 준다.
형제봉갈림길(1,032m)에서 물 한 모금으로 목을 축이고 이내 마당치를 향해 발길을 옮기려다 뒤 따르는 산행객이 있는지 살피며 걸어온 길을 돌아보니 어두운 그림자만 보일 뿐 인기척이나 랜턴빛을 찾아 볼 수 없다.
05시 07분 마당치(馬堂峙 920m)
형제봉갈림길에서 갑자기 높이를 50여미터를 나춘 산행로는 마당치 전 1,020m봉까지 완만한 경사를 이루며 남쪽으로 향하는데 산행로 우측사면은 완만한 경사에 쌓인 눈도 많지 않은 반면, 좌측사면은 강원도 지역 산들의 특징인 서고동저(西高東低) 지형이 이 곳에서도 나타나고, 그 경계에는 무릎을 지나 허리까지 달하는 많은 눈이 쌓여 있어 위험한 구간이다.
"그러면 우측사면을 따르면 되지 않겠냐." 고 생각들겠지만 우측사면에는 관목들과 잡목들이 덤불을 이루며 자라고 있어 그도 여의치가 않다. 그래서 눈이 많이 쌓여있는 기존의 산행로와 우측 완만한 사면의 경계에 해당되는 지점을 찾아 어둠을 헤치고 발 걸음을 옮겨야 한다.
완만하던 산행로는 1,020m봉을 깃점으로 가파른 내리막 비탈을 이루며 마당치로 이어지는데 내레막 비탈 곳곳에는 위험한 암릉과 빙판길이 작은 랜턴빛을 길라잡이 삼아 야간산행을 하는 나를 더욱 힘들게 하며, 많은 눈이 산행로를 삼켜버려, 없어진 산행로를 찾으며 앞으로 나아가야만 하니 좀처럼 발걸음에 가속이 붇지 않는다.
마당치(920m)는 그 이름이 말 하듯 넓은 마당 형상을 하고 있으며, 그 마당에는 수북이 쌓인 눈이 별빛을 받아 반짝이고 있다. 이곳의 푯말에는 국망봉 8.3km라 씌어져 있고 그 푯말의 방향을 따르면 산행로는 우측으로 방향을 바꾸며 가파른 오르막 비탈로 향한다.
05시 43분 1,031.6m봉
마당치(920m)에서 가파르게 고도를 높이던 오르막 비탈은 950 ~ 990m에 달하는 봉우리들을 잇따라 만들며 그 높이를 더 하더니 마침내 1,031.6m봉에 이르러서야 그 끝을 맺는다. 마당치에서 1,031.6m봉 까지는 표고차가 110여미터 밖에 나지 않지만 900m에서 1,000m에 달하는 여러게의 봉우리들이 잇따라 있으며, 눈 덮인 암릉구간이 곳곳에 산재해 있어 다름 구간보다 힘들고 어려운 구간이다.
06시 27분 연화동갈림길(1,015m)
연화폭포와 연화동으로 이어지는 갈림길에 닿을 무렵 갑자기 찾아오는 허기와 함께 대퇴부 근육이 급격하게 피로를 느끼며 통증을 호소한다. 하는 수 없이 나는 가랑잎이 수북이 쌓인 적당한 자리를 잡고 배낭에서 바나나와 초코바를 꺼내 허기를 달래기 위해 요기를 하며 걸어온 길을 돌아보니, 서 너개의 랜턴빛이 보이고 이내 서 너명이 산행객들이 나를 앞 질러 간다.
급하게 허기를 달래고 연화동갈림길(1,015m)을 지나 완만하게 이어지는 산행로를 따라 잰걸음으로 나아가니 조금 전 나를 지나쳐 가던 산행객 중 두 명의 모습이 보이는데, 그 산행객들도 허기를 느껴서인지 좀처럼 앞으로 치고 나가지 못하더니 이내 나에게 길을 내준다.
나는 지끔까지 내가 너무 빠른 걸음으로 산행을 했다는 생각에 발걸음을 조금 늦춰 두 명의 산행객들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1,100m를 넘나드는 봉우리들을 1시간 가량 걸어 신선봉갈림길(1,265m) 봉우리가 시작되는 지점을 지난다.
신선봉 갈림길이 시작되는 지점에서 1,130m봉으로 추정되는 봉우리에 올라서니 사위는 점점 밝아지고 랜턴빛이 필요없게 될 무렵 산행로를 조금 벗어나 가랑잎이 수북이 쌓여있는 곳에서 서너명의 산행객들이 아침을 먹기위해 식사 준비를 하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나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산행을 함께하던 두 명의 산행객들도 그 모습을 보고 동참하는 분위기인데, 나는 1시간여 전에 바나나와 초코바로 요기를 한 터라 그들을 그냥 지나쳐 신선봉 갈림길이 있는 봉우리로 향한다.
07시 42분 신선봉갈림길(神仙峯 1,265m)에서 일출
아침식사를 준비하는 이들을 지나쳐 20여분 동안 힘든 다리품을 팔아 신선봉(神仙峰 1,389m) 바둑판 암장이 우측 능선 너머로 머리를 내미는 지점에 도착하니, 한 산행객이 막 식사를 하고 일어서 발길을 옮기는 모습이 눈에 들어 온다. 그래서 시계들 들여다보니 시계바늘은 07시 30분을 지나고 있기에 나도 그 자리에 배낭을 내려놓고 아침 식사를 시작했다.
10여분동안에 걸처 식사를 하고 있는데 좌측 아래로 내려다 보이는 늦은맥이재(1,272m)에서는 여러 산행객들이 무엇이 그리 즐거운지 연신 웃움소리를 자아내며 떠드는 소리가 식사하는 내내 내 귀가에서 떠나지 않는다.
맛있는 식사와 뜨거운 홍삼차를 마시며 배낭을 정리하고 있는데 함백산(咸白山 1,572.3m)과 태백산(太白山 1,567m)이 솟아 있는 동녁하늘이 붉게 물들고 있다. 해가 떠 오르고 있는 것이다.....!
겨울철 온화한 날씨에 골짜기마다 운무가 무겁게 내려 앉아 있기 때문에 태백산과 함백산으로 이어지는 장쾌한 대간능선은 볼 수는 없으나, 그 능선 위로 띠를 두루고 있는 무거운 운무를 뚫고 해가 지금 막 떠 오르고 있는 것이다.
나는 얼른 배낭에서 카메라를 꺼내 나뭇가지 사이로 떠 오르는 해를 급하게 담고, 일출의 관경을 조금이라도 잘 볼 수 있는 지점을 찾다가 신선봉갈림길이 있는 봉우리를 향해 배낭을 매고 뛰어간다.....헉~헉~헉
07시 50분 소백산 일출(小白山 日出)
신선봉갈림길((神仙峯 1,265m)이 있는 봉우리에 숨을 헐떡이며 올랐으나 잡목들로 인해 일출 모습이 잘보이지 않는다. 주변을 주리번 거리다가 늦은맥이재(1,272m)로 조금 내려 선 지점에 우뚝 솟아 있는 조망 바위를 발견하고 나는 마치 고산지대의 산양(山羊)이 암장을 뛰어 오르듯 조망바위로 한 걸음에 뛰어 올라 떠오르는 해를 감상하며 카메라에 담아 본다.
추운 겨울철 답지 않게 온화한 날씨가 여러날 이어지는 바람에 운무가 무겁게 내려앉아 청명한 동쪽 하늘에서 용광로 안의 쇳물처럼 붉게 떠 오르는 해를 볼 수는 없었지만, 대간길에서 오랜만에 맞이한 일출의 감동을 가슴에 안고 조망바위에서 내려서니, '구인사'가 있는 방향을 알리는 푯말이 무릎 높이로 낮게 자리하고 있다. 그러나 그 푯말에 씌어져 있는 '구인사'란 글씨 뒤에는 '출입통제' 라고 잇따라 붉은색의 글씨가 씌어 있어 이곳에서 구인사로 향하는 산행로가 폐쇄되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07시 53분 늦은맥이재(1,272m)
눈이 허리까지 쌓여있는 늦은맥이재에 도착하니 아침식사 할 때 들리던 흥겨운 소리의 청채를 알 수 있다.
늦은맥이재에는 20여명에 이르는 산행객들이 가곡면 어의곡리 새발유원지에서 별바위를 지나 별바위골을 따라 늦은목이재에 오른 후 소백산 종주를 위해 곳곳에 삼삼오오 모여 아침식사를 하는가 하면, 배낭을 정리하고 또 한 무리는 눈밭에 작은 모닥불을 피워놓고 지나가는 나에게 모닥불에 몸이라도 녹이고 가라 말을 건넨다.
뜨거운 모닥불을 쬐며 야간산행을 하느라 굳어있느 몸을 녹이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으나 산 속에서 버너를 사용해 밥을 짓는것도 위험한 일인데, 심지어 모닥불을 피우는 것은 위험하기 짝이없고 산을 사랑하는 한 사람으로 이해하기 힘든 일이라 그들과 동참할 수는 없었다.
"산이 좋아 산에 든 사행객이라면 산행하는 동안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며 산행했으면 합니다." 고 모닥불 주위에 모인 이들에게 한 마디 해 주고 싶었으나, 그 말은 내 입 안에서만 맴돌 뿐 좀처럼 입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 그런 내 모습이 창피한 순간이다.....ㅉㅉㅉ
07시 58분 신선봉(神仙峰 1,389m) 바둑판 암장(巖嶂)
늦은맥이재에서 무릎과 허리까지 쌓여있는 눈밭으로 나 있는 산행로를 따라 가파른 오르막 비탈을 한 차레 올라서니, 신선봉과 상월봉(上月峰 1,394)이 동시에 보이는 1,300m봉 정수리 에 선다. 1,300m봉 정수리에는 집채만한 바위가 있었으나 그 바위에는 오르지 못하고 바위를 우측에 두고휘감아 돌아 좋은 조망처르 발견하고, 그 곳에서 담은 사진이다.
아래의 사진은 국망봉(國望峰 1,420.8m)이나 비로봉(毘盧峯 1,439.5m)의 정수리와는 달리 유독 뾰족하게 우뚝솟아 있는 상월봉 정수리 모습으로, 좌측으로 흘러 내린 능선은 상월불각(上月佛閣)을 지나 석천폭포골로 이어지고 그 골짜리를 따르다 보면 석천폭포가 나온다.
08시 19분 상월봉(上月峰 1,394m)에서 신선봉(神仙峰 1,389m)과 민봉(1361.7m)을 조망하며
1300m봉에서 상월봉까지는 표고 차가 100여미터 밖에 되지 않으나 수직에 가까운 오르막 비탈에 많은 눈이 쌓여있어 상월봉(上月峰 1,394m)은 정수리를 쉽게 허락하지 않는다. 그래서 대부분의 산행객들은 상월봉 정수리에 오르지 않고 상월봉 기슭 갈림길에서 국망봉으로 직접 이어지는 산행로를 따르는게 다반사다.
상월봉 정수리를 향해 걸음을 옮기다 보면 조금은 위험해 보이는 조망바위와 주목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멋진 조망처를 만나게 된다. 그 조망바위에 올라 신선봉과 민봉 그리고 지금까지 걸어온 대간능선을 바라보고 있으려니, 한 산행객이 내 뒤를 따라 조망바위에 올라 주변에 펼쳐지는 풍광을 보고 감탄사를 자아낸다.
그 산행객과 나는 조망바위에서 간단하게 수인사를 나누고 신선봉을 배경으로 서로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 주었다. 그후 그 산행객과 나는 죽령까지 내내 산행을 함께 하였다.
위 사진 아래부분 바위와 주목 너머로 하늘금을 가로지르는 능선이 신선봉(神仙峰 1,389m)에서 민봉(1361.7m)으로 흘러 내리는 능선이다. 그 옛날 신선이 바둑을 두며 거닐었다는 신선봉 정수리에는 지금도 바둑판바위가 남아 있다고 한다.
그리고 이 신선봉에서 민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을 좌측으로 따르면 9봉8문(九峰八門)으로 유명한 구인사가 나온다. '九峰八門'은 "소백산(小白山 1439.5m)의 맥이 아홉 개의 봉우리를 이루면서 그봉우리들 사이 골짜기가 여덟 개의 문으로 되어 있어서 절경을 이루고 있다." 고 하여 붙은 이름이다. 또한 불제자가 이 곳을 법문(法門)으로 오인하여 그 곳으로 오르려고 무진애를 쓴 곳이라 하여 "법월팔문(法月八門)"이라고도 전한다.
아래의 사진은 상월봉(上月峰 1,394m) 정수리에서 새벽 3시부터 5시간여 동안 어둠을 헤치고 걸어온 대간능선을 돌아 본 사진으로 쪽빛하늘에 떠다니는 구름과 대간능선 골짜기마다 무겁게 내려앉아 있는 운무 사이로 산그리메를 그리며 연 이어지는 능선들이다
08시 26분 상월봉에서 국망봉(國望峰 1,420.8m)을 바라보며
상월봉(上月峰 1,394m) 정수리는 그야말로 사위가 모두 시원하게 열려있는 훌륭한 조망처다.
정수리에서 앞으로 걸어야 할 대간능선 상의 국망봉을 조망해 본다. 위 사진에서 국망봉(國望峰 1,420.8m)은 제일 높게 보이는 우측 봉우리가 아니라 좌측으로 조금 흘러 내려가다가 사진 중간에 솟아있는 암장이 국망봉의 정수리다. 그리고 국망봉 능선 너머 아스라이 산그리메를 그리는 능선 중 우뚝 솟아있는 봉우리가 도솔봉(兜率峰 1,315.6 m)의 모습니다.
아래의 사진은 석천폭포골 하늘위로 두텁게 드리워져 있는 운무띠 위로 햇무리가 생긴 모습을 담아 보았다.
08시 34분 상월봉(上月峰 1,394m)을 돌아보며
상월봉에서의 감동을 가슴에 담고 국망봉으로 이어지는 오름을 오르다가 상월봉의 모습을 한번 더 보기위해 돌아보니 늦은맥이재에서 바라본 상월봉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의 상월봉이 멋진 기암(奇岩)을 품고 나에게 잘 가라고 손짓을 하는 듯 하다.
다시 국망봉으로 이어지는 산행로를 따르다 우뚝 솟아있는 바위 사이로 국망봉 정수리 암장이 바라다 보이고, 그 암장 위 하늘에서 구름이 만들어 내는 아름답고 재미있는 모양을 잠시 조망한 후 국망봉으로 향한다.
08시 42분 국망봉(國望峰 1,420.8m)
국망봉(國望峰 1,420.8m)에 도착하니 아침식사 전 신선봉갈림길(神仙峯 1,265m)에서 먼저 앞서가던 산행객과 상월봉(上月峰 1,394m)을 오르다 만난 산행객 이렇게 두 분이 먼저 도착해 다리쉼을 하며 국망봉 정수리에 우뚝 솟아있는 암장과 국망봉빗돌을 배경으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나는 상월봉에서 만난 산행객에게 카메라를 건네며 기념촬영을 부탁하고 국망봉빗돌과 빗돌 너머 쪽빛하늘에 펼쳐지는 아름다운 구름을 등지고 포즈를 취해 본다.
국망봉(國望峰 1,420.8m)은 충북 단양군 가곡면 어의곡리와 경북 영주시 풍기읍 삼가리의 경계를 이르고 있는 봉우리로 몇가지 전설이 전해 내려오고 잇다.
신라 마지막 왕인 56대 경순왕은 천년동안 이어오던 천년사직(千年社稷)을 군신회의(君臣會議)를 소집해 논한 결과 고려의 왕건(王建)에게 넘기고 백성들에게 속죄하는 마음으로 이름난 명산대찰(名山大刹)을 찾아 제원군 백운면 방학리에 동경저(東京邸)란 이름의 궁을 짓고 머물렀다.
한편 마의태자(麻衣太子) 왕자는 나라의 존망에는 반드시 천명이 있는데 어찌하여 충신, 의사(義士)와 함께 민심을 모아 싸우지도 않고 천년사직(千年社稷)을 하루아침에 버릴 수 있느냐며 반대했으나, 경순왕은 죄 없는 백성을 더이상 죽일 수 없다 하여 시랑(侍郞) 김봉휴(金封休)를 시켜 국서를 보내 고려에 항복했다. 마침내 신라가 고려에 병합되자, 개골산(皆骨山 금강산의 별칭)에 들어가 베옷(麻衣)을 입고 풀뿌리·나무껍질을 먹으며 여생을 마쳤다고 전한다.
그러나 단양군지와 호서읍지는 마의태자(麻衣太子)가 신라의 천년사직(千年社稷)을 회복하는데 실패하자 엄동설한에도 베옷(麻衣) 한 벌만 걸치고 망국의 한을 달래며 소백산으로 들어와 이 봉우리에 올라 멀리 옛 도읍지인 경주를 바라보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하여 국망봉(國望峰)이란 이름이 붙여졌다 전한다.
소백산맥에 솟아 있는 국망봉(國望峰 1,420.8m)은 형제봉과 비로봉그리고 연화봉과 도솔봉을 이어주는 역활을 하며, 정수리 부분 전사면은 비교적 완만하게 흘러 내린 형상을 하고 있다. 또한 동쪽과 서쪽 사면에서은 각각 낙동강과 남한강의 지류가 발원한다. 낙엽수림이 울창하게 자라고 있는 산기슭에는 사찰과 폭포 및 계곡이 많아 아름다운 경관이 자랑하며, 남 동쪽 기슭에는 부석사, 소수서원,초암사, 석륜암,석천폭포 등이 산재해 있다.
아래 사진은 국망봉에서 남쪽으로 이어지는 대간능선 위에 있는 봉우리들로 흰 눈이 정수리를 포근하게 덮혀있는 비로봉(毘盧峯 1,439.5m)과 그 너머의 연화봉(蓮花峰 1,383m) 그리고 좌측 멀리 산 그리메 상의 도솔봉(兜率峰 1,315.6 m)과 삼형제봉(三兄第峰 1,259m)을 조망하는 사이 하늘에서 펄쳐지는 구름의 향연을 한 프레임에 담은 사진이다.
08시 49분 국망봉을 돌아보며
국망봉(國望峰 1,420.8m)에서 이어지는 나무데크를 따르다가 비로봉과 초암사로 이어지는 산행로가 있는 삼거리에서 지나온 국망봉을 향해 돌아서니, 나무로 만들어진 데크길이 국망봉 정수리 암장으로 이어지데, 그 길을 마의태자(麻衣太子)가 신라의 천년사직(千年社稷) 재건하려다 실패하고 그 아픔을 달래기 위해 울며 올랐을 것을 생각하니 멋진데크길이 한 많은 눈물고개로 느껴진다.
아래 사진은 죽계구곡을 내려다 보며 담은 사진이다.
08시 52분 1326m봉에서
마의태자(麻衣太子)의 한을 담은 눈물이 설인 국망봉(國望峰 1,420.8m)에서 비로봉(毘盧峯 1,439.5m)까지의 거리는 3km밖에 되지 않지만, 비로봉으로 향하는 산행로에는 멋진 기암괴석과 주목 그리고 1,300m를 넘나드는 서 너개의 봉우리를 오르로 내려야 한다. 특히 암릉으로 이루어진 위험한 산행로가 곳곳에 있어 조심하며 발길을 옮겨야 하는데 다행인 것은 산행로는 위험한 암장들을 대부분 우회해서 형성되어 있다.
비로봉을 향해 발길을 옮기다가 정수리에 흰 눈이 수북이 쌓여 마치 5,000m가 넘는 고산이나 히말라야의 만년설(萬年雪)을 보는 듯한 비로봉정수리의 모습은 오늘 산행의 백미(白眉)라 하겠다. 그리고 비로봉의 하얀 정수리 위 하늘에서 시시각가 변화무쌍(變化無雙)하게 펼쳐지는 운무의 향연 또한 빼놀 수 없는 볼거리 중 하나인데, 그 모습이 사진으로는 다 표현되지 않는게 아쉬운 순간이다.
09시 23분 민배기재(1,410m)
민배기재(1,410m)에서 고산의 만년설(萬年雪)을 연상케 하는 비로봉정수리의 흰 눈을 마지막으로 바라보며 비로봉으로 이어지는 산행로를 따르는데, 지금까지는 한산하던 산행로가 죽령, 희방사, 비로사, 어의곡리 등에서 소백산의 눈꽃을 즐기러 올라 온 산행객들로 분비기 시작한다.
민배기재에서 비로봉으로 이어지는 가파른비탈에 설치 되어 있는 데크 위쪽에서 민배기재로 많은 산행객들이 잇따라 내려서고 있어 데크를 오르는 나는 연신 인사를 나누며 조심해서 많은 눈이 쌓여있는 테크를 올라야만 했다.
09시 35분 어의곡리 갈림길
많은 산행객들을 헤치며 민배게재(1,410m)에서 비로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에 가쁜 숨을 몰아쉬며 올라서니, 제일 먼저 어의곡리로 이어지는 데크가 눈에 들어온다. 이 곳에서 어의곡리 새발유원지 까지는 4.7km의 거리로 내려가는데는 1시간30분, 올라오는데는 2시간정도가 소요 된다.
어의곡리로 향하는 데크에서 눈을 돌려 지나온 대간능선을 바라보니 1,326m봉과 국망봉(國望峰 1,420.8m) 그리고 좌측의 신선봉(神仙峰 1,389m) 사이 늦은맥이재(1,272m) 너머로 형재봉이 보이고 그 너머 운무를 뚫고 태백산(太白山 1,567m) 능선이 아스라이 보인다.
다시 남쪽으로 눈을 돌리니 3개의 연화봉(蓮花峰 1,383m)과 천문대 그리고 죽령 너머로 도솔봉(兜率峰 1,315.6 m)과 삼형제봉(三兄第峰 1,259m)이 눈에 들어 오는데, 장쾌하게 뻣어 나가는 대간능선이 마치 용이 승천하려고 꿈틀대는 듯하다.
09시 38분 비로봉(1,439.4m)으로 이어지는 데크
지나온 대간능선과 앞으로 걸어야 할 봉우리들을 조망하고 비로봉(毘盧峯 1,439.5m)정수리로 발길을 옮기려고 돌아서서 비로봉을 바라보니 정수리로 이어지는 나무데크가 끝 없이 이어져 천상(天上)에 닿을 것 처럼 뻣어 있다. 끝이 없을 것 같은 테크를 바라보고 있노라니 갑자기 "지금 껏 살아 온 인생과 살아 갈 인생길이 저러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며, 발이 무거워지고 등에 매고 있는 배낭이 짓누르는 듯하더니 양어깨가 축 늘어지는 기분이다.
그렇게 1분여를 마무 생각 없이 비로봉으로 이어지는 인생길을 바라보다가 문득 나무데크 가장자리에 앉아 배낭과 무거워보이는 카메라를 옆에 내려놓고 다리쉼을 하며 국망봉쪽을 응시하는 산행객을 발견했다.
나는 그 산행객에게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고 이사를 건네고 그 분을 조금 지난 곳에 나역시 나무데크 계단에 앉아 국망봉(國望峰 1,420.8m)쪽과 비로봉 정수리를 응시하며 우리 인생길을 닮은 듯한 테크를 카메라에 담으려니, 뒤에 앉아있던 산행객이 "그 모습 카메라에 담으면 참 보기 좋습니다." 고 말하며 내 카메라를 건네 달라 하시더니 인생길을 닮은 듯한 테크와 내 육체를 하나로 만들어 주신다.
아래 두 장의 사진이 위에서 말한 산행객께서 담아 준 사진이다.
09시 44분 비로봉(毘盧峯 1,439.5m)
인생길을 걸어 마침내 소백산의 주봉인 비로봉정수리에 서니 50여명에 이르는 산행객 중에 상월봉에서 만나 국망봉까지 함께 산행을 한 산행객이 나를 알아보고 반갑게 맞아 준다. 국망봉을 지나 1,326m봉까지는 함께 산행을 했으나, 1,300m를 넘나드는 서 너개의 봉우리를 오를고 내릴 때 그 분은 걸음이 얼마나 빠르던지 이내 내 시야에서 살아지고, 그 분의 모습은 한참 후 민배기재(1,410m) 전 1,290m봉정수리에 내가 올랐을 때 비로봉으로 이어지는 데크를 오르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 산행객과 나는 비로봉 정수리에서 빗돌과 푯말을 배경으로 서로의 모습을 각자 카메라에 담아주고, 약간의 간식을 나누며, 오늘 따라 변화무쌍하게 변하는 주변 하늘의 구름과 운무로 만들어진 띠, 그리고 국망봉(國望峰 1,420.8m) 너머로 아스라이 보이는 함백산(咸白山 1,572.9m)의 안테나와 태백산(太白山 1,567m)의 멋진 암장을 바라보며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소백산(小白山)은 여러개의 유명한 봉우리들이 모여 만들어진 산인데 그 가운데 제일봉은 바로 비로봉(毘盧峯 1,439.5m)이라 할 수 있다. 비로봉 정수리를 알리는 빗돌 앞면에는 '小白山 毘盧峯' 이란 한자가 씌어져 있는데 '毘盧峯' 은 한자로는 뜻이 없고 불교 용어인 '비로자나불(Vairocana)'을 의미하여 산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에 통상적으로 붙이는 이름이라 하겠다. 한편 빗돌 뒷면에는 조선 초기의 문인 서거정(徐居正) 시인의 "소백산(小白山)" 이란 시가 씌여져 있다.
小白山連太白山 (소백산연태백산) 태백산에 이어진 소백산
逶迤百里揷雲間 (위이백리삽운간) 백리에 구불구불 구름 사이 솟았네
分明劃盡東南界 (분명획진동남계) 뚜렷이 동남의 경계를 그어
地設天成鬼破慳 (지설천성귀파간) 하늘 땅이 만든 형국 억척일세
"위 시를 다시 해석해 보면 이런 내용이 아닐까 생각한다."
*** 태백산에 이어진 소백산능선 백리가 굽이굽이치며 구름 속에 우뚝 솟아, 뚜렷이 획을 그어 동남으로 나누니, 땅에 놓고 하늘이 만든 소백산 귀신도 깨뜨리기 아까워하네. ***
10시 19분 소백산의주목군락(小白山의朱木群落)지
소백산주목 관리 감시초소를 바라보며 제1연화봉으로 발길을 옮기려다 민배기재에서 비로봉정수리로 막 올라서는 3명의 일행을 발견하고 반갑게 인사를 하니, 그 분들은 각자의 배낭에서 떡과 과일 등을 꺼내 놓고 함께 먹자고 권한다. 그래서 상월봉부터 죽 함께 산행한 산행객과 나는 도로 비로봉 푯말 옆 벤치에 배낭을 벗어 놓고 주전부리로 나는 바나나와 감을 꺼내 놓았다.
나중에 도착한 산행객 중에 한 분이 맛있는 도토리묵 무침을 먹어보라 권하더니 배낭에서 정상주라며 전통주 한 병을 꺼내 비로봉 정수리에 모인 5명의 일행들에게 차례로 정상주를 권한다.
정상주는 나이가 많은 순으로 돌아가는데 나와 산행을 죽 함께 한 산행객은 산에서는 술을 마시지 않는다고 사양을 한다. "나 역시 평소에도 술을 즐기지 않지만, 특히 산행을 할 때는 절대 술을 마시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정상주를 준비한 산행객이 간곡히 권하는 바람에 정상주를 사양하던 분과 나는 어쩔 수 없이 한 잔씩을 받아 마셨다.
"산행을 할때 술을 지참하거나 마시는 행동은 자칫 안전사고를 부를 수 있기에 나는 산행시 절대 정상주를 마시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산속에서 조난을 당하거나 쥐가 오를 경우, 체온과 혈당을 높이려고 배낭에 필수적으로 넣고 다니는 "약주(藥酒 : 맑은 술 또는 술을 점잖게 이르는 말이지만 지금 말하려 하는 '藥酒' 는 구급용 술을 이르는 말이다.)" 는 꼭 필요하다 하겠지만......"
비로봉에서 연화봉으로 발길을 옮기기 전 '소백산주목 관리 초소'가 있는 곳으로 내려가는 산행로의 나무데크와 관리초소를 카메라에 담아본다.
"살아서 천년, 죽어서 천년" 을 산다는 주목은 해발 1,439m 소백산 비로봉 북서쪽 산비탈이 완만한 곳에 수령 500여년이 넘는 주목 3,400여 그루가 군락을 지어 자라고 있다. 천연기념물 제244호로 지정된 소백산주목(小白山朱木)은 그 수형이 기이하게 발달해 있는 것이 특징인데, 줄기가 꼬이고 곁가지는 아래 위로 굴곡해서 신기한 모습을 자아내고 있다.
이러한 수형을 가지게 된 이유는 생각컨데 강한 바람과 많은 적설량에 있는 듯하다. 준열한 환경에 견디어내기 위한 적응력이 이런 수형을 만들었다고 여겨진다. 주목뿐만 아니라 다른 수종에 있어서도 비슷한 수형을 찾아 볼 수 있다. 주목군락 중간쯤 되는 곳에 샘물이 솟아나고 이것은 계류의 한 시발점이 되고 있는데 주목이 자라는 곳은 비교적 토양 습도가 높은 편이다.
1992년 8월에 샘물주변의 주목군락에 대해서 조사를 실시한 바 있는데(조사시료수 85그루) 평균수고 3.9m 이때의 표준편차 1.9m, 평균흉고 직경은 45㎝이고 표준편차는 24㎝가 계산되었다.
주목군락에 함께 나타나고 있는 수종에는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매발톱, 당단풍나무, 백당나무, 층층나무, 시닥나무, 귀퉁나무, 목장나무, 벚나무, 붉은병꽃 함박꽃나무, 마가목 딱총나무, 나래회나무, 개암나무, 미역줄나무, 신갈나무등이 나있고 땅나리 물봉선 바디나물 등의 초본이 함께 자라고 있는 것이 주목되고 있다. 능선부에는 모데미풀이 자라고 있는 것이 발견되어 소중한 학술적 가치가 인정되고 있는 곳이다.
10시 38분 비로봉을 지나 1,409m 대간분기봉에서
비로봉에서 내리막 데크를 내려선 후 주목과리초소를 우측에 두고 오르막 비탈을 한동안 오르니 1,409m의 대간분기봉이 나온다. 그 대간분기봉에서 연화봉을 향해 발길을 옮기려다 연화3봉과 소백산천문대 그리고 중계탑이 한 눈에 들오는 멋진 조망바위가 있어 그 조망바위에서 앞으로 걸어가야 할 대간능선을 등지고 포즈를 취해본다.
산행로는 위에 보이는 조망바위를 좌측으로 휘감아 돌아 가파른 비탈을 이루며 잘룩이로 내려선 다음 1,395m봉과 삼각점이 있는 1,382m봉을 오르고 내린 후 제1연화봉을 오르기 위해 1,340m안부에서 잠시 자세를 낮추어 숨을 고른다.
10시 59분 제1연화봉(蓮花峰 1,394m)
1,390m를 넘나드는 여러개의 봉우리를 넘고, 1,340m 안부에서부터 힘든 다리품을 팔아 제1연화봉(蓮花峰 1,394m)에 오르니 겨울철 특히 바람이 만들어 놓은 산이라하여 '바람의 산' 이란 별칭이 붙은 소백산에 걸맞지 않게 이마에는 송골송골 땀 방울이 맺히고, 들줄기에서는 한 줄기 땀이 흘러 내리는 것이 마치 보춘화(報春花)가 만발한 춘삼월(春三月)을 연상케 한다.
나는 먼저 배낭을 벗어 제1연화봉 푯말에 기대 세워놓고 또한 자켓 벗어 배낭에 넣은 다음 시원한 물 한 모금을 마시며 땀을 식히고 있는데, 어디선가 날아온 작은 새 한 마리가 연화봉 주위를 맴돌고 있다. 그래서 작은새의 모습을 어렵사리 카메라에 담고 상월봉(上月峰 1,394m) 에서 만난 산행객과 산에서 볼 수있는 야생화와 약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데 그 산행객은 평소 약초에 대해 관심이 많았으며 약초산행을 하고 쉽다고 말한다.
약초에 관한 이야기와 야생화에 관한 이야기를 10여분 동안 재미있게 나누고 있는 사이 국망봉(國望峰 1,420.8m)에서 만난 나이가 지긋한 분이 제1연화봉을 향해 오르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11시 40분 연화봉(蓮花峰 1,383m)으로 이어지는 갈림길
상월봉과 국망봉에서 만난 두 명의 산행객과 나, 이렇게 세 사람은 제1연화봉(1,394m)에서 잠시 다리쉼을 하고 연화봉을 향해 발길을 옮기려다 산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광경을 목격하고 한바탕 웃었다. 제1연화봉에서 내려서는 데크 중간에는 긴 데크를 오르다가 잠시 다리쉼을 하며 주변 풍광을 조망 할 수 있는 1평가량의 쉼터가 있다. 그 쉼터에서는 한 남성분이 두 명의 여성분 앞에서 팔굽혀펴기( push-ups )를 하고 있는게 아니가.....! 그 광경을 보고 나는 "아마도 산행을 하다보니 다리운동량에 비해 상체 운동이 부족했던가 봅니다." 고 말하며 또 한 번 웃어 본다..... ㅎㅎㅎ
두 명의 산행객과 나는 연화봉(蓮花峰 1,383m)을 향해 1,320m봉과 1,290m봉 그리고 1,280m봉을 차례로 넘으며 오랜 만남을 가졌던 사람들처럼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한편 연화봉이 가까워 질수록 연화봉쪽에서 우리를 향해 걸어오는 산행객들이 점점 늘어나 발길을 옮기다 가끔 산행로 가장자리로 비켜서서 길을 내 주다 보니 걸음은 자꾸만 늦여진다.
늘어나는 산행객들은 1,260m 안부에서 연화봉으로 향하는 오르막비탈을 오를 때 절정을 이루고 산행로 곳곳에서는 20여명이 넘는 산행객들이 한 곳에 모여 모처럼 많이 쌓인 눈을 반기며 눈싸움을 하는가 하면, 눈을 하늘을 향해 흩뿌리며 그 모습을 배경삼아 기념촬영을 하는 모습들이 참 보기 좋다.
한편 연화봉과 소백산천문대 갈림길이 시작되기 조금 전 비탈에서는 10여명의 산행객들이 어디서 준비했나 일명 '비료포대'를 엉덩이 밑에 깔고 앉아 우리 일행이 지나기만 기다린다. "대간산행이라는 특성상 그들의 다음 모습은 보지 못했으나, 아마도 그들은 동심의 세계로 돌아가 신나는 오후 한 때를 만끽했을 것이다."
연화봉은 높이 1,383m의 아고산대 지역으로 수 많은 야생화와 희귀식물인 왜솜다리(에델바이스)가 자생하며 매년 5~6월이면 연분홍 철쭉이 만개하여 장관을 이루는 등 '천상의 화원' 으로 물리고 있다. 매년 5~6월이면 소백산 특유의 은은한 분홍색을 가진 철쭉꽃이 온 산을 덮는다. 가끔 사람들은 철쭉과 진달레를 혼돈 하기도 하는데, 진달레는 꽃이 잎보다 먼저 피는 반면에 철쭉은 잎과 꽃이 동시에 피는 차이가 있다. 또한 철쭉꽃은 독성이 있고 잎이 둥굴며 진달레는 꽃잎 뒷면에 반점이 있다.
연화봉을 '아고산대' 지역이라 하는데, 아고산지대란 해발고도가 비교적 높은 지역 중 강한 바람과 비가 많고, 기온이 낮으며 맑은 날이 적어서, 나무의 키가 4`5m이산 자라지 못하는 특유의 식생을 보이는 곳을 말한다. 고백산의 아고산대는 해발 1,300m 이상부터 분포하고 있으며 뛰어난 견관과 계절마다 피고 지는 아름다운 야생화로 '한국의 알프스' 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다. 소백산 아고산대 즉 연화봉을 주변으로 하여 둥근이질풀, 모데미풀, 산구절초, 왜솜다리,삼부추, 원추리, 칼잎용담, 정영엉겅퀴, 함박꽃나무 등이 자생하고 있다.
소백산천문대는 61cm반사망원경의 가동과 함께 한국 현대 천문학의 서막을 연 곳으로서 식상성과 맥동변광성 측광연구의 산실이었을 뿐 아니라, 사진관측과 광전관측, CCD 정밀측광에 이르는 한국 광학천문학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소백산천문대는 지난 1993년부터 자동 차등측광 시스템을 자체개발하여 사용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미국, 독일, 스페인, 이탈리아, 호주, 일본 등과 함께 식쌍성과 맥동변광성은 물론, 변광은하 감시에 관한 국제공동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또한 소백산 천문대는 우리나라에서 청명일수가 약 80일로 가장 많다. 이곳은 순수한 연구관측의 목적 외에도 일반인들의 과학에 관한 이해의 폭을 넓히기 위해서 13:00~16:00까지 미리 예약한 개인 및 단체에 한하여 개방을 하고 있다.
12시 00분 제2연화봉을 바라보며
소백산천문대가 있는 1,320m봉에서 제2연화봉(1,357.3m)까지는 콘크리트 포장도로가 이어진다.
소백산 천문대와 첨성대를 형상화 한 상징물을 좌측 언덕위에 두고 휘돌며 내려서는 임도는 1,230m 안부까지 이어지는데 제설작업을 한 임도에는 아직도 눈이 쌓여 있어 조심조심 발길을 옮겨야만 했다. "물론 아이젠( Eisen)을 착용하지 않은 탓도 있을 것이다."
1,230m 안부에서 1,144m 전망대가 있는 곳까지의 산행로는 꿈틀대는 뱀 모습의 비탈길을 만들며 이어진다. 오늘 산행의 마지막 오르막 비탈이라 생각되어 다리에 힘을 실어보지만 쌓여있는 눈이 곳곳에 빙판을 이루어 옮기는 발걸음이 가볍지만은 않다.
12시 11분 1,144m 전망대에 서다
제2연화봉(1,357.3m)을 지나 1,144m 전망대에 서니 지금까지 걸어온 연화봉과 비로봉이 한 눈에 드어와 그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 3명의 일행은 저마다 배낭에서 커피와 과일 그리고 찹쌀떡 등을 꺼내놓고 점심을 대신한다. "물론 점심으로 준비해온 도시락은 배낭안에 있었으나, 이 곳까지 오는 도중에 간간이 주전부리를 했더니 모두 점심 생각이 없다고 했다."
우리 일행이 1,144m 전망대에 닿았을 때만해도 전망대에는 10여명 남짓한 산행객들 뿐이었는데, 간식을 머고 있을 때 한 무리의 젊은 산행객 일행들이 전망대(1,440m)로 모여드는가 쉽더니, 10여명으로 무리를 이룬 산행객들이 전망대와 전망대 앞 공터에 잇따라 모여들어 북새통을 이룬다.
새 옷과 등산화를 착용하고 배낭은 트랙킹용 배낭을 매거나 아니면 매지 않은 그들의 차림새로 미루어 짐작컨데, 어느 회사에서 신입사원 연수과정으로 소백산 산행을 계획한 듯 쉽다.
13시 25분 탄방지원센터
1,144m 전망대에서 더 오래 머물며 주변 풍광을 조망할 수도 있었으나 수 많은 산행객들이 몰려드는 바람에 연화봉(蓮花峰 1,383m)과 비로봉(毘盧峯 1,439.5m)을 한 번 더 바라보고 죽령을 향해 발길을 옮긴다. 1시간 20여분동안 세 명의 일행은 가파른 내리막 콘크리트 비탈에 쌓여있는 눈에 미끄러 지지 않으려 조심조심 걸으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주고 받다보니 어느덧 도솔봉(兜率峰 1,315.6 m)과 삼형제봉(三兄第峰 1,259m)이 손에 닿을 듯 다가선다.
오늘 산행의 종착역인 죽령 탄방지원센터에 다다르니 한 여직원이 나와 반갑게 인사를 하며 우리 일행을 맞이해 준다. 그 여성직원은 정중하게 양해를 구한 다음 "잠시 시간이 허락하신다면 설문지를 작성해 주실 수 있습니까?" 라고 말을 건넨다.
세 명의 일행과 나중에 경남 진해에서 왔다는 산행객이 합류해 설문지를 작성하는 동안 여직원은 따스한 커피를 준비해주며 앞으로 국립공원관리공단이 새롭게 나갈 계획들을 자세히 설명해 준다. 또한 설문에 응하고 탄방지원센터를 떠날 때 소백산 탐방지도와 국립공원 팸플릿(pamphlet)을 건네며 친절하게 인사를 건네는 것도 잊지 않는다.
"나는 설문서를 작성하며 죽령에서 연화봉까지 이어지는 콘크리트 도로 옆에 산행객들을 위해 산행로를 만들어 줄 것을 건의 했다."
'국립공원은(國立公園)'우리나라의 자연생태계나 자연 및 문화경관을 대표하는 지역' 으로서, 이 지역의 보호와 지속가능한 이용을 위해 국가가 지정, 관리하는 곳이다.
1967년 지리산을 최초로 지정한 이후 현재 20개소가 지정되어 잇으며, 국토 육상면적의 3.7%가 보호받고 있다. 우리나라 국립공원에는 한라산, 경주국립공원, 가야산, 계룡산, 내장산, 다도해해상, 덕유산, 변산반도, 북한산, 설악산, 소백산, 속리산, 오대산, 월악산, 월출산, 주왕산, 지리산, 치악산, 태안해안, 한려해상 등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18번째로 지정된 소백산국립공원은 한반도의 등뼈와도 같은 태백산맥의 줄기와 서남쪽으로 힘차게 뻗어 내린 소백산맥에 위치하고 있다. 주봉인 비로봉을 비롯하여 많은 영봉들이 어울려 웅장하면서도 부드러운 산세러 수려한 경관을 보여주며 봄에는 특유의 엷은 분홍색의 철쭉이 만개하고, 가을에는 흩날리는 억새꽃이 만발하며, 겨울에는 온 산을 뒤덮는 눈꽃과 상고대가 설국을 만들어 자완을 연출하는 산이다.
13시 32분 죽령(竹嶺 700m)
마침내 죽령(竹嶺 700m)에 도착하니 주차장에는 서 너대의 버스와 십 여대가 넘는 승용차가 주차해 있으며 그 차들과 토산품을 파는 가계를 오가는 산행객들이 한가롭게 거니는가 하면 주차장 가장자리에서 해바라기를 하는 모습이 마치 따스한 봄날 망중한(忙中閑)을 즐기 듯하다.
오늘 산행은 '바람의 산' 이란 별칭을 가진 소백산(小白山 1,439.5m) 산행이라서 바람과 엄동설한 추위에 대비를 많이 했지만 소백 산신령님이 나를 어여삐 여기셨나 기온은 영상을 유지했고 바람은 봄바람을 연상케 할만큼 따스해 더 없이 즐거운 산행을 할 수 있었다.
또한 낮선 산악회를 따라 산행을 하다가 멋진 친구를 사귀어 좋은 이야기를 나누며 산행을 함께 할 수 있어 무척이나 행복했다.
"함께 산행하며 좋은 이야기를 나누고, 또한 멋진 사진도 담아 준 친구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며........*^^*
죽령(竹嶺 700m)은 신라 제8대 아달라이사금 5년(158)에 열린 길로 하늘재(525m)에 이어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고갯길이다. 경북 내륙과 충주 일대를 잇는 고개로 상당히 바쁜 고개였으나, 지금은 그 아래로 터널이 뚫려 중앙고속도로가 달리고 있다.
죽령은 도솔봉(兜率峰 1,314m),연화봉(蓮花峰 1,394m),국망봉(國望峰 1,421m) 등 높이 1,400m 내외의 높은 봉우리들이 이어져 있는 험한 지세 때문에 조선시대부터 조령과 더불어 영풍~단양 간의 주요교통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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