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 종주기

저수령(低首嶺)~촛대봉~싸리재~묘적봉(妙積峰)~도솔봉(兜率峰)~삼형제봉(三兄第峰)~죽령(竹嶺) (백두대간 제13구간)

작은岳馬 2006. 11. 28. 09:58

 

저수령(低首嶺)~촛대봉~싸리재~묘적봉(妙積峰)~도솔봉(兜率峰)~삼형제봉(三兄第峰)~죽령(竹嶺)  (백두대간 제13구간)

 

 산행일자 : 2006년 11월 26일

 

산행장소 : 저수령~촛대봉~투구봉~시루봉~1,059봉(전망바위)~싸리재~흙목산~980봉(전망바위)~뱀재~솔봉~모싯골갈림길~묘적령~1,080봉(전망바위)~묘적봉~도솔봉~삼형재봉~1,288봉(대간분기봉)~죽령

 

 산행모임 : 단독산행(대자연산악회 따라서)

 

산행날씨 : 흐리고 비

 

산행시간 : 07시간 34분 (후미 : 09시간 40분)

 

산행거리 : 20.18km

 

내가 몸담고 있는 산악회에서 2차 백두대간 완주 기념행사를 치른지 1주일이 지났지만 나는 아직도 더 걸어야 할 구간이 남아있기에 오늘은 "대자연"이란 산악회를 따라 대간길에 오르기 위해 롯데백화점 앞에 도착하니 먼저 도착한 친구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

대간호는 06시 43분에 백화점 앞에 도착하여 시민회관과 원두막 등에서 약속시간보다 늦게 도착한 회원들을 기다린 후 태우고 예정시간 보다 10여분 늦은 시간에 대전나들목을 지나 경부고속도로를 달린다.

오창휴게소에 도착하기 전 대자연산악회 회장님이 나눠 준 오늘 산행지도를 받아 들고 나는 깜짝 놀랐다.

대자연산악회에서 나눠 준 산행지도는 등고선이나 지명 그리고 위험구간이나 갈림길 등이 많이 빠져 있는 너무나 형편없는 지도로 그 산행지도를 가지고는 대간마루금을 따라 걷기에는 너무나 부족한 점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대간호 안에서 회장님이 오늘 산행시 주의할 점이나 주의를 기울려야 할 지점등을 말로 설명해 줘서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며 시계를 보니 벌써 시계바늘은 09시를 넘어서고 있다.

 

대간호가 유난히 천천히 항해 한다고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며, 출발부터 늦은 시간에 대전에서 출발했고 이렇게 늦장을 부리며 항해 하다가는 안생달에 도착하면 10시가 넘겠다고 걱정을 하는 사이 어느덧 대간호는 이화령을 지난다.

이화령을 지난 대간호는 하늘재와 차갓재로 갈라지는 갈림길이 있는 산북면 갈평리에서 방향을 급하게 우측(동쪽)으로 틀어 부리기재로 오를 수 있는 증평리의 밖마을을 지나 생달리 삼거리에서 촤측(북쪽)으로 방향을 다시 바꿔 황장산이 올려다 보이는 안생달에 닿는다.

 

 

09시 59분 안생달 양조장

 

지난 01월 15일 하늘재~포암산~대미산~작은차갓재 구간 산행을 마치고 이 곳 안생달의 양조장에서 맛있는 김치찌개를 곁들여 막걸리로 하산주를 마시던 생각이 엊그제 갔은데 벌써 10개월이란 시간이 흘렀다고 생각하니 새삼 시간이 빠르다는 것을 실감한다.

 

대간호가 안생달에 다다르기 전 회장님은 산행하기 앞서 기념촬영을 한 후 산행 할 터이니 대간호에서 하선 하자 마자 기념촬영부터 하자고 한다.

09시 59분 대간호가 안생달의 양조장 마당에 다다르니 그 곳에는 우리 보다 먼저 도착한 대간호가 두 척이나 정박하고 있다.

한 척의 대간호는 저수령에서 황장산을 넘어 차갓재로 하산하는 대간꾼들을 기다리는 중이고 또 한 척의 대간호에서 하선한 대간꾼들은 이제 막 배낭을 매고 산에 들려고 하는 중이었다.

그런데 주변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고 느끼던 차에 한 회원이 대간호에서 하선하는 회원들을 막아서며 도로 대간호에 승선하라고 한다.

 

대간호는 다시 선수를 오던길로 돌려 항해를 시작하고 회장님은 지금 안생달 마을에 월악산 관리사무소 에서 나온 직원들이 겨울철 산불경방기간 중에 입산하려는 산행객들을 막아서고 있으며, 저수령에서 안생달로 넘어 오는 산행객들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라  어쩔 수 없이 저수령으로 이동하여 그 곳의 상황을 본 후 차후 산행계획을 다시 세워야 한다고 한다.

 

생달리를 지난 대간호가 동노면의 벌재를 넘어 설 때 우리보다 앞서 항해하던 대간호는 벌재에서 산행객들을 하선시키고 하선한 산행객들은 준비운동도 없이 저마다 배낭을 매고 잰걸음으로 산기슭으로 이어지는 대간마루금을 찾아 이내 모습을 감춘다.

 

 

 

11시 05분 저수령(低首嶺 850m)

 

저수령(低首嶺 850m)으로 향하는 대간호 안에서 오늘 산행하기로 예정되 있던 차갓재~저수령 구간 종주를 철회하고 저수령~도솔봉~죽령 구간을 종주하기로 산행에 함께하는 회원님들과는 아무런 의논도 없이 회장님은 결정하고 발표한다.

 

"황장산구간 보다 도솔봉구간은 산행거리가 길고 암릉과 암장들이 많아  11시가 넘어서고 있는 시점에서 산에 들면 아무리 빠른 걸음으로 종주한다고 해도 후미가 죽령으로 하산하려면 아마 21시는 되어야만 할 터인데... 또한 오늘 황장산 구간을 땜방하려고 오늘 산행에 함께한 회원분들은 어떻게 할 것이며, 기상청에서 오늘 비가 내린다고 예보 되어 있는 상황에다 동절기라 17시부터 4시간 가량을 무월광(無月光) 하에 야간산행을 해야만 할 것인데 과연 렌턴을 준비하고 다니는 회원은 몇이나 될 것인가." 라는 의구심이 생기며 아쉬운 순간이다.

 

어느덧 대간호가 저수령(850m)에 도착하니 회장님을 비롯해 몇몇 회원들이 오늘 산행에 함께하는 산행객들을 아무런 준비운동도 없이 급히 촛대봉으로 이어지는 들머리로 쫓아 올린다.

그래도 나는 저수령의 모습을 담아야만 하기에 걸음을 옮기며 카메라 셔터를 눌러본다.

 

 

11시 27분 촛대봉( 1,080.6m)

 

저수령(850)에서 잰걸음으로 낙엽송(일본잇갈나무)과 떡갈나무가 적절히 섞긴 오르막비탈에 안개비를 맞은 촉촉한 가랑잎이 수북이 쌓여 있는 산행로를 따라 20여분동안 발품을 팔자  촛대봉(1,080.6m)의 정상빗돌이 다가 선다.

촛대봉으로 오르는 20여분이란 시간은 허벅지의 근육과 거친 호흡이 산행에 적응하기에 적당한 거리로 이마에서 땀이 흐르기 시작한다.

촛대봉 정수리에서 몸을 돌려 지나온 대간마루를 살피자 저수령으로 허리를 낮춘 운수봉 산기슭의 소백산관광 목장이 운무에 쌓여 고즈넉히 자리하고 있는 모습이 한 폭의 수묵화처럼 눈에 들어온다.

 

다시 몸을 돌려 투구봉(1,076.5m)쪽으로 눈을 돌리자 어디선가 하얀 운무가 몰려와 투구봉 정수리를 집어 삼키고 있다.

 

 

 

11시 34분 투구봉(1,076.5m)

 

촛대봉(1,080.6m)에서 산행로 가장자리에 내 키보다 더 크게 자란 싸리나무 군락지를 10여분간 오르니 투구봉(1,076.5m)이 반기는데 앞서 가는 회원님들은 투구봉 정수리를 오르지 않고 좌측으로 비켜지나는 산행로를 따라 시루봉(1,116m)으로 발걸음을 바삐 옮긴다.

 

흐린 날씨에 안개만 아니라면 촛대봉부터는 북쪽으로 시야가 열려 소백산의 장쾌한 능선과 봉우리들을 바라보며 산행을 할 수 있을 텐데... 지금 우리 주위를 떠돌고 있는 이 운무도 아마 해발 500m 아래에서 올려다 보면 구름으로 보일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지금 구름속, 아니 구름위를 걷고 있는 것이다." 라고 마음속으로 위안응 가져본다.

평소 촛대봉에 서면 아름다운 풍광을 조망할 수 있겠으나, 오늘은 흐린날씨에 운무가 짙게 깔려 그 풍광을 볼 수 없음을 아쉬워 하며 발 걸음을 시루봉으로 향한다.

 

 

 

 

12시 16분 배재(950m)

 

투구봉(1,076.5m)에서 떡갈나무가 산행로 가장자리에 잘 자라고 있어 가랑잎이 수북이 쌓인 산행로를 따라 10여분 걸으니 이내 시루봉(1,116m)이 나온다.

시루봉 정수리에는 정수리를 알리는 빗돌이나 푯말은 찾아볼 수 없고, 다만 어느 산악회에서 "시루봉"이라 써서 나무에 메달아 놓은 이정표가 전부이다.

시루봉에서 배재로 내려서는 산행로는 매우 가파른 비탈길로 이루어져 있으며 특이한 점은 대간능선을 기준으로 좌측(북쪽)으로는 떡갈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우측(남쪽)으로는 잣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자라는 상반되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는 재미난 구간이다.

 

 

12시 26분 1,059m봉 전망바위에서

 

배재(950m)를 뒤로 하고 10여분간 가파른 오르막 비탈을 오르기 위해 발품을 팔아 1,059m봉의 전망바위에 오르니 내 마음을 답답하게 하던 운무가 잠시 사그러들고 단양온천이 있는 단양군 대강면 남조리 일대가 내려다 보인다.

 

위 사진이 오늘 산행하는 중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조망할 수 있는 풍광이 될 줄이야...ㅠㅠㅠ

 

눈을 돌려 앞으로 올라야 할 도솔봉(兜率峰 1,315.6m)을 바라 보니 도솔봉 정수리의 멋들어진 암장(巖嶂)은 운무에 쌓여 보이지 않고 다만 그 앞의 솔봉(1,102.8m)의 정수리만 아스라이 눈에 들어온다.

 

 

 

지나온 촛대봉과 시루봉을 바라 보며....

 

 

12시 37분 싸리재(910m)

 

1,059m봉에서 운무에 쌓여 잘 보이지 않는 도솔봉(1,315.6m)을 바라보며 가파른 내리막 비탈을 내려서는데 지금까지 내가 마음속으로 우려했던 일이 벌어지고 만다.

그동안은 안개(운무)만 자욱하여 작은 안개 입자들이 나뭇가지에 맺혀 있다가 한 두방울씩 떨어질 뿐 산행하는데는 큰 불편을 주지 않던 안개비가 갑자기 굵은 빗방울로 바꿔 땅으로 떨어지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나는 앞서 걷고 있는 친구를 불러세워 "금방 그칠 비가 아닌것 같으니 우의를 입고 가자" 라고 말한 후 배낭에서 우의와 모자를 꺼내 입고 있으려니 조금 뒤에서 내 뒤를 따르던 4명의 회원님들은 우의를 입지 않은 채 친구와 나를 지나쳐 간다.

 

빗물이 가랑잎을 적셔 가파른 내리막 비탈에 수북이 쌓여 있어 자칫하면 넘어질 수 있으므로 조심조심 비탈을 내려서니 싸리재가 보이기 시작하고 조슴 전 나와 친구를 지나쳐 가던 4명의 회원님들이 가던길을 멈추고 떨어지는 비에 대비하느라 분주한 모습이다.

 

싸리재는 재법 넓은 안부에 원용두마을 2.66km라 씌어져 있는 푯말이 비를 맞고 초라하게 세워져 있다.

푯말에는 씌어져 있지는 않지만 이곳에서는 단양군 대강면 남조리에 있는 "단양유황온천"으로 이어지는 길이 나 있다.

싸리재의 푯말을 뒤로 하고 낮은 언덕을 올라서니 선두 일행으로 보이는 10여명의 회원님들이 빗속에서 점심식사를 하며 우리에게 식사를 하고 가라고 권하신다.

나는 "저 봉우리에 올라서 식사를 하려고요..." 라고 대답하고 한 무리의 회원님들을 지나쳐 1,000m봉 정수리를 향해 가파른 비탈을 오르려니 시장기가 느껴지고 발 걸을은 무거운데 하늘에서 떨어지는 빗방울 마저 더욱 굵어지며 내 발목을 잡고 좀처럼 놓아 주지 않으려 한다.

 

가쁘게 숨을 몰아쉬며 허벅지 근육의 피로를 이겨내고 1,000m봉 정수리에 서니, 아니! 이게 왠 일인가...? 바로 앞에 또 하나의 봉우리가 우뚝 솟아 힘들어 하는 나를 바라보며 웃고 있지 않는가.

친구가 앞에 우뚝 솟아있는 1,060m봉을 보더니 더 이상은 못간다며 이곳에서 점심을 먹고 가자고 배낭을 내려 놓으려 하기에 나는 친구의 소매자락을 끌며 1,060m봉을 향해 무거운 걸음을 옮긴다.

 

내가 싸리재(910m)나 이곳 1,000m봉에서 점심을 먹지 않고 한사코 1,060m봉 정수리에서 점심을 먹으려 하는 이유는 음식을 먹고 배가 부른 상태로 오르막 비탈을 오르려면 평소 보다 힘이 배가 소모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간식이나 식사를 산에서 먹을때는 꼭 긴 능선이나 주위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의 정수리에서 음식을 섭취한 후 내리막비탈길이나 완만한 능선길을 천천히 걸으며 위의 부담을 덜어주어 위가 음식물을 소화하는데 도움을 준다.

 

더운 여름 산행하다가 산중에서 식사를 할 때 덥다고 골짜기나 나무그늘에 들어가 식사를 하는 산행객들이 많은데, 가끔 식사 후 다시 산행을 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복통을 호소하는 이들을 종종 볼 수 있다. 이유는 대부분 산행중에 올라갔던 체온이 식사를 하는 도중에 급히 저하되어 먹은 음식물이 잘 소화되지 않아서 일어나는 현상이다.

그러므로 더운 여름에도 식사를 할 때는 봉우리의 정수리 부근이나 완만한 능선이 길게 이어지는 구간에서 햇볕이 잘 드는 곳을 선택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하겠다.

 

 

 

13시 18분 흙목산(1,033.5m)

 

1,060m봉에서 식사를 마치고 한차례 내리막 비탈을 내려선 후 북쪽으로 방향을 바꾸는 완만한 능선을 30여분 가량 비를 맞으며 걸으니 이내 삼각점이 있는 흙목산(1,033.5m)이 나온다.

흙목산에서 간단하게 기념촬영을 한 후 다시 한번 방향을 북쪽으로 틀어 완만한 능선을 10여분 가량 걸으려니 앞쪽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 온다. 그 소리는 소낙비가 힘차게 내리는 소리 혹은 기계의 모터가 회전하는 소리와 매우 흡사하다

소리의 정체는 소리가 나는 곳을 다다라서야 알 수 있었다.

하늘로 50m 이상은 높이 솟아 있는 철재 송전탑이 빗속에서 비와 바람을 맞으며 만들어 내는 오묘한 소리로 송전탑이 있는 지점을 지날 때 나는 그 소름 끼치는 소리로 인해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일기가 좋은 날이면 흙목산 정수리에서 남서쪽의 문경을 바라보면 마치 붕어 입처럼 정수리가 생겼다 하여 "붕어산"이라고도 불리는 동로면의 천주산(836m)을 조망할 수 있으련만... 하늘에서 떨어지는 비와 운무를 원망해 본다...ㅠㅠㅠ

 

  

 

13시 45분 뱀재(970m)

 

을씨년스런 송전탑을 지나 10여분을 더 발품을 팔자 새로 정비한 듯한 멋진 헬기장이 있는 뱀재(970m)가 반긴다.

뱀재에서는 걸음을 멈추지 아니하고 그냥 솔봉(1,102.8m)으로 향한다. 한편 뱀재에서는 내초향과 외초향으로 불리는 초향리로 이어지는 산행로가 동남쪽으로 나 있어 위급환자나, 산행을 하다 힘에 겨워 죽령(竹嶺 700m)까지 종주를 하지 못할 산행객들이 탈출로로 종종 이용하는 탈출로가 연결되 있다.

 

뱀재에서 20여분을 발품을 팔아 솔봉의 정수리에 서니 정수리에는 빗돌이나 푯말 혹은 이정표는 찾아볼 수 없고 다만 정수리를 알리는 삼각점 옆에 "무주공산"이라 씌어져 있는 이정표만 비를 맞으며 나 뒹굴고 있다.

북쪽으로 향하던 대간마루금은 솔봉을 깃점으로 북동쪽으로 방향을 바꿔 모싯골갈림길(980m)까지 이어진다.

 

 

14시 08분 솔봉(1,102.8m)의 삼각점

 

 

14시 20분 모싯골갈림길(980m)

 

모싯골갈림길에는 새로 세워 놓은 푯말이 세워져 있는 반면, 빛이 바라고 글씨 조차도 곳곳이 지워져 버린 옛 푯말이 쓰러질 듯  서서 그동안의 풍파를 말해주는 듯 하다.

모싯골갈림길(980m)에서는 상리면 고항리의 모싯골로 내려갈 수 있으나 오늘은 죽령(竹嶺 700m)까지 종주해야 하기에 발걸음을 묘적봉(妙積峰 1,149m)으로 옮긴다.

 

 

 

14시 50분 묘적령(妙積嶺 1,010m)

 

묘적령(1,010m)에서 묘적봉(1,149m)으로 향하는 산행로 곳곳에는 대간마루에는 어울리지 않는 기다란 벤치가 웃음을 자아내게 하며 설치되어 있다.

기다란 벤치가 대간마루에 놓이게 된 사연은, 묘적령에서 좌측으로 이어지는 산행로를 따르면 다다르는 단양군 대강면에 있는 "사동유원지"에서 백두대간마루로 연결되는 산행로를 정비하는 과정에서 제법 나이가 지긋하신 노인들을 인부로 고용하여 직접 지게로 지어 날라다 놓는 것이 란다.

 

이 산행로 정비 공사는 중부지방산림청과 단양 국유림관리소에서 발주하고, 산림조합중앙회 충청북도지회에서 시행한 사업으로, 백두대간에 대한 정부 차원의 관심이 쏠린건 고마운 일이지만 여는 공원에나 어울림직한 긴 벤치는 대간마루금에는 좀 어색해 보인다.

보여주기 위해 설치해 놓은 긴 벤치 보다는 주위에 죽어 쓰러지는 나무들을 잘라 대간마루금 가장자리에 놓아 두기만 해도 충분할 것 같다.

 

 

 

 

15시 22분 묘적봉(妙積峰 1,149m)

 

묘적령(1,010m)에서 낙엽송(일본잇갈나무)군락지와 전망바위가 있는 1,080m봉과 1.100m봉을 차례로 지나니 "妙積"이란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돌이 묘하게 쌓여있는 묘적봉(妙積峰 1,149m) 정수리가 나온다.

 

한편 1,080m봉을 넘어 설때  우측으로 10여미터 우뚝 솟아 있는 전망바위에 평소 오르면 지나온 대간능선과 솔봉(1,102.8m)을, 앞으로는 오늘 구간의 최고봉인 도솔봉(1,315.6m)과 묘적봉(1,149m)을 조망할 수 있으며, 서쪽으로 눈을 돌리면 대강면 장정리의 암릉으로 유명한 도락산과 그 일대에서 저수령으로 이어지는 길을 조망할 수 있다.

또한 동쪽으로 눈을 돌이면 영주시 풍기읍과 중앙고속도로가 산읍을 지나 죽령으로 이어지는 모습을 조망할 수 있으련만... 오늘은 발 아래로 펼쳐지는 하얀 운무(雲霧) 만이 이 봉우리 저 봉우리를 넘나들며 유유자적 하고 있었다.

 

 

 

 

15시 42분 치마바위?를 지나며

 

묘적봉(1,149m)에서의 아쉬움을 뒤로 하고 20여분동안 안개가 두텁게 쌓이고 빗바울 마저 떨어져 위험한 암능을 따라 급한 내리막 비탈을 내려서니 우측으로 풍기 주치골로 이어지는 길이 갈라지고 다시 오르막 비탈을 한 차례 올라서니 1,185m봉이 나온다.

1,185m봉을 지나 암릉으로 이루어진 대간마루금을 따르다 보니 우측 풍기읍쪽으로는 급격가게 깍겨나간 급사면이 펼쳐지고 그 급사면 아래로 두텁던 운무가 가끔 엷어질 때면 풍기읍 전경이 아스라이 드러난다.

조망이 전혀 없다가 가끔씩 풍기읍쪽으로 펼쳐지는 풍광을 바라보며 "날씨만 허락했더라면 풍기읍과 죽령(竹嶺 700m) 너머로 소박산(小白山 1,440m)의 웅장한 모습을 조망할 수 있었을 터인데..." 라고 생각하며 암릉길을 걷다가 마치 여자의 주름치마 자락을 연상케하는 50여미터가 넘어 보이는 암장을 발견하고 카메라에 담아 보았으나 빛이 부족하여 신통치는 않다.

  

 

 

16시 00분 도솔봉(兜率峰 1,315.6m)의 첫번째 계단

 

묘적봉(1,149m)에서 40여분 동안 암릉과 운무 그리고 하늘에서 떨어지는 빗방울과 씨름하고 나니 도솔봉(1,315.6m)으로 이어지는 암릉이과 암장이 앞을 가로 막는 데 산행로에는 철재 계단이 놓여 있어 휘험하지는 않아 보인다.

도솔봉으로 오르는 암릉에 놓여져 있는 철재계단은 총161개의 계단이 2단으로 나누어 있으며 첫번째 계단은 108개, 두번째 계단은 54개로 이루워져 있다. 철재계단 마다에는 눈이나 비가 내릴 때 그리고 겨울철 아이젠을 신고 오르고 내리는 산행객들을 배려해 나무판자를 막고 그 위에 미끄럼방지용 고무를 덧대어 놓았다.

 

운무가 두텁게 쌓여 도솔봉(1,315.6m)의 정수리를 알아보기 힘든 상태에서 첫번째 108개의 계단을 오르려니 숨은 턱에 차오고 다리의 근육은 심하게 긴장 되어 마치 불교에서 사람이 가지고 있다고 말하는 백팔번뇌(百八煩惱)의 고통을 조금이나마 느끼게 한다.

첫번째 108개의 계단을 올라 "혹시라도 주변의 풍광을 조망할 수 있지 않을까" 라는 기대로 조망바위에 서니 야속한 운무(雲霧)만이 투터운 운해(雲海) 를 만들고 이리저리 떠다니며 나의 마음을 씁쓸하게 한다.

 

조망바위에서 돌아서 두번째 54개의 계단으로 접근하려는 데 도솔봉정수리쪽에서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와 내 발걸음을 제촉하게 만든다. 첫번째 108개의 계단에서 충분히 번뇌의 고통을 맛 보았다고 생각했으나 도솔봉은 쉽게 정수리를 허락하지 아니하며 54개의 철제계단과 암장에서 더 큰 인내와 고통을 안겨준 후에야 헬기장이 있는 정수리 빗돌을 보여준다.

 

 

 

16시 10분 도솔봉빗돌((兜率峰碑石 1,314m)

 

도솔봉(兜率峰 1,315.6 m)에는 두 개의 정상빗돌(頂上碑石)이 있다.

하나는 헬기장 옆에 세로이 설치해 놓은 것이 있고, 다른 하나는 헬기장보다 조금 높은 지점에 세워져 있다. 헬기장에 있는 빗돌은 정상빗돌이 아니지만 많은 사람들이 모여 다리쉼도 하고 음식도 나누며 분비는 곳이어서 상징적으로 표석을 하나 더 세운 것으로 보인다.

날씨가 좋은 날에는 실제로 헬기장에서 바라본 소백산이 도솔봉 정수리에서 보이는 소백산 보다더 근사하다고 한다.

 

헬기장에 있는 도솔봉빗돌에서 간단하게 기념촹영을 하고 조금 전부터 웅성거리는 소리가 나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기니 10여명의 회원님들이 도솔봉암장(兜率峰巖嶂)  정수리 부근에서 마루금을 찾지 못하고 우왕좌왕 하고 있는 모습들이다.

대간마루금은 도솔봉(兜率峰 1,315.6m) 정수리 암장을 좌측에 두고 우측으로 진행하는 것이 보편적이나, 암봉을 우측에 두고 사동리 방향으로 진행하다가 다시 우측으로 방향을 틀어 수직암벽을 올라 도솔봉정수리(兜率峰 1,315.6m)에 오른 후 우측으로 내려서서 대간마루금을 밟는 방법도 있다.

그런데 여기 모여 있는 10여명의 회원님들은 몇일 전 내린 눈이 도솔봉 북동쪽 사면에 아직 녹지 않고 군데군데 쌓여 있어, 잔설(殘雪)을 피해 사동리 방향인 좌측으로 걸음을 옮기다가 대간마루금을 잃어버리고 우왕좌왕 하고 있었다.

 

나는 대자연산악회 임원으로 보이는 회원님에게 이 암장을 좌측에 두고 우측으로 나 있는 대간마루금을 따르는 것이 맞을 것이라 말하고, 헬기장이 있는 곳으로 조금 되 돌아와 아직 잔설(殘雪)이 쌓여있어 마루금의 흔적이 잘 보이지 않는 도솔봉암장(兜率峰巖嶂) 우측으로 나 있는 대간 마루금에 3~5m 간격으로 종이로 된 이정표를 5장이나 바닦에 깔며 도솔봉을 넘어 섰다.

 

도솔봉(兜率峰 1,315.6m)지나 미끄러운 대간마루금을 따라 발길을 옮기며 오늘 산행하기 전 대간호 안에서 나눠 준 산행개념도가 산행 중 만날 수 있는 중요지점이나 위험지역 그리고 갈림길등이 좀 더 세밀하게 나타나 있는 "백두대간종주"용 개념도였더라면 좋았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또한 도솔봉암장 주위에서 마루금을 찾느라 분주하게 움직이는 회원들에 휩싸여 함께 진행하다가 도솔봉 정수리빗돌(頂上碑石)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 것을 잊어버리고 그냥 휩쓸려왔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쳐 지나간다...ㅠㅠㅠ

 

 

 

16시 51분 삼형제봉(三兄第峰 1,259m)

 

도솔봉에서의 아쉬움을 뒤로하고 1,200m를 넘나드는 봉우리들을 30여분동안 오르고 내리니 운무에 쌓인 삼형재봉(1,259m)이 아스라이 눈앞에 보이는 데 154개에 이르는 철제계단과 함께 가파른 오르막 비탈은 나에게 위압감을 안겨준다.

 

삼형제봉이 아스라이 보이는 1,210m봉에서 수직에 가까운 내리막 비탈을 조심해서 내려서니 삼형제봉으로 이어지는 154개의 철제계단이 시작되는 작은 안부가 나온다. 그 안부에서 잠시 다리쉼을 한 후 삼형제봉을 오르는 데 108번뇌의 고통을 생각하게 하던 도솔봉의 108개단과 54계단을 합쳐놓은 것보다 더 큰 고통이 가슴과 허벅지 근육속으로 찾아든다.

 

삼형제봉(三兄第峰) 철제계단을 지나 암릉이 잇따르는 구간을 지나다 바위와 바위가 만나는 좁은 홈에 그만 발이 끼어 발을 빼내는 과정에서 발목이 시큰거리는 고통에 나도 모르게 악! 하고 단발의 고통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비에 젖은 바위를 힘이 빠진(풀린) 다리고 밟고 넘어 서려다 그만 미끄러져 좁은 바위 틈으로 발목이 끼고 만 것이다. 그래도 다행인 것을 숨을 헐떡이며 삼형제봉에 올라 잠시 다리쉼을 하고나니 발목의 통증이 씻은 듯 사그러들었다는 것이다.

 

도솔봉 1.7km, 죽령 4.3km라 씌어져 있는 아래 사진의 푯말은 삼형제봉에 놓여져 있는 철재계단 중간 쉼터에 있는 것이다.

  

 

 

17시 15분 잘 못된 푯말

 

삼형제봉(1,259m)과 대간분기봉(1,288m) 사이에 있는 푯말에는 죽령(700m) 0.5km라 씌어져 있었으나 10분도 못 가서 잘 못 씌어져 있는 푯말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대간마루를 종주하다 보면 잘 못 씌어져 있는 푯말들을 종종 만나게 되는 데 그럴 때마다 허무한 생각과 함께 관할 행정청에서는 산행로 관리비용을 어디에 쓰는지 궁금할 따름이다...

 

 

17시 24분 대간분기봉(1,288m)를 지나

 

삼형제봉(1,259m)를 지나며 산속에는 어둠이 짙게 드리우기 시작하더니 이내 1m 앞도 분간하기 힘들 정도의 어둠이 엄습해 온다.

빗물에 젖은 암릉구간을 조심해서 통과 하느라 긴장을 많이 해서인지 갑자기 뱃속에서 허기가 느껴지며 다리에서는 힘이 빠져 나가는 느낌이다. (다리가 풀렸다...)

나는 친구에게 허기져서 더 이상 못 가겠으니 잠시 다리쉼을 하며 초코바라도 먹고 가자고 한 후 배낭에서 초코바를 꺼내 친구에게 한개 건네고 나도 허기를 면해 본다.

 

초코바를 먹으며 친구에게 렌턴을 왜 사용하지 않느냐고 물으니 친구는 야간 산행을 할 것이라고는 전혀 생가하지 않아 준비하지 않았다고 대답한다.

친구의 말이 틀리지는 않지만 명산 산행할 때의 두배나 되는 백두대간 한 구간을 종주하는 산행객이라면 산에서 일어날 수 있는 상황에 대비해 렌턴 하나 쯤은 꼭 배낭에 넣고 다녀야 한다고 생각한다.

 

삼형제봉을 지나 대간분기봉(1288m) 까지는 암릉이 여러지점에 있지만 대체로 편안하다. 하지만 단양쪽으로 큰 능선을 분기시키는 대간분기봉(1288m) 정상을 우회하면서부터 산행로 가장자리이 산죽(山竹)이 어둠속에서 빗물에 젖은 잎을 반짝이며 소리를 내는 지점부터는 완만하고 순하지만 빗물 때문에 미끄러운 긴 내리막비탈이 죽령까지 잇따른다. 

 

 

 

18시 04분 죽령 1.8km 푯말을 지나며

 

산죽(山竹)사이로 귀신이라도 튀어나올 듯한 산행로가 다하는 지점에 석간수가 시원하게 흘러나오는 샘터가 있다하나 어둠과 하늘에서 떨어지는 빗방울 탓에 찾아 볼 엄두를 못 내고  미끄러운 내리막비탈을 조심조심 한참을 내려서니 낙엽송(일본잇갈나무)숲 사이로 나 있는 오솔길이 잇따른다.

낙엽송(일본잇갈나무)숲이 시작되는 지점부터는 대간마루금은 능선을 버리고 산기슭으로 몸을 나춰 마루금을 이어가는데 산행로 폭은 50cm밖게 되지 않고 산행로 우측사면은 가파른 내리막비탈과 수직에 가까운 위험한 골짜기가 산행객의 말목을 잡고 놓아주지 않으려 한다.

 

 

 

18시 39분 죽령(竹嶺)의 옛길 안내판 앞에서

 

궂은 날씨와 추위 그리고 짙게 드리운 어둠과 7시간 34분간 씨름을 한 끝에 오늘 산행의 날머리에 "죽령옛길안내" 라 씌어져 있는 안내판 옆 푯말 앞에 선다.

 

죽령(竹嶺)옛길에 대한 자료를 옮겨본다...

 

영남 지방과 기호 지방을 연결하는 죽령 옛길의 연혁은 분명하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경북 영주시 풍기읍과 충북 단양군 대강면을 넘는 해발 689m의 죽령길이 처음 열린 때는 신라 아달라 이사금 5년. 서기로 치자면 158년의 일이다. 셈해 보자면 지금으로부터 1848년 전이니 아득한 세월의 저편이다. 신라, 고려,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경상도 동북 일대에서 서울 나들이를 하자면 이 고갯길을 넘어야 했다. 그 수많은 세월을 뛰어넘어 길은 아직 살아있다. 이렇듯 생명력이 긴 고갯길이 또 있을까.
죽령 길은 일제시대이던 1941년 청량리 ~ 경주까지의 중앙선 철로가 놓이면서 쓰임새를 잃기 시작했다. 소백산을 휘감아서 오르는 똬리굴로 열차가 드나들기 시작하면서 걸어 넘던 죽령 고갯길은 흐려지기 시작했다. 죽령 옛길의 들머리 희방사역의 역무원 남조운(41)씨는 “중앙선 열차는 경북 영주며 안동지방 사람들이 서울로 가던 소통로였다”며 “이런 탓에 과거 안동이나 영주에서 상경한 사람들은 대부분 청량리 역 근방에 정착했다”고 말했다. 지금도 이들 지역 향우회는 십중팔구 청량리역 일원에서 열린다고 했다.
60년대 중반에는 옛길 옆으로 소백산 자락을 타고넘는 5번 국도가 뚫리면서 철로도 쇠퇴하기 시작했다. 과거 청량리 역에서 출발해 강릉으로 가는 열차는 소백산을 넘어 영주까지 내려가 동해안 쪽으로 붙었는데, 지금은 아예 죽령 쪽으로 내려오지 않고 냉큼 태백선으로 연결돼버렸다. 5번 국도는 다시 지난 2001년 개통된 중앙고속도로에 자리를 내줬다. 고속도로 개통으로 4.6㎞에 달하는 죽령터널이 뚫리면서 구비구비 한나절을 걸어넘던 죽령길은 이제 2분도 채 걸리지 않는 터널길로 바뀌어 버리고 말았다. 이렇게 끊임없이 새길이 생겨나면서 옛길을 덮었지만, 그래도 옛길은 오롯이 살아남아서 생명력을 잃지 않고 있다. 길로써의 쓰임새는 잃었지만, 오래된 과거로 들어가는 입구로써의 효용성을 아직 간직하고 있는 것이다.

 

 

 

20시 45분 죽령(竹嶺 700m)

 

죽령(竹嶺 700m)은 신라 제8대 아달라이사금 5년(158)에 열린 길로 하늘재(525m)에 이어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고갯길이다. 경북 내륙과 충주 일대를 잇는 고개로 상당히 바쁜 고개였으나, 지금은 그 아래로 터널이 뚫려 중앙고속도로가 달리고 있다.

 
옛 죽령은 도솔봉(兜率峰 1,314m),연화봉(蓮花峰 1,394m),국망봉(國望峰 1,421m) 등 높이 1,400m 내외의 높은 봉우리들이 이어져 있는 험한 지세 때문에 조선시대부터 조령과 더불어 영풍~단양 간의 주요교통로였다.
 
竹嶺(700m)의 유래는 옛날 어느 도승이 짚고 가던 대지팡이를 꽂은 것이 살아났다 하여 죽령(竹嶺)이라 이름이 불리게 되었다고 하며, 죽령에서 서쪽 사면은 충주호로 흘러드는 죽령천의 상류 하곡과 연결된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 의하면 신라 아달라이사금 5년에 이 고개를 사람이 통할 수 있게 만들었다고 전한다. 비교적 높고 험한 고개이므로 봇짐이나 등짐을 지고 걸어다녀야 했던 시절에는 이 고개에 도둑떼가 들끓었다고 한다.
전설에 의하면 도둑떼에게 아들을 잃은 할머니가 도둑소굴로 숨어 들어 망을 보다가 사람들에게 신호로 "다자구야"라고 외쳐서 도둑떼를 사로잡는 데 공을 세워 이곳 주민들은 매년 대강면 용부원리의 산신당(山神堂)에 모여 다자구 할머니에게 제사를 지낸다고 한다.
 
 
오늘 산행은 시작하는 단추부터 잘 못 끼어지는 바람에 산행하는 내내 그리고 산행 후 까지도 아쉬움이 많이 남는 산행이었다.
특히 내가 죽령에 도착하고 난 후에도 후미일행의 모습은 한참동안 보이지 않다가 2시간여가 더 지난 20시 45분 경에야 모습을 드러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후미일행 역시 도솔봉암장 부근에서 짙은 어둠때문에 바닦에 깔아놓은 시그널을 발견하지 못 하고 일명 "알바"를 했다고 한다.
그래도 천만다행인 것은 비가내리고 추운 산속에서 4시간 가량 야간산행을 해야 했지만 아무런 안전사고 없이 모든 회원님들이 죽령에 닿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비가 내리는 좋지않은 날씨에 산행거리가 20.18km에 달하고 위험구간이 곳곳에 산제되어 있는 구간산행을 11시 05분이란 늦은 시간에 산행을 감행하고 산행하기 전 일몰 후에 대한 대비를 전혀 하지 않은 추최측은 한번 더 생각할 문제라 할 것이다.
그리고 추위와 두려움을 느끼며 산행을 마친 회원님들이 죽령에 도착했을 때도 아무런 대처를 취하지 않은 점을 상기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비록 좋지않은 날씨에 조망이 전혀 없는 우중산행이었지만 그런데로 의미잇는 산행을 함께한 모든 회원님들 정말 수고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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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12월 02일
 
강일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