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산행이야기

금정산 [金井山]

작은岳馬 2006. 12. 5. 10:22

 

 

*** 원효봉에서 바라본 금정산의 주봉 고당봉 ***

 

 

금정산 [金井山]

 

산행일자 : 2006년 12월 03일

 

산행장소 : 제1망루~상계봉~남문~제2망루~대륙봉~동문~제3망루~의상봉~원효봉~북문~고당봉

 

산행모임 : 대전한겨레산악회

 

산행날씨 : 맑음 강한 바닷바람이 얼굴을 얼얼하게 한 반면, 멀리 대마도가 보일만큼 좋은시계)

 

백두대간 마루금을 벗어나 모처럼 명산산행을 떠나는 날이라 가벼운 마음으로 배낭을 매고 용문네거리에 도착히니 차가운 겨울바람만 내 뺨을 스쳐 지날뿐 대간을 함께 하던 회원님들의 모습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차가운 겨울 바람을 피하기 위해 지하철 계단을 오르 내리니 30여분이 지난 시각 대간호 아니! 버스가 도착한다,  버스에 오르니 10여명이 조금 넘은 회원들만 눈에 들어와 오늘 날씨와 함께 을씨년스럽기 까지 하다.
시민회관과 원두막을 지나 대전나들목을 통해 경부고속도로를 내달리고 있는 버스는 22명이라는 회원만을 태워서 일까 오늘 따라 더욱 힘있게 금정산(金井山 802m)을 향해 달린다.
 
금정산으로 향하던 버스는 칠곡휴게소와 소싸움으로 유명한 청도휴게소에서 두 차례 숨을 고르고 새로 계통된 대구 부산간 신 고속도로를 내달리더니 이내 부산에 진입한다.
버스가 부산에 들어서는 것을 보고 내가 청산님에게 전화를 하니 청산님을 반가운 목소리로 나를 반기며 금정산에 대해 블로그에서 설명해 주신 내용 보다 더욱 자세하게 설명해 주시더니 내가 범어사로 하산할 즈음 범어사에서 기다리겠다고 하며 통화를 마치신다.
 
청산님과 통화를 하고 나니 오늘 산행에 함께한 회원님들이 22명뿐이라 아침부터 씁쓸했던 마음은 이내 사라지고 즐거운 산행과 청산님을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한층 기분이 좋아진다.
버스는 만덕동을 지나 오늘 산행 들머리가 있는 상학초등학교 근처에서 회원들을 내려 놓는다.
버스에서 내려 들머리로 이동하려니 바닷가라 그런지 바람은 조금 차지만 모처럼 청명한 쪽빛하늘이 내 가슴을 설레이게한다.

 

 

상학초등학교에서 공사중인 들머리를 지나자 정성을 들여 쌓아 놓은 석탑이 두 곳에서 나타난다.

 

 

오늘 산행 들머리에서 후미일행과 기념촬영...

 

 

 

 

들머리에서 두 곳의 돌탑과 약수터를 지나자 완만하던 산행로는 그 높이를 서서히 높이더니 운동시설과 약수터가 한 곳에 함께 있는 쉼터에 다다른다.

그 쉼터에서 산행로는 좌측으로 방향을 급하게 바꿔 제법 가파른 비탈을 만드는데 몇일동안 영하로 기온이 내려가서인지 산행로 곳곳에는 얼음이 땅에 박혀 있어 주위를 기울이며 상계봉(上鷄奉 640.2m)으로 향한다.

가벼운 마음으로 오르막 비탈을 오르는 중 좌측 상계봉의 암장은 마치 소금강을 연상하게 하고 우측 헬기장이 있는 봉우리쪽에서는 아기자기한 기암들이 산행하는 산행객의 기분을 들뜨게 만들고 있다.

 

 

좌측으로는 상계봉과 제1망루가 우측으로는 헬기장과 남문으로 산행로가 좌 우로 갈리는 갈림길이 있는 고갯마루에서 상계봉으로 이어지는 금정산성의 흔적을 바라보며 카메라에 담아 본다.

금정산성을 따라 상계봉으로 향하는 산행로 곳곳에 있는 전망바위에 오르니 부산광역시의 전경과 광안대교 그리고 낙동강 하구와 철새의 도래지로 유명한 을숙도 너머로 푸른 바다와 쪽빛 하늘이 만들어 내는 아름다운 풍광을 감상할 수 있다.

 

 

금정산성의 흔적을 따라 오르다 보면 좌측으로는 상계봉의 정수리로 우측으로는 파리봉으로 갈 수 있는 갈림길에서 파리봉쪽으로 200여 미터를 가면 지붕이 날아간 채 방치된 금정산성의 제1망루를 만나다.

 

 

 

지붕이 날아가 버려 옛 망루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는 제1망루의 아쉬움을 뒤로 하고 잰걸음으로상계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을 따르니 북서쪽에서 불어오는 바닷바람이 내 얼굴을 얼얼하게 만들고 손끝을 시리게 한다.

상계봉의 암장이 만들어 내는 기묘한 바위들을 감상하며 상계봉 정수리로 향하는 길에 남근석으로 보이는 바위가 보이다.??(아래사진)

 

 

 

  

상계봉(上鷄奉 640.2m) 정수리에는 세로 세워 놓은 듯한 빗돌이 세워져 있다.

상계봉에서는 간단하게 기념촬영을 한 후 멀리 낙동강 하구쪽으로 보이는 멋진 풍광을 감상하고 이내 발 걸음을 오던길로 옮겼다.

 

 

 

 

 

 

남문으로 향하는 곳에 위치한 헬기장에서 상계봉의 기묘한 암장을 한번 더 바라보며 그 모습을 감슴에 담아 본다.

 

 

 

 

헬기장이 있는 봉우리에서 석불사(石佛寺)쪽으로 이어지는 능선에 있는 기묘한 모습의 바위들을 조망하고 한차례 가파른 내리막 비탈을 내려서니 작은 안부가 나오고 그안부를 지나 봉우리 하나를 넘어서니 이내 많은 산행객들이 북적이는 남문이 나온다.

 

 

 

 

 

 

남문에서 금정산성을 따라 조금 오르면 임도와 만나는 곳을 지나게 되고 이내 금정산성 제2망루에 다다른다.

옛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는 듯한 제2망루에서는 금정산성의 흔적을 버리고 잠시 좌측으로 방향을 급하게 바꿔 임도를 따라 조금 걸은 후 다시 산성의 흔적을 찾아 걸어야 한다.

 

 

제2망루를지나 대륙봉에 오르면 산행로는 산성의 흔적을 비켜 좌측 10여미터 아래로 나 있는 산행로를 따르게 되는데 그 산행로를 따르면 걸음을 옮기기는 힘들지 않아 편하지만 주변의 풍광을 마음껏 조망할 수 없다. 조금 힘들더라도 산성의 흔적을 따라 발길을 옮기다 보면 대륙봉 주변의 기암들을 조망하며 또한 부산광역시의 전경과 바다가 만들어 내는 아름다운 모습을 조망하며 산행할 수 있다.

 

위 사진은 대륙봉에서 상계봉과 파리봉의 암장을 바라보며 담은 사진이다.

 

 

대륙봉에서 앞으로 걸어야 할 의상봉과 원효봉으로 이어지는 능성과 저 멀리 고당봉을 조망하며...

위 사진에서 우측 아래에 보이는 건물은 동문이다.

 

 

대륙봉에서 산행로는 급한 내리막 비탈을 만들며 차량 통행이 빈번한 임도와 만난다.

그 임도에서 한차례 오르막 비탈을 오르면 이내 완만한 산행로가 동문까지 잇따른다.

동문에서는 차가운 바닷바람을 피해 따사로운 햇볕이 잘 드는 곳을 찾아 맛있는 점심을 나누었다.

 

 

 

 

동문에서 점심을 먹고 난 후 솔향이 가득한 소나무숲 사이로 이어지는 산행로를 따라 기분 좋은 걸음을 옮기다 보면 지나온 능선과 금정산성 제4망루와 의상봉을 앞 뒤로 조망할 수 있는 조망처가 나온다.

 

 

위 사진은 금정산성 제4망루와 의상봉, 아래 사진은 상계봉과 파리봉 그리고 지나온 능선의 보습이다.

 

 

 

 

 

나비가 춤을 추는 듯한 모양을 한 나비바위???

 

 

 

 

 

 

 

 

 

금정산성 제4망루

 

 

의상봉을 지나 원효봉으로 이어지는 능선과 멀리 보이는 고당봉

 

 

원효봉을 오르다가 뒤를 돌아보니 의상봉과 무명바위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 모습이 햇빛을 받고 있는 모습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를 자아낸다.

 

 

원효봉에서 바라본 미륵사(彌勒寺)의 전설(傳說)을 옮겨본다.

 

왜적 5만 병선이 동래 앞바다에 진을 치고 있으면서 첩자를 뭍으로 보냈다.

이에 미륵암의 원효대사는 호리병 5개를 구해오게 하여 탑 앞에 나란히 세운 뒤 가장 높은 바위에 신라 장군기를 꽂게 하니 그 장군기를 보고 2명의 첩자가 미륵암까지 올라왔다.

원효대사는 호리병으로 신술(神術)을 부려 첩자의 목을 졸랐고 첩자들이 살려달라고 하자 호리병 3개를 첩자들에게 건네주고 왜적장에게 전해주라며 호리병을 들려 돌려 보냈다.

이에 화가 난 왜적장이 호리병을 단칼에 내리친 순간 왜적장이 그 자리에서 피를 토하고 쓰러지자 왜적들은 모두 놀라 그대로 달아났다고 한다.

 

대사가 신라의 장군기를 꽂았다는 그 자리에는 지금도 독성각 옆에 움푹 파인 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다. 독성각으로 오르는 좁다란 돌 계단길의 중간부분에는 석간수가 솟아나는 작은 샘이 있는데 그곳 바위의 구멍에서는 쌀이 나와 스님의 끼니를 잇게 했다고 한다.

 

 

원효봉을 넘어서니 고당봉이 손에 잡힐 듯이 다가오며 푸른 소나무가 곳곳에 잘 자라고 있는 소나무 숲이 나오는데 그 소나무숲을 지나 한차례 내리막 비탈을 내려서면 이내 북문이 나온다.

 

위 사진에서 우뚝 솟아 있는 멋들어진 암장이 고당봉의 정수리이고 그 암장을 중심으로 우측 능선 중  세번째 바위군락에 금샘(金井)이 위치해 있다.

 

아래 사진은 북문과 고당봉의 암장을 함께 담아본 사진이다.

 

 

 

  

북문 근처의 넓은 공터를 지나 고당봉으로 향하는 길에는 쉼터와 화장실 그리고 커다란 약수터가 있다.

그 약수터 가장자리에는 "금정(金井)의 문화유산" 아라 씌어져 있는 이정표가 세워져 있고 그 안에는 미륵사와 고모당 그리고 금샘과 범어사에 설인 전설이 자세히 씌어져 있어 이곳을 지나는 산행객의 발길을 사로 잡는다.

 

 

북문에서 완만하게 이어지던 산행로는 "金井의 문화유산" 이라 씌어진 이정표가 서 있는약수터를 지나면서 가파라지기 시작하더니 고당봉 정수리와 금샘으로 향하는 산행로가 갈리는 갈림길이 있는 약수터부터는 암릉이 이어진다.

고당봉(故堂峰 802m)으로 이어지는 암장을 오르다 보면 고모당(故母堂)으로 불리는 당집을 만나게 된다.

오랜 세월 동안 비바람을 이겨내며 자리해 오고 있는 듯한 한평 정도 크기의 작은 건물은 지붕과 같은 높이의 돌담장이 둘러싸고 있는 모습이 참 이색적이다. 이 고모당 남쪽으로는 약 50m 간격으로 "용호암(龍虎岩)"이란 바위굴과 "용왕수(龍王水)"로 불리는 샘이 있단다.

 

고모당(故母堂)에 대한 전설을 옮겨본다.

 

지금으로부터 400여년 전 밀양(密陽) 사람인 박씨가 결혼에 실폐하고 불가에 귀의한 후 범어사(梵魚寺)에서 화주보살이 되어 신명을 바쳐, 불교 교단을 구성하는 네 무리인 사부대중(四部大衆)의 칭송이 대단했다.

이 보살은 큰스님에게 "제가 죽으면 화장을 하고 저 높은 고모당에 고모영신(故母靈神)을 모시는 산신각을 지어 고당제(故堂祭)를 지내주면 높은 곳에서 수호신이 되어 범어사를 돕겠습니다"는 유언을 남기고 숨을 거두었다.

이에 큰스님은 그 유언대로 고당봉에 산신각을 지어 해마다 정월 보름날과 단오날 두 차례 제사를 제냈더니 과연 범어사가 번창한 사찰이 되었다. 한때 젊은 스님들이 당제를 지내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하여 당집을 훼손한 적이 있는데 그 뒤로 좋지 않은 일들이 잇따라 일어나 다시 고모당을 고쳐지었다고 한다.

사실 여부는 알 수 없으나 고모당의 신성한과 영험한을 일러주는 전설이다.

  

 

 금정산 [金井山]

 

부산광역시 금정구·북구와 양산시 동면과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높이는 802m에 달한다.
부산의 북쪽에 우뚝 솟은 산으로 최고봉인 고당봉을 비롯하여 계명봉·상계봉·원효봉·장군봉·파리봉·의상봉 등 600m 내외의 봉우리들이 이어져 있다.

금정산의 기반암은 화강암으로 북서 사면을 제외한 전사면이 대체로 완경사를 이루며, 동쪽과 서쪽 사면에서는 각각 수영강과 낙동강의 지류가 발원하여 두 하천의 분수령이 되고 있다.
산 능선에는 곳곳에 노출이 심한 암반이 나타나며, 소나무 숲이 울창하다.
북동쪽 기슭에 자리한 범어사는 678년(문무왕 18년)에 의상이 창건한 절로 통도사·해인사와 함께 우리나라의 3대 사찰을 이룬다. 범어사 주변에는 계명암·내원암 등 여러 개의 암자가 있다.
남쪽에는 1703년(숙종 29년)에 축성된 금정산성(사적 제215호)이 있으며 본래 동래산성이었으나 개칭된 것이다. 여러 차례의 훼손과 증축을 거치다가 1972년에 복원된 것으로 둘레 1만 7,336m, 높이 1.5~3.2m의 우리나라 최대 산성이다.
산록에는 금강공원·성지곡공원 등이 자리하며, 금강공원에서 산성고개까지 케이블카가 운행되고 있다. 이밖에 양산시 동면 가산리의 마애여래입상, 장군봉에 있는 은동굴·동래온천·산성마을 등이 있어 부산시민의 훌륭한 휴식처가 되고 있다.
 

 

 

 

고당봉(故堂峰 802m) 정수리에 오르니 많은 산행객들이 북적이는 가운데 다른 회원님들이 정수리에 오를기를 기다리며 고당봉 빗돌을 카메라에 담고 간단하게 기념촬영을 한 후 미륵암(彌勒寺)쪽으로 이어지는 능선을 따라 조금 내려서니 멀리 남해와 낙동강이 만나는 곳에는 강물과 바닷물에 햇빛이 반사 되어 세상을 온통 금빛으로 물들이고 있다.

또한 의상봉과 원효봉 그리고 이곳 고당봉에서는 멀리 바다와 하늘이 만나는 수평선 너머로 대마도까지 볼 수 있어 오늘 가시거리가 60km를 넘는다는 것을 반증한다.

 

고당봉 정수리에서 주변의 아름다운 풍광을 조망하고 능선의 암릉을 조심해서 내려서는데 휴대 전화가 울리기 시작하여 휴데전화의 통화버튼을 누르니 청산님의 목소리가 아주 가까이 있는 듯하게 들려온다.

청산님은 내 위치를 확인하더니 금샘으로 향하는 산행로를 자세히 설명해 주시고 금샘에서 범어사로 내려오려면 북문으로 다시 내려가 범어사로 하산하는 것이 빠른 길이라고 설명해 주신다.

 

 

 

청산님의 설명데로 걸음을 옮겨 집채만한 바위들이 모여 있는 암릉이 다하는 부분에 서니 "金井"이 나를 보고 웃는다.

 

금샘(金井)과 범어사(梵魚寺)의 설화(說話)

 

금샘의 설화는 부산의 진산 금정산이 옛부터 신령스러운 영산(靈山)임을 일러주는 것과 함께 "金井山"이란 산이름과 "梵魚寺"의 절 이름 그리고 이 사찰의 창건 내력을 알려주는 이야기로 매우 중요한 위미를 지닌다. 그 이야기는 "동국여지승람"에 다음과 같이 기록돼 있다.

 

"금정산 산정에 세 길 정도 높이의 바위가 있는데, 그 위에 우물이 있다. 둘레가 10여척(尺)이며 깊이는 7촌(寸) 쯤 된다. 황금색 물이 항상 가득 차 있고 가물어도 마르지 않는다. 세상에 전하는 말로는 한 마리의 금빛나는 물고기가 오색 구름을 타고 범천(汎川)에서 내려와 그 속에서 놀았다"라고 하여 금빛나는 물 곧 "금정(金井)"이란 산 이름과 범천의 물고기 곧 "범어(梵魚)"라는 산 이름을 지었다.

 

이와 같은 내용이 "범어사 창건서적"과 "삼국유사"에도 실려 있는데 신라 의상대사와 관련한 보다 구체적인 이야기도 있다. 그 내용을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

"동해에 왜인들이 10만 병선을 이끌고 와서 신라를 침략하려고 힜다. 대왕이 근심에 싸여 있는데 꿈속에 신인(神人)이 나타나 의상스님과 함께 금정산 '금샘'에 가서 칠일동안 밤낮으로 기도를 하면 왜적을 물리칠 수 있다고 일러주었다. 대왕이 의상스님과 함께 친히 금샘을 찾아 기도를 하니 땅이 크게 진동하여 부처님과 천왕과 신중 그리고 문수동자 등이 현신하여 동해로 나가 왜적들을 격파했다. 대왕이 크게 기뻐하여 의상스님을 예공대사로 봉하고, 금샘 아래에 호국사찰을 세웠으니 곧 '범어사'이다"

 

 

 

 

 

금샘에서  바라 본 금정(金井)의 주봉 고당봉(故堂峰 802m) 정수리 부분은 곳곳에 기암이 튀어 나온 바위들로 형성된 암장(巖嶂)을 이루고 있다.

 

금샘을 뒤로하고 바쁜 마음에 잰걸음으로 걸음을 옮겨 남문에 도착한 후 후미 일행들에게 범어사에서 나를 기다리는 분이 있으니 먼저 범어사로 내려간다고 양해를 구한 다음 산행하는 산행객이 해서는 않되는 행동이지만 청산님이 기다리는 범어사를 향해 달려간다....to be continue...

 

오늘 산행은 모처럼 대간마루를 벗어나 부산의 명산 금정산을 걸으며 멋진 풍광을 조망할 수 있는 기분 좋은 산행이었습니다.

오늘 산행에 함께하신 모든 회원님에게 감사드리며 늘 즐거운 나날 이어가세요.*^^*

 

2006년 12월 08일

 

강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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