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 종주기

성삼재(成三)~노고단(老姑壇)~삼도봉(三道峰)~화개재~칠선봉~세석산장~재석봉(宰釋峰)~청왕봉(天王峯)

작은岳馬 2006. 8. 23. 09:00


성삼재(成三)~노고단(老姑壇)~삼도봉(三道峰)~화개재~칠선봉~세석산장~재석봉(宰釋峰)~청왕봉(天王峯)

 

산행일자 : 2006년 08월 20일 (19일 대전에서 출발하는 무박산행)

 

산행장소 : 성삼재~노고단~임걸령~삼도봉~화개재~토끼봉~명선봉~연하천~삼각고지~형재봉~벽소령~덕평봉~칠선봉~영신봉~세석산장~촛대봉~삼신봉~연하봉~장터목산장~제석봉~천왕봉~중산리

 

산행모임 : 대전한겨레산악회 (41명)

 

산행날씨 : 흐리고 산행하는 내내 비...ㅠㅠㅠ

 

산행거리 :  34.73km             

 

산행시간 : 13시간 58분(성삼재~중산리까지)

 

향로봉에서 727km에 걸처 이어지는 백두대간 마루금이 끝나는 지리산 천왕봉에 오를 수 있는 산행을 떠난다고 생각하니 몇일 전부터 소풍을 떠나는 아이처럼 마음이 들떠 어쩔줄 몰라하는 사이 어느덧 산행을 준비하는 배낭을 꾸리고 있다.

지리산에는 식수를 보충할 수 있는 곳이 임걸령샘터와 선비샘을 비롯하여 연하천.벽소령.세석.장터목산장등이 산재하여 있어 많은 물이 필요치 않다고들 하지만 그래도 3리터의 물을 이틀 전부터 꽁꽁 얼려 준비해 배낭에 넣고 아침은 밥을 준비하고, 점심으로는 찹쌀떡을 준비해 역시 배낭에 넣고 13시 10분에 집을 나선다.

오늘도 변함없이 용문네거리에서 최돈민님을 만나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대간호에 몸을 싫으니 대간호는 시민회관과 원두막을 거쳐 지리산의 성삼재를 향해 순항을 한다.

순항을 하던 대간호는 덕유휴게소에서 잠시 정박한 후 다시 성삼재로 향하는데 눈꺼풀이 자꾸만 무거워 진다....

 


 

03시 11분 성삼재(成三 1,090m)

 

대간호에서 눈꺼풀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잠시 잠이 든 것 같은데 대간호는 어느덧 지리산 성삼재에 정박하고 있다.

구례에서 시작된 861번 도로가 인월로 이어지는 고갯마루에 위치해 있는 "성삼재"... 지리산 종주의 시발점이자 종착점이기도 한 성삼재에 발을 내 딛으니, 아니! 이게 왠일인가...? 하늘에서 빗방울이 하나 둘 떨어지고 있지 않는가.

얼마나 고대하던 지리산 종주인데... 할말을 잃고 주변을 살피니 이미 우리보다 먼저 도착한 산행객들이 매표소 앞에서 임산 허가를 기다리며 산행준비를 하는라 분주하다.

 

성삼(成三)재는 삼한(三韓 : 마한, 진한, 변한)시대 진한과 마한이 전쟁을 버리던중 마한 군대의 공격에 밀리던 진한의 왕이 지리산의 깊은 계곡인 달중계곡으로 숨어 왕궁을 세우고 피난생활을 하면서, 북쪽 능선에 여덜 명의 장수를 배치하여 지키게 하여 "팔량치", 동쪽은 황 장군이 맡아 지키게 하여 "황영재", 그리고 남쪽은 가장 중요한 요충지이므로 성이 각각 다른 세 명의 장군을 배치하여 방어하게 하여 성삼(成三)재라 부르게 되었다는 성삼재에 도착하니 마음도 몰라주고 내리는 안개비는 산행준비를 하는 산행객들의 마음을 심난하게 한다.

 

성삼재에 861번 도로가 생기기 전까지만 해도 지리산을 종주하려면 구례의 화엄사에서 출발하여 코재를 거쳐 3시간 가량을 걸어 노고단 산장에 올라 지리산 종주를 시작하는게 보편화 되어 있었다.

그러나 요즘은 자동차나 버스 등으로 쉽게 성삼재에 올라 한 시간가량만 다리품을 팔면 노고단에 쉽게 닿을 수 있으니 얼마다 편해졌는가.?

 


 

03시 26분 성삼재매표소를 지나며

 

하늘에서 빗방울이 떨어져서 인지는 모르지만 오늘 따라 한겨레회원분들이 어수선하게 움직이며 분주한 가운데 산행전에 실시하는 준비운동도 생략하고 매표소를 지난다.

매표소에서 부터 노고단까지는 돌과 콘크리트등으로 포장된 임도가 잇따르는 가운데 임도 가장자리에는 물봉선들이 빗물과 이슬을 머금고 수숩게 꽃을 피우고 있다.

"울밑에선 봉선화야 네 모양이 처량하다..."

딱딱한 오르막 비탈의 임도를 20여분 걸으려니 허벅지 근육이 부풀며 기분좋은 긴장감이 찾아온다.

언제나 대간길의 선두에는 산악대장인 이용우님과 회장님 그리고 강희산님이 있었는데 오늘은 아무도 보이지 않는게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사이 어느덧 노고단으로 향하는 돌계단이 나타난다.

 


 


 

03시 58분 노고단대피소(老故壇 1,507m)

 

지리산 주능선 종주산행은 천왕봉에서 시작할 수도 있고, 노고단에서 먼저 출발할 수도 있다. 대부분의 산객들은 노고단에서 천왕봉으로 이어지는 대간마루 능선을 남진하며 종주를 한다.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무거운 배낭을 메고 해발고도가 1,915m인 천왕봉을 향해 오르는 것보다 해발고도가 천왕봉보다 400m가량 낮은 노고단쪽으로 오르는게 유리하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종주산행의 마지막 목표지점을 천왕봉으로 잡고 산행을 하다가 지리산의 주봉인 천왕봉(天王峯)에 올라섰을 때 감격이 그만큼 크게 느껴질 것이다.

노고단은 정상(1,507m)에서 노고단 고개로 뻗어내린 지맥에서 경사 17도에서 18도로 완만하게 전개된 약 100여평 정도의 고원이다.

 

노고단(老姑壇)의 옛이름은 길상봉(吉祥峰)으로 신라시대에 시조 박혁거세의 어머니 선도성모(仙桃聖母)를 지리산 산신으로 받들고 나라의 수호신으로 모시면서 매년 봄과 가을 제사를 올렸던 곳이다.

노고단이라는 이름도 선도성모의 높임말인 노고(老姑)와 제사를 올리던 신단(神壇)이 있는 곳이라는 뜻으로 부르게 된 것이다. 지금까지 남아있는 남악사(南岳祠)가 원래 이 노고단에 자리했었다.
신라시대에 화랑들이 심신수련도장으로 활용되었던 이 노고단에는 지난 1920년대에 외국인 선교사 수양관 49동이 세워졌다. 이 수양관 건물은 48년 여순사건 여파로 불태워졌는데, 일부 건물은 그 잔해가 지금까지 남아있다.
노고단 주변에는 종석대, 관으대, 만복대, 집선대, 문수대, 청련대 등이 예부터 명승지로 꼽혀 왔다. 이 고원 일대는 봄철의 진달래, 철쭉, 여름철의 원추리 군락이 유명하다. 이곳에는 운해(雲海)를 자주 볼 수 있는데, 노고 운해는 지리산 8경 가운데 하나인데 오늘은 아직 해가 드지않아 아니! 비가 와서 운해를 보는 은 불가능하여 "이종길"님이 지은 "지리영봉"이란 글로 운해를 대신 해 본다...


"어디에서 몰려왔는지도 모르게 운무(雲霧)가 파도처럼 밀려와 산야와 계곡을 메우고, 수려한 노고단 중턱 산허리를 감돌아 흐르면, 홀연히 운해만리(雲海萬里) 구름바다를 이루어 높은 봉은 점점이 섬이 되어 완연히 다도해로 변한다. 이 변화무쌍한 자연조화의 신기로운 경관은 오직 숙연한 감동과 외경감(畏敬感)을 안겨준다."

 


 


 

04시 12분 돼지평전을 지나며

 


 


 

05시 08분 피아골갈림길을 지나며

 


 


 

05시 18분 임걸령샘터

 

1,424m봉우리에서 완만한 내리막 비탈을 내려서서 구상나무와 잣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자라고 있는 숲길을 얼마간 걷다보면 "임걸령삼거리" 이정표를 만나고 그곳에서 다시 10여분을 걷다보면 임걸령에 닿는다.


임걸령(林傑嶺)이란 이름은 조선 명종때의 초적 두목 임걸년(林傑年)의 이름에서 유래되었는데 임걸년이란 인물에게는 쏜살보다 빨리 달렸다는 다소 과장된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임걸령에서 잠시 다리쉼을 하고 좌측으로 조금 내려서니 "임걸령샘"을 만난다.

이 샘은 사시사철 그 수량이 일정하고 마르지 않아 산행객들이 식수를 보충하는 중요한 포인트이다.

임걸령샘터에서 그 모습을 사진에 담으려고 여러번 카메라의 셔터를 눌렀으나 안개비와 어둠때문에 다 신통치 않고 겨우 한 장의 사진만 건진 후 임걸령에 오르니 산악대장인 이용우님의 배낭을 매고 앞으로 나아가고 그 뒤를 서석용님이 뒤 따른다. 그래서 나 역시 그 뒤를 따라 열심히 발품을 팔며 삼도봉으로 향한다.

 


 

05시 55분 반야봉(般若峰 1,722.5m) 갈림길

 

지리산 10경 가운데 두번째 경승(景勝),반야낙조(般若落照)로 유명한 반야봉(1,733.5m)은 대간마루에서 좌측으로 왕복 45분 정도의 거리에 있다.

평소 대간길 이었다면 반야봉에 올라 "경승"의 참 모습을 조망하고 오련만 오늘은 비가 내리고 산행거리가 평소보다 긴 관계로 반야봉으로 향하지 못함을 아쉬워하며 서석용님과 열심히 다리품을 팔아 삼도봉으로 향하는데 앞서 가던 이용우님이 시야에서 사라져 보이지 않는다.

이용우님은 대간산행에서는 뒤 따르는 사람이 어느정도 따라오는지 아니면 쳐지는지를 감안해 걷는 속도를 조절하며 걸었는데 오늘은 왠일인지 뒤 돌아보지도 않고 앞만보고 빠삐 걸음을 옮기더니 이내 시야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비가 내리고 있어 아직 어둠이 사그러들지는 않았지만 사위가 점점 밝아지는게 이제는 랜턴에 의지하지 않고도 발길을 옮기는데 지장이 없다.

그래서 더욱 빠른 걸음으로 앞서 가는 이용우님을 따라 잡으려고 서석용님의 발자욱을 따라 삼도봉에 닿는다.

 


 

06시 00분 삼도봉(三道峰 1,550m)

 

삼도봉(三道峰)은 불무장등능선이 흘러내리는 시발점이다. 해발 1,550m의 이 봉우리 이름이 삼도봉으로 된 것은 근래의 일이다. 원래는 이 봉우리를 이루고 있는 바위 모양이 "낫날"같다고 하여 "낫날봉"으로 불렸다. 이것이 등산객들에게 와전되어 "날라리봉"으로 불리어 졌다.

그 후 날라리봉이란 이름이 천박하게 들린다고 하여 국립공원 관리공단에서 이정표를 세우면서 "三道峰"으로 명명했다.

이 봉우리에서 전라남북도와 경상남도가 분기하므로 삼도봉이란 명칭은 적절한 것 같다.
삼도봉은 지리산 주능선 가운데 훌륭한 조망쳐중 하나이다. 근래 이곳에서 남쪽으로 흘러내리는 불무장등능선으로 등산로가 개설되어 있으나, 중간 중간에 길이 희미한 곳도 있어 맑은 날씨에 산행 경험이 많은 사람과 동행해야 한다.

 

삼도봉에 도착하면 이용우님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서석용님의 발자국을 따라 삼도봉에 도착했을 때는 이용우님은 벌써 화개재를 향해 그 모습을 감추고 보이지 않는다.

서석용님과 나는 삼도봉에서 간단하게 서로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 화개재로 바삐 발길을 옮긴다. 

 


 


 


 


 


 

06시 15분 화개재 (1,360m)

 

삼도봉에서 화개재 까지는 2km정도의 짧은 거리이다.

삼도에서 동쪽의 바위벼랑을 비껴 내려 서면 잠시 후에 급경사 내리막길이 시작된다. 지리산 주능선에서 가장 잘룩한 해발 1,360m의 화개재로 내려서는 길인데 몇 년 전 까지만 해도 등산로의 훼손 상태가 극심하여 나무 뿌리가 어지럽게 노출돼 있었고, 물기가 있을 때는 굉장히 미끄러운 길이어서 자칫하면 미끄러져 엉덩방아를 찟거나 부상을 당하는 일이 많았으나 지금은 위의 사진에서 처럼 나무계단이 잘 설치되어 있어 산행하는 산행객들의 안전을 도모하고 있다.

 

화개재는 지리산 주능선 가운데 해발 고도가 가장 낮은 곳으로 헬기장과 더불어 마당같은 공터가 있었는데 지금은 공터와 산행로에는 나무게단과 목책이 설치되어 있어 생태계에 영향을 주지 않고도 화개재를 구경하고 지날 수 있게 잘 가꾸워져 있다.
화개재 북쪽에는 뱀사골이 있는데 진행방향의 좌측으로 가파른 비탈을 따라 200여 미터만 내려가면 뱀사골 산장이 있다. 산장에서는 식수와 기타 필요한 물품을 구입할 수 있고, 특히 이곳 원두커피 맛은 등산의 피로를 풀어주고도 남음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

 

서석용님과 내가 화개재에 도착했을 때는 한 산행객이 어젯밤 비박을 했는지 화개재가 다하는 넓은 쉼터에서 배낭과 비박할 때 사용했던 비닐을 정리하고 있어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우리보다 앞에 가는 산행객을 보지 못했냐고 물으니 약 15분 전에 한 분이 잰걸음으로 지나 갔다고 대답해 주신다.

 

"필시 그 산행객은 이용우산악대장이 틀림 없을 것이다..."

 

서석용님과 나는 그 산행객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토끼봉으로 이어지는 오를막 비탈을 향해 발길을 옮긴다.

 


 


 

06시 40분 토끼봉(1,533.7m)

 

화개재에서 시작된 오르막 비탈길이 2km가량이어지다가 그 비탈이 다하는 곳에 토끼봉이 자리하고 있다. 토끼봉 정상 일대는 진달래와 철쭉의 관목숲이 많아 4월말경부터는 연분홍 빛깔의 진달레와 철쭉꽃이 어우러져 반발하게 피어나는 향연을 볼 수 있다.

토끼봉에서 남쪽으로 흘러내리는 능선을 따라 "칠불암"로 내려가는 산길이 있는데, 근래 이 산길은 칠불암 위쪽에서 차단이 되어 왼편의 산비탈을 따라 범왕리 입구로 하산하게끔 돼어 있단다.

이 능선길은 조난자가 발생했을 때 피난 루트로 유용하게 활용되기도 하는데, 토끼봉에서 칠불사까지는 약 8km의 거리이다.

토끼봉의 정수리 부분에 우뚝 자리하고 있는 커다란 바위를 기념 삼아 카메라에 담고 계속해서 걸음을 옮겨본다.

 


 

07시 16분 명선봉(1,586.3m)

 

토끼봉에서 2km를 걸으면 "명선봉에 닿을 수 있다.

명선봉에서 "연하천산장"까지는 1km밖에 되지 않으나 매우 가파른 비탈길이 잇따른다. 특히 오늘 처럼 비가 내리는 날에는 계단이 설치되어 있는 곳이나, 혹은 없는 곳에서나 주위를 기울이며 내려서야만 한다.

 

토끼봉에서 명선봉으로 걸어가다 보면 우측으로 총각샘을 만날 수 있단다.

총각샘은 남쪽 능선 너머 20여미터 되는 지점에 자리하고 있으며 커다란 벼랑 아래서 샘물이 솟아나고, 그 앞에 넓은 공터가 있다고 알려져 있으나 오늘은 사정상 그 샘을 경유할 수 없어 아쉬운 순간이다.


"총각샘은 옛날 심마였던 노총각이 처음으로 발견하고 이용했던 샘이라고 하는데, 지난 1920년 7월에 지리산 산악회의 노총각 2명이 수소문 끝에 발견했다고 한다.

"총각샘"이란 이름도 그런 연유로 불려지고 있단다. 또한 장터목의 "산희샘'이란 여성적인 명칭과 대비시킨 뜻도 있는 듯 하다."


 


 

07시 34분 명선봉에서 연하천대피소로 향하는 서석용님

 


 

07시 40분 ~ 08시 10분 연하천대피소 (아침식사)


연하천(烟霞泉)대피소 해발 1,500m 이상의 고산지대인 데도 맑고 시원한 물량이 많아 작은 천을 만들고 흘러내린다.

이곳에 자리잡은 연하천대피소는 지난 1982년 건립된 15~20평 남짓한 아담한 건물로 50명 정도의 산행객들을 수용할 수 있느데, 이 연하천이란 이름도 구례의 지리산 산악회(전신은 연하반산악회)에서 명명하였다 한다.

 

연하천에 도착하니 많은 산행객들이 산행을 준비하느라 혹은 이 곳에서 아침을 먹느라 분주한 가운데 서석용님이 이 곳에서 아침을 먹고 가자고 하여 취사장의 자리가 나기를 잠시 기다리다가 취사장으로 들어가 도시락을 꺼내놓는데 아니! 이용우님이 그 곳에서 아침을 먹고 있는게 아닌가.?

너무 반가워서 인사를 하고 아침을 먹기 시작하니 서석용님이 복숭아를 꺼내어 이용우님과 나에게 하나씩 건네 주신다.

내가 식사를 하고 있는중 이용우님은 식사를 마치고 서석용님이 건네준 봉숭아를 맛있게 먹고 날씨가 제법 쌀쌀하니 우의를 벗지 말것을 당부하고는 이내 발길을 옮겨 시야에서 사라진다.

내가 식사를 거의 끝마칠 무렵 연하천으로 우리 "대전한겨레산악회" 회원님들이 속속 도착하기 시작한다.

그래서 나는 얼른 자리를 내주고 취사장 밖으로 나와 연하천의 풍경을 열심히 카메라에 담아본다.

 


 

"그대는 나날이 변덕스럽지만 지리산은 변하면서도 언제나 첫마음이다. 행여 견딜만 하다면 제발 오지 마시라."

 

위 목판에 씌어져 있는 글귀인데, 그 글을 읽다보면 참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식수를 보충하고 있는 똘이장군님 ***

 


*** 서석용님께서 건네준 복숭아를 입에 머금고 있어 어쩔줄 몰라하는 모습 ***

 


*** 용문네거리의 영원한 산객 최돈민님 ***

 


 

08시 27분 삼각고지 (1,462m)

 

연하천대피소에서 최돈민님과 서석용님의 뒤를 따라 한참을 걷다 보니 아침식사 전에 이용우님이 그러했듯이 이번에는 최돈민님이 뒤를 돌아보지도 않고 잰걸음으로 가파른 암릉으로 이루어진 오르막 비탈과 내리막 비탈을 넘나드는데 처음 몇분은 그런데로 따라갈 수 있었으나 카파른 내리막 비탈에서는 무릎에 무리가 가지 않을까 염려되 더 이상 따라갈 수 없어 나는 최돈민님과 서석용님을 먼저 보내고 홀로 고즈넉한 산길을 걷다가 1,462m삼각고지 근처에서 고사목 한 그루를 만나니 비를 맞으며 홀로 서 있는 고사목이랑 내 모습이 흡사하다는 생각이 든다.

 


 

08시 48분 형재봉(1,433m)을 지나며...

 


 

08시 52분 형재바위

 

형재봉을 지나 가파른 내리막 비탈을 조금 내려서니 엷은 구름 사이로 형재바위가 우뚝서서 나를 반긴다.

그 모습을 카메라에 담으려고 앞 뒤로 왔다 갔다를 반복해 보아도 한 프래임에 잘 잡히지 않아 고심하고 있는중 뒤에서 "강일구씨 뭐해요"라고 하는 목소리가 들려 뒤돌아 보니 송영래님과 김영규님이 형재봉에서 내려오고 있다.

나는 이 바위가 형재바위가 틀림 없는데 좀처럼 카메라에 담기가 어렵다고 하며 반갑게 인사를 했다.

송영래님에게 인사를 하고 나니 그 뒤로는 서병모님과 친구분이 함께 걸어오고 있다.

서병모님에게 새벽에 노고단에서 힘내자님께서 컨디션이 좋지 않아 하산했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무사히 하산했는지 물으니 서병모님은 얼굴을 찌푸리며 대간호와 연락이 닿지 않아 힘내자님은 다른 교통편을 이용해 신탄진으로 올라가고 있는 중이라며 많은 걱정을 하신다.

 

"형제바위" 또는 "입석바위"라 불리는 이 바위에는 전설이 있다.

옛날에 깊은 산중에서 성불 수도하던 두 형제가 지리산의 요정 "지리산녀"의 끈질긴 유혹을 경계하여 도신(道身)을 지키려고 서로 등을 맞대고 오랫동안 부동자세로 서 있다가 그만 몸이 굳어져 지금과 같은 형재바위가 됐다는 전설이다.

형재바위 바위 옆으로 조금 내려서면 "연화굴"이라 불리는 자그마한 동굴이 자리잡고 있다.

 


 

09시 02분 투구꽃

 

벽소령대피소를 1.5km가량 남겨 놓은 지점에서 전장에서 장군들이 쓰고 있는 투구를 닮은 "투구꽃"을 만나는 행운을 얻는다.

오늘 지리산의 절경을 비가 내리는 바람에 하나도 볼 수 없는 것을 투구꽃은 세석평전 근처에서 한 번 더 나에게 선보이며 보상을 해 주었다.

 

투구꽃(Aconitum jaluense)                

 

쌍떡잎식물 미나리아재비목 미나리아재비과의 여러해살이풀로 한국(속리산 이북), 중국 동북부, 러시아등지에 분포하며, 깊은 산골짜기에서 자생한다.

높이 약 1m이다. 뿌리는 새발처럼 생기고 줄기는 곧게 선다. 잎은 어긋나며 손바닥 모양으로 3∼5개로 갈라진다. 각 갈래조각은 다시 갈라지지만 위로 올라갈수록 잎이 작아져서 전체가 3개로 갈라진다. 갈래조각에 톱니가 있으며 잎자루가 길다.

꽃은 9월에 자주색으로 피고 총상 또는 겹총상꽃차례[]에 달리며 작은꽃줄기에 털이 난다. 꽃받침조각은 꽃잎처럼 생기고 털이 나며 뒤쪽의 꽃잎이 고깔처럼 전체를 위에서 덮는다. 수술은 많고
수술대는 밑부분이 넓어지며 씨방은 3∼4개로서 털이 난다. 열매는 골돌과로서 3개가 붙어 있고 타원 모양이며 10월에 익는다.

관상용으로 심는다.
유독식물로서 뿌리에 강한 독이 있는데, 초오()라고 하며 약재로 쓴다. 한국의 속리산 이북, 중국 동북부, 러시아에 분포한다.

 


 


 


 

09시 26분 벽소령대피소

 

연하천에서 벽소령까지는 큰 굴곡없이 6km가량의 산행로가 이어지는데, 곳곳에 산제되어 있는 암릉과 낙차가 큰 계단이 산행하는 산행객들의 허벅지 근육과 무릎에 부담을 주는 구간이다.

조망이 전혀 없는 숲길을 빠져나오니 제법 넓은 공터가 시원하게 반겨주는가운데 지리산 종주의 중간지점인 벽소령대피소가 반긴다.

 

"벽소령"은 지리산 8경 가운데 하나이며, "벽소명월(碧宵明月)"로 유명한 이종길님의 "지리영봉"을 옮겨본다.


"지리산 등뼈의 한가운데라고 할 수 있는 벽소령을 덮고 있는 밀림과 고사목 위로 떠오르는 달은 천추의 한을 머금은 듯이 차갑도록 푸른 유기(幽氣)마저 감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를 벽소한월(碧宵寒月)이라고도 부르며, 여기서 맞는 달밤의 고요는 현묘한 유수로 몰고가는 태고의 정적 그것이라고나 할까."

 

벽소령은 일명 벱실령으로도 불리는데 남쪽 소로길 200m 지점에 벱실샘(일명 범뱀샘)이 있다.

벽소령은 또 군사 작전도로가 개설된 것으로 유명한데, 지난 70년대 초 하동군 화개면 신흥마을에서 함양군 마천면 삼정마을까지 38㎞의 1차선 도로를 뚫었으나 현재는 남쪽의 도로는 무너진 곳도 있고 잡목이 뒤덮혀 폐도로 버려져 있다. 허나 북쪽으로 나 있는 마천쪽의 도로로는 SUV차량들이 오르 내리고 있다.

서쪽의 헬기장이 있는 벽소령을 구벽소령 또는 "화개 벽소령"이라 부르고, 1㎞ 동쪽의 벽소령을 신벽소령 또는 "마천 벽소령"이라 부르고 있다.


 


 


 


 


 

10시 21분 선비샘

 

벽소령대피소에서 잠시 다리쉼을 하며 송영래님이 나누어 주시는 포도와 식수로 허기를 달래고 새벽녁 보다 굴어지는 빗줄기를 대비해 배낭을 추스리고 덕평봉으로 발길을 옮겨본다.

벽소령대피소에서 이어지던 임도를 지나 덕평봉(1,521.9m)의 숲 속 오르막길로 접어드는데 대간호 제일 뒤에서 나란히 앉아 있던 두 여자분중 언니로 보이는 회원님이 달리다시피 하며 우리 일행을 지나쳐 가고, 조금 있으려니 동생으로 보이는 여자분이 잰걸음으로 역시 지나쳐 간다.

 

덕평봉(1,521.9m)을 지나 남쪽 사면으로 돌아서 조근더 걸으니 넓다란 평지와 함께 선비샘이 나온다.

선비샘이라고는 하지만, 종래의 샘터를 묻어버리고 석축을 쌓아 그 중간에 파이프를 박아놓았기 때문에 옛 정취는 사라지고 또한 선비샘의 본모습은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어 안타깝다.

 


*** 마주송이풀 ***

 


*** 망바위를 지나며 ***

 


10시 56분 1,576m봉에서

 


 

11시 08분 칠선봉(1,558m)

 

선비샘에서 기암과 기봉을 조망하며 안개와 빗줄기로 인해 구경이라고는 하기 힘들지만, 험한 비탈과 암릉을 오르 내리니 봉우리 둘레에 7개의 기한 암봉이 조화를 이루며 우뚝 솟아있어 일곱 선녀가 노니는 모습과 흡사하다 하여 "칠선봉"이라 이름 붙여진 칠선봉에서 잠시 다리쉼을 하며 기념촬영을 해 본다.

 


 

11시 39분 영신봉으로 오르는 들머리

 


 

11시 46분 영신봉(1,651.9m)

 

칠선봉에서 영신봉으로 이어지는 산행로에는 기묘한 암봉과 암릉들이 산재되어 있다.

그 암봉과 암릉을 넘으면 경사가 급한 돌투성이 길이 나타난다. 이 구간이 힘든 구간이지만 요즘에는  안전시설물이 설치돼 있어 예전에 돌과 나무 뿌리를 잡고 오르던 스릴은 사라졌다.
이 비탈길을 치고 올라 영신봉 능선에 올라서면 마치 등정을 완료한 듯한 쾌감을 맛볼 수 있으나 오늘은 비가 오기 때문에 하얀 안개가 깔려있는 운해??만을 볼 수 있다.

대성골 전체가 한 눈에 내려다 보이고, 마치 비행기를 타고 가는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는 이 구간인데 야속한 빗줄기는 더욱 거세지는 듯하여 안타까운 순간이다.


영신봉 이정표가 세워져 있는 곳에서 영신대 까지는 내려서는 길이 나있다. 일반 등산객들은 무심하게 지나치지만, 기도객들은 이 길을 따라 영신대로 내려간다.

영신대는 대성골 본류를 따라 큰세개골 까지 산길이 이어져 있는데, 대성폭포와 곁들이는 지리산 비경 루트 가운데 하나이다.
영신봉 이정표에서 동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면 곧 세석고원의 방대한 세계가 한눈에 들어온다. 둘레12km,  약 30여만평의 이 고원지대엔 철쭉 군락이 너무 유명하나 오늘은 멧돼지가 막 점심을 먹었는지 뿌리를 케 먹으려고 곳곳의 땅을 갈아 업어 놓은 모습만 눈에 들어오고 엷은 안개 사이로 송수신용 안테나만이 을씬년스럽게 눈에 들어온다.


 


 


 

12시 00분 세석대피소

 

세석대피소에서 떨어지는 빗방울을 바라보며 점심식사를 했다.

점심식사가 끝나갈 무렵 김의환님이 도착했는데 식사를 마치는 것을 보고 함께 출발하려고 했으나 비를 맞아 젖은 옷 때문인지 체온이 떨어지며 한기를 느껴 할 수 없이 송영래님과 박영규님 그리고 나는 먼져 발길을 옮겼다.

 


 

12시 38분 촛대봉(1,703.7m)

 

세석대피소에서 세석평전(산돌평전)을 지나 촉대봉으로 이어지는 산행로는 많은 인내와 다리품을 팔아 허벅지 근육이 피로를 느껴야만 오를 수 있다.

 


 


 

흰진범(Lycoctonum longecassidatum)


 
쌍떡잎식물 미나리아재비목 미나리아재비과의 여러해살이풀로 한국(중부지방)·중국 등지에 분포하며, 산지의 숲속에 자생한다.

흰진교라고도 한다. 산지의 숲속에서 자란다. 높이 약 1m이다. 줄기는 비스듬히 올라가다가 윗부분에서 덩굴이 되며 잔털이 난다. 뿌리에 달린 잎은 잎자루가 길고 줄기에 달린 잎은 위로 갈수록 작아진다. 잎은 손바닥 모양이고 3∼7갈래로 갈라지며 갈래조각에는 깊게 패인 흔적이나 이 모양의 톱니가 있다. 겉면과 뒷면 맥에 털이 난다.
꽃은 8∼9월에 노란빛이 섞인 흰색으로 피며 줄기 끝과
잎겨드랑이총상꽃차례로 달리는데, 포는 바소꼴 또는 줄 모양으로서 털이 난다. 꽃받침은 5장이고 꽃잎처럼 생겼으며 뒤쪽 것은 원통 모양의 꿀주머니가 된다. 꽃잎은 2장이고 뒤쪽 꽃받침 속으로 들어가 꿀샘이 된다. 씨방은 3개이고 수술은 많다.
열매는
골돌과이고 종자는 삼각 모양이며 날개와 주름이 있다. 유독식물로서 민간에서는 뿌리를 진통제·이뇨제 등으로 쓴다. 한국(중부지방)·중국 등지에 분포한다.

 


 


 

13시 16분 삼신봉을 지나며...

 


 


 

13시 30분연하봉(煙霞峰 1,667m)

 

기암괴석과 야생화들이 늘 반발하여 산행하는 산행객들에게 황홀감을 선사해 준다는 연하봉에 도착하니 하얀 안개만이 자욱하고 기암괴석과 야생화는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힘들게 다리품을 팔아 열심히 올랐으니 그 흔적을 남기기 위해 기념 촬영을 해 본다.
연하봉 이정표를 지나 평탄한 초지로 이루어진 능선의 안부를 거쳐 넓고 평탄한 마당바위가 있는 봉우리에 올라선다. 남쪽으로 지능선이 뻗어내린 이 봉우리가 바로 일출봉(日出峰)이다.

 

장터목 산장에서 숙박하고 천왕봉 일출을 보려면 새벽 일찍 약 3km가량을 걸어 가야 하지만 천왕봉 일출 구경이 어려울때 이곳 일출봉에서 대신 해돋이를 지켜보는 것도 대안이 될수 있는 곳이다.

일망무제(一望無際)로 탁 틔어있는 천왕봉 일출이 산문(散文)적이라면, 이곳 일출봉의 해돋이는 좌측으로 천왕봉의 커다란 암봉의 그림자를 걸어 놓고 있어 더욱 운치가 있다고 할 수 있다.

 


 

*** 분취속에 속하는 꽃이나 아직 그 이름을 명확히 알 수는 없다...***

 


 

13시 48분 장터목대피소

 

일출봉에서 비가 내려서 질척한 진흙길을 따라 10여분동안 걸어 내려서면 장터목대피소에 닿는다.

장터목대피소는 지리산에서 노고단대피소와 함께 가장 붐비는 대피소 중에 한 곳이다.

장터목대피소는 사통팔달로 등산로가 열려있고, 천왕봉의 전진기지 역할을 하고 있으며, 지난날 남쪽의 시천(矢川)주민과 북쪽의 마천(馬川)주민들이 물물교환을 하던 장터였다는 이 장터목이 지금은 등산객들로 날마다 장터를 방불케 하고 있다.

특히 오늘 처럼 비가 내리는 날에는 비를 피하기 위해 혹은 끼니를 해결하기 위해 아니면 장비를 잠시 재 정비하기 위해 분비는 곳이다.


장터목대피소에서 남쪽으로 20여미터를 가면 장터목샘(일명 산희샘)이 있다.

그리고 장터목대피소에서는 중산리의 칼바위가 있는 곳으로 산행로가 나 있어, 성삼재에서 이 곳까지 산행하다가 몸에 이상이 생기거나 날이 저물어 부득이 천왕봉을 오를 수 없는 산행객들이 산행시간을 1시간 30분에서 2시간 정도를 단축하여 하산할 수 있다.

 


 


 

14시 05분 재석봉(宰釋峰 1,806m)

 

장터목에서 부터 시작된 가파른 돌비탈길을 따라 오르면 재석봉 일대의 고사목 지대를 지난다. 

예전에 재석봉 일대에는 아름드리 전나무와 잣나무 그리고 구상나무 들이 하늘을 가려 햇빛이 땅에 닿지 않을 만큼 울창하였다 하나 지금은 거의 민둥산에 가깝다.

 

"살아서 천년 죽어서 천년을 간다"는 고사목 들은 안개와 빗방울로 인해 잘 보이지는 않으나, 자유당 말기 권력의 비호를 받아 벌목꾼들이 이곳에서 대규모 도벌을 하다 그 사실이 여론화 되고 말썽이 일자 급기야 관할 관청에서 형장조사를 하려하자, 벌목꾼들은 그 증거를 없에기 위해 재석봉에 불을 질러 그나마 남아있던 나무들 마저 불에타 지금과 같이 앙상한 몰골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 고사목마저 날이 갈수록 점차 쓰러지고 도벌(?)로 사라지고 있는 실정이다.

근래 제석봉 일원에 다시 구상나무 묘목을 심고 씨앗을 뿌리는 작업을 하고 있지만, 원상회복은 참으로 아득히 먼 훗날에나 가능하지 아늘까 생각한다.

제석봉의 고사목의 처참한 모습이 사람들에 의해 황폐화된 지리산의 아픔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가운데, 재석봉을 알리는 푯말마저도 산행로 가장자리의 로프 너머에 쓰러저 나뒹굴고 있다.

그래서 송영래님과 나는 나뒹구는 재석봉 푯말을 일으켜 세워 놓고 주위에 있는  돌들을 주워 모아 잘 돋구워서 푯말이 쓰러지지 않게 만들어 놓고 그 푯말 옆에서 기념촬영을 해 보았다.

 


 

수리취(Synurus deltoides)

 

쌍떡잎식물 초롱꽃목 국화과의 여러해살이풀로 한국·일본·중국·시베리아등지에 분포하며, 산지의 양지바른 곳에 자생한다.

떡취·산우방()·개취라고도 한다. 산지의 양지에서 자란다. 높이 40∼100cm로서 윗부분에서 2∼3개의 가지가 갈라진다. 줄기는 자줏빛이 돌고 능선이 지며 흰 털이 빽빽이 난다.

줄기에서 나온 잎은 어긋나게 달린다. 밑부분의 잎은 달걀 모양 또는 달걀 모양 긴 타원형으로 끝이 뾰족하고 밑부분이 둥글며, 표면에는 꼬불꼬불한 털이 있으나 뒷면에서는 흰색의 솜털이 빽빽이 나고 가장자리에는 일그러진 모양의 톱니가 있으며
잎자루는 좁은 날개가 있거나 없다. 윗부분의 잎은 점차 작아지나 잎자루는 점차 짧아져서 없어진다.

꽃은 9∼10월에 피고 두화()가
원줄기 끝이나 가지 끝에서 옆을 향하여 달린다. 두화는 지름 5cm 정도이며 자줏빛 통상화로 된다. 총포는 종 모양이고 갈색빛을 띤 자주색 또는 검은녹색이며 거미줄 같은 흰 털로 덮여 있다. 열매는 수과로서 11월에 익으며 갈색의 관모가 있다.

어린 잎을 떡에 넣어 먹는데, 단오의 절식()인
수리취절편이 유명하다. 또한 성숙한 잎은 말려서 부싯깃으로 사용한다. 풀 전체를 지혈·부종·토혈 등에 약용한다. 한국·일본·중국·시베리아에 분포한다. 잎이 깃처럼 갈라지는 것을 국화수리취(S. palmatopinnatifidus var. indivisa)라고 한다.

 


 

배초향(Agastache rugosa)

 

쌍떡잎식물 통화식물목 꿀풀과의 여러해살이풀로 한국·일본·타이완·중국 등지에 분포하며, 양지쪽 자갈밭에 서식한다.

 방애잎·중개풀·방아풀이라고도 한다. 양지쪽 자갈밭에서 자란다. 높이 40∼100cm이다. 줄기는 곧게 서고 윗부분에서 가지가 갈라지며 네모진다. 잎은 마주나고 달걀 모양이며 길이 5∼10cm, 나비 3∼7cm이다. 끝이 뾰족하고 밑은 둥글며 길이 1∼4cm의 긴 잎자루가 있으며 가장자리에 둔한 톱니가 있다.

꽃은 입술 모양이며 7∼9월에 피고 자줏빛이 돌며 윤산꽃차례[]에 달리고 향기가 있다. 꽃차례는 이삭 모양으로서 길이 5∼15cm이다. 꽃받침은 5개로 갈라지고 화관은 길이 8∼10mm로서 윗입술 모양 꽃잎은 작고 아랫입술은 크며 5개로 갈라진다. 4개의 수술 중 2개는 길다.

열매는 분열과로서 납작하고 달걀 모양의 타원형이다. 어린순을 나물로 하고 관상용으로 가꾸기도 한다. 성숙한 것은 포기 전체를 소화·건위·진통·구토·복통·감기 등에 약으로 사용한다. 한국·일본·타이완·중국 등지에 분포한다.

 


 

14시 24분 통천문(通天門, 하늘문), 석문(石門)

 

산을 사랑하고 즐거 찾았던 우리의 옛 선조들도 천왕봉에 오르기 위해서 하늘과 맞닿아 있는 석문을 한 번 쯤은 반듯이 거처갔다는 통천문(석문)에 선다.

통천문(通天門)은 재석봉에서 숲길을 따라 걷다보면 약 5m에 달하는 수직으로 된 암벽에 있는 석문(石門)인데, 예전에는 가파르고 험한 암릉에 쇠줄만이 걸려있어 오직 쇠줄을 잡고 오르 내리는 힘든 구간 이었지만, 지금은 철재 계단이 설치되어 있어 그 운치는 옛날만 못하지만 산행객들은 약간의 다리품만 팔면 누구난 오르 내리릴 수 있다.

그 통천문에 김영규님과 송영래님을 모시고 흔적을 남겨본다...

 


*** 통천문 정수리에 있는 소나무 ***

 


 


 


 

14시 39분 천왕봉(天王峰 1,915m)

 

통천문을 지나면 한동안 평탄한 길이 이어지다가 마지막 한 고비인 거대한 암벽 비탈이 천왕봉으로 이어지는 산행로와 만난다.

오른쪽은 통신골로 사태가 난 지역으로 낭떠러지를 이루고 있고, 왼편 비탈로 쇠막대기와 쇠줄이 산행객들의 안전을 도모하기위해 설치되 있다.

이 벼랑을 올라서면 천왕봉까지 바위 덩어리들이 모여있는 암괴(巖塊) 군락이  잇따른다.

 

이 땅에 살며 산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아니! 산을 사랑하지 않더라도 이 땅에 산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한 번은 오르고 싶어 하는 지리산의 천왕봉은 짙은 안개와 간간이 떨어지는 빗물에 쌓여 그 모습을 좀처럼 보여주지 않으려 하는 가운데 힘든 다리품을 팔아 천왕봉의 빗돌 옆에 선다.

 

천왕봉에 올라 해돋이를 볼 수 있는 사람은 삼대(三代)에 걸처 치성으로 적선을 해야만 한다는 말이 전해 오 듯, 지리산 천왕봉의 일출은 그만큼 접하기 힘든 관경이지만, 오늘은 해돋이를 보려고 오른 것도 아닌건만 지리산은 나에게 왜 이리 그 모습을 허락하지 않는 것일까.? 

 

지리산 천왕봉(天王峰 1,915m)은 백두산에서 시작된 배두대간의 정기가 개마고원, 금강산을 지나 남녁의 속리산, 태백산, 소백산, 속리산 그리고 덕유산을 지나 남진하다가 그 정기를 모두 쏟아놓은 곳이라 백두대간의 기운이 산에 고루 미쳤다 하여 예전에는 두류산(頭流山)이라 불리어 졌으며, 신라 때는 5악 가운데 하나인 남악이라 하여 하늘에 천제(天祭)를 지낸 우리 민족의 영산이라 한다.

또한 진나라의 진시왕이 불로초를 구하기 위해 신하들을 동해의 영산으로 보냈는데 그 산이 이 산이다. 그래서 방장산(方丈山)이라고도 불리었다. 


천왕봉의 빗돌에는

 

"請看千石鐘 非大?無聲(청간천석종 비대구무성),

萬古天王峯 天鳴猶不鳴(만고천왕봉 천명유불명),

천섬무게의 종을 보시오 크지 않으면 두드려도 소리가 안나니

저 만고의 천왕봉은 하늘이 울망정 울지않는다네..."라는

 

조식(曺植)선생 싯귀 대신 "韓國人의 氣像 여기서 發源되다"라고 씌어져 있다.


천왕봉 정상 서쪽 암괴에는"천주(天柱)"라는 글씨가 음각되어 있는데, 하늘을 떠받치는 기둥이라는 뜻이다. 천왕봉이 하늘을 떠받치고 있는 기둥이라는 이 말 속에는 여러가지 의미가 포함돼 있는 것 같다.

"천주"라 음각된 곳에서 조금 내려간 능선의 평지가 지난날 성모사당이 세워져 있던 자리이다. 그 아래편 공터에는 성모석상의 천왕봉 복귀를 위해 두류산악회가 세워놓은 철책이 시멘트 바닥에 고정돼 있다. 이 자리는 일제시대에 반토굴식 산장이 있었고, 지난 50년대 후반에서 60년대 중반까지 김순룡노인이 지키기도 했었지만, 현재는 산장 모습은 간 곳이 없고 그 흔적만 엷게 남아있다.
천왕봉의 성모석상은 고려시대 이래 1,000년을 모셔왔고, 이 영봉이 우리나라 무속신앙의 발원지임을 증명하는 것이기도 했다. 고려 태조 왕전의 어머니 위숙왕후를 지리산시으로 봉안하였다는 설(說)등 많은 사연을 안고 있는 성모석상은 현재 중산리의 천왕사란 사찰에 옮겨져 있으며, 성모석상이 그곳으로옮겨가기까지에는 많은 사연이 있다.

 

천왕봉에서의 하산코스는 다양하게 열려 있다. 지리산 종주산행에서 가장 많이 이용하는 하산 루트는 남쪽의 법계사와 로타리산장을 거쳐 중산리로 가는 법계사코스이다. 천왕봉 암봉 아래편에 있는 천왕샘을 거쳐 망바위, 칼바위를 경유하는 이 코스는 9㎞로 가장 빠른 하산길이 된다.
두번째로 많은 사람들이 찾는 하산 루트는 중봉과 써리봉을 거쳐 치밭목 산장, 무재치기폭포를 따라가는 대원사(大源寺)코스이다. 이 루트는 무려 18㎞에 걸친 만만치 않은 거리이지만, 지리산 종주산행의 진정한 맛을 안겨주는 매력 때문에 종주 코스에 포함시키는 경향이 늘어나고 있다.
그 밖에 중봉에서 하봉을 거쳐 광점리로 하산하는 하봉 루트가 있고, 또 장터목까지 되돌아가 백무동으로 하산할 수도 있다. 칠선계곡이나 황금능선 등의 힘든 루트를 따라 종주산행의 대미를 장식하는 이들도 드물게 볼 수 있다.


지리산 종주산행은 통상 2박3일이면 해낼 수 있으나, 오늘 우리는 무박산행이라는 시간과의 싸움울 하고 있기에 천왕봉 정수리의 빗돌에서 잠시 기년촹영을 한 후 조금 내려선 곳에서 바람을 피하며 저마다 과일을 꺼내 놓고 맛있는 간식 시간을 갖고는 이내 배낭을 매고 중산리로의 하산길에 오른다.

 


 


 

15시 14분 대문바위???

 


 

16시 48분 칼바위가 있고 장터목이나 연하봉에서 하산하면 천왕봉에서 하산하는 산행로와 만나는 갈림길

 


 

17시 24분 매표소

 

천왕봉 정수리에서 법계사와 로타리산장을 거쳐 중산리로 하산하는 산행로에는 대문바위, 망바위, 칼바위등이 있으며, 특히 넓은 마당바위가 인상적이다.

하지만 하산하는 산행로는 돌로 이루어진 낙차가 큰 계단과 암릉이 곳곳에 산재되어 있어 성삼재에서 천왕봉까지 12간에 걸처 힘든 산행을 한 산행객들의 다리나 발목 특히 무릎에 많은 충격을 주는 아주 험난한 2시간 40분 가량의 힘든 하산길이 잇따른다.

 

오늘 산행은 기대가 큰만큼 아쉬움도 많이 남는 산행이었습니다.

좋지 않은 일기 탓에 지리산의 진명목은 볼 수는 없었으나 "대전한겨레산악회"의 좋은 회눤분들과 성삼재에서 천왕봉으로 이어지는 지리산의 대간마루를 함께 걸었다는 것에 큰 의미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새벽부터 비를 맞으며 힘들고 긴 산행을 아무런 사고 없이 완주(종주)하신 회원님들께 감사하며, 정말 고생 많이 하셨습니다.

오늘 삲랭에서의 아쉬움은 산이 붉게 물드는 가을에 달래기로 하고 건강하세요...*^^*

 

*** 이 산행기는 쓰지 않으려 하다가 그래도 흔적을 남겨야 한다고 생각되어 작성한 글입니다. 산행기가 늦여서 죄송하게 생각하며, 혹시 오류나 다른 의견이 있으면 댓글을 남겨주세요...*^^* ***

 

2006년 09월 01일

 

강일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