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동정맥 제23구간 몰운대
산행일시 : 2008년 03월 02일 (01일 출발, 무박산행)
산행장소 : 개금동~백병원~현대아파트정문~들머리(편백나무숲)~503.9봉~엄광산~구덕령(꽃마을)~승학산삼거리~항공무선표지소~구덕산(562m)~시약산(기상관측소)~360m봉~276m봉~대치고개~226m봉~220m봉공동묘지~247.2m봉~(우정탑)~괴정고개~167m봉~장림고개~봉화산(149.6m)삼각점~140m봉(삼각점 지적no2)~구평가구단지(산마트)~다대고개~아미산~응봉(233.7m)봉수대.삼각점~홍치고개~142m봉~다대포해수욕장~82m봉(몰운대객사)~몰운대
산행모임 : 대전한겨레산악회(40명)
산행날씨 : 흐린 후 맑음
산행거리 및 시간 : 22.7km,
백두대간 천의봉(매봉산 1,303.1m) 동쪽계곡에서 발원하여 513.5km를 굽이치며 흐르는 낙동강(洛東江)을 서쪽에 두고, 역시 천의봉(매봉산) 동쪽줄기 1,145m봉에서 분기하여 397km에 걸처 힘차게 남으로 뻣어 내려 부산 다대포 몰운대에 닿고서야 맥을 다하는 낙동정맥(洛東正脈)을 종주한지도 1년이 지났다. 낙동정맥 마지막 구간을 종주하기 위해 배낭을 꾸리는 내 가슴은 콩닥콩닥 뛰기만 한데 야속하게도 기상청에선 내일 전국적으로 비가 내리겠다고 예보한다.
03시 34분 개금동
새벽 어둠이 내려 앉은 고속도로를 순항하던 정맥호가 소까움과 청도반시(淸道盤枾)로 잘 알려진 청도휴게소에서 잠시 정박한 다음 가로등 불빛이 낙동강물에 아름답게 방영되는 낙동강대교를 건너 개금동 지하철역 5번출구 앞에 정박한다.
03시 59분 개금현대"I'아파트
개금동 지하철역 앞에서 최영구조대장인의 구령에 맞춰 산행전 준비운동을 한 다음 03시 54분에 대성예식장과 개금2동 주민센터를 지나 가파른 오르막길에 위치한 백병원을 지나니 '살기 좋은 아파트'란 글귀가 씌어져 있는 개금현대"I'아파트 정문을 지난다.
04시 17분 임도
오르막 비탈 막다른 골목길에서 우측으로 방향을 바꿔 200여 미터를 지나니 우측으로는 커다란 동백꽃나무가 밭 한가운데 자라고 좌측으로는 소꼽장난을 하듯 옹기종기 모여 있는 작은 밭에 여러가지 푸성귀가 자라고 있다. 소나무숲길을 지나 잘 자란 편백나무가 군락을 이룬 울창한 숲을 따르니 이내 임도가 나온다. 제대로 된 정맥능선을 찾기 위해 산허리를 타고 이어지는 임도를 따라 왼쪽으로 진행하여 오솔길로 접어들여 작은 계류(溪流)류를 건너 너덜을 빠져나오니 다시 임도에 닿는다.
임도를 따라 동쪽 산허리로 바길을 옮기자 우측으로 정맥능선으로 이어지는 또렷한 길이 보이고, 왼쪽 아래로는 시내에서 나무계단을 따라 오르는 능선길이 확연하게 드러난다. "소나무재선충병 방제를 위하여 감염목에 맹독성 농약을 훈증 처리하고 매개충인 솔수염하늘소의 접근을 방지하기 위하여 피복을 시행한 곳입니다. 훈증비닐 훼손시 솔수염 하늘소의 산란 장소로 이용되어 이차 감염 및 확산이 우려 우려가 있어 훼손을 절대 금지하오니 소나무재선충의 확산 방지 및 완전 박멸을 위하여 구민 여러분의 적극적인 협조를 부탁드립니다."라는 글씨가 씌어져 있는 안내판을 지나 엄광산(嚴光山 503.9m) 정수리로 향한다.
04시 49분 460m봉
보름전 산행에서 불웅령(611m)으로 이어지는 오르막 능선을 오르느라 힘들었던 생각이 절로 나게 할 만큼 가파른 비탈을 오르는데, 부산시의 아름다운 야경은 가파른 비탈을 따라 걸음을 옮길 때마다 발 아래 등 뒤로 점점 낮게 깔리기 시작한다.
아직 해가 뜨지 않아 피부에 와 닿는 새벽공기는 차갑기만한데 짧은 너덜과 암릉이 간간이 잇따르는 460m봉으로 이어지는 비탈이 얼마나 가파른 가는 10여 미터를 오를 때마다 앞 서 가시던 회원님들이 가쁜 숨을 몰아쉬며 먼저 가라고 좁은 산행로 가장자리로 연신 비켜 서는 것으로 알 수 있다.
460m봉 정수리 암장에서는 잠기 숨을 고르며 시원한 물로 목을 축이고 이내 엄광산(嚴光山 503.9m) 걸음을 옮겼다.
05시 01분 엄광산(嚴光山 503.9m)
폭이 10여 미터는 넘어 보이는 방화선을 따라 460m봉에서 내려서니 '엄광산0.1km'라 씌어진 푯말과 함께 하얀 칠이 되 있는 블록헬기장이 부산시 야경을 굽어보고 있다.
밤을 지배하는 어둠이 모든 사물의 빛을 빼앗아 간 상태지만 카메라 플래시의 힘을 빌어 엄광산 빗돌에 모인 회원님들의 모습을 담고 '구덕야영장'이라 씌어진 푯말이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 발길을 옮기면 통나무 계단이 설치되어 있는 가파른 비탈에 잔자갈이 깔려 있어 자칫 미끄러지기 쉬운 내리막 비탈이 잇따른다. 한편 철책 왼편으로 내려서면 내원정사에 닿게되니 주의를 해야 한다.
05시 21분 구덕령(구덕꽃마을)
엄광산 정수리에서 가장 넓고 또렷한 길을 따라 미끄러지지 않기위해 조심스럽게 20여 분 동안 발품을 팔면 장미농원으로 유명한 구덕꽃마을에 내려서게 된다. 발 아래 땅속으로 구덕터널이 통과하는 구덕령에서 후미 일행이 도착하기를 기다리며 식당 앞에서 다리 쉼을 하고 있는데 식당 울타리에 피어 있는 동백꽃이 눈에 띈다.
아래 사진은 식당 울타리의 동백꽃과 총무님 그리고 구미경님을 담은 사진이다.
05시 44분 수목원
구덕령에서 구덕산으로 이어지는 임도를 다르면 잘 가꾸어진 정원수가 울창한 수목원이 나온다. 수목원을 가로지르면 '시약산산책로, 교육역사관, 구덕야영장, 버스정류장'으로 통하는 네거리가 나오는데 푯말에는 구덕산 정수리로 이어지는 길을 가리키지 않고 있다.
05시 47분 승학산 삼거리
수목원에서 임도와 나무계단을 지나면 화장실, 벤치, 산불감시초소가 있는 쉼터에 닿고 쉼터에서 아프리카 공예품을 닮은 탑 오른편으로 나 있는 나무계단을 오르면 임도가 나오고 임도 갈림길에는 아래 사진처럼 '부산항공무선표지소'라 씌어진 푯말이 어둠속에서 빛을 바란다. 이곳에서 정맥마루금은 임도를 버리고 푯말 좌측으로 나있는 오솔길로 이어지며 산 봉우리를 향해 가파르게 고도를 높인다.
06시 09분 부산항공무선표지소
갈지(之)자를 그리며 봉우리를 향해 가파르게 고도를 높이는 산행로를 따라 가쁜 숨을 몰아쉬며 20여 분 동안 발품을 팔면 어둠속에서 위성안테나와 붉은벽돌로 지어진 건물이 철책 안에서 아스라이 바라다 보인다. 부산항공무선표지소 봉우리에 닿은 것인데, 정맥 마루금은 표지소 앞 넓은 공터를 지나지 않고 표지소 남동쪽 철책을 따라 히미하게 이어지며 구덕산(565m)으로 향한다.
06시 18분 구덕산(565m)
부산항공무선표지소 남동쪽 철책을 따라 조심스럽게 발길을 옮기면 이내 구덕산(565m) 빗돌이 반긴다. 구덕산 정수리는 자칫 지나치기 쉬우니 봉우리를 휘감아 도는 임도나 수로를 따르는 오류를 범하지 말고 조금 힘들더라도 부산항공무선표지소 철책 옆으로 난 히미한 길을 따라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구덕산 정수리를 지나치기 십다.
06시 21분 시약산 갈림길
구덕산에서 잠시 내려서면 시약산으로 이어지는 임도가 나오고 임도 좌측 언덕 위에는 아래 사진처럼 방송 중계용 안테나가 어둠속에서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다. 이 갈림길에서는 10여 분 동안 후미 일행이 도착하기를 기다리며 잠시 다리 쉼을 했다.
06시 31분 시약산(기상레이더관측소)
부산시의 야경과 남해가 만들어 내는 아름다운 풍광을 조망하며 도착한 시약산 정수리에는 기상과 천체를 관측하는 기상레이더관측소가 자리하고 있다. 관측소를 멀리서 봤을때는 작게만 보였는데 가까이 다가서니 하늘을 향해 우뚝 솟은 건물은 육중한 모습으로 중량감 있게 나를 굽어 본다.
시약산 정수리에 서면 남동쪽과 남서쪽으로 흘러내리는 두 줄기의 능선을 만날 수 있는데 정맥 능선은 남동쪽으로 흘러내리는 능선을 따라 대치고개로 급하게 고도를 낮춘다.
06시 58분~07시 20분 산불초소(밀성박씨추모재단과 무덤)
기상레이더관측소가 있는 시약산 정수리에서 한 차레 내려서면 커다란 전망바위가 나온다. 이 전망바위에 올라 잠시 주변 풍광을 조망하고 조망바위 좌측으로 난 산행로를 따라 가파른 내리막 비탈을 내려서니 산불감시초소와 함께 밀성박씨추모재단과 무덤이 나타난다.
넓은 공터가 있는 무덤 앞에서 조금 이른 시간이지만 시장기를 달래기 위해 20여 분에 걸쳐 맛있는 아침을 나눴다. 한편 후미 일행은 내가 식사를 마칠 무렵에야 산불감시초소를 지나 모습을 드러냈다. 모처럼의 무박산행이라 몇 명의 회원님들이 컨디션 조절에 힘들어 했기 때문이다.
07시 34분 영도다리
맛있게 아침을 먹고 넓은 방화선을 따라 360m봉을 넘어 276m봉 정수리에 서니 남해와 1934년 부산 최초로 연육교로 개통된 영도다리가 손에 잡힐듯 다가선다.
연육교란 육지와 섬을 연결해주는 다리로 영도대교는 개통 이후 뭍쪽 다리의 일부인 도개부가 하루 7차례씩 들어올려져 이 모습을 보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고 한다. 6.25 동란 당시 부산이 임시수도가 되었던 시절에는 전국에서 모여든 피난민들의 애절한 사연이 얽히는 무대가 되었고, 이때 영도출신 가수 현인선생의 「굳세어라 금순아」라는 대중가요가 부산시민의 심금을 울렸다고 한다. 하지만 영도의 인구증가 및 교통난 등으로 인하여 1966년 이후 도개식 영도대교는 그 들림 기능을 멈추게 되었고, 조선업체의 물동량 증가 등으로 인한 교통난을 해소하고자 1980년도에 부산대교가 완공되므로서 영도대교의 명성은 잊혀져가고 있는 실정이다.
영도대교 부근에는 당시 부산 제일의 명물이었던 도개식 영도대교의 역사적 사실을 전하기 위한 「도개식 영도대교 기념비」와 6 .25 당시 피난민들의 애환을 달래주었던 대중가요 '굳세어라 금순아'의 시대적 배경을 담아 건립된 「현인노래비」등이 있어 지나는 사람들로 하여금 아련한 향수를 느끼게 한다.
07시 41분 대치고개
218.3m봉에서 대치고개로 가파르게 높이를 낮추는 비탈에 설치되 있는 통나무 계단을 지나니 여러 가지의 푸성귀가 심어져 있는 텃밧이 나온다. 텃밭을 지나 굽이굽이 이어지는 전형적인 산동네 골목길을 따라 내려서자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대치고개에 닿는다.
대치고개는 대치터널이 생기기 전까지는 옛 부산과 하단을 잇는 중요한 교통로였고 예전에 소나무가 울창하여 솔티(松峙), 또는 고갯길이 험해 산짐승과 도적의 출몰이 심해 부산장으로 하단재첩을 팔러 가는 아낙네들이 괴정3거리에 모여 다 함께 이 고개를 넘었다 하여 재첩고개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도 한다. 하지만 주택과 상가가 밀집한 이곳에서는 더 이상 옛 고개의 흔적을 찾아 볼 수는 없다.
07시 54분 까치고개
대치고갯마루 2차선 도로를 건너 구불구불한 골목길로 접어드니 어디로 발길을 옮겨야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선답자들이 골목 편백나무에 매달아 놓은 시그널과 담벼락 혹은 건물 벽에 그려 놓은 화살표를 따르니 이내 골목길을 벗어나 164m봉 기슭에 닿는다.
164봉 정수리 아래에 있는 빌라를 따라 까치고개로 바로 잇따르는 길도 있으나 빌라 좌측으로 난 산행로를 따르니 텃밭과 신축공사중인 빌라가 좌우로 이어진다. 한편 164m봉 정수리에 모여있던 예닐곱 명의 사람들이 우리 일행을 보더니 놀라는 기색이 역력한데 이유는 투견장을 만들어 놓고 불법으로 투견을 하려고 준비하다가 이른 아침부터 올라오는 회원님들을 보고 놀란 것이다.
164m봉 정수리에서 급하게 우측으로 방향을 바꿔 내려서니 '아미까치 공영주차장'이 있는 까치고갯마루에 닿는다.
08시 06분 226m봉
아미까치 공영주차장을 가로질러 서너 평 크기로 나눠진 텃밭을 지나 탱자나무 울타리가 인상적인 골목길을 벗어나니 226m봉으로 이어지는 가파른 오르막 비탈이 막아 선다. 처음에는 통나무계단이 이어지다가 비나 눈이라도 내리는 날이면 이내 진창길로 변할 것 같은 비탈을 오르는데 우측 작은 과수원에서는 오매, 매화수, 조수매, 원앙매, 사정매, 중엽매, 전치매 등으로 불리는홍매화(紅梅花)가 막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다. 홍매화의 사진은 철책이 가로막고 있어 카메라에 담지는 못했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226m봉에 오르니 봉분이 유난히 작고 낮은 묘가 수없이 펼쳐진다. 1km이상 되 보이는 공동묘지를 지나다 지나온 길을 돌아보니 공동묘지 너머로 기상레이더관측소와 방송 중�용 안테나가 우뚝 솟아있는 시약산과 대덕산 그리고 우측(동쪽)으로는 엄광산(嚴光山 503.9m)이 아스라이 바라다 보인다.
아래 사진은 226m봉을 넘으며 부산항과 용두산공원을 굽어보며 담은 사진이다.
용두산공원(龍頭山公園)은 부산광역시 중구 광복동 1번지에 있는 공원으로 용두산으로 불리는 언덕이 공원이고, 해박 49m되는 산정수리에는 부산타워가 있다. 한편 용두산은 구릉성 산지로 예부터 울창한 소나무 사이로 바다가 보인다 하여 송현산이라고도 하고, 초량 소산이라고도 했다.
이곳에는 숙종 4년(1678년) 초량 왜관이 설치되었고, 1876년 개항 이후에는 일본인들의 전관거류지로 지정되어 침략의 발판으로 정치, 경제, 교통, 문화가 이 곳을 중심으로 발달하였고, '식민지형' 근대화가 시작되어 일본의 흔적이 도처에 남아 있다. 1945년 해방 후에 일본신사가 헐려지고, 한국전쟁때 밀려든 피난민에 의해 대규모 판자촌이 형성되었으나, 1954년 12월 10일 대화재로 불타버린 뒤 이곳에 70여종의 나무를 심어 공원으로 재조성하였다. 시민의 종은 1997년 12월 시민들의 모금으로 건립되었으며, 해마다 재야, 3.1절, 광복절 등 3차례씩 타종을 하고 있다
용두산 공원에는 40계단이 유명한데 40계단이 널리 알려진 것은 6.25때문이었다. 40계단이 위치한 동광동과 영주동 일대에 피난민들이 판자촌을 이루고 살았다. 피난민들에 의해 40계단 근처는 구호물자를 파는 돗데기 시장이 크게 이루어졌고, 6.25가 끝난 후에는 암달러상으로 북적댔다고 한다. 1953년 11월 옛부산역 대화재가 있은 후 주변이 잠식되어 4m 가량 폭이었던 것이 약 1m가 남았다. 이 옆의 영화 '인정사정 볼 것 없다' 를 찍은 40계단 앞에 1993년에 중구청에 의해 기념비가 세워졌다. 40계단 기념비 뒷면에는 박재홍님이 불러 40계단이 더욱 알려지게 된 '경상도 아가씨'라는 노래의 가사 1절이 새겨져 있고 2003, 2, 12에 개관한 '40계단 문화관'이 있어 피난시절의 모습도 살펴볼 수 있다.
08시 16분 우정탑
긴 공동묘지를 지나 멋진 암장과 소나무가 잘 어우러진 봉우리 하나를 넘어서면 돌이 높다랗게 쌓여있는 우정탑이라 불리는 석탑봉이 나온다. '우정탑'이라 씌어진 콘크리트 빗돌이 정수리에 앉아 있는 석탑은 다른 곳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석탑과는 달리 멋있다 든가 정성이 깃들었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이유는 콘크리트를 이용해 돌을 쌓아 올렸다는 흔적이 너무 많이 남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도 우정탑을 배경으로 여러 회원님들과 간단하게나마 기념촬영을 하며 잠시 숨을 고르고 물로 목을 축였다.
08시 37분 삼성중고등학교
우정탑을 지나면 정맥 마루금은 서쪽으로 방향을 바꿔 급하게 고도를 낯추며 가파른 내리막 비탈을 만든다. 산 허리를 휘돌아 오르는 임도를 가로질러 산 기슭에 닿으면 삼성중고등학교가 반기고 등교길에는 "등길" "여기 어둠을 밝히는 등불이 켜져있다. 이길을 오며 색각하고, 이길을 가며 다짐하노라. 이웃과 사회와 나라를 위해 등불 � 것을"이란 시구(詩句) 씌어진 아담한 빗돌이 잘 가라 손을 흔드는 듯하다.
08시 54분 괴정고개(감천고개)
우정탑에서는 극락암임도를 가로질러 246.8m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을 따라야 오르나 능선 끝에는 부영벽산아파트와 옥천초등학교를 지으며 산자락을 절개한 절개지가 높게 자리하고 있어 부득히 시내를 경유해야만 한다.
괴정고개에선 주유소를 지나자마자 나타나는 윈쪽 골목길을 따라 올라서게 되면 해동고 후문이다. 정맥마루금은 해동고 뒤편 산기슭을 따라 이어지고 학교 뒤편 울타리를 따라 올라서는 샛길을 따라 한 차례 발품을 팔면 정맥 능선에 닿는다.
09시 06분 예비군교장
남자라면 누구나 다녀왔을 군 시절이 생각나게 만드는 각개전투(各個戰鬪)장 초입에서 떡과 과일을 나누며 잠시 숨을 고를고 각개전투장 끝에 다다르니 넓은 방화선과 합께 부산항 일원과 남해가 시원하게 펼쳐진다. 한편 정맥 마루금은 이곳에서 다시 한 번 서쪽으로 급하게 방향을 바꾸며 '구평동 체육시설'을 알리는 푯말이 세워져있는 안부로 향한다.
09시 29분 167m봉 헬기장
구평동민 여러명이 운동을 하고 있는 넓은 안부에서 군부대를 가리키는 푯말을 따라 5분 여 올라서자 167m봉 헬기장이 반긴다. 헬기장 왼편으로 감천만이 아주 가깝게 보이고 우측으로는 지나왔던 승학산 억새능선이며 구덕산, 시약산 시설물들을 비롯한 정맥능선이 한눈에 들어온다.
09시 31분 군부대
헬기장을 가로 질러 소나무숲으로 난 통나무계단을 따라 솔향에 잠시 취하다보니 군부대 정문 철조망이 앞을 막아 선다. 위 사진에서 처럼 철조망을 우측에 두고 군부대를 벗어나 어린 잣나무가 심어져 있는 낮은 봉우리를 휘돌아 가니 아파트 절개지가 좌측 발아래로 펼쳐진다.
09시 40분 놀이터
위 사진은 군부대 끝 자유아파트와 대동중고학교 사이에 있는 놀이터를 담은 사진이다.
09시 43분 장림고개(구평고개)
놀이터에서 고갯마루에 자리잡은 대동중고등학교 정문을 지나 2차선 도로를 따라 내려서니 이내 'SK다대로주유소'가 정면으로 보이는 장림고개(구평고개)에 닿는다. 장림고개에는 4차선 도로가 지나고 차량통행이 빈번한 만큼 신호를 기다려 조심해서 건너야 한다.
아래 사진은 장림고개 SK주유소 좌측으로 이어지는 도로를 따라 200여 미터 발길을 옮기다 정맥 능선으로 이어지는 들머리를 찾아드는 회원들을 담은 사진이다.
09시 58분 봉화산(149.6m)
봉화산 정수리로 이어지는 제법 가파른 오르막 능선을 따르는데 좌측으로 깍아지른 절개지와 함께 드넓은 공사 현장이 발아래로 펼쳐진다. 한편 공사장 건너 감천만의 푸른바다는 손만 뻗으면 잡힐 듯 다가서고 감천만에서 불어오는 훈훈한 봄바람은 이내 진달래와 매화꽃을 피울 것 같다.
운동 시설이 설치되 있는 봉화산에 닿으니 대여섯 명의 시민들이 운동을 하고 있다. 정맥 마루금은 이곳에서 좌측으로 이어지지만 봉화산 정수리를 알리는 삼각점은 '봉화산동네체육시설'을 알리는 푯말과 함께 우측 능선 50여 미터 되는 지점에 박혀 있다.
10시 12분 고겟마루 도로
봉화산 삼각점을 확인하느라 다른 회원님들보다 늦게 봉화산에서 젠걸음으로 남쪽으로 잇따르는 능선을 따라 봉우리 하나를 넘어서자 난데없이 포장도로가 고갯마루를 지난다. 선답자들의 산행기에는 종종 이 고갯마루에서 정면 140m봉을 우회하여 우측도로를 따라 구평가구단지로 들어선다고 씌어져 있다.
10시 15분 140m봉
포장도를 가로질러 제법 가파른 오르막 비탈이자만 일행들을 따라잡을 요량으로 기쁜 숨을 몰아쉬며 젠걸음으로 정수리에 오르니 먼저 도착한 회원님들이 반갑게 반긴다. 묘 한 기가 있는 140m봉에서는 가쁜 숨을 고르고 과일과 떡, 삶은계란 등을 나누며 잠시 다리쉼을 했다.
10시 26분 구평가구단지
140m봉에서 완만하게 이어지는 내리막 능선을 따르면 이내 구평가구단지가 어지럽게 펼쳐진다. 정맥 마루금을 차지하고 있는 구평가구단지는 오래 전부터 중소형 가구공장이 밀집한 지역이었고 지금은 대규묘 가구유통단지로 활성화되어 부산의 대표 가구단지가 되어 있는 곳이다. '구평농장가구마트'를 지나자마자 나타나는 삼거리에서 동서가구 방향으로 직진하면 정면으로 '구평산마트가구' 간판과 '진품아울렛' 건물이 보인다. 여기서 정맥 능선은 건물 뒷편으로 보이는 165m봉으로 올라서야 하지만 165m봉 능선이 다하는 곳에는 깍아지른 절개지 즉 아파트단지 옹벽이 가로막고 있어 부득히 가구단지를 가로질러 좌측으로 돌아가야만 한다.
10시 44분 삼환2차 아파트 102동
거미줄처럼 이너지는 가구단지의 골몰길을 20여 분 만에 벗어나면 거대한 아파트 단지가 나타난다. 삼환2차 아파트 102동을 우측에 두고 다대고개롤 이어지는 길은 2차선 포장도를를 따르면 된다.
10시 50분 다대고개
아파트단지 옹벽을 따라 굽이굽이 이어지는 2차선 도로 끝 다대고개에는 6차선 도로가 지나고 도로 위로는 육교가 놓여져 있다. 위 사진은 다대고개 육교를 건너는 회원들을 담은 사진이고, 아래 사진은 다대고개를 지나는 6차선 도로를 담은 사진이다.
10시 52분 다대고개 아미산 선림사 입구
다대고개에서 아미산으로 이어지는 돌계단 아래에서는 후미 일행을 기다리며 제법 긴 다리쉼을 했다. 하지만 10여 여분을 기다려도 오지않아 무전으로 가구단지를 벗어나는 길을 알려주고 아미산으로 향했다.
11시 10분 석탑갈림길
돌계단을 올라 암자 갈림길에서 산불감시초소를 지나니 가파르게 이어지는 통나무계단길 가장자리로는 소나무 군락이 잇따른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오르막 능선을 오르는데 우측 산기슭 운전학원에서는 확성기 소리와 함께 자동차 타이어가 접지선을 밟았을때 나는 "삐~"소리가 연신 들려온다. 숨이 턱까지 차오를고 운전학원에서 들리는 경고음이 멀어지는가 십더니 수많은 돌들이 모여 석탑을 형성한 석탑갈림길이 나온다.
11시 17분 아미산(峨嵋山 233.7m) 봉수대
석탑갈림길에서 한 차례 더 가파르게 이어지는 오르막 비탈 통나무계단을 올라서니 우측으로 아미산(峨嵋山 233.7m) 정수리가 보이고 이내 응봉봉수대가 나온다.
응봉봉수대(鷹峰烽燧臺)에 세워져 있는 안내판에는 "응봉봉수대(鷹峰烽燧臺)는 전기통신이 시작되기 이전의 군사통신시설로 1898년(고종35년)까지 사용되었다. 이곳의 봉수대는 1530년(중종25년) 설치되었다는 기록이 있으나 처음으로 사용된 시기는 알 수 없다. 낮에는 짐승의 똥으로 연기를 올렸고, 밤에는 횃불을 올려 서울까지 연락되었으며, 평상시에는 1번, 적이 나타나면 2번, 국경에 접근하면 3번, 국경을 침범하면 4번, 적과 접전하면 5번을 올려 그때 그때의 사항을 알렸다. 우리 조상들이 왜적의 침략을 당할때마다 지�던 이곳 봉수대를 우리가 복원함은 연연이 이어진 우리민족의 향토수호정신과 국토 방위 정신을 다시 한 번 되세기고, 이를 우리 후손에게 길이 알리고자 함이다. 1971년 10월 1일 부산광역시장" 이라고 씌어져 있다.
봉수는 횃불을 뜻하는 봉(烽) 연기를 뜻하는 수(燧)를 말하는데 대략 수십리 거리를 두고 바라보고 살피기 좋은 산꼭대기 요지에 봉수대를 설치하여 나라의 변란이나 중요한 군사정보등 낮에는 연기를 밤에는 횃불로 신호하여 전국 지방에서 올라오는 봉수연락망을 서울 목멱산(남산)에서 병조(兵曹) 주관 아래 최종 분석하여 다음날 승정원(承政院)에 보고하여 최종 임금께 송지되었다한다.
전국 지방에서 서울 목멱산(남산)까지 봉수연락망이 12시간 안에 도착이 원칙이나,6~7시간 안에 서울 목멱산 까지 도착하였다고 한다. 시간당 100km를 전달한 셈이고 그 당시 어느 통신수단 보다 신속한 전달이라 할 수 있다.
아미산(峨嵋山 두송산)응봉봉수대는 1530년 (중종 25년) 설치되었다는 기록이 있으나 처음으로 사용된 연 획은 정확히 알수없다. 위치로 보아 군사적 전략 요충지로써 다대포와 서평포진을 내려다보며 낙동강 하구일대와 몰운대 앞바다를 한눈에 감시할 수 있고 멀리 일본의 대마도와 가까운 거리에 있으며 연변 봉수대이다. 서(西)로는 가덕도 천성봉수대와 교신하며 국토 최첨단에 위치하여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다고 한다.
응봉(아미산)봉수대는 넓은 축대 위에 잔돌들이 질펀하게 깔려있고 그 가운데로 봉수대터가 자리하고 있다. 봉수대에서 발아래로 펼쳐지는 감천만이며 다대포항의 아름다움은 두 말 할필요가 없거니와, 몰운대 쥐섬 너머로 펼쳐지는 남해바다의 전망은 끝없이 광활하다. 한편 낙동정맥이 다하는 몰운대는 몰운대아파트 너머로 아스라이 바라다 보인다.
봉수대에서 잠시 다리 쉼을 하고 기념촬영도 한 다음 응봉봉수대 안내판과 빗돌을 지나 작은 안부로 내려서니 임부 한 분이 아미산으로 이어지는 계단공사를 하느라 한창이다.
11시 40분 홍티고개
안부에서 서쪽 헬기장봉우리를 뒤로하고 소나무숲을 가로지르는 정맥능선을 따르니 이내 홍티고개에 닿는다.
11시 49분 롯데케슬
미로처럼 이어지는 아파트 숲을 지나다 보면 각종 조형물들이 눈에 들어온다.
12시 06분 몰운대
아파트 숲을 벗어나면 시원한 바다가 반갑게 반겨준다.
12시 12분 몰운대
해수욕장 입구 다대포매립 백지화기념비를 지나쳐 잠시 나서자 몰운대를 알리는 빗돌이 보인다.
몰운대는 옛날에는 몰운도라는 섬이었으나 낙동강에서 내려오는 흙과 모래가 쌓여 다대포와 연결되었다고 하며, 낙동강 하구에 안개와 구름이 끼는 날에는 그 속에 잠겨 보이지 않는다고 하여 몰운대(沒雲臺)라고 한다.
12시 21분
강이 그 생명을 다하는 곳을 지나 육지와 바다가 맞닿은 곳 몰운대를 향하는 길은 송림 가득한 넓은 산책로다. 헬기장, 화장실, 다대포객사(부산시 유형문화재3호)를 차례로 지나쳐 넓은 공터를 끼고 있는 몰운대 유원지관리소에서 왼쪽 "자갈마당 300m" 안내판을 따라 나서면 그토록 갈망했던 곳 . 낙동정맥이 바다에 그 뿌리를 내리는 곳 몰운대 바닷가다.
12시 25분 다대포객사(부산시 유형문화재3호)
12시 29분 몰운대 벼랑 아래의 초소
12시 39분
12시 51분
14시 15분 몰운대에서의 완주행사
낙동정맥(洛東正脈) 개요
“낙동정맥”은 백두대간 천의봉(매봉산 1303m) 동쪽줄기 1145봉에서 분기하여 부산 다대포 몰운대에서 맥을 다하는 도상거리 약 397km의 산줄기이다. 그 산줄기는 낙동강 동쪽에 위치하는데, 강원도와 영남지방을 관통하는 거대한 울타리를 이룬다. 동쪽으로는 동해안의 울진 영덕 포항 경주 울산 부산을 이루고, 서쪽으로는 태백 봉화 영양 청동 영천 경산 밀양 김해 지역을 포함하고 있다. 남한 땅 9정맥 중 두 번째로 긴 줄기이며, 경북 최대의 오지지역의 산들이 많이 포함되어 있어 그 깊고 그윽한 맛은 단연 최고의 정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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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06월 25일
강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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