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동정맥 제18구간 가지산(迦智山 1,240m)
산행일자 : 2007년 12월 02일 (당일산행)
산행장소 : 외항마을~우성목장~문복산갈림봉(894.8m)~폐허헬기장(770m)~707m봉~운문령(69번지방도)~임도삼거리~1,056.6m봉~귀바위(1,117m)~상운산(1,114m)~임도삼거리~쌀바위(1105.8m)~헬기장~가지산(1240m)~1168.8m봉~석남고개~824.8m봉~770m봉~813.2m봉(삼각점 언양450)~능동산(983m)~800m봉헬기장~배내고개(69번지방도)
산행모임 : 대전한겨레산악회(43명)
산행날씨 : 흐린 후 진눈깨비, 비
산행거리 및 시간 : 20.5km, 6시간 37분
강풍과 함께 비가 내리겠다고 기상청에서 예보 했으나 새벽 공기를 가르며 항해 하고 있는 정맥호 안에는 43명의 회원님들이 승선해 있다. 외항마을을 향해 순항 하던 정맥호가 새벽부터 배낭을 매고 집을 나서느라 아침을 먹지 못한 회원님들을 위해 잠시 휴게소에 정박해 맛있는 찰밥을 나누는데, 오늘은 박종구 선장님께서 차가운 날씨를 감안 회원님들을 위해 준비한 뜨거운 어묵국이 더해져 회원님들은 추위를 느끼지 않고 아침을 먹을 수 있었다.
08시 55분 외항마을
외항마을에 정박한 정맥호에서 쏟아져 나온 회원님들은 저마다 배낭을 정리하고 등산화 끈을 고쳐 메느라 분주한 모습들이다. 산악구조대장 최영님이 몸이 불편한 관계로 오늘 산행에 불참하는 바람에 똘이장군(한정현)님이 산행전 준비운동을 리드하는데 웬지 '구관이 명관이다.'라는 말이 떠오르는 건 무슨 이유일까...?ㅎㅎㅎ
09시 03분 기념촬영
모든 회원님들을 '전주 돌솥 비빔밥' 이라 씌어져 있는 음식점 건물 주차장에 모시고 기념촬영을 하고, '대형 숯불 생고기 식당'과 '산마루 노래방' 사이 임도를 따라 문복산 진입로로 들어서니 왼쪽으로는 한우 전문 식당가가 즐비하다.
식당가를 벗어나 커다란 '우성목장' 안내 간판을 전면에 두고 걸음을 옮기니 제법 큰 우사가 늘어서 있는데 우사 안에는 서너 마리의 한우만 간간이 눈에 띈다. 휑 한 우사 분위기에 차가운 바람까지 더해져 무서운 광우병이 휩쓸고 지나간 흔적이 아직도 남아 있는 듯하다.
09시 17분 들머리
우성목장을 지나 '일송수목원' 입고 임을 알리는 푯말이 세워져 있는 삼거리에서 문복산갈림봉(894.8m)을 향해 본격적으로 고도를 높이는 가파른 능선 초입에서 임도를 따라 오는 회원님들을 돌아보니 마냥 즐거운 모습들이다.
09시 27분 전망바위에서
가파르게 고도를 높이는 오르막 능선을 따라 약 10여 분 발 품을 팔아 전망바위에 오르니, 비롯 짙게 깔린 연무 때문에 선명하지는 않지만, 위 사진에서 처럼 외항마을에서 고헌산 서봉(1,034.8m)과 719.3m봉 사이 고갯마루(저항령) 너머 백운산(白雲山 892m) 능선이 아스라하게 시야에서 멀어져 간다.
09시 45분 문복산(文福山 1,013.5m) 갈림봉(894.8m)
조망바위에서 가파른 비탈과 능선을 따라 20여 분 발 품을 팔아 '낙동정맥 해발 894.8m' 라 씌어진 빗돌이 세워져 있는 문복산문복산(文福山 1,013.5m) 갈림봉(894.8m)에 서니 비록 짙은 연무 탓에 멀리 보이지는 않지만 주변 풍광이 사위로 펼쳐진다. 문복산 갈림봉은 울산광역시 울주군 삼북면과 경북 청도군 운문면 그리고 산내면 이렇게 3개의 면이 만나는 '삼면봉(三面峰)'이라고도 할 수 있다.
09시 59분 춤추는 소나무
북쪽 문복산(文福山 1,013.5m) 정수리로 이어지는 마루금을 버리고 남서쪽 운문령으로 가파르게 고도를 낮추며 이어지는 마르금을 따라 한 차례 발 품을 파니 이내 완만한 능선이 나타난다. 능선 가장자리에는 바람이 불는 날이면 하늘에서 내리는 눈처럼 새하얀 꽃잎을 흩날리던 억새 밭이 이어지고, 억새 밭 중간에는 마치 춤을 추는 듯한 모습을 하고 있는 소나무 한 그루가 눈길을 사로 잡는다.
10시 15분 운문령(雲門嶺)
완만한 능선 끝에 억새로 둘러 싸인 폐헬기장(770m)장을 지나자 완만하던 능선이 가파르게 고도를 낮추며 707m봉을 지나 울주군 상북면과 청도군 운문면을 잇는 69번 지방도가 지나는 운문령(雲門嶺)이 내려다 보인다. 운문령에는 연신 많은 차량이 지나고 산불 감시 초소와 산행객들을 상대로 장사를 하는 포장마차 몇 채가 눈에 띈다.
10시 26분 임도 삼거리
문복산(文福山 1,013.5m) 갈림봉(894.8m)에서 운문령으로 이어지는 능선에서 십 여 명의 산행객들과 마주쳐 지나며 반갑게 인사를 나눴었는데, 운문령에서 상운산(上雲山 1,114m)으로 이어지는 임도와 능선을 가득 메우고 있는 수 많은 산행객이 가지산((迦智山 1,241m)의 유명새를 말해 주고 있는 듯 하다.
임도와 능선을 번 갈아 넘나들던 정맥 마루금이 가파른 오르막 비탈을 만나 갈지(之)자를 그리며 이어지는 임도를 버리고, 갈지자 임도 중앙을 세로 질러 가파르게 고도를 높이더니 '석남사 2.0km, 가지산 4.2km'라 씌어져 있는 푯말 앞에서 잠시 한 숨을 돌린다. '쌀바위 2.9km'라 씌어진 푯말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발길을 옮기니, 아래 사진 처럼 임도와 정맥 마루금이 갈리며 마루금 들머리에는 노란 색 시그널이 바람에 나부끼고 있다. 한편 낙동정맥을 종주하는 종주자들과 가지산을 올르기 위해 임도를 따르는 산행객들은 아래 사진에서 처럼 뒷 모습만 봐도 확연히 차이가 난다.
10시 51분 귀바위(耳岩 1,117m)
문복산 갈림봉(894.8m)을 기점으로 남서쪽으로 향하던 정맥 마루금이 운문령을 지나 임도 삼거리를 기점으로 북서쪽으로 방향을 90도 바꿔 가파르게 고도를 높이며 귀바위(耳岩 1,117m)까지 이어진다. 귀바위로 이어지는 가파른 능선에는 철쭉 터널과 암릉이 잇따르며 힘든 발 품을 요구한다.
사람의 귀를 닮아 귀바위(耳岩)라 이름 붙여진 귀바위를 조망해보는데 그 너머로 상운산이 그리고 좌측 능선 끝에는 오늘 산행의 주봉인 가지산(迦智山 1,241m)이 짙은 연무속에서도 아스라이 바라다 보인다.
11시 07분 상운산(上雲山 1,114m)
귀바위(耳岩)를 우측으로 휘감아 돌아 암릉을 따라 한 차례 발품을 발면 상운산(上雲山 1,114m) 정수리에 닿는다. 운문면(雲門面) 운문령(雲門嶺) 등 이름에 구름 운(雲)자가 들어 있는 것으로 짐작컨데, 백운산(白雲山)에서 고헌산(高獻山)을 지나 상운산(上雲山) 가지산(迦智山)으로 이어지는 해발 1,000m가 넘는 능선과 봉우리에는 늘 구름이 걸리는 것으로 추정된다.
상운산(上雲山) 이란 이름은 지도에는 표기되어 있지 않다. 전해지는 말에 의하면 '상운산악회'에서 자신들의 이름을 따서 '上雲山'이라 이름 붙였다고 한다. 위 사진은 상운산 빗돌에 선두에서 늘 한겨레를 이끌고 있는 이용우 산악대장님과 선두 일행을 담은 사진이고, 아래 사진은 상운산 정수리에서 쌀바위(米岩)와 가지산을 조망하며 담은 사진이다.
11시 15분 임도 삼거리
상운산에서 시작된 내리막 능선은 '쌀바위 1.0km, 운문령 2.5km'라 씌어져 있는 푯말 앞에 이르러 멈춘다. 이곳 임도 삼거리에서 동쪽으로 나있는 임도는 정맥 능선과 나란히 혹을 넘나들며 운문령까지 이어진다. 한편 상북면 덕현마을로 연결되는 산행로에는 나무 계단을 설치하느라 어수선한 모습이다.
11시 31분 쌀바위(米岩 1,105.8m)
임도 삼거리에서 임도를 버리고 정맥 마루금을 따르니 이내 쌀바위로 향하는 임도와 만난다. '米岩'은 멀리서 보면 여느 산 암장(巖嶂)과 별 반 다를 게 없어 보이는데, 가까이 다가가 보면 기암이라기 보다는 뫼산(山)자를 닮은 형상을 하고 있다. 쌀바위에 다가 설 수록 사람들이 떠드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리더니 쌀바위 아래에는 산에는 어울리지 않는 간이 매점이 자리하고 있다.
석간수(石間水)가 시원하게 흐르는 샘터 앞에는 해맞이 기념비와 쌀바위(米岩)의 전설이 씌어져 있는 안내판이 눈에 띈다. 언양읍지(彦陽邑誌)에 실려 있는 '米岩'에 대한 전설을 옮겨본다.
언양읍지(彦陽邑誌)에 따르면 쌀바위의 이름을 의역음사(意譯音寫)하여 시암(矢岩)이라 하였으니 그 어원은 쌀바위(白岩)로 여겨진다. 김영수의 "지리산 성모에 취하여"에 따르면 "살뫼"는 "히할뫼"라는 말로서 제일 먼저 태양의 광선을 받아서 하애지는 산을 의미하는 것이다. 새벽의 일기가 하애진다는 것은 "날이 샌다"고 하고 노인의 머리가 히어지는 것을 "머리가 샌다"고 하는 변함과 같이 이 "할" 이라는 말은 다시 "살"로 발음하게된 것이라 하겠다. 그래서 이 산아래 "살티" 라는 마을이 있는데, 이 살티도 "히할" 이 변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쌀바위에 얽힌 언양지방에 전해져 내려오는 전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옛날 이 바위부근에 초막을 짓고 수도 정진하던 한 스님이 있었다. 이 스님은 양식이 떨어지면 아랫마을로 내려가 시주를 얻어오지 않으면 안되었다. 번번이 시줏길을 나서는 스님이 가여웠는지 어느날 부처님은 기적같은 자비를 내렸다. 스님은 여느 때와 같이 불경을 읽고 수도에 정진하다 잠시 쉬는 동안 무심결에 곁에있는 바위를 보니 바위틈새로 쌀이 수북이 쌓여있는 것이 아닌가. 스님은 수없이 부처님께 감사의 염불을 올린 다음 이 쌀을 소중히 거두었다. 그날부터 바위틈에서는 날마다 한사람이 먹을 양만큼의 쌀이 흘러 나왔다. 이에 스님은 고달프던 시줏길을 나서지 않아도 됐던 것이었다. 편안한 생활이 얼마간 계속되자, 스님은 나태와 안일에 젖어 엉뚱한 생각을 하게되었다. 쌀이 나오는 바위틈을 크게 하면 더 많은 쌀이 나오지 않겠는가?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큰 깨달음이나 얻은 듯이 의기양양해진 스님은 꼬챙이로 입구를 깊이파고 단단한 돌맹이로 깨뜨려 틈새를 넓히기에 바빴다. 쌀을 팔아 돈이 모이면 큰절을 지어 주지로 출새할 날도 멀지 않았다는 환상에 사로잡힌 스님은 그날로 수도 정진은 뒷전이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뜬눈으로 밤을 지샌 스님은 날이 새자 곧장 바위 앞에 다가섰으나 쌀이 나와야 할 바위틈에 맑은 물이 쉴새없이 흘러나오는 것이 아닌가. 스님은 그때서야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닫고 뉘우치면서 통곡했으나 허사였다. 그 후로 쌀은 영영 나오지 않았으며, 이름만이 쌀바위 즉 미암(米岩)으로 전해온다." 이에 스님이 "내가 욕심이 나서 섣불리 한 짓이 도리어 화를 자초했다"는 생각으로 바위 위에 올라가 돌이 됐다는 설과 어디론가 행방불명됐다는 설이 있는데, 이는 단지 설에 불과하지만 확인할 수 없는 점이 안타까울 뿐이다. 그래서 지금도 그 스님이 쌀을 받았다는 곳에 가 보면 바위틈에서 물이 졸졸 흘러내리고 있어 산행객들 사이에는 능선에 물이 있는 유일한 곳으로 목을 축여가고 있다.
11시 48분 헬기장
귀바위(耳岩)를 향해 고도를 높이는 능선에서 부터 강원도 산악 지형 특징인 서고동저(西高東低) 지형을 보이고 있어 동쪽으로는 간간이 깍아지른 듯한 절벽이 펼쳐지는데, 쌀바위(米岩)가 그런 형상을 하고 있다. 쌀바위를 서쪽으로 휘감아 올라 쌀바위 정수리 우측 암장 사이 전망대에서 회원님이 건네 준 초코바를 먹고 다시 쌀바위 정수리 암장을 서쪽으로 휘감아 오르니 몇몇 산행객들이 �아 점심을 나누고 있는 헬기장에 닿는다.
11시 55분 전망바위에서
헬기장에서 10여 분 발 품을 팔아 무명봉 전방 바위에 오르니 가지산(迦智山 1,241m) 정수리와 정수리로 이어지는 암릉 위 정맥 마루금이 확연하게 바라다 보인다. 또한 암릉을 따라 정수리로 오르는 산행객들과 정수리 빗돌을 중심으로 서 있는 산행객들 모습이 시야에 들어 온다. 한편 아래 사진에서 처럼 수직으로 깍아지른 쌀바위 암장이 위용을 과시하는 듯 싶더니 서서히 시야에서 멀어져 간다.
12시 02분 가지산(加智山 1,240m)
안부에서 한 차례 숨을 고르고 가파르게 고도를 높이는 암릉을 따라 가지산(加智山) 정수리 아래에 닿으니 붉은 빛을 띠는 침목(枕木)을 이용해 막 설치해 놓은 듯 보이는 나무 계단이 정수리까지 이어진다. 짙게 깔린 연무가 햇볕을 가리고 간간이 불어오는 바람에 뚝 떨어진 채감 온도 탓인지 정수리 아래 곳곳에서는 차가운 바람을 피해 삼삼오오 모여 앉은 산행객들이 점심을 먹느라 분주한 모습이다.
가지산(加智山)은 고속도로를 따라 언양 근처를 지나다 보면 서북쪽으로 세모꼴의 가지산(加智山 1,240m) 정수리가 보이지만 주위에 억새로 온 산을 뒤덮고 있는 독특한 산세를 가진 `영남알프스'는 취서산(1,092m,일명 영취산), 신불산(1,209m), 천황산(1,189m), 운문산(1,188m), 고헌산(1,032.8m), 문복산(1,013m) 등 높은 산이 많기 때문에 평지에서는 잘 볼 수 없는 산이다. 하지만 가지산은 이 많은 봉우리 중에서 최고봉으로 주변의 귀바위(1,117m) 무명봉인 1,042봉, 1,028봉, 1,060봉등이 가지산을 빙 둘러 대장처럼 호위하고 있다.
12시 05분 운문산(雲門山 1,200m) 능선
가지산 사위 곳곳에는 암장과 암릉 그리고 억새밭이 잘 어우러진 곳이 많다. 그 중 가지산 정수리에서 남서쪽으로 흘러내리며 경상남도 밀양시 산내면과 경상북도 청도군 운문면을 가르는 능선 서쪽에 있는 운문산(雲門山 1,200m)으로 이어지는 능선과 암장은 산행객들의 마음을 사로 잡는다.
위 사진은 가지산 정수리에서 운문산쪽으로 흘러 내리는 능선에 억새밭과 헬기장 그리고 기암괴석이 즐비한 암릉을 담은 사진으로 산행객들이 차가운 바람을 피해 억새 밭 곳곳에 둘러 앉아 맛있는 점심을 나누고 있는 모습들이다.
12시 35분 가지산(1,240m)
쌀바위에서 가지산 정수리로 이어지는 정맥 마루금 곳곳 조망처에서 주변 풍광을 조망하느라 선두 일행보다 조금 늦게 정수리에 올랐더니 선두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후미가 어디 쯤 오고 있는지 확인해 보니 후미는 쌀바위 아래에서 점심을 먹고 있는 중이라고 한다. 하는 수 없이 가지산 정수리 서쪽 사면 억새밭에서 차가운 바람을 피해 혼자 쓸쓸히 점심을 먹고 쌀바위에서 가지산 정수리로 이어지는 정맥 마루금이 한 눈에 내려다 보이는 북동쪽 사면에서 차가운 바람을 피해 10여 분 동안 기다리니 박진용님을 비롯 강희산 부회장님과 김일석님 그리고 박영규님이 가지산 정수리를 향해 오른다.
정수리 빗돌에 회원님들을 모시고 흔적을 남기려는데 날씨가 차가워서인지 카메라가 잘 작동하지 않는다. 여러 번의 시도 끝에 회워님들의 모습을 담고 다시 몇 분을 더 기다리니 손중호님과 최형경님이 잇따르고 연이어 회장님과 여러 회원님들이 가지산 정수리를 밟는다.
잇따라 가지산 정수리를 밟는 회원님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으나 카메라가 말썽을 부리는 바람에 10여 장의 사진은 흔적도 없이 날아가 버리고, 정수리 빗돌을 배경으로 담은 사진은 위 사진과 아래 사진 두 장만이 남았다. 차가운 날씨에 대비하지 못해 회원님들의 소중한 모습을 담은 사진을 날려버린 점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13시 15분 기암과 암장
회장님과 오리난초님 그리고 오늘 한겨레 산행에 처음 함께한 소중한 지인 두 분과 가지산 정수리에서 잠시 머물고 있으려니 잔뜩 찌푸린 하늘에선 진눈깨비가 날리기 시작한다. 더 이상 후미를 기다리는 것을 포기하고 밀양고개로 발길을 옮겨 깍아지른 듯한 동쪽 절벽 중간에 우뚝 도르라진 전망바위에 올라, 운문산(雲門山 1,200m)으로 흐르는 능선의 암장을 바라보니 그 웅장함에 놀랄 따름이다. 또한 밀양고개에서 가지산 정수리로 이어지는 암릉과 암장은 말로 표현하지 못할 정도로 웅장한 위용을 과시한다.
13시 17분 1,168.8m봉
귀바이(耳岩)을 기점으로 남서쪽 운문산(雲門山)을 향해 힘차게 뻣어나가던 정맥 마루금이 가지산(加智山) 이란 큰 암초를 만나 남동쪽으로 방향을 바꿔 석남고개까지 이어지는 능선 초입에는 1,168.8m봉이 위 사진에서 처럼 우뚝 솟아 있다. 1,168.8m봉으로 이어지는 오르막 능선에는 주변 풍광을 조망 할 수 있는 전망바위가 곳곳에 산재해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잔뜩 흐린 날씨와 무심하게 떨어지는 진눈깨비 탓에 아름다운 풍광과 가지산의 본 모습 그리고 가지산 정수리와 근처 조망처에서 조망 할 수 있다는 울산시의 시경과 바다와 하늘이 만나 만들어 내는 수평선은 보지 못했다....ㅎㅎㅎ
13시 47분 나무 계단 공사
1,168.8m봉을 넘어 잠시 완만한 능선을 따르면 신갈나무 숲 사이로 나무 계단 공사가 한창인 곳이 나온다. 정맥 마루금은 이 지점에서 능선을 버리고 계단 공사가 한창인 동쪽 사면을 따라 가파르게 이어지는데 진눈깨비가 땅 바닦을 적시는 바람에 자칫 미끄러지기 십상이다.
한편 쌀바위와 밀양고개에서 동쪽으로 나있는 산행로를 따라 덕현마을로 내려서다 보면 신라 헌덕왕 16년(884년)에 도의국사가 창건하였다는 석남사(石南寺)가 가지산 동쪽 산기슭에 고즈넉히 자리 잡고 있다.
석남사(石南寺)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5교구 본사인 통도사의 말사이다. 이 절은 824년(헌덕왕 16) 우리나라에 최초로 선(禪)을 도입한 도의선사(道義禪師)가 창건했다. 1716년(숙종 42) 추연(秋演)이 쓴 사적기에 의하면 화관보탑(華觀寶塔)과 각로자탑(覺路慈塔)의 아름다움이 영남 제일이라고 하여 석남사(碩南寺)라 했다고 한다.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1674년(현종 15) 언양현감 강옹(姜翁)이 사재를 내어 탁령(卓靈)·자운(慈雲)·의철(義哲)·태주(泰珠) 등에게 중창하도록 했다. 그뒤를 이어 정우(淨佑)·각일(覺日)·석맹(碩孟) 등이 극락전·청풍당(靑風堂)·청운당(靑雲堂)·청화당(靑華堂)·향각(香閣)을 중축하고, 희철(熙哲)이 명부전을 신축했다. 1803년(순조 3)에는 침허(枕虛)외 수일(守一)이, 1912년에는 우운(友雲)이 중수했다. 6·25전쟁 때 완전히 폐허가 된 것을 1957년에 비구니 인홍(仁弘)이 주지로 부임하면서 크게 중건했는데, 이때부터 비구니의 수도처로 각광을 받게 되었다. 현존 당우로는 대웅전·극락전·설선당·조사전·심검당·침계루(枕溪樓)·정애루(正愛樓)·종루·무진료(無盡寮) 등이 있다. 중요문화재로는 도의선사의 사리탑으로 전하는 부도(보물 제369호)가 있고, 이밖에 3층석탑(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22호)과 부도 4기 등이 있다.
13시 55분 대피소
가지산에서 밀양고개와 1,168.8m봉을 넘어 가파르게 이어지던 내리막 능선이 다하는 지점이는 천막을 둘러친 대피소가 자리잡고 있다. 대피소라고 하기 보다는 간이 매점이라고 해야 어울릴 만큼 초라한 모습을 한 대피소는 자연 경관과도 어울리지 못한 채 불법 건축물로 보일 따름이다.
14시 05분 전망바위
남동쪽으로 향하던 정맥 마루금이 능동산(陵洞山 983m)을 향해 정남쪽으로 바향을 바꾸는 지점에는 여러 곳에 조망바위가 있다. 위 사진은 회장님과 만보기아저씨 그리고 오리난초님이 조망바위에 한가로이 앉아 맛있는 간식으로 과일을 즐기는 모습이다. 전망바위에서는 석남터널로 이어지는 임도와 주차장 그리고 깍아지른 동쪽 절벽 아래에 자리잡은 울주군 상북면 덕현마을을 조망할 수 있는데, 가파른 동쪽 사면 아래에 자리잡은 덕현마을은 한창 공사중이라 분주한 모습이었다.
14시 13분 석남고개
가지산 정수리에서 1시간 여 만에 도착한 석남고개에는 수북이 쌓인 돌무더기와 '능동산 3.5km, 가지산 2.5km, 살티마을 2.2km, 석남터널(밀양) 0.8km'라 씌여진 푯말이 사위로 팔을 벌리고 있다.
가지산 남쪽 사면과 능동산 북서쪽 사면이 속해 있는 밀양시(密陽市)는 청동기시대의 유물·유적이 많이 분포되어 있어 일찍부터 인간의 거주가 시작되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밀양은 삼한시대에 미리미동국(彌離彌東國)이 있던 곳으로 비정되고 있다. 신라 때에는 추화군(推火郡:밀벌 또는 미리벌의 한자 표기)이 설치되었다. 757년(경덕왕 16)에 밀성군(密城郡)으로 고치고 밀진현(密津縣)·상약현(尙藥縣)·오악현(烏嶽縣:또는 烏兵縣)·형산현(荊山縣)·소산현(蘇山縣)을 영현(領縣)으로 관할했다. 고려시대에 들어 995년(성종 14)에 밀주(密州)로 개칭했다. 고려초에 오악현·형산현·소산현은 청도군으로 이관되었다. 1018년(현종 9)에 밀성군(密城郡)이 되어 창령군·청도군과 현풍현·계성현(桂城縣)·영산현(靈山縣)·풍각현(豊角縣)을 속군현으로 포함했다.
1275년(충렬왕 1)에 군민의 모반 사건으로 귀화부곡(歸化部曲)으로 강등되어 계림부(鷄林府:경주)에 병합되었다. 후에 현으로, 1285년에는 군으로 승격되었으나 곧 현으로 강등되었다가 1390년(공양왕 2)에 밀양부로 승격되었다. 조선초의 군현제 개편으로 1415년(태종 15)에 밀양도호부가 되었다. 1518~22년에 현으로 강등되기도 했다. 별호는 응천(凝川)·밀산(密山)이었다. 지방제도 개정으로 1895년에 대구부 밀양군, 1896년에 경상남도 밀양군이 되었다. 1918년에 군의 중심지인 부내면이 밀양면으로 개칭되고, 1931년에 밀양읍으로, 1989년에 밀양시로 승격되어 밀양군에서 분리되었다. 1995년 지방자치선거를 앞두고 실시된 대대적인 전국행정구역개편으로 전형적인 농촌지역이던 밀양군과 중심도시기능을 담당했던 밀양시가 하나로 통합되어 새로운 형태의 도농통합시인 밀양시가 되었다.
14시 47분 813.2m봉
석남고개에서 밀양시 산내면과 울주군 상북면의 경계를 이루며 824.8m봉, 770m봉, 813.2m봉으로 차례로 이어지는 부드러운 능선 마루금에는 떡갈나뭇잎이 수북이 쌓여 마치 융단 위를 걷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한다.
가지산 정수리에서 간간이 흩날리던 진눈깨비는 밀양고개를 지나 석남고개로 내려 설 때까지 잠시 주춤하더니 813.2m봉에 다다르니 다시 흩날리기 시작한다.
15시 07분 능동산(陵洞山 983m) 갈림길
머리와 옷이 젖을 정도로 제법 내리는 진눈깨비를 맞으며 813.2m봉에서 능동산(陵洞山 983m)을 향해 가파르게 고도를 높이는 능선을 따르는데 땅 바닦에 얇게 쌓인 눈이 이내 녹아 미끄럽기 짝이 없다. 미끄러운 오르막 비탈에서 넘어지지 않으려고 잔뜩 긴장을 하고 가파른 비탈을 오르니 철쭉과 신갈나무로 둘러 싸인 갈림길 나온다. 갈림길에는 정맥 시그널과 능동산(陵洞山 983m) 정수리를 알리는 붉은 화살표가 매달려 있는 소나무 한 그루가 하늘에서 떨어지는 진눈깨비를 고스란이 맞고 쓸슬하게 홀로 서 있다.
15시 12분 능동산(陵洞山 983m)
소나무 한 그루가 쓸쓸히 서 있는 갈림길에서 5분 여 거리에 제법 넓은 능동산(陵洞山 983m) 정수리에 오르니, 정수리 중앙에 돌무더기와 '능동산 경남 울주군 981m'라고 씌어져 있는 빗돌이 점점 굵어지는 진눈깨비를 맞으며 반갑게 반긴다.
영남알프스의 가장 중요한 산맥의 요충지 능동산(陵洞山 983m)은 영남알프스 산군중의 하나이지만 가지산과 천황산, 재약산의 유명세에 가려 별로 알려지지 않은 산이다. 석남재에서 천황산으로 뻗은 산줄기 중간에 우뚝 솟아 있어 영남알프스의 위용을 드러내고 있지만 언양에서 얼음골로 넘어가는 도로가 개통되기 전까지는 매우 깊숙히 숨어있었던 것이다.
동부 경남의 중심에 위치한 능동산은 북으로는 가지산과 문복산이 위치하고, 북서쪽으로는 운문산과 억산 과 고구만산이, 북동쪽으로는 고헌산 이 호위하듯 둘러서고 남으로는 간월산과 신불산 그리고 취서산이 장쾌하게 연결된다. 능동산은 가지산에서 낙동정맥의 맥을 이어 받아 간월산, 신불산, 취서산 등을 거쳐 남으로 그 맥을 이어주는 중요한 분수령이라 할 수 있다.
15시 40분 배내고개
능동산 정수리에서 오리난초님이 건네 준 쑥떡을 맛있게 먹는 데 더욱 거세게 내리는 진누깨비가 발길을 배내고개로 옮기게 만든다. 능동산 갈림길에서 능동산을 향해 오르는 회원님들과 눈 인사를 나누고 가파르게 고도를 낮추는 능선을 따라 내려서니 이내 800m 헬기장이 나온다. 헬기장에서 나무 계단과 진흙 길이 번갈아 잇따르는 정맥마루금을 따라 배내고개가 내려다 보이는 곳에 다다르니 가지산에 오를 때 밟았던 붉은 침목(枕木) 계단이 배내고개까지 이어진다.
붉은 침목 계단 끝 공터에서는 먼저 하산한 회원님들이 정맥호 선장님이 정성껏 쳐 놓은 천막 안에서 진눈깨비를 피해 맛있는 김치찌개와 하산주를 나누고 있다. 한편 침목 계단 끝 우측에는 소나무 한그루와 '신불산, 천황산, 능동산방향'이라 씌어져 있는 푯말이 하산하는 산행객들을 반갑게 맞는다.
비록 짙게 깔린 연무와 산행 중에 날린 진눈깨비 탓에 가지산(加智山 1,240m)의 진면목을 다 감상하지는 못하였으나 오랜만에 반가운 지인들 그리고 한겨레 회원님들과 함께한 즐거운 산행이었습니다. 12월 16일 신불산(神佛山 1,209m) 산행에서도 함께하기를 기원하며 내내 건안하시고 즐거운 나날 이어가세요.^*^
*** 글을 읽으시며 혹 다른 의견이나 오류가 있으면 꼬~옥 댓글을 남겨 주세요. 감사합니다. ^*^ ***
2007년 12월 08일
강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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