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후기

[名士에게 듣는 山이야기] 칠순에 히말라야 트레킹에 푹 빠진 이종호 중외제약 회장

작은岳馬 2006. 3. 30. 09:14
[名士에게 듣는 山이야기] 칠순에 히말라야 트레킹에 푹 빠진 이종호 중외제약 회장

“안나푸르나에서 생애 제일 아름다운 일출 목격”

▲ 운길산 산행 중인 이종호 회장. "젊은 시절 한 때 운길산 수종사에서 공부한 적이 있어 이 산과 인연을 끊을 수 없다"는 이 회장.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가 해발 4,150m에 있는데, 거기서 본 석양의 빛깔을 잊을 수가 없어요. 햐얀 설원에 펼쳐지는 빛의 파노라마였지. 다음 날 새벽에 눈을 떴어요. 날씨가 얼마나 춥던지 여벌로 가지고 간 옷을 다 껴입어도 몸이 떨리더구만. 그런데 그 추운 새벽에 카메라를 든 온갖 사람들이 한 곳으로 몰려드는 거예요. 도대체 저 사람들이 뭘 찍으려고 그러나 싶어 나도 그 사람들 틈에 끼였지. 그리고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출을 목격했어요.”

중외제약 이종호 회장(74)이 2002년 겨울 히말라야 안나푸르나(8,091m) 베이스캠프까지 트래킹한 얘기를 들려준다.

“산을 좋아해요. 1주일이면 한 번씩은 꼭 등산을 하지. 두물머리라고 북한강과 남한강이 만나는 곳 있잖우. 이 두물머리가 내려다보이는 괜찮은 산이  하나 있어요. 운길산이라고 하지. 내가 즐겨 찾는 산이에요.”

이 회장은 젊은 시절 한 때 운길산 수종사에 공부를 한 적이 있어 운길산과의 인연을 끊을 수 없다.

 

주로 가는 산은 운길산과 북한산

운길산만 찾는 것이 아니라 거의 매주 김동익씨(전 중앙일보 사장) 등 친구들이나 회사 임직원들과 함께 북한산도 찾는다.  북한산은 평창동 매표소에서 시작해서 대성문을 거처 형제봉으로 하산한다. 이 회장은 등산 도중 자기 얘기는 최대한 아끼고 직원들의 고민을 들으려 애쓴다. 아무리 좋은 말이라도 오너가 하면 직원들에게는 그대로 스트레스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술을 전혀 입에 대지 않는 이 회장은 산을 내려와서는 돼지갈비나 순대국 집에 들러 동행 임직원들과 늦은 점심을 든다. 운길산을 올라갔다 내려와서는 양수리 마현화랑에 들러 클래식 음악을 감상하거나 연주실황 DVD을 감상하면서 산행 피로를 푼다.

▲ 이 회장이(가운데)이 히말라야 쿰부지역 남체바자르를 지나 에베레스트 초입의 상보체를 오르고 있다.

초중등학교 시절부터 미술에 관심이 많았던 이 회장은 3년 전 안나푸르나 트레킹 때 베이스캠프에서 본 안나푸르나의 일출 광경을 카메라에 담기 시작한 다음부터 사진촬영의 묘미에 푹 빠져들었다. 산에 오를 때 마다  꼭 카메라를 가지고 가서 눈앞에 펼쳐진 자연 풍경을 몇 장씩 담아온다.

50대라 해도 누구나 곧이들을 만큼 건강해 보이는 이종호 회장의 건강 비결은 바로 등산에 있었다. 이 회장이 일궈온 중외제약은 지난 해 창사 60주년을 맞이했다. 국내 5대 제약회사 중 하나로 다른 제약회사처럼 비타민 함유 드링크제나 피로회복제를 만들지 않는다. 주력 제품은 링거라 불리는 수액을 비롯해 항생제, 항암제, 순환기용 약을 주로 만든다. 주로 병원에서 쓰는 전문 치료제다. 중외제약이 만든 치료제들이 없으면 우리나라 병원이 문을 닫게 될 정도다.

종업원 1,180명이 연간 매출액 3,040억(2004년 기준)을 기록했다. 조선일보가 최근 국내 상장회사 1,559개사의 1990년 이후 실적을 분석, 5년 이상 연속으로 이익이 증가한 25개사를 발표했는데, 중외제약은 9년 연속으로 2위를 차지해 알짜 기업으로 알려지고 있다.

▲ 이 회장 일행이 불경이 새겨진 바위나 초르텐(불탑)과 불교 경전을 써서 매달아 놓은 롱다를 지나고 있다.

“오르다보면 정신적 육체적 상처 다 낳아”

이종호 회장은 일흔넷이 믿기지 않을 만큼 활력이 넘쳐 보인다. 항상 웃음을 머금은 얼굴 역시 동안이다. 지난 해 11월24일부터 12월3일까지 9박10일간 세번째 히말라야 트레킹에 나선 그는 백두산 보다 더 높은 해발 2,858m나 되는, 산비탈을 깎아서 만든 루클라 비행장에 내려 주위를 둘러싼 설산을 둘러보며 가벼운 흥분을 감추지 않았다. 19인승 경비행기의 창문 너머로 보이던 흰 산들이 바로 눈앞에 다가와 있었다.

▲ 2002년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에 오른 이 회장. 이 때 본 안나푸르나의 일몰과 일출을 영원히 잊을 수 없다고 말한다.
2년 전 안나푸르나 트레킹을 다녀왔지만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 트레킹은 엄두를 내지 못했었다. 이 회장과 함께 한 일행은 서울고 후배들인 이재후(66) 변호사, 박영철(66) 서울대 국제대학원 석좌교수, 김영수(63) 대한농구연맹 총재 내외와 평소 이 회장을 따랐던 인광호(50) 고려대 의대 교수, 그리고 같은 대학의 임도선(45) 의대 교수가 동행했다. 의사 두 분이 함께 하였으니 환자가 발생해도 아무 걱정이 없게 됐다. 그야말로 최상의 트레킹단을 이 회장이 이끌었다.

이 회장이 히말라야 트레킹에 푹 빠진 것은 네팔의 자연도 좋지만 가난하지만 종교와 자연에 순응하며 살아가고 있는 순수한 영혼이 깃든 네팔인들이 좋아서다. 해발 5,500m나 되는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까지 트레킹을 하면서 세계 최고봉의 정기도 흠뻑 받을 수 있어서 좋다고 했다.

▲ 안나푸르나 트레킹 도중 명상에 잠긴 이 회장. 히말라야는 그에게 많은 깨달음을 주고 있다고 그는 믿는다.
“하찮은 일에 너무 신경을 쓰다가 일상을 떠나 네팔어로 사가르마타(세계의 정상), 티벳트어로 초모롱마(세계의 여신)라 불리는 에베레스트를 가까이 하면서 하루 종일 산을 오르내리다 보면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입었던 상처들이 다 낳는 것 같아.”

일행 중  최고령인 이 회장은 루클라에서 팍딩(2,640m)을 지나 남체바자르(3,540m)를 거쳐 목적지인 상보체(3,864m)까지 가는 3일 동안 이른 아침부터 해질녁까지 가다 쉬다를 반복하며 천천히 걸었다. 5개의 기나긴 출렁다리를 건너고, 가난하지만 해맑은 웃음과 “나마스떼!(안녕하십니까)”를 외치는 네팔인 마을을 지나 에베레스트로 향했다. 이 회장이 이렇게 안나푸르나와 에베레스트 주변을 서성이는 것은 자기와의 싸움을 끝내고 현실을 떠나 초월적인 경지에 들어서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회장님 괞찮으시죠?. 그 나이에 정말 대단하십니다.”

▲ 안나푸르나 트레킹 중인 홍인선(전 미국 3M 부사장), 이 회장, 양정모(전 교장), 남기덕(중외제약 차장). 뒤에 보이는 설산은 마차푸차레.
이 회장의 발걸음에 맞춰 산을 오르는 일행이 건넬 수 있는 유일한 위로와 격려의 말이다.

“힘이 들기도 하지만 이렇게 걸어야 고소를 이길 수 있다네. 포터들이 옆에서 뭐라는지 알아. ‘비스타리(천천히)’, ‘비스타리’라고 자꾸 일러주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야.”

고산은 두 다리로 오르기 보다 의지로 오른다는 말이 옳다는 것을 에베레스트를 오르는 이 회장을 보면 실감한다.

“3년 전 겨울 안나푸르나를 갔을 때 나이 드신 분  중에 고산증을 앓은 사람은 없었습니까.?”

“왜 없었어요. 해보니까 트레킹이라는 것은 결국 지구전이야. 일행 중에 가장 젊은 사람이 먼저 쓰러졌어요. 나는 비교적 적응을 잘 했지. 모두 다섯 명이 다녀왔는데 두 사람은 지금도 트레킹 얘기라면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고, 다른 두 사람은 한 번 더 가고 싶다고 그래.”

 

“안나푸르나에서 생애 제일 아름다운 일출 목격”

▲ 004년 6월 우중에 푼힐 트레킹을 함께 한 김찬, 남기덕(중외제약 차장), 이 회장, 김동익(전 중앙일보 사장, 전 정무제1장관, 현 용인송담대학장).

매출 1조원의 글로벌 헬스캐어 컴퍼니가 목표

이 회장은 선친인 고 이석기 전 회장이 운영하던 중외제약에 1966년에 입사하여 40년간 몸 담아 오고 있다. 1980년 한 때 부도 위기에 처하는 등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만 그 후 29년 동안 계속해서 흑자를 내고 있다. 세계 일류 제약회사로 만든 이 회장의 경영철학은 바로 산을 오르면서 몸에 밴 도전정신과 끈질긴 집념이 바탕에 깔려 있다고 한다.

에베레스트를 한참 오르다가 카메라백을 한 짐 지고 이 회장 뒤를 따라다니는 포터를 불러 세우고 묵직한 캐논 디지털 카메라를 꺼내든 이 회장은 에베레스트 빙하가 녹아 흘러내리는 계곡과 6,000m대 설산들을 훑어보면서 열심히 셔터를 누른다. 숨을 멈추고 셔터를 누르는 순간이 이 회장에게는 휴식시간이다. 산행속도는 늦더라도 이 회장의 내면에 쌓인 심미안을 일깨우며 희열에 휩싸이는 순간이다.

“이 부장, 황량한 저 산기슭에 홀로 서 있는 저 나무와 야크떼를 넣고 찍으면 어떨까?”

▲ 2005년 가을, 친구들과 백담사~오세암~봉정암(1박)~소청~대청~오색 코스로 설악산에 오른 이 회장.

이 회장은 카메라 파인더에서 눈을 떼지 않고 잠시 심호흡을 하면서 깊은 생각에 잠긴다. 그는 안나푸르나를 다녀온 다음부터 홍보실 직원에게서 사진찍기를 본격적으로 배우기 시작했다. 새로운 꿈에 대한 도전이다.

“이번 트레킹을 하면서 찍은 사진들 가운데 잘 된 것을 골라 연말에 연하장을 한 번 만들어 보려고 해. 전시회 같은 것은 생각하지 않고 내 사진이 어떤지 품평을 한 번 받아 보는 기회도 되지 않을까 해서.”

쿰부 지역의 최대 마을인 남체바자르까지 가는 길에 만년설을 뒤집어 쓴 6,000m급 연봉들이 일행을 맞는다. 남체바자르에서 최종 목적지인 상보체(3,864m) 언덕에 자리 잡은 에베레스트뷰 호텔이 있는 상보체까지 고도 300m을 높이는 등반은 여간 힘든 코스가 아니다. 롱다(인쇄된 불교 경전)가 내걸린 초르텐(불탑)을 지나 3일만에 하늘과 맞닿은 산 너머로 우뚝 솟아오른 에베레스트(8,850m)와 로체(8,383m)와 아마다블람(6,856m)과 상면하는 순간이다. 창 너머로 에베레스트가 눈부시게 빛나는 에베레스트뷰 호텔에 도착하자마자 이 회장은 카메라를 들고 석양에 붉게 물들기 시작한 에베레스트 주변 설산들의 알펜 글로(alpen glow)를 찍으려고 쏜살같이 옥상으로 올라간다.

“집사람이 4,000m 이상은 오르자 말라고 했으니 약속을 지켜 여기까지만 오르기로 했네. 2006년에는 5,500m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까지 가 봤으면 하는데-.”

여운을 남기는 이 회장의 도전정신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앞으로 회사원들에게도 세계 최고봉의 베이스캠프 도전 기회를 줄 계획도 세워 놓고 있다.

▲ 에베레스트께 건너다보이는 상보체의 에베레스트뷰 호텔에 모인 일행들. 왼쪽부터 인광호(고대 의대 교수), 박영철(서울대 국제대학원 석좌교수), 김영수(대한농구연맹 총재), 이종호 중외제약 회장, 임도선(고대 의대 교수), 남기덕(중외제약 차장) 제씨.

중외제약이 지금까지 만든 수액만 13억 병이 된다. 생명을 존중하는 수액에 생산에 집착해온 중외제약이 2004년 6월 초에는 차세대 항생제인 이미페넴을 세계 최초로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이 회장은 이 약을 개발하기 위해 1990년대 초부터 막대한 연구비를 투자했다. 경기도 시화지구에 이미페넴만을 생산하는 글로벌 기준의 공장을 준공하는 데에만 100억을 들였다.

이미페넴의 세계시장 규모는 6억 달러라고 한다. 현재 일본, 유럽, 중국 등에서 문의가 잇따르고 있어 발매 3년차부터 연간 800억 원 이상 매출을 올릴 것으로 내다봤다.

이종호 회장은 2006년 신년사에서 “금년은 5년 앞으로 다가온 2010년 매출 1조원, 경상이익 1천 달러의 ‘글로벌 헬스캐어  컴퍼니’ 비전을 실현하는 첫 해인 만큼 임직원 모두 배전의 각오와 결의를 다질 것”을 당부했다.   

이종호 회장이 중외제약을 오늘날 이만큼 키워온 데는 산을 오르며 다진 놀라운 체력과 굳은 의지가 밑바탕이 됐음이 틀림없다.

글 사진 이오봉 월간조선 객원기자, oblee@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