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천산행 - 월악산 르포] 험산 속에서 자연의 신비감에
빠지다 덕주사~영봉~하봉~보덕암 첫눈 종주산행 후 수안보 온천욕 | ||||||||||||||||
첫눈 내린 지 며칠 지나지 않은 12월7일 이른 아침 수안보에서 만난 표순남씨(충주산악연맹 이사)와 전용희씨(여?〃 이사)는 충주 산 자랑, 온천 자랑에 열을 올리며, “오늘 오를 월악산(月岳山?1,097m)은 충주의 명산 중에서도 으뜸으로 꼽는 산”이라 치켜세운다. 지릅재를 넘어 송계계곡을 거쳐 덕주골로 접어드는 사이 산은 올 겨울 첫눈을 맞았는데도 늦가을 잿빛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산을 등진 채 널찍한 터에 들어앉은 덕주사 역시 을씨년스럽기는 마찬가지. 매서운 추위에 신도는커녕 보살조차도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마애불 지나면서 수목화 속으로 들어선 기분 숲길을 따라고 돌계단길을 올라 덕주사마애불(德周寺磨崖佛·보물 제406호) 앞에 다다르자 마음이 무거워진다. 무릇 마애불이 넉넉하고 웃음 띤
형상이기 마련이건만 마의태자의 누나 덕주공주가 조성했다는 덕주사마애불은 웬지 우울해 보인다. 나라를 잃은 공주의 심정이 편할 리 없었으리라.
뒤로 돌아서는 순간 첩첩산중에 들어서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는다. 등 뒤로는 기암절벽이 솟구치고, 골 바깥으로는 수많은 산봉들이 솟아
있다. 푸른 하늘과 숲 짙은 봉우리들, 그리고 은은하게 골을 울리는 딱따구리 나무 쫘대는 소리가 마음을 가라앉혀 준다. 이런 산세가 그나마
덕주공주를 조금이나마 달래주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진다.
“저 산들 좀 보세요. 전국에 유명하다는 산은 거의 다 다녀봤지만 충주의 작은 산만도 못한 산이 허다하더군요.”
소나무 한 그루 한 그루가 명목(名木)이다. 거북등 모양의 겉모습을 지닌 아름드리 소나무, 우아하게 가지를 펼친 소나무, 흥이 너무
겨웠던지 허리께부터 나뭇가지까지 이리저리 뒤틀린 소나무 등등, 서로 흉내내지 않은 독특한 모습의 소나무들이 산등성이나 바위틈에서 자라고 있다.
이제 바위 위에 올라선 석상명씨와 김창호씨 마저 낙락장송처럼 보인다.
“와~, 그림이네요, 그림.” 히말라야 등반 경험이 많은 김창호씨(쎄로또레 홍보담당)는 “이렇게 아름다운 산세는 처음 본다”며 감탄사를 터뜨리고, 표순남씨는 “충주호
주변의 산들은 대개 이 정도 산세는 지니고 있다”며 어깨를 으쓱한다.
“악연이라니까요.” 기자가 아무리 악연이라 우겨봐도 오늘 처음 본 충주?청주 산악인들까지도 “그 때 결혼하지 않았다면 지금도 노총각 신세를 면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놀려댄다. |
공포감 느끼게 하는 중봉 하산길 영봉 오름길은 역시 만만찮다. 절벽 뿌리를 껴안고 돌다가 가파른 철계단을 오르고 올라서야 알바위봉 영봉 정상에 올라설 수 있었다. 쇠난간에
기대는 순간 매서운 바람이 얼굴을 내리쳤다. 그제야 계단길 내내 숙였던 고개를 치켜들었다. 우리는 수석 위에 서 있었다. 하봉 자락은 충주호로
빠져들고, 만수봉 암릉은 백두대간을 향해 치닫고 있었다. 일행 다섯 명은 눈이 마주치는 순간 동시에 폴을 치켜들고 환호성을 질러댔다.
“이거 이제 어떻게 내려가지….”
송계 삼거리 갈림목에서 왼쪽으로 방향을 틀자 아무도 밟지 않는 눈이다. 올 겨울 첫눈을 밟는다는 생각에 모두들 들뜬 표정이다. 철구조물이
나타난 다음 자연미 넘치는 허리길이 이어진다. 길가의 나무들은 모두 제 멋대로 자라고 있다. 하늘 높이 뻗어오른 거목도 보이고, 힘들었던지
산길쪽으로 몸을 누인 나무도 있다. 중봉 능선길은 그만큼 찾는 이가 많지 않은 길이었다.
살얼음판 걷듯 조심조심하다가도 조금만 발이 밀리면 비명소리를 터뜨린다. 그런데도 석상명씨는 “이런 스릴을 어디서 느껴보겠냐”며 즐거워한다. 바윗길을 무사히 빠져나가 발목까지 잠기는 눈밭에 들어서자 모두들 호호, 깔깔대며 해맑은 웃음을 터뜨린다. 이것 또한 겨울 산이 우리들에게 주는 축복이다. 숲길을 빠져나가면서 제 모습을 드러낸 하봉은 중봉에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험난해 보인다. 산길이 암봉을 우회하는 게 그나마 다행이다 싶다.
그렇지만, 우회로 첫 구간은 만만치 않다. 수십m 철계단은 거의 수직벽에 걸려 있다. 정면으로 서서는 배낭이 걸려 발을 내딛지 못할 정도다.
철계단을 마주보며 내려서는데도 자칫 미끄러지면 바닥까지 엉덩방아 찧기 십상이니 긴장되지 않을 수 없다. |
충주호 내려다보는 순간 불안감 엄습
하봉 허릿길을 빠져나가자 고즈넉한 산길이 나타난다. 또다시 명목 소나무가 도열한 숲길이다. 산길이 가팔라져도 풍요롭게 우거진 숲은 마음을 편안케 해주고, 아름드리 나무들은 순간순간 기대고 숨을 고를 터를 마련해준다.
![]() |
▲ 긴장감이 느껴지는 중봉 등로. |
오후 4시, 산행을 시작한 지 7시간만에 닿은 보덕암은 깊은 산사였다. 대웅전과 그 아래 마당을 사이에 두고 ‘普德庵’과 ‘普德禪院’이란 현판이 달린 당우 두 채가 마주보고 있는 자그마한 암자건만, 깊고 넉넉한 부처의 기운이 느껴진다. 당우 한쪽 벽에는 장작이 잔뜩 쌓여 있다. 겨울채비를 단단히 하고 있었다.
표순남씨의 손에 이끌려 보덕굴로 향하는 사이 충주호가 내려다보인다. 이제 충주호는 굵은 꽃뱀처럼 산을 휘감고 있다. 순간, 험산을 내려섰건만 아직도 장애물이 앞을 가로막고 있다는 불안감과 함께, 덕주공주도 이런 막막한 산세 때문에 더욱 비감한 표정을 짓고 있었는지도 모르리라는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글 한필석 기자 pshan@chosun.com
사진 정정현
차장 rockart@chosun.com
'산행후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버리미기재~늘재 개념도 (0) | 2006.03.09 |
---|---|
이화령--은치재 [백두대간 18 차] (0) | 2006.03.09 |
한라산 백록담 여신을 찾아서 1편 (0) | 2006.01.18 |
한라산 백록담 여신을 찾아서 2편. (0) | 2006.01.18 |
산행후기 (0) | 2006.01.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