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동정맥 제16구간 단석산(斷石山 827.2m)
산행일자 : 2007년 11월04일
산행장소 : 숲재~부산성서문~억새밭(고랭지채마밭)~부산성남문(성터)~720m봉헬기장~산불감시초소(753m)~독고불재(영남목장)~651.2m봉~682m봉~오리재~무명봉(삼각점)~땅고개(20번국도)~662m봉~단석산삼거리~단석산(827.2m)~단석산삼거리~652m봉~OK그린~KTF중계안테나~512m봉~메아리농장~605.1m봉~520m봉~청우농산(아래상목골도로)
산행모임 : 대전한겨레산악회(30명)
산행날씨 : 맑음(엷은 안개)
산행거리 및 시간 : 총 23.1km(정맥마루금 21.1km, 단석산 갈림길~정수리 왕복 3km), 07시간 07분
새벽 3시에 일어나 밥을 짓고 간식거리로 과일과 초코바를 준비해 배낭을 꾸려 어깨에 메고 04시 50분 용문역에 도착하니 차가운 새벽 공기만 얼굴을 스치며 지날뿐 이곳에서 만나기로 한 친구 내외는 아직 보이지 않는데 이른 새벽이라 샛별과 함께 수많은 별들이 초롱초롱 빛을 발한다. 또한 여인네 눈썹을 닮은 초승달은 수줍은 듯한 미소로 나를 내려다 보고 있다.
05시가 넘어선 시각에 친구 내외가 용문역에 도착하고 평소보다 조금 늦은 시각에 정맥호도 도착하여 정맥호에 승선하니 반가운 회원님들이 웃는 얼굴로 반긴다. 정맥호는 평소와 다름없이 시민회관과 원두막을 경유하며 회원님들을 승선시키고 숲재를 향해 항해를 한다. 청도군 운무면 우라마을에서 숲재로 굽이굽이 이어지는 좁은 도로는 정맥호처럼 대형 버스가 다니기에는 여러모로 위험하기 짝이 없는데 박종구 선장님은 늘 불평불만 없이 뛰어난 항해술을 발휘해 08시 40분에 숲재 고갯마루에 정박해 회원님들을 안전하게 하선 시킨다.
08시 50분 숲재(숙재)
숲재 고갯마루에 도착한 회원님들은 먼저 최영 구조대장님의 구령에 맞춰 5분 여에 걸쳐 준비운동을 하고 기념촬영을 한다. 아래의 사진에서 처럼 아직 안개가 채 걷히지 않아 청명한 가을 하늘은 볼 수 없으나 모든 회원님들의 얼굴에선 웃음과 함께 즐거움이 묻어 난다.
09시 12분 지나온 구간을 조망하며
숲재에서 가파르게 고도를 높이며 이어지는 임도를 따르다 가랑잎이 수북이 쌓인 숲으로 이어지는 정맥 마루금을 따라 한 차례 발품을 파니 주사산성(朱砂山城)이라고도 하는 경주의 부산성(富山성) 성벽 흔적이 아직도 남아 있는 구간을 지난다.
산성의 흔적을 지나 한 봉우리에 오르니 관산에서 사룡산으로 이어지는 정맥 마루금과 낙동정맥 능선 기슭에 고즈넉히 자리잡은 북안면과 경주 서면이 채 걷히지 않은 안개에 싸여 묘한 그림으로 가가선다.
위 사진에서 좌측 위에 보이는 봉우리가 관산이고 관산에서 우측 아래 대각선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정맥 마루금으로 사룡산 자락과 이어진다.
09시 20분 오봉산과 관산
부산성(富山城) 서문 터로 보이는 성터를 지나니 잡풀과 억새가 무성한 농장이 나온다. 예전에는 이 곳에서 소를 방목하고 고랭지 채마를 재배했다고 하나 지금은 그 흔적만 남아 있을뿐 가축이나 고랭지 채마는 보이지 않는다.
시원한 가을 바람에 흔들리는 새하얀 억새꽃이 마치 나를 보고 반갑다고 하얀 손수건을 흔드는 듯 한 가운데 농장 너머 북쪽을 바라보니 멋진 암장을 자랑하는 오봉산(五峰山)이 손에 잡힐듯 하고 안개에 싸여 아스라이 보이는 산그리메가 연이어 잇따른다. 낮게 깔린 안개와 아스라이 바라다 보이는 산그리메 가운데에서는 지난 구간에서 나를 힘들게 만들었던 관산(冠山)이 우뚝 솟아 나에게 잘가라고 손짓을 한다.
멋진 암장을 자랑하는 오봉산(五峯山) 기슭에는 여근곡(女根谷)이라는 골짜기가 유명하다. 여근곡은 경주시(慶州市)에서 대구 방면 약16km, 건천읍(乾川邑)과 산내면(山內面) 사이에 자리잡고 있으며 높이 640m의 산으로 전설(傳說)과 사적(史蹟)을 많이 간직하고 있다.
한편 지리지(地理志)에는 부산(夫山)이라고도 기록 되었으며, 주사산(朱砂山)과 오봉산(五峯山) 등도 부산내(富山內)에 있는 주사암(朱砂庵)과 오노봉(五老峯) 등에서 온 별칭(別稱)이며 부산(富山)에서 가장 유명(有名)한 곳이 여근곡(女根谷)이다.
부산 지형이 영락없이 여자의 벌리고 있는 다리 가랭이와 그 국부를 닮았다고 하여 '女根谷'이라 하며 아래의 마을 이름은 샙골 또는 섭들 마을 이라고 한다. 현재 여근곡에는 유학사라는 조그만한 사찰이 있고, "옥문지(玉門池)"라는 샘에서 흘러나오는 우물이 있다. 특히 총각이 여근곡의 샘물에 손을 씻으면 그고장의 처녀가 바람이 나서 외지로 도망 가곤 한다는 얘기가 전해 내려 오고 있다 한다.
여근곡에 전해진는 선덕여왕설화(善德女王說話)를 옮겨본다.
선덕여왕설화(善德女王說話)는《삼국유사(三國遺事)》 1권 〈선덕여왕 지기삼사(善德女王知幾三事)〉에 기록되어 있는 문헌설화로 신라의 선덕여왕 때 영묘사(靈廟寺)의 옥문지(玉門池)에서 개구리가 3~4일 동안 울었다는 보고를 받고 즉시 신하에게 지시 하되 급히 군사를 여근곡(女根谷)에 보내어 잠복하고 있던 백제 군사를 토멸하라 지시 한바 왕이 지시한데로 군사를 파견한즉 과연 백제군사가 여근곡에 매복 하여 있어 이에 이들을 모두 죽이고 남산에 숨어 있던 백제 장군 우소와 백제의 후원군까지도 모조리 무찔렀다.
이 일을 신하들이 궁금히 여기자, 여왕은 "개구리는 눈이 불거진 모양이 성난 형상이니 군사의 상징이고, 옥문이란 여근(女根)이며, 여자는 음(陰)인데 그 색은 희고 흰색은 서쪽을 상징한다. 그래서 적군이 서쪽에 있음을 알았고, 남근(男根)은 여근 속에 들어가면 반드시 죽으므로 쉽게 잡을 것을 알 수 있었다."고 말했다고 전한다.
09시 30분 억새밭을 지나는 회원님들
회원님들이 억새밭에 잠시 취해 주변 풍광을 조망한 다음 걸음을 옮기기 시작하는데 뒤따르던 회장님이 회원님들을 불러 세우자 손을 흔들며 반기는 회원님들 너머로 정맥 마루금상에서는 비록 동쪽으로 1.5km 가량 비켜서 있는 단석산(斷石山 827.2m)이 아스라이 바라다 보인다.
아래 사진에서는 고랭지채마밭 너머로 651.2m봉과 685m봉 그리고 땅고개가 좌측에서 우측으로 잇따르다 땅고개를 만나 잘룩하게 고도를 낮추는 모습과 땅고개 너머로는 662m봉과 단석산(斷石山 827.2m)이 우측에서 좌측으로 고도를 높이며 이어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개쑥부쟁이
09시 40분 부산성 남문터
숲재에서 부산성 서문과 고랭지 채마밭을 지나 부산성 남문까지 남동쪽으로 이어지던 정맥 마루금은 남문을 기점으로 남쪽으로 방향을 틀어 내리막 비탈을 만들며 잡목과 덤불이 우거진 작은 안부로 내려 선다.
위 사진은 부산성 서문 근처 성벽을 쌓았던 돌을 담은 사진으로 부산성(富山城)은 경상북도 경주시 건천읍 송선리에 있는 신라시대 석축산성으로 사적 제25호로 지정되어 있다. 성 둘레는4,977m이고 지정면적은 762,874㎡로 경주부산성, 주사산성(朱砂山城)이라고도 한다. 경주의 서쪽에 있으며, 높이 700m 정도의 오봉산 정상을 중심으로 골짜기를 둘러싼 포곡식(包谷式) 산성이다. 〈삼국사기〉와 〈세종실록〉 지리지에 따르면, 663년(문무왕 3) 정월에 축조했으며, 산성 안에는 연못 1개, 계천(溪川) 4개, 우물 9개가 있었다고 한다. 이곳은 경주에서 대구로 통하는 전략의 요충지로서, 선덕여왕 때 백제 군사가 이 산을 넘어 옥문곡(玉門谷:일명 女根谷)까지 침입한 일이 있은 후에, 도성(都城) 방어를 강화하기 위해 남산신성의 장창(長倉)을 축조하면서 동시에 쌓은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이 성은 서쪽에서 침입하는 적을 방어하기 위해 쌓은 경주의 외곽성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석축은 가공하지 않은 안산암(安山巖) 석재를 써서 안팎을 쌓아올리고 내부에는 잡석을 채우는 협축법(夾築法)으로 쌓았다. 지금은 대부분 무너져서 형태를 찾기가 힘들 정도로 파손되어 있다. 다만 남문(南門)터를 비롯해 군창(軍倉)터·연병장터·주암사(朱巖寺)터 등 건물터와 우물터·못·암문(暗門)터 등이 남아 있을 뿐이다.
아래 사진은 안부를 지나 720m봉 헬기장으로 향하는 길에 부산성 서문에서 남문까지 이어지는 고랭지 채마밭을 돌아보며 담은 사진이다.
09시 57분 720m 헬기장
한 차례 가파른 오르막 비탈을 올라 720m봉 헬기장에 도착한 회원님들이 저마다 물로 목을 축이는가 하면 지도를 꺼내 독도를 하고 있는 모습이다.
아래 사진은 720m봉 헬기장에서 조금 떨어진 753m봉 정수리에 세워져 있는 산불 감시 초소를 담은 사진인데 정맥 마루금은 이 초소가 있는 봉우리에서 좌측(동남쪽)으로 급하게 방향을 틀어 독고불재(영남목장)을 지나 651.2m봉까지 이어진다.
10시 07분 가랑잎 밟는소리...
753m봉에서 철쭉 군락지를 따라 가파르게 이어지는 내리막 비탈을 한 차례 내려서면 상수리나무와 졸참나뭇잎이 수북이 쌓여있는 비단길을 지난다. 비단길을 따라 발길을 옮기다 보면 발 밑에서 바스락 거리며 부서지는 가랑잎 소리에 걸음은 절로 가벼워지며 기분까지 좋아지는걸 느낄 수 있다.
10시 13분 영남채석장
독고불재(영남목장)로 내려서는 가파른 비탈 조망처에서 산불 감시 초소가 있는 753m봉을 돌아보고 눈을 건천읍 송선리 골짜리로 돌리니 아래 사진처럼 산자락을 싹둑 잘라내며 돌을 채굴하고 있는 영남채석장이 흉물스런 모습으로 다가선다. 또한 채석장에서는 1,866년 스웨덴의 노벨이 발명한 다이너마이트(dynamite)를 사용해 발파작업을 하는지 연신 폭음이 들려온다.
아래 사진 영남채석장 너머 골짜기 아래에는 건천읍이 자리하고 있다. 건천읍(乾川邑)은 경상북도 경주시 중서부에 있으며 면적은 92.35㎢이고 읍소재지는 건천리이다. 동북부에는 구미산(594m)이 솟아 있으며, 서남부에는 단석산(827m)·벽도산(436m) 등이 솟아 있는데, 이들 두 산지 사이를 흐르는 대천 유역에는 평야가 펼쳐져 있다. 쌀·보리 이외에도 사과와 포도가 많이 생산되며, 방내리에서는 양송이를 재배하고 있다. 신라시대의 유물·유적이 많아 서남부는 경주국립공원 단석산지구로 지정되었다. 중앙선 철도와 경부고속도로 및 국도가 대천을 따라 북서방향으로 뻗어 있다. 건천(乾川)·천포(泉浦)·송선(松仙)·신평(薪坪)·용명(龍明)·대곡(大谷)·화천(花川)·모량(毛良)·방내(芳內)·금척(金尺)·조전(棗田) 등 11개 동리가 있다.
10시 21분 독고불재(영남목장)
독고불재에는 건천읍 송선리 영남채석장을 거친 임도가 고갯마루를 넘어 정맥 마루와 나란히 서쪽 기슭을 따라 이어지다가 땅고개에서 20번 국도와 만나다. 한편 고갯마루 동쪽으로는 영남목장이 서쪽으로는 어두목장이 한때 번성했다고 하나, 지금은 가축이 있어야할 축사나 방목지 초지에는 휑한 기운만 감돌뿐 가축은 한 마리도 보이지 않는다.
위 사진은 독고불재로 내려서는 회원님들과 651.2m봉을 담은사진이다. 독고불재로 이어지는 마루금 우측으로는 팔각정자와 단풍나무숲 조성되어 있다.
10시 40분 651.2m봉
휑하니 비어있는 축사를 뒤로하고 독고불재에서 651.2m봉으로 이어지는 마루금을 찾아 숨이 턱까지 차도록 가파른 오르막 비탈을 오르다 보면 가축을 방목할 때 처 놓았던 철책이 눈에 많이 띈다. 정맥 마루금은 철책과 나란히 이어지다가 철책을 대여섯 차례 넘나들고서야 651.2m봉 정수리에 닿는다. 지금은 효용 가치가 업어진 철책은 651.2m봉 정수리에서 정맥 마루금을 따라 남�으로 한참을 잇따른 후에야 차취를 감춘다.
651.2m봉 정수리에는 '경주 463, 1982 재설'이라 씌어져 있는 삼각점이 막혀 있다. 약 20여 분에 걸쳐 숨이 턱에 차도록 힘든 발품을 판 회원님들은 651.2m봉 정수리에서 잠시 다리 쉼을 하며 시원한 물로 목을 축이고 박영규님이 꺼내 놓은 맛있는 포도와 초코바로 허기를 달랬다.
10시 52분 송선저수지
가랑잎이 수북이 쌓인 마루금을 따라 651.2m봉에서 682m봉으로 향하다 보면 짧은 암릉구간과 집채만한 바위를 만날 수 있다. 집채만한 바위에 올라서면 송선리 '송선저수지'가 발 아래로 펼쳐지고 아래 사진에서 처럼 단석산(斷石山 827.2m) 정수리와 정수리에서 힘차게 흘러 내리는 능선을 조망할 수 있다.
11시 00분 지나온 능선
위 사진은 부산성 서문터에서 고랭지 채마밭을 지나 부산성 남문 그리고 삼불 감시 초소가 있는 753m봉까지 이어지는 능선을 돌아보며 담은 사진이다.
11시 22분 방화선(임도)
682m봉에서 가파르게 높이를 낮추는 마름금을 따라 20여 분 동안 조심조심 걸을을 옮기면 잘 가꾸어진 '오천정씨(烏川鄭氏)' 묘지에 닿는다.
산행을 하다보면 묘를 만나는 일은 다반사라 할 수 있으나 가파른 비탈에 나 있는 오솔길이 오천정씨 묘가 모셔진 곳을 기점으로 차량도 통행 할 수 있을 만큼 넓은 임도로 바뀌는 것을 보면 아마도 이 근동에서 오천정씨가 당당하게 세도를 누렸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11시 26분 오리재
오천정씨 후손들이 넓혔는지 아니면 산불이 번지는 것을 막기위한 목적으로 방화선을 만들어 놓았는지는 잘 알수 없으나 비단처럼 부드럽고 넓은 임도에 수북이 쌓여있는 가랑잎이 부서지는 소리를 드르며 발길을 옮기면 이내 오리재에 닿는다.
오리재에는 건천읍에서 시작된 임도가 독고불재를 넘어 정맥 마루금과 서쪽에서 나란히 하다가 20번 국도와 만나기 위해 가지친 임도가 지난다.
11시 34분 무명봉 삼각점
오리재에서 야트막한 봉우리에 오르면 스카프가 묶여 있는 작은 삼각점을 만난다. 아래의 사진은 이 무명봉에서 오리재 건너 682m봉과 651.2m봉을 돌아보며 담은 사진이다.
11시 40분 땅고개
오리재에서 작은 삼각점이 밧혀있는 야트막한 무명봉을 넘어서면 땅고개에 닿는다. 땅고개 휴개소가 내려다 보이는 위협적인 절개지 위에서는 서쪽(산내면)으로 나 있는 배수로를 따라 내려서면 땅고개 공원 신축부지에 닿을 수 있다.
땅고갯마루에는 경주시 산내면과 건천읍을 잇는 20번 국도가 지나는데 차량 통행이 많아 도로를 횡단할 때는 주의를 해야만 한다. 고갯마루를 지나는 20번 국도가 직선으로 지나지 않고 건천읍에서 산내면을 향해 우측으로 급히 휘도는 형국이라 주의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땅고개에는 '산내면'이라 씌어져 있는 커다란 빗돌과 국기계양대 그리고 위 사진에서 처럼 '땅고개 공원'이라 씌어져 있는 작은 빗돌도 있다. 보통 4~5월에 꽃이 피지만 계절을 잊고 가을을 대표하는 쑥부쟁이 사이에서 간간이 눈에 띄는 민들레를 벗 삼아 땅고개 공원 신축부지에서 20여 분 동안 점심시간을 가졌다.
12시 14분 땅고개 들머리
맛있는 점심을 나누고 김일석님이 직접 타 주신 커피와 내가 내 놓은 사과와 감을 후식으로 먹고 20번 국도를 횡단해 '땅고개휴개소식당' 건물 우측으로 나 있는 들머리를 찾아 드는 회원님들 얼굴에선 웃음꽃이 번진다.
12시 51분 662m봉
독고불재를 지나 651.2m봉을 기점으로 남쪽으로 향하던 정맥 마루금은 오리재와 땅고개를 지나 662m봉 기슭의 한 묘지를 기점으로 동남쪽으로 방향을 바꿔 단석산 갈림길까지 이어진다.
지금까지 산행하는 동안 산행로 가장자리에서는 상수리나무와 졸참나무 그리고 소나무등이 주종을 이루었는데 땅고개에서 662m봉으로 향하는 긴 오르막 능선에는 정맥 능선에서는 좀처럼 보이지 않던 '아까시'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심지어 수령이 수십 년이 넘어 생을 마감하고 바닦에 쓰러진 채 푸른 이끼를 뛰집어 쓰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땅고개에서 길게 이어지는 오르막 능선에서는 단석산(斷石山 827.2m)에서 하산하는 산행객들을 간간이 만날 수 있었는데 35분 가량이나 길게 이어지던 오르막 능선이 다하는 662m봉 정수리에서는 어린 남매(男妹)를 대리고 단석산 산행에 나선 젊은 부부를 만날 수 있었다. 전형적인 가을 날씨를 보이는 휴일 아직 초등학교 취학 전으로 보이는 어린 오누이를 대리고 단석산 산행에 나선 일가족의 모습은 보는 사람까지 즐겁게 만든다.
13시 07분 단석산 갈림길
땅고개에서 점심을 먹고 함께 출발한 회원님들 중 산악대장님과 선두 일행은 그렇다 해도 송영래님은 662m봉 정수리에서 기다릴줄 았았는데 30분이 넘게 걸리는 긴 오르막 능선을 올라 가쁜 숨을 몰아쉬며 다리 쉼을 하고 있는 회원님들 사이에서 송영래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필히 송영래님은 정맥 마루금에서 동쪽으로 벗어나 있는 단석산에 오를 요량으로 걸음을 제촉하고 있을 것으로 생각되어 회장님을 비롯해 10여 명의 회원님들을 뒤로하고 젠걸음으로 송영래님 뒤를 쫓아 가파른 내리막 능선으로 향한다.
662m봉에서 시작된 가파른 내리막 능선에는 갈랑잎이 수북이 쌓여 있고 곳곳에 상수리나무와 졸참나뭇가지가 바쁜 내 걸음을 더디게 한다. 가파른 내리막 비탈에서 가랑잎이나 썩어 땅에 떨어진 나뭇가지를 밟고 미끄러지는 산행객들을 많이 봐 왔기에 조심조심 내리막 비탈을 내려서서 작은 안부를 지나 단석산 갈림길로 이어지는 가파른 오르막 능선을 따라 한 차례 발품을 파니 갈림길에 다달른 지점에 송영래님 뒷모습이 보인다.
"송선생님 저만 떼어놓고 혼자 가면 어떻해요...?"라고 송영래님께 농담을 던지고 갈림길에서 동쪽으로 이어지는 산행로를 조금따르니 '반환점 3km'라고 씌어져 있는 이정표가 졸참나무에 매달려 있는 단석산 삼거리가 나온다. 아마 이 삼거리에서 단석산 정수리는 3km 떨어져 있다는 것일 게다.
13시 27분 단석산(斷石山 827.2m)
단석산 삼거리에서는 가랑잎이 수북이 쌓여 비단길 같은 완만한 능선이 한 차례 이어지고 애기 주먹만한 돌이 깔려있는 가파른 오르막 비탈이 단석산 정수리까지 잇따른다.
한편 단석산 정수리로 향하는 산행로에서는 삼삼오오 짝을 지은 산행객들이 자주 눈에 띄는데 가파른 오르막 비탈이 시작되는 지점에서 대여섯 명의 산행객들이 맛있는 감을 깍아 나누고 있다. 그 모습을 본 송영래님은 "우리도 한 쪽씩 나눠 주세요"라고 하니 감을 깍고 있던 남자분은 흔쾌히 감을 나눠 주신다. 송영래님 덕분에 얻어 먹은 감 한 쪽의 단맛은 단석산 정수리로 이어지는 가파른 비탈을 오르는 내내 입속에서 맴돌았다.
단서간 정수리 바로 아래 조망바위에 다달았을 때 이용우 산악대장님을 비롯 선두 일행이 정수리에서 막 내려서고 있기에 길을 막고 걸음을 되돌려 김유신장군이 삼국통일을 염원하며 칼로 바위를 잘fk 단석(斷石)이 되었다는 바위에 회원님들을 모시고 모처럼 기념촬영을 했다.
아래 사진은 '경주일요산악회'에서 단석산 정수리에 올 봄 새로 세운 정수리 빗돌인데 그 크기가 너무 커서 단석산을 상징하는 단석(斷石)과 기존 빗돌을 묻히게 하고 있어 빗돌을 정수리 가장자리로 옮기던지 아니면 없애는 방한은 강구해야만 한다는 생각이 든다. 또한 주변 자연경관과도 어울리지 않는게 마치 미운 오리새끼를 보는 듯 했다.
삼국통일의 공신인 김유신(金庾信)은 595년(진평왕 17년) 충북 진천 에서 만노군(萬弩郡:진천)의 태수이던 서현(敍玄)장군의 첫아들로 태어났다. 김수로왕의 13대손인 김유신은 15세에 화랑이 되어 17세에 고구려,백제의 잦은 침략에 삼국통일의 큰 뜻을 품고 서라벌 서쪽 산에 있는 석굴에 들어가 목욕재계하고 천지신명에게 고구려,백제, 말갈을 물리칠 수 있는 힘을 달라고 기도하자 4일만에 한 노인이 나 타나 김유신의 인내와 정성을 가상히 여겨 비법이 담긴 책과 신검 (神劍)을 주었다고 삼국사지,동국여지승람,동경잡기에 소개되어있다.
김유신은 이 신검으로 고구려, 백제와 싸울 때마다 승리를 거두었다고 하며 당시의 화랑들이 수도하던 산에서 김유신은 이 칼로 무술연마를 하면서 바위들을 베었다고하여 이름이 단석산(斷石山)이 되었다. 이 산은 건천읍 송선리 산89번지 우중골에 있으며 산 7∼8부 능선 4개 의 바위가 둘러싸인 천연굴이 있는데 옛날에는 상인암 (上人巖:일명 탱바위)라고 불리었다고 한다. 화랑들은 이 바위굴속에 불상을 새기고 그 위에 지붕을 덮어 석굴사원을 만들었다. 이 절을 신선사(神仙寺) 또는 단석사(斷石寺)라고 부른다. 내부의 마애불상은 국보 제199호로 지정되었다. 단석산은 경주에서 가장 높은 산(827m)으로 백제에 대한 신라의 국방 의 요충지였다.
660년에 백제를, 668년에 고구려를 멸하여 삼국을 통일한 김유신은 태대각간의 직위를 받고 673년 78세로 세상 을 떴으며 사후 162년후 인신으로서 대왕(흥무)에까지 오른 전무후 무한 기록을 남겼다. 누이 문희(文姬)는 김춘추에게 출가하여 무열왕비가 되어 문무대왕 을 낳았다.
13시 33분 신라 천 년의 고도(古都) 경주(慶州)
김유신장군이 삼국통일을 염원하며 칼로 바위를 잘랐다는 단석(斷石)이 자리 잡고 있는 단석산 정수리에서는 사위가 모두 트여 조망이 뛰어나고 정수리는 많은 산행객들은 다 수용하고도 남을 만큼 넓다. 정수리 가장자리에 반발한 억새꽃이 시원한 가을 바람을 맞아 흔들리는 모습과 억새밭 너머로 건천읍과 신라 천 년의 고도(古都) 경주(慶州)를 조망하며 송영래님이 꺼내 놓은 맛있는 과일을 먹으며 잠시 앉아 다리 쉼을 해 본다.
다리 쉼을 하며 신라 천 년의 고도 경주와 산 천체가 노천 박불관으로 불리는 남산과 석굴암과 불국사가 있는 토함산 치술령 삼태봉 등을 조망하니 마치 내가 신라 시대에 서 있는 기분이다.
13시 41분 지각생
단석산에서 20여 분간 머물다 정수리를 막 벗어나려는데 가쁜 숨을 몰아쉬며 정수리를 향해 오르던 한 회원님이 나를 보고 "미안하지만 잠시 정수리 빗돌에서 사진 한 장만 담아주고 내려가세요"라고 한다. 그래서 발길을 정수리로 되돌려 오르막 능선만 만나면 늘 힘들어 하며 뒤로 쳐지지만 산행 날머리는 항상 선두 일행 다음으로 벗어나곤 하는 한 회원님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 단석산 삼거리로 걸음을 제촉한다.
단석산 정수리 바로 아래 조망바위에서........ 위 사진은 아침부터 지금까지 지나온 정맥 능선을 담은 사진으로 첫 번째 산그리메가 땅고개에서 단석산으로 이어지는 662m봉 능선이고 두 번째 산그리메는 숲재에서 고랭지 채마밭이 있는 능선이 땅고개로 향하는 모습이다. 아래 사진은 조래봉(652m) 기슭의 원골을 담은 사진이다.
14시 20분 652m봉
단석산 삼거리로 되돌아 오는 길에 김일석님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단석산 갈림길에서 단석산에 오르지 않고 서쪽으로 이어지는 정맥 마루금을 따르다가 그만 알바를 했으니 갈림길에서 조금 지나 묘지가 나오면 좌측(동쪽)으로 급히 방향을 바꿔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갈림길에서 정맥 마루금을 찾아 10여 분 걸음을 옮기니 김일석님과 박영규님이 보이는데 박영규님은 나를 보고는 "단석산에 오르지 않고 빨리 간다고 한 것이 그만 알바를 하는 바람에 함께 가게 되었네...."라고 하시며 너털웃움을 지으신다. 박영규님의 말에 의하면 회장님을 비롯 몇몇 회원님들은 단석산 정수리를 왕복하는데 걸린 40여 분 만큼 알바를 했다고 한다.
땅고개에서 묘지를 지나며 동남쪽으로 향하던 정맥 마루금은 단석산 삼거리에서 남쪽으로 방향을 바꿔 경주 산내면과 내남면의 경계를 이루며 계속해서 남으로 향한다. 참고로 단석산 정수리는 단석산 삼거리에서 동북쪽으로 왕복 3km 되는 지점에 우뚝 솟아 있다.
떡갈나무와 졸참나무 사이로 단석산 정수리에서 남동쪽 685.9m봉을 지나 백석암으로 흘러 내리는 능선의 멋진 암장을 조망하며 기분 좋게 40여 분 동안 발품을 파니 암릉과 암장이 잇따르는 652m봉에 닿는다.
14시 24분 억새밭
652m봉과 OK그린 사이에는 멋진 억새밭이 있어 그 억새밭에서 잠시 동심으로 돌아가 본다.
14시 26분 OK그린
억새밭에서 잠시 동심의 세계를 만끽하고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교회건물 앞에 서니 드넓게 펼쳐진 OK그린 전경은 소설속에나 나오는 풍광처럼 느껴진다. OK그린이 한 눈에 내려다 뵈는 언덕에 앉아 한가로이 그린을 거니는 가족단위 여행객들을 바라보며 저마다 배낭에서 간식과 과일을 꺼내 맛있게 나누며 바삐 걸음을 옮겨여할 정맥 종주 길이지만 잠시 망중한(忙中閑)을 느껴본다.
위 사진에서 그린 끝 단풍이 붉게 물든 봉우리가 512m봉이고 그 너머로 605.1m봉이 보인다.
14시 35분 OK그린
늘 함께 산행하시는 송영래, 김일석, 박영규, 신현숙님 사이에 껴서 기념촬영을 해 보았다. 아래 사진은 OK그린 중앙에 있는 소나무로 수령이 적어도 수 백년은 되어 보인다.
14시 46분 OK그린과 단석산
그린 중앙을 가로지르는 정맥 마루금을 따라 이동하며 지나친 여행객들의 얼굴에선 웃움이 가득했고 손을 잡고 거니는 연인들의 얼굴에선 사랑이 듬뿍 묻어났다. OK그린이 다하는 지점에서 그린 너머로 보이는 단석산을 한 번 더 돌아보고 송영래님과 함께 512m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을 따르는데 능선에는 넓은 방화선이 지나고 있다.
14시 50분 KTF 중계안테나 (512m)
512m봉 정수리 바로 아래에는 거대한 몸집과 하늘을 찌를 듯한 높이를 자랑하는 KTF 중계안테나가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15시 05분 동쪽 골짜기
산불 방화선은 512m봉과 535m봉을 넘어 내일조각공원 갈림길을 지나 527.8m봉 안부까지 이어지는데 이 호젓한 산길을 걸으며 송영래님께서 들려 주시는 선조들에 대한 얘기는 가슴속 깊이 남는다. 특히 선조때 태어나 인조, 효종, 현종을 섬기며 17세기 중엽 이후 붕당정치가 절정에 이르렀을 때 서인 노론의 영수이자 사상적 지주로서 활동했던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에 관한 얘기가 그러했다.
15시 07분 내일 조각공원 갈림길
산불 방화선이 다하는 지점에는 내일조각공원으로 이어지는 임도가 서쪽으로 나있고 그 갈림길에는 조각품 한 점이 이정표를 대신하고 있다. 오늘 산행을 계획할 때만 해도 이 갈림길에서 산행을 마치고 내일조각공원을 둘러볼 계획이었으나 정맥호가 이곳까지 접근하는데 문제가 많은 관계로 부득히 산행을 연장하게 됐다.
15시 19분 527.8m봉
순한 임도와 방화선을 따라 이어지던 정맥 마루금이 527.8m봉이 일어서는 안부에 다다르자 억새와 줄딸기나무 그리고 잡목들로 우거진 덤불을 헤치고 정맥 마루금을 찾아 527.8m봉 정수리로 오르는데는 그리 힘들지는 않지만 많은 인내력이 필요하다.
남쪽으로 향하던 정맥 마루금이 527.8m봉을 만나 잠시 서쪽으로 향하는가 싶더니 다시 남쪽으로 이어지는 지점에 다다르자 메아리농장이 바라다보이고 농장 초입에는 잘 가꾸어진 묘지와 묘지 앞 소나무 숲이 인상적이다.
15시 32분 메아리농장
메아리농장을 관통하는 마루금을 따라 축사와 민가를 지나니 605.1m봉으로 이어지는 임도에 회장님과 이용우 산악대장님이 기다리고 있다. 벌써 605.1m봉을 넘어섰을 거라 생각했는데 아직 이곳에 있는 것이 이상하다고 생각되어 이유를 물으니 이용우 산악대장님은 "처음 계획했던 산행구간보다 길게 산행을 하는 데다가 후미와 무전 연락도 되지 않고 이 지점이 알바하기 쉬운 곳이라 생각되어 기다리고 있었다."고 대답한다.
산행할 때마다 회원님들을 위해 제일 앞에 서서 어려운 일을 도맡아 하시며 회원님들의 안전을 걱정하시는 이용우 산악대장님이 건네준 초코바를 멋있게 먹으며 메아리농장을 벗어나 605.1m봉 억새밭을 지나 서쪽으로 한 차례 굽이치고 동쪽으로 이어지는 가파른 내리막 비탈을 내려서니 이내 순한 능선이 잇따른다.
15시 57분 청우농산(아랫상목골임도)
'산내고원한방휴양마을(전원마을)'이란 글씨가 씌어진 표지판이 세워져 있는 고갯마루에 닿으니 먼저 여러 모양을 하고 있는 장승이 눈에 띈다. 그래서 전형적인 가을 날씨속에 억새밭을 거닐고 멋진 풍광을 조망하며 천년 고도 경주에 서린 역사를 생각하며 즐거운 산행을 함께한 회원님들은 장승들 앞에 모시고 기념촬영을 하려는데 때마침 고갯마루를 넘는 한 부부가 있어 남자분께 부탁해 기념촬영을 했다. 하지만 카메라 셔터를 누를 때 흔들려서 사진이 선명하지 못한게 아쉬움으로 남는다.
낙동정맥 제16구간 단석산(斷石山 827.2m) 산행은 반가운 회원님들을 만나 그동안 답답하기만 했던 구간과는 달리 산행을 하며 볼 수 있는 풍광은 모두 보았고 억새밭과 OK그린 그리고 단석산 정수리에서는 자연이 준 선물을 마음껏 즐기며 회원님들과 함께한 멋진 산행으로 기역되는 산행이었다고 생각합니다.
*** 모쪼록 내내 건강하시고 다음 고헌산(高獻山 1,033m) 산행에서 웃으며 만나기를 기원하며 글을 읽으시며 혹시 다른 의견이나 오류가 있으면 꼬~옥 댓글을 남겨 주세요.^*^ ***
2007년 11월 12일
강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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