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산(697m) 1,915m의
천왕봉을 중심으로 1,000m대 봉우리들이 즐비한 거대한 산줄기 곁에 700m도 안되는 산이어서 그리 볼품 있는 산은 아닐 것이라고 짐작할
것이다. 첫째 황산은 경관이 좋다. 주로 소나무인 숲이 울창해 멋이 있고, 머리부분은 우뚝 솟은
바위로 되어 있다. 나천과 24번 국도와 나란히 뻗은
산줄기는 바위등성이로 이뤄져 있고, 피바위가 있는 나천쪽으로 깎아지른 벼랑을 이루고 있어 노송과도 잘 어우러져 아름답다. 게다가 이 산은 지리산의 높고 큰 산들의 턱 밑에서 그 산들을 조망하는 재미가 있다.
저기에 천왕봉과 중봉, 하봉이 있고, 봄이면 철쭉이 좋아 많은 사람들이 몰려드는 바래봉과
덕두산이 보인다. 지리산 뿐만 아니라 장수 장안산,
장수-임실 경계에 뾰족하게 솟아 있는 천황산, 바위가 많은 고남산, 함양 오봉산을 볼 수 있고, 넓게 펼쳐진 운봉과 남원의 들을 살펴보는 것도
좋다. 고려 우왕 때 배 500척으로 쳐들어와 온갖 분탕질과 잔학한 일들을 저지르는 왜구를
이성계 장군이 크게 무찌른 이른바 황산대첩이 여기 황산 주변에서 이루어졌던 것이다.
그래서 여기에 황산대첩비가 있다. 왜구의 분탕질로 당시 백성들은 몹시 고통을 겪었고 민심은 매우 흉흉했다.
나라와 백성을 고통에서 벗어나게 한 황산대첩의 주인공 이성계 장군의 명성은 하늘을 찌를 듯
치솟았고, 이를 바탕으로 이성계 장군은 조선조를 창건하게 된
것이다. 또 황산 서쪽 산기슭에 박초월의 묘가 있다.
비전 마을 어디서나 황산과 박초월의 묘가 잘 올려다 보인다. 고려 조정에서는 원수 나세(羅世)와
최무선(崔戊宣) 등을 보내 화통과 화포로 왜 병선을 모두 격파해 버렸다. 이로 인해 백성의 피해는 컸고 인심은 흉흉했다.
이에 조정에서는 전투에 경험이 많은 이성계 장군을 삼도(양광도 전라도 경상도) 도순찰사로 임명해 왜적을 토벌케 했다. 이성계 장군은 남원에서 운봉을 거쳐 황산에 이르렀다.
황산의 남쪽 광천(현재의 나천)은
협곡이어서 인월로 나아가기 어려웠기 때문에 돌이 많은 황산의 북쪽 울도치(명석재)에 만일에 대비해 진지를 만들게 했다. 왜구의 잔당 70여 명만이 지리산쪽으로
도망갔다 한다. 재미있는 것은 지리산 천왕봉에 있었던 성모상이 황산대첩과 관련돼 있다는 기록이다.
황산대첩이 있은 지 100여 년 뒤인 1472년 당시 함양군수로 있던 영남학파의 태두
점필재 김종직이 지리산을 두루 둘러보고 ‘유두류록’을 썼다. 천왕봉에 있는 성모상에 날씨가 좋도록 해달라며 고사를 지내고 성모상을 묘사하며 그에 관한 이야기를 쓴 구절이
있다. 분풀이 내용이 더욱 재미있다.
왜구 총대장 아지발도가 일본에서 출정하려 할 때 그의 누이(또는 소실)가 해적질을 한사코
말렸다 한다. 여자를 하찮게 여기던 시절이어서 출정에 앞서 재수 없다며 그 여인의 목을 치고 떠나왔다. 그 여인은 죽기 직전 ‘기어이 가려면 부디 고려 땅에서 황산에는 가지 말라’고
애원했다 한다. 그 할머니는 왕산(산청-함양 경계)을 가리키며 ‘저기 왕산은 있으나 근처에 황산은
없다’고 했다. 조선에 건너온 뒤 계속 마음 속으로 께름직했던 아지발도는 그 말을 듣고 마음을 놓았고 방심한 결과 이성계 장군에게
사살되고 말았다는 것이다. 지리산 성모상은 그 전에도 중대한 고비에 나라를 지켰다는 전설이 있다. 아지발도의 갑옷이 원체 튼튼해 아무리 화살을 쏘아도 다치게 할 수 없어서 두 장군이 짜고 이성계 장군이 투구를 쏘아
맞혀 떨어뜨리고 투구를 줍는 틈에 이지란 장군이 그의 목에 화살을 쏘아 죽였다 한다. 뿐만 아니라 황산 일대의 지명과 유적에 황산대첩과 관련된 것들이 많다.
현재의 인월(引月)과 인풍(引風)의
지명은 당시 왜적이 거의 섬멸되어 가는데 날이 저물어 어두워지자 달을 끌어다 밝히며 싸움을 끝냈고, 화살이 왜적쪽으로 잘 날아가도록 바람을
끌어왔다 해서 지어진 이름이다. 먼저 황산대첩비와 어휘각을 둘러보고,
마을 어귀에 있는 가왕 송흥록과 국창 박초월의 생가를 둘러본 다음 산행에 나섰다. 그러나 길이 포장되지 않고 좁아서 방고개로 올라가는 길가의 꽤 큰 비료공장(파란 지붕)
끝에서 산길로 들어섰다. 일행 가운데 2명이 잊은 물건을
가져오려고 승용차로 돌아가는 바람에 박초월 묘 왼편(북쪽) 골짜기 길로 올라가게 되어 일행은 둘로 갈라지게 됐다. 울도치 서쪽 골짜기 일대 비탈은 과수원을 만들려는 듯 나무를 모두 베어내어 등성이길은 숲과 벌채 비탈의 경계를 이루고
있다. 벌채 골짜기 중턱에 창고 모양의 큰 집이 세워져 있다.
벌채를 해서 동쪽으로 조망이 좋다. 장수
팔공산, 장안산, 봉화산, 함양 오봉산 등이 잘 보인다. 여기까지는 벌채가 안 되어 있어 길은 숲 속으로 이어지고 꽤 가팔라지기 시작한다. 이 회장은 남원 동쪽 일대 황산에서 가까운 곳에 8개 산성터가 있다며 일일이 설명해
주었다. 고스락은 바위봉우리로 남북이 절벽으로 되어 있다.
고스락에 오르려면 나천을 따라 정산이 있는 동쪽으로 뻗은 줄기에서 오르거나 비전 마을이 있는 서쪽으로 뻗은 등성이에서
올라야 한다. 이 고스락으로 오르는 길이 재미있다.
크나큰 바위로 되어 있는 데다 계단식으로 되어 있고, 멋있는 소나무들이 많아서 우아한 풍치를 뽐내고 있다. 고스락은 넓으나 바위가 드러나 있지 않고 풀들이 많아서 바위봉우리지만 바위 위 같지 않다. 황산 싸움 때는 물이 있어서 이용했다는 작은 연못 자국도 있다. 남쪽 나천쪽으로는 깎아지른 바위벼랑을 이루고 있고, 가끔 턱을 이루며 바위봉우리처럼 우뚝
솟아 그 위에 서면 시원하고 조망이 좋다. 이 바위봉우리들에는 소나무까지 어우러져 경관도 좋다. 논과 산의 경계에 넓은 길이 나 있고,
이 길을 따라 서쪽으로 가면 다시 비전 마을의 가왕 송흥록과 국창 박초월의 생가가 있는 냇가로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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