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례군 산동면과 남원시 경계에 솟은 1,433m의 지리산
서부의 웅봉, 흔히 지리산의 시발점은 노고단이라
여긴
다.
그러나 사실은 만복대에서부터 지리산은 시작된다. 만
복대는 이름만큼 복스러운 산으로 산 전체가
부드러운
구릉으로 되어 있다.
지리산에서 가장 큰 억새 군락지로 가을철이면 봉우리 전체가 억새로 뒤덮여 장관을
이룬다.
이 곳에서 바라보는 반야봉은 지리산의 웅장함을 실감케 해준다. 최근에 산동면에 지리산 온
천 랜드가
들어서면서 온천과 연계한 등반지로 찾는 이들이 많다.
※ 상세정보
등산로 1 : 성삼재-고리봉-만복대-정령치(3시간 30분
소요)
등산로 2 : 성삼재-고리봉-만복대-당동고개-당동마을(6시간 30분 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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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은사를 기점으로 구절양장처럼 굽이치며 노고단까지
이어진 20㎞의 비경의 관광도로 그 옛날 성이
다른 3명
의 장군이 지켰던 고개라 하여 성삼재(1,102m)라 했다.
아슬아슬한 도로와 까마득한 벼랑 위로 길이 나
있어
드라이브 코스로 백미다. 특히 천은사에서 6㎞ 지점엔
거의 360°를 도는 코너가 있어 아찔하다.
시암재와 성삼재에 주차장과 휴게소, 전망대가 있다. 성삼재에서 노고단까지 도보로 40분
거
리로 어린이나 노약자들도 천천히 걸어 올라 갈 수 있다. 휴가철에 성삼재는 발 디딜 틈 없이
붐빈다. 자정부터
새벽 사이의 야음을 틈타 움직이는 것이 극심한 정체를 피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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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고단과 자매봉을 이루고 솟아 있는 차일봉은 그 모양
이 마치 차일을 쳐 놓은 것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으
로 해발 1,356m이다. 우번대, 종석대, 관음대 등 여러
이름을 갖고 있는데 정상에 암봉이 솟아 있어 자연
전
망대로서 구실도 톡톡히 하고 있다. 차일봉 남쪽 천은
사 계곡 상류 깊은 곳에 상선암이란 이름난 선원이 있었다.
신라의 고승 우번조사가 젊은 시절 조용한 상선암을 찾아 10년 수도를 결심하고 혼자
수도정
진하기를 9년째 되던 어느 봄날, 절세 미인 한 사람이 암자에 나타나 요염한 자태로 우번을 유
혹하였다.
여인에게 흘린 우번은 수도승이란 자신의 위치를 망각하고 여인의 뒤를 따라 나섰
다. 그 여인은 온갖 기화요초가 만발하고 아름다운
수림속을 지나쳐 자꾸만 자꾸만 높은 곳으
로 올라갔다. 우번은 여인을 놓칠까봐 산 속을 헤치며 정신없이 올라가다 보니 어느덧 차일봉
정상까지 오르게 됐다. 그런데 우번을 유혹하던 여인은 간데 없고 난데없이 관음보살이 나타
나 우번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깜짝 놀란 우번이 정신을 가다듬고 생각해 보니 이는
필시 관음보살이 자기를 시험한 것이라 깨닫고 그 자리에 엎드려
자기의 어리석음을 뉘우치
고 참회하니 관음보살은 간데 없고 대신 큰 바위만 우뚝 서 있었다.
자신의 수도가 크게 부족함을 깨달은 우번은 그 바위 밑에 토굴을 파고 토굴속에서 수도하여
후일 도승이 되었다 한다. 우번 조사가 도통한 그 토굴자리를 우번대라 부르게 됐으며, 또 우
번조사가 도통하던 그
순간에 신비롭고 아름다운 석종소리가 들려왔다 하여 이곳을 종석대라
부르며, 관음보살이 현신하여 서있던 자리를 관음대라 부르게
되었다 한다. 그 후 이곳에서는
진응도사를 비롯 요화스님, 호음선사 등 많은 도승들이 배출되어 불도의 영지로 손꼽히며 이
곳에서 수도하여 도통성불하게 될 때는 신비롭고 은은한 석종소리가 들린다고 하는 전설 때
문에 많은 불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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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고단(1,507m)은 천왕봉, 반야봉과 함께 지리산의 3
대 주봉으로 꼽힌다. 지리산 종주의
시작점이며 북쪽으
로 심원계곡을 남쪽으로 화엄사 계곡과 문수 계곡, 피
아골 계곡에 물을 보태는 크나큰 봉우리다.
노고단 산
자락의 끝에 천년 고찰 화엄사가 자리해 한층 위엄을
갖추었다.
성삼재를 넘는 관광도로가 열린 후 한층 가까워진 노고단은 '한국의 알프스'로 불리며 고산
휴
양지의 메카로 떠올랐다. 노고단은 지리산 종주의 시작점으로 인기가 높을 뿐만 아니라 예전
부터 고산 휴양지로
알려졌다. 신라의 화랑이 이곳에서 심신 수련을 했고, 일제시대에는 외국
의 선교사들이 피서용 별장을 50여 채나 건립하고 이 곳에서
여름을 났다. 6·25동란을 거치며
대부분 파괴되었지만 돌로 지은 담벼락과 집터가 남아 있다. 노고단 산장에서 10분 오르면
여
성의 둔부처럼 솟구친 반야봉과 아스라이 천왕봉이 보인다.
노고단에서 내려다보는 섬진강과 운해, 한여름의 원추리 군락이 유명하다. 또 석양 무렵에
하
늘을 가득채운 고추잠자리떼도 장관이다. 산행다운 산행을 하고 싶다면 화엄사에서 노고단을
올라 성삼재로 내려와
버스를 타고 내려오거나, 산길을 걷고 싶은데 자신이 없는 경우 성삼재
까지 버스를 타고 올라 노고단에서 화엄사로 내려올 수
있다.이도저도 싫다면 성삼재에서 노
고단 산장까지 가서 1시간 코스인 산책로를 따라 둘러보고 내려와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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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고단에서 구례군 토지면을 향해 뻗어내린 능선의 정
점. 정상부가 펑퍼짐하고 두리뭉실하게 생겨 마치
큰
시루를 엎어놓은 것과 같다 하여 왕시루봉이라 이름지
어졌다.
발 아래 섬진강 청류가 흐르고 백운산과
마주보고 있어
수려한 경관은 비길 데 없이 좋다. 봄엔 철쭉이, 가을엔 정상부 초원이 온통 억새밭으로
변한
다.
애당초 노고단에 있던 외국인 별장촌이 6.25전란 때 폐허화되고 또 노고단이 번잡스러워지자
1957년경부터 이곳 왕시루봉 일대로 옮겨와 자리잡게 되었다. 정확한 연도는 알 수 없지만
1920년때쯤에 홍콩처럼
99년간의 조차계약을 맺어 노고단을 미국 호주 등 외국인 선교사들
하계별장지로 사용하기로 했는데 그 계약이 일제가 물러간 뒤에도
유효한지 지금까지 계속되
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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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걸령은 노고단에서 반야봉으로 이어지는 32㎞거리에
위치하고 있다. 해발 1,320m의 높은
고령임에도 불구
하고 우뚝 솟은 반야봉이 북풍을 막아주고 노고단의 능
선이 동남풍을 가려주어 산속깊이 자리한 아늑하고
조
용한 천혜의 요지이며 샘에서는 언제나 차가운 물이 솟
고 물맛 또한 좋기로 유명하다. 이곳은 옛날에 의적이나
도적들의 은거지였던 것으로 유명하
며 특히 의적 임걸(林傑)의 본거지였다 하여 임걸령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또 샘터에서
피아골쪽 암벽 밑에 막(幕)터가 있는데 이곳을 '황(黃)호랑이 막터'라고 부른다.
옛날에 약초를 캐는 황장사가 눈 내리는 겨울밤 이곳에 천막을 치고 자다가 호랑이를 잡았다
는
전설이 있다. 임걸령에서 반야봉을 향해 가파른 능선을 한동안 오르다 보면 평지가 나오고
다시 오르막길을 오르면 약2㎞지점에 노루목
삼거리가 나온다. 노루목은 반야봉에서 내려지
르는 산줄기가 산중턱에서 잠깐 멈추어 마치 노루가 머리를 치켜들고 피아골을 내려다보는
것 같은 천연의 암두가 전망대를 이루고 있어 부르게 된 이름이다. 해발 1,500m의 노루목 암
두에서 피아골을
내려보노라면 원시림 속의 정취를 마음껏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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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발 1,732m로 지리산 3대 주봉의 하나인 반야봉은 노
고단에서 임걸령으로 뻗어 나가는 높은
능선으로 이어
지는 동북방 약 8㎞지점 지리산권의 중심부에 위치하
고 있어 지리산의 전경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곳이
다. 정상에서 북쪽으로 약 600m 거리에 있는 반야봉의
북봉은 아름드리 구상나무 거목이 상록 원시림 지대를
이루고 있으며 반야봉 남쪽 중턱 경사
진 고원은 철쭉 군락지로 5월 하순경이면 아름다운 철쭉잔치가 벌어진다. 신라시대에는
정상
에(上佛廟)와 하불묘가 있었다고 전해지지만 지금은 그 흔적을 찾아 볼 수가 없다.
반야봉 정상에서 동쪽으로 조금 내려가면 절벽 아래에 묘향대가 있는데 이곳은 옛부터 불도
들이
수도하는 유서깊은 선암으로 유명하다. 반야봉에는 지리산 산신 중 女神인 천왕봉의 마
고할미와 관련된 전설이 있다. 그 여신은
선도성모(仙桃聖母)또는 마고(麻古)할미, 노고(老
姑)라 불리는데 바로 천신(天神)의 딸이다. 그 천신의 딸인 마고할미는 지리산에서
불도를 닦
고 있던 도사 반야(般若)를 만나 결혼해 천왕봉에서 살았다. 그들은 딸만 8명을 낳았다. 그러
던 중 반야는
더 많은 깨우침을 얻기 위해 가족들과 떨어져 반야봉으로 떠났다. 그리고 마고할
미가 백발이 되도록 돌아오지 않았다. 마고할미는
반야봉에서 깨우침을 얻기 위해 외로이 수
도하는 남편 반야를 그리며 나무껍질을 벗겨 남편이 입을 옷을 만든다. 그리고 마고할미는
딸
들을 한명씩 전국 팔도에 내려보내고 홀로 남편을 기다린다.
기다림에 지친 마고할미는 끝내 남편 반야을 위해 만들었던 옷을 갈기갈기 찢어버린 뒤 숨지
고
만다. 갈기갈기 찢겨진 옷이 바람에 날리어 반야봉으로 날아가니 바로 반야봉의 풍란이 되
었다고 전한다. 후세 사람들은 반야가 불도를
닦던 봉우리를 반야봉이라 불렀고 그의 딸들은
8도 무당의 시조가 됐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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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와 전라남도, 전라북도라는 삼도의 큰 경계역
할을 하고 있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여기에다
경상남도
의 산청군·함양군·하동군 등 3개군과 전라북도 남원시,
전라남도의 구례군 등 5개 시와 군, 그리고 15개
면의
행정단위로 지리산은 그 구역을 구분짓고 있다.
그 광활한 지리산 자락은 또한 이들 3개 도, 5개 시·군, 15개 면단위에서 계곡과 산등성이를
기
점으로 해 수많은 자연마을을 형성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렇듯 지리산의 역할은 경계로서
의 기능을 최대한
발휘하고 있는데 이 가운데 이러한 지리산의 특성을 단위적으로 설명하고
있는 산 봉우리가 있다. 바로 경남과 전남·북을 구분짓는
삼도봉(三道峯)이다. 반야봉 바로 아
래 해발 1,550m로 지리산의 수많은 준봉 가운데 특이 할만하게 눈에 띄는 봉우리는 아니지만
지리산을 삼도로 구분하는 기점이라는데서 그 의미를 찾아볼 수 있다. 삼신봉을 중심으로 한
삼도의 경계선은 대략
이러하다.
경남은 삼도봉-불무장대-통꼭봉-촛대봉-섬진강으로 이어지는 불무장대 능선을 경계로 해 전
남과
구분되며 전북과는 삼도봉-토끼봉-명선봉-삼각고지-영원령-삼정산을 연결하는 능선을
경계로 하고 있다. 전남과 전북의 경계는
삼도봉-반야봉-도계삼거리-만목대-다름재 구간으
로 이 경우는 능선으로 경계선을 만들다 계곡을 건너 다시 능선이 경계선이 되는 형상을
하고
있다.
그러나 삼도를 나누는 삼도봉의 지명은 그동안 삼도봉이란 지명으로 불리지 못하고
국립공원
관리공단이 지리산 일원에 이정표를 세우면서부터 삼도봉으로 명명됐다. '낫날봉' '날라리봉'
'늴리리봉'등
다양하게 불리던 이 봉우리가 삼도의 경계기점이라 해 '삼도봉'으로 명명되고 정
착된 것은 매우 적절한 것 같다. 원래 이 봉우리는
정상 부분의 바위가 낫의 날과 같은 모양을
하고 있다 해 낫날봉으로 불렸다한다. 낫날이란 표현의 발음이 어려운 탓에 등산객들
사이에
선 '낫날봉'이 '날라리봉' 또는 '늴리리봉' 등으로 더 알려져 있었다. 조금 천박한 느낌의 날라
리봉 등보다
삼도의 경계기점이란 뜻의 삼도봉이 훨씬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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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봉이란 명칭은 주변에 토끼가 많다거나 봉우리가
토끼 모양이라서 그러는 게 아니고 반야봉을
기점으로
동쪽, 즉 24방위의 정동(正東)에 해당되는 묘방(卯方)
이라 해서 토끼봉(卯峯)으로 부르는 것이다.
토끼봉은 1,537m로 정상이 밋밋한 초원지대와 구상나
무 상록수림지대로 정연하게 구분이 되어
있어 마치 인공적으로 조성한 것처럼 우아하고 정
돈된 이름다움을 지니고 있을 뿐만 아니라 서쪽으로는 반야봉의 웅장한 모습과 북쪽의
뱀사
골, 동남쪽으로는 화개골의 경관을 볼 수 있다. 정상부 초원에 지보초(식용산채류)가 군생하
고 있어 '지보등'이란
별명을 가지고 있으며 토끼봉 남쪽 능선길을 따라 내려가면 칠불사에 이
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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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하천의 위치는 토끼봉과 명선봉 삼각고지, 벽소령 사
이의 능선상 가운데 명선봉 아래에 있다.
토끼봉에서 6
㎞거리며 벽소령에서도 6㎞ 남짓한 거리에 위치해 있
다. 해발 1,500m이상의 고산지대인데도 맑고
시원한
계류가 흐르며 남·북·서 3면이 아늑하게 감싸여 있는 숲
속의 연하천은 널따란 평지를 이루고 있다. 해발
1,480m에 위치한 연하천은 명선봉의 북쪽 중
간에 위치한 높은 고산지대로 숲속을 누비며 흐르는 개울의 물줄기가 마치 구름속에서
흐르
고 있는 것 같다 하여 연하천이라 부르게 되었다 한다. 연하천에서 오른쪽으로 약 2㎞지점의
삼각고지는 해발
1,407m의 돌출봉으로 이곳에서는 좌우로 탁 트인 백무동 계곡과 화개골을
한눈에 조망할수 있다.
이곳에서 좌측으로 북쪽 능선으로 내려가면 영원재와 삼정산을 거쳐 실상사로 내려갈 수 있
으며
삼각고지에서 다시 종주능선을 따라 내려가다 보면 길목 왼쪽능선 위에 형제바위가 있
는데 언 듯 보기에는 한 개의 큰 석상으로 보이나
자세히 살펴보면 서로 등을 맞대고 있는 두
개의 석상이다. 이 석상에 얽혀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가 있는데 지리산에서 두 형제가
수도를
하고 있을 때였다. 이들에 반한 지리산요정이 두 형제를 유혹하였으나 형제는 유혹을 물리치
고 득도하였다.
그러나 성불한 후에도 집요한 지리산요정의 유혹을 경계해 형제가 서로등을
맞대고 너무 오랫동안 부동자세로 서 있었기 때문에 그만
몸이 굳어 그대로 두 개의 석불이 되
고 말았다고 한다
연하천은 1982년 이전까지만해도 야영객들의 텐트가 항상 무리지어 보였으나 산장이 건립된
후로는 대부분의 등산객들이 산장을 이용하고 있다. 50제곱미터 남짓한 아담한 연하천산장은
50명정도를 수용할 수
있는 초미니 산장이다. 하지만 국립공원관리공단이 직영하는 대규모
산장에 비해 결코 그 정감은 뒤지지 않는다. 주말이면 연하천산장은
항상 등산객들로 붐벼 새
우잠으로 하룻밤을 묵어야 할 정도다. 8㎞ 거리에 뱀사골 산장이 있으나 종주산행에 지친
등
산객들이 연하천 산장을 많이 이용하는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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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동군 악양면의 형제봉은 지리산 남부능선의 끝자락
이 섬진강에 잠기기 전에 우뚝 솟은 봉우리다. 멀리
천
왕봉에서 제석봉 촛대봉을 거쳐 비경의 남부능선을 따
라 이어져 온 지리의 산세는 비옥한 대지를 빚어내는
형제봉∼신선봉을 끝으로 섬진강에 잠긴다.
지리산의 산세는 섬진강 밑을 지나 다시 광양의 백운산으로 이어진다. 형제봉은 세석에서
시
작되는 남부능선의 종착 봉우리로 불리지만 대개 남부능선 등반에서는 제외되고 있다. 이는
세석∼삼신봉∼성불재
구간에서 대부분 불일폭포, 쌍계사코스로 직행하고 비교적 많은 시간
과 체력을 소모하는 성불재∼형제봉 코스를 포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넓은 의미의 남부능선은
분명 세석∼삼신봉∼성불재∼형제봉∼ 신선봉∼ 고소산성에 이르는 30 km의 장쾌한 능선이
지만
대개 세석∼삼신봉∼ 쌍계사간 20km 구간만을 산행 대상으로 여기고 있다.
쌍계사, 불일폭포 등의 빼어난 경관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성불재∼형제봉∼신선봉∼고소
산성구간의 빼어난 산세 역시 불일폭포나 쌍계사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해발 1,115m의
형제
봉은 우뚝 솟은 봉우리가 우애깊은 형제와 흡사하다해 붙여진 지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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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루봉에서 왼편으로 보면 세석고원의 광활함을 한눈
에 볼 수 있는데 붉게 물든 철쭉을 보면 촛대봉에
이를
수 있다. 촛대봉에서 보이는 세석의 묘미는 시의 신비
가 느껴지는 듯 하다.
촛대봉은 아고산대 특유의 황량함이 감도는 곳으로 불
그스름한 철쭉봉오리들이 고 철쭉의 향연임을
암시한다. 일명 세석골로도 구분되어져 불리는
골을 따라 시루봉, 촛대봉, 세석코스를 등반하는 묘미는 색다름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촛대
봉 시루봉 구간에서 보는 천왕봉의 웅장함과 발아래 도장골의 아름다움은 절묘한 조화를 이
루고 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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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터목∼천왕봉 3㎞ 구간은 제석봉의 고사목지대와 하
늘로 통한다는 통천문 등의 경관이 특출하고
낭만적인
길이 이어져 있다. 제석봉은 높이가 1,806m로 지리산
에선 중봉 다음으로 세 번째 봉우리이다. 영봉
천왕봉
은 동쪽에 중봉을, 서쪽에 제석봉을 나란히 거느리고
있다.
양지바른 곳에 자리했고 옆에는 맑고 시원한 물이 항시 콸콸 솟아나는 명당임을 알 수가 있다.
무엇보다 눈길을 끈 것은 제석봉 일대를 뒤덮고 있는 고사목군락이다. 10만여평의 완만한 비
탈에 고사목들이 서 있고
바닥은 풀밭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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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구역상 산청군 시천면과 함양군 마천면이 경계를
이루는 천왕봉은 함양 방면으로 칠선 계곡을 빚어내
물
줄기를 토해 내며 산청 쪽으로는 통신골, 천왕골(상봉
골)을 이뤄 중산리 계곡으로 이어지게 하고 있다.
천왕
봉에서 발원한 물줄기들은 세갈래로 헤어졌다가 진양
호에서 다시 한데 모여 남강을 거쳐 낙동강을 거쳐 낙동강으로
흐르면서 경남인의 젖줄이 된
다.
천왕정상에는 현재 82년 여름 경남도가 세운 1.5m높이의 표지석이 서있는데 전면에는
"지리
산 천왕봉 1,915m"란 글이 표기돼 있다. 그 전에는 진주 산악인들이 남명 선생의 "만고천왕봉
천명유불명"이란 글귀를 새겨 표지석 으로 세워 두었다. 우리 민족의 숨결이 깃들어 있는 이곳
정상에는 아득한
옛날부터 지리산 신령을 봉안 했던 성모사가 자리해 있었으나 속인들의 끊
임없는 욕심으로 자취를 감추고 빈 자리만 덩그렇게 남아
있다. 성모상은 훼손된 채 사라졌다
가 다행히 한 스님에 의해 찾겨져 성모상은 중산리 천왕사에 모셔져 있으나 제자리로
돌아오
기란 쉽지 않은 모양이다.천왕봉은 지리산의 최고봉으로 해발 1,915m의 거봉이다.
천왕봉은 그 옛날 토속적 산신신앙의 대상으로 성모숭상의 유적인 석상과 마야부인상이 있었
다고
하나 지금은 사라지고 없다. 동서남북 사방을 둘러보아도 거칠 것 하나 없는 천왕봉 정상
에서의 전망은 장엄하기 이를데 없으며
지리산의 웅장한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특히 천왕
봉의 해돋이는 천지개벽을 보는 것 같은 천하의 장관으로 지리산 10경중의 하나로
꼽히고 있
다. 그러나 천왕봉 정상은 언제나 구름에 쌓여 있어 맑은 날을 보기가 어려워 예로부터 3대에
걸쳐 선행을
쌓아야 천왕봉 일출을 볼 수 있다는 속설이 전해 내려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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