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산사진

경주 문화 탐방, 안압지( 雁鴨池 )

작은岳馬 2007. 4. 24. 10:03

 경주 안압지( 雁鴨池 )

 

2007년 04월 22일

 

 

경상북도 경주시 인왕동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연못.
(개요)

신라 왕궁의 후원(後園)으로 삼국통일을 전후한 시기에 조성되기 시작하여 674년(문무왕 14)에 완성되었다. 1975~86년의 발굴조사에 의해 유구가 밝혀졌는데 연못을 둘러싸고 있는 석축호안(石築護岸)과 서쪽 호안변에서 5개의 건물지가 발견되었다. 부정형(不整形)의 석축호안은 서쪽 호안선만 직선으로 되어 있고 나머지 호안은 굴곡이 심한 곡면을 이루고 있다. 입수구(入水溝)는 동쪽과 서쪽의 호안이 만나는 곳에 설치되어 있고 출수구(出水溝)는 북쪽 호안에 있으며, 연못 안에는 3개의 섬이 있다. 연못의 바닥에서 신라 왕족과 귀족이 썼던 일상생활 유물인 목선(木船)·목상(木像)·장신구·주사위 등과 불교미술품인 불상, 광배, '조로 2년'(調露二年:680)이라는 명문이 씌어 있는 보상화문전 등 다수가 발굴되어 번성했던 통일신라시대의 문화를 보다 총체적으로 복원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 안압지는 한국조경사에서 통일신라시대 원지(園池)의 원형을 보여주는 중요한 유적이다.


위에서 본 안압지 전경, 경북 경주시 인왕동
안압지에서 출토된 금동판불
 
(안압지출토불상군)

1975~76년 안압지 발굴에서 출토된 다량의 불상군. 주로 연못에 임한 건물지 부근에서 출토되었으며 건물지와 관련없는 남쪽 섬과 그 동편 대안 사이에서도 금동제판불류와 용두장식구 1쌍이 출토되었다. 출토된 불상을 분류해보면 금동제삼존판불 2구, 금동보살판불 8구, 금동여래입상 6구, 금동여래좌상 1구, 다수의 금동광배편, 광배에 입체적으로 장식했을 것으로 짐작되는 화불(化佛)·보주(寶珠)·비천상(飛天像)·천개(天蓋) 등이다. 안압지에서 출토된 불상은 이처럼 매우 다양하고 또한 시기를 달리 하는 불상들이 한 지역에서 집중적으로 출토되고 있어 통일신라시대 불상 연구에 매우 중요한 자료이다.


 
(안압지출토금동판불)

안압지에서 출토된 10구의 금동판불 가운데 하나(통일신라)
안압지에서 출토된 10구의 통일신라시대 금동판불. 높이 삼존상 27㎝, 보살상 23㎝. 국립경주박물관 소장. 삼존상 판불이 2구, 독존보살상 판불이 8구인데 각 상이 모두 크기와 세부가 조금씩 다르고 뒷면의 주조기법도 달라서 개별적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삼존판불 중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는 것의 본존상은 설법인(說法印)의 좌상이고, 양 옆에 협시보살상이 본존을 향해 몸을 휘면서 관능적인 자세로 서 있다. 본존의 머리는 소발(素髮)이며 풍만한 얼굴에 눈·코·입이 예리하게 조각되어 있고 목에는 삼도(三道)가 있다. 당당한 체구에 대의는 통견(通肩)으로 입었으며 질서정연한 둥근선으로 된 옷주름은 몸의 굴곡을 강조하며 늘어지고 있다. 협시보살상의 높은 보발(寶髮)은 꽃무늬가 있는 머리띠로 묶었고 나머지는 두 어깨 위로 늘어져 있다. 천의(天衣)는 어깨에 걸쳐졌다가 양끝이 몸 앞을 가로질러 팔에 감기면서 대좌 밑까지 자연스럽게 흘러내리고 있다. 본존의 크고 둥근 연화좌는 앙련(仰蓮)과 복련(伏蓮)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보살의 대좌는 본존 대좌 양 옆에 앙련좌로 되어 있고 그 위에 보살의 발끝이 보인다. 광배는 보주형 거신광배(擧身光背)로 투각되어 있는데 삼존상은 각각 원형 두광이 있으며 그 주변을 당초문양대가 감싸고 있다. 또다른 삼존판불은 광배의 일부가 파손되어 있고 전체적인 구도는 비슷하나 세부조각이 정교하지 못하다. 8구의 독존보살좌상은 동일한 연화대좌 위에 결가부좌(結跏趺坐)의 자세로 앉아 두 손을 합장하고 있다. 보발이나 목걸이 표현이 삼존판불의 협시보살상과 비슷하나 영락장식이 X자형으로 교차되면서 대좌까지 늘어져 있어서 더욱 장식적이다. 어깨 위의 천의는 들떠 있어 움직임이 보이는데 옆구리로 나간 천의는 위로 날리며 광배 내구의 화문으로 변하고 있다. 광배 주변에는 길게 뻗은 화염[火焰紋]무늬가 투각되어 있다. 이 금동판불은 고도로 발달된 주조기법인 실랍법(失蠟法)에 의해 만들어졌으며 상의 뒷면에는 판불이 파손되지 않도록 가로·세로로 보강한 띠가 부착되어 있다. 판불의 밑부분에는 2~3개의 긴 촉이 있으며 화염무늬 주위에 못구멍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감실(龕室) 같은 곳에 봉안되었던 것이 아닌가 추측된다. 이 판불들은 중국 당(唐)의 7세기 후반에서 8세기 전반의 양식이 반영되어 있으며 일본 호류 사[法隆寺] 소장의 압출불(押出佛)인 아미타오존불이나 호류 사 금당벽화 중 아미타정토보다는 다소 앞서는 중요한 예들이다. 완벽한 구성과 훌륭한 모델링, 광배와 대좌의 화려한 꽃무늬가 돋보이는 통일신라 전반기의 대표적인 작품이다.

 
(안압지출토금동원각불상)

안압지에서 출토된 원각(圓刻)금동불상. 총 높이 8~35.3㎝로 다양하다. 국립경주박물관 소장. 여래좌상 1구, 여래입상 5구, 비로자나불입상 1구, 그밖에 동(銅)으로 된 불상의 귀 1쌍인데 제작시기도 통일신라시대인 7세기 후반에서 10세기까지 다양하고, 주조기법도 시대에 따라 다르다. 주로 제4건물지에서 발견되었는데 아마도 이곳에 내불당(內佛堂) 같은 것이 있지 않았나 추정된다. 금동불좌상(높이 8.9㎝)은 작은 상으로 가장 이른 양식을 보여준다. 머리는 소발이며 육계는 낮고, 둥근 얼굴에 고졸한 미소가 감돌고 있다. 통견의 법의는 앞에 모은 두 손을 덮고 있는데 화불에서 많이 보이는 자세이므로 독립상이 아닌 화불로 추정된다. 단순한 화염형의 두광은 동판을 잘라 만든 것이고, 대좌는 연화좌로 연잎 안에 인동무늬가 장식되어 있다. 6구의 금동여래입상은 모두 광배를 잃었고 3구만이 대좌를 지니고 있다. 이 가운데 5구의 불상은 시무외(施無畏)·여원인(與願印)의 수인을 하고 있으며, 1구는 지권인(智拳印)을 하고 있어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임을 알 수 있다. 여래입상(높이 13㎝)은 모델링이 가장 좋은 상으로 8세기 중엽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머리는 나발이고 얼굴은 넓적하며 눈·코·입이 예리하게 조각되어 있다. 통견의 법의는 몸에 밀착되어 양감 있는 몸의 굴곡이 그대로 드러나보인다. 나머지 상들도 비슷한 형식이나 옷주름이 선각(線刻)으로 표현되는 등 평면적으로 처리되어 있고 불상의 조각수법도 거칠어져 제작시기가 9세기 이후 10세기초까지 내려가는 것으로 보인다. 동으로 된 불상의 귀는 길이가 15㎝나 되는 것으로 보아 큰 불상이었던 것으로 짐작되며, 귀의 세부가 두껍고 깊게 조각되어 있고 귓볼이 크게 뚫려 있다.

金春實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