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

[백두대간대장정 제16구간] 덕항산 - 식생

작은岳馬 2006. 4. 10. 14:00
[백두대간대장정 제16구간] 덕항산 - 식생

경동지괴 석회암지대가 선물한 북방계 식물의 피난처
벌깨풀·산새콩 등 북방계식물, 동강할미꽃·자병취 등 특산종 분화도

▲ 벌깨풀. 북부지방에 자라는 꿀풀과의 여러해살이풀로, 남한에서는 자병산과 덕항산에서만 분포가 알려져 있다. 덕항산이 분포의 남쪽 한계가 되는 셈인데, 덕항산 동쪽 사면의 노출된 석회암 지역이 이 식물의 피난처 역할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

만년설 지역이 없는 남한에서는 아무리 높은 산이라 해도 산정에는 어김없이 식물이 자라고 있다. 산정 가까운 곳에 사는 식물들 가운데는 현재의 기후 환경으로 볼 때 분포가 흥미로운 식물들이 포함되어 있다. 북쪽에 고향을 둔 북방계 식물들이 그리 높지 않은 남한의 고산에 분포하고 있는 것인데, 이들이 어떻게 이곳에 자리를 잡고 살게 되었을까?

고산지역 중 석회암 가장 많이 노출된 곳

[갈기조팝나무] 중부지방에서 만주까지 자라는 낙엽떨기나무로, 꽃은 5~6월에 피며, 석회암 토양을 좋아하는 식물이다.
사실 과거의 기후와 지질 역사를 살펴보면, 북방계 식물이 남한지역에 사는 것이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닌 듯하다. 제3기 플라이오세에 해당하는 250만 년 전쯤부터 제4기의 현재까지 지구는 빙하기에 놓여 있다. 빙하기가 처음 시작될 때는 제주도를 비롯한 남해안의 섬들이 모두 한반도와 연결되어 있던 시대다. 이후 빙기와 간빙기가 여러 차례 번갈아 나타났는데, 지금으로부터 1만 년 전쯤까지 마지막 빙기였고, 한반도는 추운 날씨가 계속되어 많은 북방계 식물이 한반도까지 남하해 살고 있었다.

그런데, 1만 년 전쯤에 소위 제4기 홍적세의 마지막 간빙기로 접어들면서 이들 식물에게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기온이 높아지면서 더 이상 살 수 없게 된 것이다. 대부분의 북방계 식물들은 쇠퇴하고, 대신에 온대성 식물들과 남방계 식물이 한반도를 뒤덮기 시작했다. 이렇게 되자 북방계 식물들은 단 한 곳, 그나마 고도가 높아서 낮은 기온을 유지할 수 있는 고산의 산정에서만 살아남을 수 있었다.

[개현삼] 강원도부터 만주까지 자라는 여러해살이풀로, 꽃은 6~7월에 피며, 덕항산이 분포의 남쪽 한계선으로 추정된다.
고산 가운데서도 산정 부분이 흙으로 덮인 게 아니라 바위가 드러나 있거나 흙이 살짝만 덮여서 숲보다 초원이 발달한 그런 곳의 환경이 북방계 식물들이 살아남을 수 있는 장소를 제공했다. 고산이어서 겨울이 빨리 찾아오고 그 기간도 길고, 다른 계절에도 낮과 밤의 기온차가 크며, 수분을 이용하기 쉽지 않는 등의 악조건이 오히려 북방계 식물들이 살아남을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석회암이 풍화되어 만들어진 토양은 칼슘과 탄산이온 성분이 많아서 중성 또는 약알칼리를 띠며, 배수가 잘 되는 특징이 있다. 배수가 잘 되므로 비가 온 후 땅이 금방 굳어지게 마련이다. 이 때문에 석회암지대에서 잘 사는 식물과 아예 살지 못하는 식물들이 생겨난다. 이를 각각 호석회암식물, 혐석회암식물이라 부른다.

우리나라에서는 이 분야에 대한 연구가 걸음마 단계라 할 수 있는데, 현재까지 밝혀진 호석회암식물들을 분석해 보면 많은 것들이 북방계 식물 또는 고산식물들이다. 즉, 석회암지대에서는 북방계 식물이나 고산식물이 그리 높지 않은 고도에서도 잘 생육한다는 것이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체계적으로 연구되지 않았지만, 토양의 수소이온농도나 물빠짐이 특별한 점 등 석회암 토양의 물리화학적 특성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노랑무늬붓꽃] 만주와 우리나라에 분포하는 여러해살이풀로, 환경부가 멸종위기 야생식물 II급으로 지정해 보호하고 있다.
백두대간 덕항산(1,073m) 일대는 전체가 석회암지대다. 더욱이 영월이나 단양처럼 하천이나 구릉성 산지로 이루어진 지역이 아니라 해발 1,000m가 넘는 험준한 산악지역이다. 이런 특성들만 해도 덕항산은 특별한 식물들이 생육하기에 충분한 조건을 갖춘 셈이다.

게다가 이 일대는 우리나라에서 해발고도가 높은 지역 가운데서는 석회암층이 가장 많이 노출된 곳이라는 특징까지 있다. 모암이 석회암으로서 지표를 덮고 있는 토양만 석회암지대 특성을 지닌 게 아니라, 모암 자체가 공기 중으로 드러난 곳이 많다는 얘기다.

험준한 산세가 식물의 피난처 역할

그리고, 특별한 식물의 생육에 도움이 되는 매우 중요한 조건이 하나 더 있는데, 그것은 바로 동해안을 따라 달리는 백두대간의 특징 가운데 가장 두드러지는 경동지괴(傾動地塊)의 지형 특성이다. 이 특성은 사람들의 출입을 자연적으로 제한해 이 일대가 인위적인 훼손으로부터 안전하게 보호될 수 있는 조건이 되기도 했다.

[만리화] 강원도와 황해도에 드물게 자라는 한국 특산의 낙엽떨기나무로, 꽃은 3~4월에 잎보다 먼저 핀다.
덕항산 일대는 경동지괴의 전형이다. 태백산, 함백산, 금대봉을 지나 북진을 계속하는 백두대간은 피재 부근에서 낙동정맥을 가르고 난 후부터 동해안과 나란히 달리기 시작한다. 남북 방향으로 곧장 북쪽을 향해 직선으로 달려가는 셈인데, 방향만 그렇게 바뀌는 게 아니라 거느린 산세에서도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한다.

특별한 지형이 나타나기 시작하는데, 서쪽은 완만하고 동쪽은 경사가 매우 급한 이른바 경동지괴 지형이 그것이다. 특히 덕항산 정상 부근부터 지각산(1,081m)을 거쳐 자암재에 이르는 동안은 매우 뚜렷한 경동지괴 지형이 나타나는데, 깎아지른 듯한 벼랑을 이루고 있는 동쪽으로는 사람이 발길을 들여놓을 수 없을 것만 같아 보인다.

산정으로, 석회암지대처럼 특수한 곳으로 쫓겨 올라온 북방계 식물들은 애초부터 숫자가 많지 않은 희귀식물이었다. 적은 숫자밖에 없었기 때문에 인위적인 훼손에 의해 더욱 쉽게 절멸될 수 있다. 이런 면에서 덕항산의 동해안쪽 벼랑으로 이루어진 석회암 지역은 식물 생육과 보전에 중요한 곳으로 남아 있을 수 있었다.

[민대극] 전국적으로 분포하지만 자생지가 많지 않은 여러해살이풀로, 꽃은 4월에 피며, 덕항산 동쪽 사면에서 큰 군락이 있다.
이런 북방계 식물로는 분비나무, 산서어나무, 가는대나물, 개병풍, 민둥인가목, 산새콩, 들완두, 산외, 자주쓴풀, 벌깨풀, 새며느리밥풀, 개현삼, 솔체꽃, 당분취, 바위솜나물, 박새 등이 있다.

이들 가운데, 벌깨풀, 개현삼, 바위솜나물 등은 덕항산이 이들 식물 분포의 남방한계선으로 추정된다. 특히 벌깨풀은 몽골의 고위도 지방까지 분포하는 북방계 식물로서 남한에서는 이곳 덕항산과 자병산에서만 발견되는 희귀식물이다. 노출된 석회암벽에 붙어서 자라는 여러해살이풀로, 자병산도 석회암지대라는 것을 감안하면, 석회암지대가 이 북방계 식물의 피난처로 역할하고 있음을 분명히 알 수 있다.

석회암과 석회암 토양의 물리화학적 특징, 고립된 지형, 사람 간섭이 적은 점 등은 이곳에서 새로운 식물들이 분화하여 나올 수 있는 조건을 제공하기도 했다. 동강할미꽃, 사창분취, 자병취, 세잎승마 등 우리나라 특산식물이면서 석회암지대에서만 생육하는 이런 식물들은 석회암지대라는 환경이 새로운 종을 탄생시키는 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런 식물들은 세계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희귀식물로, 우리나라에서도 석회암지대에서만 볼 수 있는 것들이다.

[바위솜나물] 금강산에서 만주에 걸쳐 자라는 여러해살이풀로, 근래 설악산과 자병산에서도 발견됐으며, 꽃은 6~7월에 핀다.
이밖에도 덕항산에는 우리나라 특산식물인 홀아비바람꽃, 할미밀망, 갈퀴현호색, 터리풀, 노랑갈퀴, 산앵도나무, 참좁쌀풀, 만리화, 고려엉겅퀴 등이 분포하고 있다.

식물의 생장과 가장 밀접한 환경요소 가운데 하나는 수분이다. 수분과 관련해 석회암 지역은 매우 특이하다. 석회암에서 만들어진 토양은 물을 가두어두지 못하고 배수가 매우 잘 되기 때문에 언제나 쉽게 돌처럼 단단하게 굳어지고, 계곡에서 흐르는 물을 찾아보기 어렵다. 덕항산 일대도 이처럼 투수율이 높은 석회암지대 특성을 그대로 보여주는데, 어느 계곡에서나 물을 보기가 쉽지 않다.

이런 석회암지대의 특성에 적응하는 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있다. 대표적인 나무가 굴참나무다. 코르크가 발달한 수피를 벗겨서 굴피집을 짓는데, 환선굴이 있는 삼척시 신기면 대이리 골말에서는 지금도 굴피로 지은 집을 볼 수 있다. 이 굴참나무는 수분 스트레스에 아주 강한 나무로 알려져 있고, 이런 특성 때문에 배수가 잘 되는 석회암지대에서도 숲을 이루어 살아갈 수 있다.

덕항산 동쪽에는 산자락부터 중간 아래쪽에 굴참나무가 자라고 있고, 곳곳에 일본이깔나무 조림지가 자리 잡고 있다. 중간 지역에는 소나무, 전나무, 까치박달, 서어나무, 고로쇠나무, 헛개나무 등이 분포한다. 동쪽 지역의 석회암이 노출된 작은 능선들에는 산서어나무, 개박달나무, 분꽃나무, 털댕강나무, 당조팝나무, 갈기조팝나무, 회목나무, 회양목, 백리향, 만리화, 정향나무 등의 북방계 또는 호석회암 나무들이 분포하고 있다.

 

대간 서쪽에서 시작되는 인간의 생태계 간섭

[사창분취] 강원도 석회암지대에 자라는 한국 특산의 여러해살이풀로 꽃은 9~10월에 피며, 덕항산에서는 고지대 숲속에 많다.
백두대간 능선에 올라서면 신갈나무가 넓게 분포하고, 지각산 북쪽 사면에는 아름드리 고목들이 군락을 이루어 자라고 있다. 하지만 일부 대간 능선에는 백두대간 서쪽의 귀네미골, 큰가래골에서부터 조림된 일본이깔나무 조림지가 이어져 있어 자연성을 잃어버린 상태다. 또한, 귀네미골 등에서는 백두대간까지 고랭지 채소밭을 개발함으로써 백두대간의 인위적인 훼손이 심각한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경작지와 조림지를 따라서 산괴불주머니, 뱀딸기, 애기똥풀, 큰달맞이꽃, 질경이, 지느러미엉겅퀴 같은 풀은 물론이고, 줄딸기, 산딸기 등의 나무들도 백두대간 깊숙한 곳에 침입해 생태계를 교란시키고 있다.

경작지와 조림지도 있지만 덕항산 서쪽은 경사가 완만하고 노출된 석회암이 없으며 토양이 비교적 깊게 덮여 있어 숲이 잘 발달되어 있는 편이다. 이곳에서도 물은 역시 모두 지하로 숨어들어 찾아보기 어렵다. 이 지역은 그나마 숲이 발달하여 가을에 떨어진 낙엽이 분해되면서 유기물이 토양에 섞임으로써 어느 정도 습기를 머금을 수 있는 조건이 되고 있다.

[산새콩] 강원도 이북에 자라는 북방계 여러해살이풀로, 덕항산의 백두대간 능선 몇몇 곳에 분포하며, 꽃은 5~6월에 핀다.
이곳의 숲속에는 만주바람꽃, 왜미나리아재비, 홀아비바람꽃, 놋젓가락나물, 꿩의다리아재비, 선괭이눈, 좀딸기, 붉은참반디, 벌깨덩굴, 당개지치, 애기앉은부채, 금강애기나리, 연령초, 제비난초 등이 자라고 있다. 또한 산자락에는 산토끼꽃, 큰제비고깔 같은 희귀식물이 분포한다.

교사들로 이루어진 식물연구 모임인 한국교사식물연구회가 2005년 13차례에 걸쳐서 덕상산 일대의 식물을 조사한 결과, 이곳에는 84과 264속에 속하는 414종류가 자라는 것으로 파악됐다. 또한, 경북대 김진석씨 등의 2004년과 2005년 조사에서는 90과 337속에 속하는 590종류가 자생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증거표본이 채집된 것만을 헤아린 숫자이니 이곳에 사는 식물의 숫자는 이보다 더 많은 700~800여 종류가 될 것으로 추산된다.

[산토끼꽃] 충북, 경북, 강원도에 드물게 자라는 두해살이풀로, 키 1m 이상 자라며, 전체에 가시가 나고, 꽃은 8월에 핀다.
또한 이곳에는 환경부가 야생동식물보호법에 의해 지정한 멸종위기식물인 개병풍, 노랑무늬붓꽃, 솔나리 등이 자라고 있고, 그밖에도 만주바람꽃, 바위솜나물, 동강할미꽃, 도깨비부채, 구상난풀, 민대극, 만리화, 산토끼꽃 등 산림청 또는 다른 연구자들이 지정한 많은 멸종위기식물이 생육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특히 동강할미꽃은 동강댐 건설의 논란 와중에 동강에서 발견되어 우리나라 특산의 신종으로 발표된 식물로, 당시에 동강댐 건설이 백지화되는 데 한 몫을 했던 식물이다. 그 식물이 동강과 같은 석회암지대인 이곳에서 다시 발견됨으로써 동강할미꽃이 새로운 종으로 탄생되는 데 석회암 환경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입증한 셈이 되었다.

활 만들던 돌뽕나무, 멸종위기종 개병풍 자라

[자병취] 최근 우리나라 특산식물로 발표된 여러해살이풀로, 자병산을 비롯한 강원도 몇몇 산에서 발견되며, 꽃은 9~10월에 핀다.
한국교사식물연구회의 조사에서는 덕항산 지역에 생육하고 있는 고산식물이 94종류나 되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것은 다시 한 번 석회암지대가 북방계 식물의 피난처 역할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뒷받침해 주는 결과다. 북방계 식물은 대부분의 경우 위도가 낮은 지역에서 고산식물로서 살고 있으므로, 고산식물을 곧 북방계 식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 이 조사에서는 과거 기록으로만 남아 있던 식물이 재발견되기도 했다. 돌뽕나무가 그것인데, 이 식물은 전남, 황해도, 함경도의 해변 산기슭에 자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 큰키나무로서, 산뽕나무에 비해 잎이 크고, 열매도 더욱 큰 특징을 보인다. 골말의 환선굴 진입로에 여러 그루가 자라고 있고, 숲속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1662년 편찬된 허목의 <척주지>에 당시 삼척부의 동네별로 재배되거나 자생하는 나무에 대해 기록하고 있는데, 돌뽕나무에 대해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큰제비고깔] 경북 이북의 산에 드물게 자라는 북방계 여러해살이풀로, 꽃은 8~9월에 피며, 덕항산의 서쪽 사면에서 발견된다.
‘노곡에서 자라던 뽕나무인 궁간상(弓幹桑)은 양잠에는 부적당한 것으로 궁재(弓材)를 만드는 데 사용된다. 그 잎은 크기가 손바닥만하고, 열매는 크기가 2촌(寸)여나 되었다. 이 궁간상은 오직 삼척부에만 있는 뽕나무다.’

덕항산은 그곳에 살고 있는 식물의 면면으로 보아 매우 중요한 산이다. 동쪽 사면 중턱에 자리 잡고 있는 환선굴만 덕항산 명물이 아니다. 동굴지대의 중요성 때문에 이 일대가 군립공원으로 지정된 것은 사실이지만, 앞으로는 군립공원 관리에서 식물의 중요성도 더해지면 좋을 것 같다.

글 현진오 동북아식물연구소장 koreanplant.inf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