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 대장정 제2구간] 남원
문화 전란의 아픔과 사랑 노래 가득한 곳 백두대간으로 인해 문화현상도 다양해져 | ||||||||||
남원에는 전란의 아픔과 사랑의 노래가 가득하다. 그것은 백두대간을 머리에 이고 있다는 사실에 기인한 바 크다. 남원을 예전에는
‘고룡(古龍)’이라 했다. 그러다 통일신라 685년에 5소경 중 하나인 남쪽 지방의 서울이라 하여 남원경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더워, 추워’와 ‘더버, 추버’ 남원에는 2개의 큰 물줄기가 있는데, 그 분수령이 백두대간이다. 하나는 남원 시내를 가로질러 곡성과 구례를 거쳐 섬진강으로 흘러가는 요천이고, 다른 하나는 운봉, 산내, 마천, 산청을 거쳐 진주 남강으로 흘러드는 만수천이다. 만수천의 발원지 덕산저수지 옆에 주천면 덕치리 노치 마을이 있다. 이 마을은 백두대간이 지나가는 곳으로, 비가 와 왼쪽에 떨어지면 주천으로 흘러가고, 오른쪽으로 내리는 비는 운봉으로 흘러간다. 마을 가운데에서 물의 흐름이 갈라진다. 마을의 몇 집은 주천면과 운봉읍의 경계선이 지나가고 있다. 그래서 주방이 있는 아래채는 운봉에 속하고, 안방은 주천면에 속한다. 아침은
운봉에서 먹고, 잠은 주천면에서 자는 희한한 풍경이 생긴다. 정유재란의 아픈 상처 만인의총과 오리 노래탑
정유재란 당시는 남원을 지키기 위한 남원성 싸움이 치열했다. 남원은 전라도 관문으로 왜군이 북상하는 데 꼭 확보해야만 하는 매우 긴요한
전략적 요충지였다. 임진왜란 때 왜군이 패배한 것은 전라도 지방을 점령하지 못한 데 있다고 판단, 정유재침 시에는 전라도 지방을 점령한 후
한양으로 진격할 계획을 세웠다.
그들은 400년 동안 수많은 시련을 겪어 오면서도 혈통과 한국의 얼을 꿋꿋하게 간직해왔다. 그동안 그리움이 사무쳐 고향을 잊을 수 없던 조선 도공들은 자신들이 한민족임을 나타내는 단군 묘인 다마야마궁(玉山宮)을 세웠다. 이곳에서는 해마다 음력 9월14일이 되면 큰 제사를 올리는데, 이 때 우리 음 그대로 망향의 노래 ‘오리 오리소서’를 부른다. 이 노래는 ‘새로 돌아오는 내일은 오늘과 같이 화평한 날이 되게 해달라’는 송축의 노래로 평민층부터 궁궐에서까지 부르던 노래다. 오리 오리쇼셔 이성계의 황산대첩비와 여원재 춘향전과 흥부전도 백두대간이 풀어냈다
춘향전은 고대소설의 대표작이며. 판소리 12마당의 하나다. 춘향전은 처음 판소리로 생성되어 불리다가 나중에 소설로 정착됐다. 원각사(圓覺社) 이후에 창극이 됐으며, 그 뒤 신소설, 희곡, 연극, 영화, 시나리오, 뮤지컬, 오페라의 대본 등 다양한 장르로 개작됐다. 춘향전의 주제는 사랑이다. 단순한 사랑이 아니라 신분을 초월한 사랑, 신분적 제약 극복의 의지가 담겨 있는 사랑이다. 그리고 흔히 춘향전에 표현된 사상으로 계급 타파나 신분적 저항, 또는 근대적 자각 등을 말하기도 한다. 춘향전의 배경인 광한루는 누각이고, 누가 있는 정원을 광한루원이라고 한다. 광한루 앞에는 신선사상이 반영된 영주섬, 방장섬, 봉래섬이 있고, 그 옆에는 유명한 오작교가 있다. 광한루 왼편으로 30여 기의 비석과 춘향사당이 대나무숲 속에 있다. 주천면 호경리 구룡계곡에 춘향묘와 육모정이 있다. 이도령과 성춘향의 사랑을 기리는 춘향제가 매년 5월5일에 열리고 있다. ‘전라도와 경상도 얼픔에 흥보가 살았는디’라고 하여 도계인 인월의 성산리와 아영의 성리가 흥부마을로 알려져 있다. 두 마을에는 흥부전을 연상시키는 지명들이 많이 있다. 성산리에는 제비가 흥부집을 맴돌았다는 마을 뒷산 연비봉, 흥부가 도승의 말에 따라 집터로 잡아 부자가 됐다는 흥부네 텃밭, 흥부가 놀부에게서 쫓겨나 짚신을 털며 아픈 다리를 움켜쥐고 신세를 한탄했다는 신털바위, 흥부가 제비의 은덕을 기리기 위해 놓았다는 연하다리 등이 있다. 성리에도 흥부전과 관련된 지명과 설화가 있다. 지명으로는 놀부가 부자가 된 흥부에게서 화초장을 얻어 돌아가던 중 쉬었다는 화초장바위, 도승이 춘보에게 잡아준 집터인 고둔터, 춘보가 허기져 쓰러졌다는 고개인 허기재 등이 있다. 흥부전에 등장하는 중심 인물은 흥부지만, 놀부가 차지하는 비중도 그에 못지않게 크다. 흥부와 놀부는 각기 다른 인생의 자세를 대변하는 인물이다. 흥부를 도덕적 인물로, 놀부를 반도덕적 인물로 평가한다. 그러나 흥부는 가난을 타개할 의지도 정열도 없이 주어진 운명에만 자신을 맡기는 소극적 인물이고, 놀부는 재산을 모으고 그것을 지키기 위해 갖은 노력을 기울이는 적극적 인물로 보기도 한다. 남원의 문학·문인-금오신화와 김삼의당과 혼불
뛰어난 재능을 접어둔 채 방랑하며 세조의 정권을 거부하던 김시습이 한가롭게 사랑 이야기나 다루었을 것 같지는 않다. 그보다는 생육신의 한 사람인 그가 억울하게 죽음을 당한 단종을 그리워하며 그를 위하여 절개를 지키겠다는 자신의 뜻을 우회적으로 풀어놓은 이야기일 것이다. 김삼의당(金三宜堂)은 널리 알려지지 않은 남원의 조선시대 후기 여류시인이다. 주로 남원에서 활동한 주부시인으로, 명문거족의 자녀도 아니고 세인들의 관심을 끌만한 이야기도 없었던 평범한 사람이지만, 우리 문학사에 큰 업적을 남긴 사람이다. 김삼의당은 일상적인 농촌의 생활을 부부화애의 시, 자연교감의 시, 농촌생활의 시, 세시풍속의 시로 잘 표현하고 있다. 일제시대를 배경으로 우리 민족의 끈질긴 생명력과 풍속사를 10권의 대하소설에 담아낸 혼불을 쓰기 위해 최명희는 젊음을 고스란히 바쳤다. 민속학의 보고, 민족어의 산실로 칭송받는 혼불은 남원 사매면 노봉 마을의 몰락해가는 매안이씨 양반가를 지키는 며느리의 이야기를 통해 당시 사람들의 힘겨웠던 삶과 인간의 보편적인 정신세계를 서정적으로 그리고 있다. 양반촌인 매안 마을과 매안이씨의 땅을 부치며 살아가는 상민들의 거멍굴이 소설 혼불의 무대다. 사매면 노봉 마을에 혼불문학관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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