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

봄이 오래 머무는 곳, 보개산 각연사 - 충북 괴산

작은岳馬 2006. 1. 14. 14:21
봄이 오래 머무는 곳, 보개산 각연사
사람 발길이 잦지 않아 더 아름다운 산사의 나무들
미디어다음 / 글, 사진 = 고규홍 나무 칼럼니스트
지나가는 한 남자가 내놓은 ‘생애 최고의 벚나무’라는 찬사가 결코 남우세스럽지 않은 각연사 비로전 앞의 벚나무.
충청북도 괴산군, 속리산 자락 북쪽 봉우리의 하나인 보개산의 각연사(覺淵寺)를 처음 찾은 것은 이태 전인 2003년 4월이었습니다. 대단한 문화재가 남아있지도 않고, 세상에 그리 많이 알려진 절집도 아니어서, 별다른 기대는 하지 않았지요.

그러나 제 답사 길이 늘 그렇듯, 사람의 발길이 많지 않으니, 오히려 나무에게는 더 좋은 살림터 아니겠느냐 하는 생각만 했지요.

그렇게 별다른 기대 없이 찾은 각연사는 뜻밖에도 비경(秘境)이라 해도 모자라지 않을 만큼 훌륭했습니다. 무엇을 찾느냐에 따라 생각은 달라지겠지만, 나무를 찾아 떠난 제게 각연사는 흥분하고도 남음이 있을 만했습니다.

절집 오르는 고갯길에서부터 바라다보이는 비교적 멋없이 시멘트로 지어진 요사채는 ‘오늘도 또 헛걸음 아닌가 싶다’는 생각을 부채질했지요. 절집 마당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이 같은 첫인상은 완전히 뒤바뀌었습니다.

각연사 대웅전 동편에 활짝 피어난 자목련.
법당 앞 너른 마당에 진한 분홍색 꽃을 활짝 피운 꽃사과나무를 비롯해,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다양한 나무들이 절집 곳곳에서 형형색색 아름다움을 자랑하고 있었습니다.

붉은 꽃을 활짝 매달고 마당 가장자리를 지키고 있는 명자나무, 그 곁의 향나무, 대웅전 옆의 키다리 오동나무, 곳곳에 활짝 꽃을 피운 벚나무와 붉은 겹벚나무, 특이하게도 큰 키로 자라난 오얏나무, 대웅전 뒤편의 비로전 앞에 우뚝 선 보리수나무, 대추나무, 노간주나무, 자목련, 백목련, 홍매. 그 종류를 일일이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종류의 나무들이 제가끔 제가 서있는 자리를 지키고 서있었습니다.

대웅전 동편에서 봄꽃을 화려하게 풀어헤치고 있는 오얏나무의 아름다운 자태.
도무지 한 번의 답사로는 그 나무들의 아름다움을 느끼기 어려울 듯했습니다. 그 첫 만남의 감동을 조금 가라앉힌 뒤, 열흘 쯤 뒤에 다시 각연사를 찾았습니다. 벚꽃에 비해 개화가 며칠 늦은 분홍 겹벚꽃이 그 사이에 이미 활짝 피었고, 이제는 난분분 꽃잎을 바람에 떨구고 있었습니다. 비로전 뒤편 난간 위에 서있는 겹벚나무에서 떨어진 꽃잎들은 법당 뒤 작은 골목길로 떨어져 마치 붉은 카펫을 깔아놓은 듯한 진풍경을 보여주었습니다.

그 봄의 감동을 떠올리며 지난주에 각연사를 다시 찾았습니다. 조금 늦었지만, 괴산을 들르는 김에 미선나무 자생지에 가서 미선나무 꽃도 보고 싶었지만, 미선나무 꽃은 이미 한 송이 남기지 않고 다 떨어졌습니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3곳을 모두 찾아보았으나, 남아있는 꽃은 없었습니다.

미선나무에 대한 아쉬움은 각연사에서 충분히 상쇄되고도 남음이 있었습니다. 보개산 각연사는 여전히 아름다운 산사(山寺)입니다. 아직 꽃사과나무는 꽃망울만 피워올리고 피어나지 않았습니다. 대웅전 동편에 서있는 자목련이 붉은 꽃을 활짝 피었고, 곳곳에 벚나무들이 한껏 최상의 아름다움을 빛내고 있었습니다.

산사의 한적함과 자연의 아름다움이 한껏 잘 어우러진 충북 괴산 보개산 각연사 전경.
늘 한적한 산사(山寺)를 찾은 중년의 사내 한 분이 활짝 피어난 벚나무 아래에 서서 한참을 바라보시더니, “내 생애 최고의 벚나무다!”라고 한 말씀 던지시더군요. ‘훗훗’ 하고 마주 웃었지만, 결코 허투루 내뱉은 말씀이 아닙니다. 그리 큰 나무는 아니었으나, 꽃이 피어난 모습만큼은 그야말로 다시 찾아보기 힘든 장관이었습니다.

비로전 앞의 벚꽃 외에도 대웅전 바로 옆의 키 큰 오얏나무의 꽃들도 절정을 이루고 있습니다. 각연사 오르는 산길 양옆에서도 오얏나무 과수원을 만날 수 있는데, 그렇게 열매를 얻기 위해 키우는 오얏나무와는 사뭇 다른 모습으로 큰 키로 자라난 오얏나무가 활짝 꽃을 피운 모습도 다른 어느 곳에서 찾아보기 힘든 풍경입니다.

어느 틈엔가 자취를 감춰버린 올 봄, 사람의 발길이 잦지 않은 보개산 각연사를 찾아들어 유난히 오래 머무른 모양입니다. 보개산 각연사에 깃든 이 봄은 아직도 겹벚꽃, 꽃사과나무의 화려한 개화를 꿈꾸고 푸른 하늘 아래 고요히 제 몸을 풀어헤치고 있었습니다.